소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가면극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9-01-18

정의

가면극에서 노승을 파계시키는 술집 여자, 또는 본처를 불행하게 만드는 첩.

내용

소무小巫는 가면극의 주요 등장인물로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봉산 탈춤, 강령 탈춤, 통영 오광대, 고성 오광대, 진주 오광대, 가산 오광대 등에 등장한다. 은율 탈춤의 새맥시, 고성 오광대의 선녀,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부네, 남사당 덧뵈기의 피조리는 산대놀이와 해서 탈춤의 노장 과장에 나오는 소무에 해당한다. 소무는 젊은 여자, 특히 유녀遊女이기 때문에 인물이 매우 좋다. 흰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은 것이라든가 새색시처럼 고운 옷을 입은 것도 소무의 기녀妓女적인 면을 돋보이게 한 것이다.

가면극에 따라 소무는 한 명 또는 두 명이 등장한다. 봉산 탈춤에서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노장의 상대역 여성으로 소무가 두 명 등장했으나, 1960년대에 월남한 연희자들이 복원할 때에는 연희자가 부족하여 한 명만 등장하도록 연출했다.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덧배기에서는 현재도 두 명의 소무가 등장한다. 정현석의 『교방가요敎坊歌謠』 중 「승무僧舞」에도 노장의 상대역으로 기생 두 명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원래는 노장의 상대역으로 소무가 두 명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듯하다.

성현의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조선 전기에 궁궐에서 거행하던 나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례는 『고려사高麗史』에 소개된 고려시대의 궁중 나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방상시, 12지신 이외에 판관, 조왕신, 소매 등 새로운 배역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 소매는 당나라 중엽 이후 중국의 나례에서 방상시를 대신해 구나의식의 중심 역할을 맡았던 종규의 여동생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나례에는 종규와 함께 소매가 나온다. 즉 중국과 한국의 나례에 모두 소매小妹•小梅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소매를 小妹 또는 小梅, 두 가지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 권1 「성기聲伎」 의 “연극에는 산희山戲와 야희野戲의 두 부류가 있는데 나례도감에 소속된다. 산희는 다락을 매고 포장을 치고 하는데, 사자•호랑이•만석중 등이 춤을 춘다. 야희는 당녀唐女와 소매小梅로 분장하고 논다.”라는 내용에서, 나례도감에 속하는 연극에 당녀와 소매를 등장시켜 노는 야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야외놀이화한 연극적 놀이에 당녀와 소매가 등장하는 것이다. 양주 별산대놀이에도 왜장녀와 소무가 등장하므로, 이 야희는 가면극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용재총화』의 나례와 『경도잡지』의 야희에 나오는 소매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가면극에 등장하는 인물인 소무와 관련이 있다. 이미 김학주는 『경도잡지』의 야희에 나오는 소매를 가면극의 소매로 간주하고, 이는 중국과 한국의 나례에 등장하는 인물인 소매小妹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가면극의 소무를 나례의 소매에서 유래한 인물로 보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우선 가면극의 소무가 소매의 와전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소무라는 용어는 1920년대 후반에 학자들이 가면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소매를 무당으로 오인해 소무小巫 또는 소무당小巫堂으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1928년 여름 강릉 단오제를 조사한 일본학자 아키바 다카시秋葉降는 후일 그의 논문 「강릉 단오제江陵端午祭」에서 강릉 관노 가면극 가운데 양반광대의 상대역인 여성을 ‘소매각시少巫閣氏(somai─kak,’si)’라고 표기했다. 한자로는 ‘少巫(소무)’라고 썼지만 발음은 분명히 ‘소매(somai)’라고 표기했다. 소매각시를 무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음이 소매임에도 표기는 소무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민속학자 임석재의 회고담에서도 똑같이 엿볼 수 있다. 경복궁에서 박람회가 개최된 1929년 9월에 당시 경성제국대학의 학생이었던 임석재는 같은 대학의 사회학 교수였던 아키바 다카시가 경복궁에서 가면극 공연이 있으니 와 보라고 연락해 양주 별산대놀이를 구경했는데, 얼마 후 그의 요청으로 양주 별산대놀이의 연희자인 조종순趙鍾洵으로부터 대사를 채록했다고 한다. 임석재는 최근 그의 회고담에서 “소무는 무당 후보쯤 되는 어린 무당이라고 생각해서 썼는데, 후에 다른 기록들을 보니까 소매각시라는 술집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도 소무보다는 소매가 훨씬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위와 같은 나의 잘못된 점을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했으나, 후학들이 좀처럼 고치지 않고 고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1928년 여름에 이미 강릉 단오제를 조사한 바 있었던 아키바 다카시가 이듬해 겨울 임석재와 함께 양주 별산대놀이를 조사하고 대사를 채록하면서, 소무라는 명칭에 대해 의견을 조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아키바 다카시는 「강릉 단오제」라는 논문을 집필하면서 발음이 소매(somai)임에도 소무로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전의 기록에서는 노장의 상대역인 여성을 어떻게 표기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유득공의 『경도잡지』에는 당녀와 함께 소매가 나오는데, 소매가 옛날 미인의 이름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또한 강이천이 남대문 밖에서 연행된 산대놀이를 보고 지은 <남성관희자南城觀戲子>에도 노장의 상대역 여성으로 소매가 등장한다. 1872년에 정현석이 엮은 『교방가요』에는 14종의 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승무」의 내용은 가면극의 노장 과장과 매우 흡사하다. 이 춤에서는 노장의 상대역인 여성을 ‘소기少妓’, 즉 어린 기생으로 표기했다. 그러므로 현존 가면극에서 노장의 상대역도 노장을 유혹하는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를 무당 또는 무당 후보쯤 되는 여자를 의미하는 소무나 소무당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조선총독부에서 1931년 간행한 조사 자료 제32집인 『생활상태조사生活狀態調査』 기삼其三, 강릉군江陵郡의 281면에는 강릉 관노 가면극에 나오는 양반광대의 상대역 여성을 한글로 분명하게 ‘소매각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강릉 관노 가면극을 조사할 당시 제보자였던 김동하, 차형원 역시 한결같이 양반광대의 상대역을 소매각시라고 증언했다.

1900년 8월 9일 자 황성신문의 기사에서 서울 지역 본산대놀이의 공연을 선전하며 “설부화용雪膚花容 소무당小巫堂과 송납장삼松納長衫 노장승[老長僧]이라.”라고 한 것처럼 노장의 상대역 여성을 소무당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소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가면극의 소무는 그동안 연구 초기에 대본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생긴 용어로서, 가면극의 소무나 소매각시는 나례의 소매로부터 유래한 인물이다.

양주 별산대놀이에서 소무는 제8과장 파계승놀이, 제10과장 취발이놀이, 제12과장 포도부장놀이에 등장한다. 먼저 제8과장에서 소무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린 노장은 육환장을 집어던지고 접근하나 번번이 거절당한다. 그는 도박판으로 뛰어들어 돈을 딴다. 돈을 움켜쥔 노장을 보자, 소무들은 노장을 받아들인다. 이어 제10과장 취발이놀이에서 취발이가 등장해 소무를 빼앗으려고 하자, 노장은 옷을 벗어 던지고 결사적으로 취발이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결국 노장은 젊고 힘이 있는 취발이에게 패배한다. 지금까지 승승장구 이겨 왔던 노장은 취발이에게 소무 한 명을 빼앗기고, 남은 소무와 함께 도망한다. 취발이가 소무를 차지한 후, 소무는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다. 그러면 취발이가 아이에게 글을 가르친다. 제12과장 포도부장놀이에서 샌님과 포도부장이 샌님의 첩인 소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툰다. 샌님은 늙고 힘없는 무능한 존재로서, 젊고 힘 있는 포도부장에게 소무를 빼앗긴다.

강령 탈춤에서 노승의 상대역이자 취발이 상대역으로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 소무는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 제2경과 제3경에 가마를 타고 등장하여 노승•취발이와 함께 대무한다. 소무는 붉은 치마색동저고리를 입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노란 바탕에 붉은색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색동 한삼을 낀다. 그 위에 청색 쾌자를 입고, 다시 그 위에 앞은 감색이고 뒤는 붉은색인 띠를 두르고 있다. 머리에는 무당의 대감 모자와 같은 전립을 쓰고 있는데, 모자 겉은 검은색이고 정수리 부분에 오색 술이 달렸으며, 가장자리에는 금빛에 붉은 선이 가미된 테를 둘렀다. 현재와 같이 소무를 무당의 모습으로 바꾼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강릉 관노 가면극의 양반광대•소매각시춤 과장은 양반이 소매각시를 차지해 다정하게 노는 내용이다. 시시딱딱이춤 과장은 시시딱딱이들이 훼방을 놓아 양반과 소매각시의 사이를 이간시키는 내용이다. 제4과장인 소매각시 자살과 소생은 소매각시가 자살했다가 다시 살아나는 내용이다. 양반이 시시딱딱이들을 쫓아버린 후에 소매각시를 끌고 와서 시시딱딱이와 놀아났다고 나무라면, 소매각시는 완강히 부인하면서 양반에게 용서를 빈다. 그래도 양반이 화를 풀지 않자, 소매각시는 양반의 긴 수염에 자기의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때 장자마리들과 시시딱딱이들이 소매각시의 죽음을 확인하고, 성황신목城隍神木(서낭대)을 모시고 와서 빌자 소매각시가 소생하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는다.

피조리는 남사당 덧뵈기에서 셋째 마당 샌님잡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피조리의 가면은 살구색 바탕에 눈썹과 머리 주름살은 검은색이며 입술 연지는 붉은색이다. 피조리는 갑과 을, 두 명이 등장하는데 모두 머리에 댕기를 하고 있다. 피조리는 샌님잡이에서 샌님, 노친네, 말뚝이가 서로 어울려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가 노친네와 말뚝이가 퇴장할 때 샌님 앞으로 등장하여 그의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이에 샌님은 피조리들에게 난잡하게 놀지 말고 바로 들어오라고 충고하며 퇴장한다. 이후 피조리들은 한쪽에 서서 피조리춤을 추기 시작한다. 피조리들의 춤이 계속되면 먹중이 등장하여 피조리 가운데서 춤을 춘다. 그러다가 취발이가 등장하여 재비와 재담을 나누면, 피조리들은 취발이의 눈치를 본다. 취발이가 먹중을 쫓아내자 피조리들이 피하는데, 취발이는 그중의 한 피조리에게 다가가 농탕을 친다. 후에 다른 피조리를 보고는 중놈하고 놀아났다며 툭 치자 피조리들은 샐쭉거린다. 이에 취발이는 피조리들을 앞세워 춤이나 한번 추자고 하면 함께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특징 및 의의

소무는 그동안 가면극 연구의 초기에 대본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생긴 용어로서, 가면극의 소무나 소매각시는 나례의 소매로부터 유래한 인물이다. 예쁜 여자인 소무는 대부분 술집 여자•기생의 신분으로 나타나는데 가면극의 노장 과장에서는 노장•취발이와 함께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참고문헌

남사당패 연구(심우성, 동문선, 1974), 봉산탈춤(박전열, 화산문화, 2001),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강령탈춤 대사 채록과정에 대하여(임석재 구술, 임돈희 채록, 비교민속학9, 비교민속학회, 1992), 하회별신굿탈놀이(박진태, 피아, 2006), 한•중 두 나라의 가무와 잡희(김학주,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한국의 가면극(전경욱, 열화당, 2007).

소무

소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가면극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9-01-18

정의

가면극에서 노승을 파계시키는 술집 여자, 또는 본처를 불행하게 만드는 첩.

내용

소무小巫는 가면극의 주요 등장인물로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봉산 탈춤, 강령 탈춤, 통영 오광대, 고성 오광대, 진주 오광대, 가산 오광대 등에 등장한다. 은율 탈춤의 새맥시, 고성 오광대의 선녀,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부네, 남사당 덧뵈기의 피조리는 산대놀이와 해서 탈춤의 노장 과장에 나오는 소무에 해당한다. 소무는 젊은 여자, 특히 유녀遊女이기 때문에 인물이 매우 좋다. 흰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은 것이라든가 새색시처럼 고운 옷을 입은 것도 소무의 기녀妓女적인 면을 돋보이게 한 것이다. 가면극에 따라 소무는 한 명 또는 두 명이 등장한다. 봉산 탈춤에서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노장의 상대역 여성으로 소무가 두 명 등장했으나, 1960년대에 월남한 연희자들이 복원할 때에는 연희자가 부족하여 한 명만 등장하도록 연출했다.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덧배기에서는 현재도 두 명의 소무가 등장한다. 정현석의 『교방가요敎坊歌謠』 중 「승무僧舞」에도 노장의 상대역으로 기생 두 명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원래는 노장의 상대역으로 소무가 두 명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듯하다. 성현의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조선 전기에 궁궐에서 거행하던 나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례는 『고려사高麗史』에 소개된 고려시대의 궁중 나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방상시, 12지신 이외에 판관, 조왕신, 소매 등 새로운 배역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 소매는 당나라 중엽 이후 중국의 나례에서 방상시를 대신해 구나의식의 중심 역할을 맡았던 종규의 여동생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나례에는 종규와 함께 소매가 나온다. 즉 중국과 한국의 나례에 모두 소매小妹•小梅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소매를 小妹 또는 小梅, 두 가지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 권1 「성기聲伎」 의 “연극에는 산희山戲와 야희野戲의 두 부류가 있는데 나례도감에 소속된다. 산희는 다락을 매고 포장을 치고 하는데, 사자•호랑이•만석중 등이 춤을 춘다. 야희는 당녀唐女와 소매小梅로 분장하고 논다.”라는 내용에서, 나례도감에 속하는 연극에 당녀와 소매를 등장시켜 노는 야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야외놀이화한 연극적 놀이에 당녀와 소매가 등장하는 것이다. 양주 별산대놀이에도 왜장녀와 소무가 등장하므로, 이 야희는 가면극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용재총화』의 나례와 『경도잡지』의 야희에 나오는 소매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가면극에 등장하는 인물인 소무와 관련이 있다. 이미 김학주는 『경도잡지』의 야희에 나오는 소매를 가면극의 소매로 간주하고, 이는 중국과 한국의 나례에 등장하는 인물인 소매小妹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가면극의 소무를 나례의 소매에서 유래한 인물로 보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우선 가면극의 소무가 소매의 와전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소무라는 용어는 1920년대 후반에 학자들이 가면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소매를 무당으로 오인해 소무小巫 또는 소무당小巫堂으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1928년 여름 강릉 단오제를 조사한 일본학자 아키바 다카시秋葉降는 후일 그의 논문 「강릉 단오제江陵端午祭」에서 강릉 관노 가면극 가운데 양반광대의 상대역인 여성을 ‘소매각시少巫閣氏(somai─kak,&rsquo;si)’라고 표기했다. 한자로는 ‘少巫(소무)’라고 썼지만 발음은 분명히 ‘소매(somai)’라고 표기했다. 소매각시를 무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음이 소매임에도 표기는 소무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민속학자 임석재의 회고담에서도 똑같이 엿볼 수 있다. 경복궁에서 박람회가 개최된 1929년 9월에 당시 경성제국대학의 학생이었던 임석재는 같은 대학의 사회학 교수였던 아키바 다카시가 경복궁에서 가면극 공연이 있으니 와 보라고 연락해 양주 별산대놀이를 구경했는데, 얼마 후 그의 요청으로 양주 별산대놀이의 연희자인 조종순趙鍾洵으로부터 대사를 채록했다고 한다. 임석재는 최근 그의 회고담에서 “소무는 무당 후보쯤 되는 어린 무당이라고 생각해서 썼는데, 후에 다른 기록들을 보니까 소매각시라는 술집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도 소무보다는 소매가 훨씬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위와 같은 나의 잘못된 점을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했으나, 후학들이 좀처럼 고치지 않고 고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1928년 여름에 이미 강릉 단오제를 조사한 바 있었던 아키바 다카시가 이듬해 겨울 임석재와 함께 양주 별산대놀이를 조사하고 대사를 채록하면서, 소무라는 명칭에 대해 의견을 조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아키바 다카시는 「강릉 단오제」라는 논문을 집필하면서 발음이 소매(somai)임에도 소무로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전의 기록에서는 노장의 상대역인 여성을 어떻게 표기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유득공의 『경도잡지』에는 당녀와 함께 소매가 나오는데, 소매가 옛날 미인의 이름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또한 강이천이 남대문 밖에서 연행된 산대놀이를 보고 지은 에도 노장의 상대역 여성으로 소매가 등장한다. 1872년에 정현석이 엮은 『교방가요』에는 14종의 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승무」의 내용은 가면극의 노장 과장과 매우 흡사하다. 이 춤에서는 노장의 상대역인 여성을 ‘소기少妓’, 즉 어린 기생으로 표기했다. 그러므로 현존 가면극에서 노장의 상대역도 노장을 유혹하는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를 무당 또는 무당 후보쯤 되는 여자를 의미하는 소무나 소무당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조선총독부에서 1931년 간행한 조사 자료 제32집인 『생활상태조사生活狀態調査』 기삼其三, 강릉군江陵郡의 281면에는 강릉 관노 가면극에 나오는 양반광대의 상대역 여성을 한글로 분명하게 ‘소매각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강릉 관노 가면극을 조사할 당시 제보자였던 김동하, 차형원 역시 한결같이 양반광대의 상대역을 소매각시라고 증언했다. 1900년 8월 9일 자 황성신문의 기사에서 서울 지역 본산대놀이의 공연을 선전하며 “설부화용雪膚花容 소무당小巫堂과 송납장삼松納長衫 노장승[老長僧]이라.”라고 한 것처럼 노장의 상대역 여성을 소무당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소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가면극의 소무는 그동안 연구 초기에 대본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생긴 용어로서, 가면극의 소무나 소매각시는 나례의 소매로부터 유래한 인물이다. 양주 별산대놀이에서 소무는 제8과장 파계승놀이, 제10과장 취발이놀이, 제12과장 포도부장놀이에 등장한다. 먼저 제8과장에서 소무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린 노장은 육환장을 집어던지고 접근하나 번번이 거절당한다. 그는 도박판으로 뛰어들어 돈을 딴다. 돈을 움켜쥔 노장을 보자, 소무들은 노장을 받아들인다. 이어 제10과장 취발이놀이에서 취발이가 등장해 소무를 빼앗으려고 하자, 노장은 옷을 벗어 던지고 결사적으로 취발이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결국 노장은 젊고 힘이 있는 취발이에게 패배한다. 지금까지 승승장구 이겨 왔던 노장은 취발이에게 소무 한 명을 빼앗기고, 남은 소무와 함께 도망한다. 취발이가 소무를 차지한 후, 소무는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다. 그러면 취발이가 아이에게 글을 가르친다. 제12과장 포도부장놀이에서 샌님과 포도부장이 샌님의 첩인 소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툰다. 샌님은 늙고 힘없는 무능한 존재로서, 젊고 힘 있는 포도부장에게 소무를 빼앗긴다. 강령 탈춤에서 노승의 상대역이자 취발이 상대역으로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 소무는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 제2경과 제3경에 가마를 타고 등장하여 노승•취발이와 함께 대무한다. 소무는 붉은 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노란 바탕에 붉은색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색동 한삼을 낀다. 그 위에 청색 쾌자를 입고, 다시 그 위에 앞은 감색이고 뒤는 붉은색인 띠를 두르고 있다. 머리에는 무당의 대감 모자와 같은 전립을 쓰고 있는데, 모자 겉은 검은색이고 정수리 부분에 오색 술이 달렸으며, 가장자리에는 금빛에 붉은 선이 가미된 테를 둘렀다. 현재와 같이 소무를 무당의 모습으로 바꾼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강릉 관노 가면극의 양반광대•소매각시춤 과장은 양반이 소매각시를 차지해 다정하게 노는 내용이다. 시시딱딱이춤 과장은 시시딱딱이들이 훼방을 놓아 양반과 소매각시의 사이를 이간시키는 내용이다. 제4과장인 소매각시 자살과 소생은 소매각시가 자살했다가 다시 살아나는 내용이다. 양반이 시시딱딱이들을 쫓아버린 후에 소매각시를 끌고 와서 시시딱딱이와 놀아났다고 나무라면, 소매각시는 완강히 부인하면서 양반에게 용서를 빈다. 그래도 양반이 화를 풀지 않자, 소매각시는 양반의 긴 수염에 자기의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때 장자마리들과 시시딱딱이들이 소매각시의 죽음을 확인하고, 성황신목城隍神木(서낭대)을 모시고 와서 빌자 소매각시가 소생하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는다. 피조리는 남사당 덧뵈기에서 셋째 마당 샌님잡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피조리의 가면은 살구색 바탕에 눈썹과 머리 주름살은 검은색이며 입술 연지는 붉은색이다. 피조리는 갑과 을, 두 명이 등장하는데 모두 머리에 댕기를 하고 있다. 피조리는 샌님잡이에서 샌님, 노친네, 말뚝이가 서로 어울려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가 노친네와 말뚝이가 퇴장할 때 샌님 앞으로 등장하여 그의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이에 샌님은 피조리들에게 난잡하게 놀지 말고 바로 들어오라고 충고하며 퇴장한다. 이후 피조리들은 한쪽에 서서 피조리춤을 추기 시작한다. 피조리들의 춤이 계속되면 먹중이 등장하여 피조리 가운데서 춤을 춘다. 그러다가 취발이가 등장하여 재비와 재담을 나누면, 피조리들은 취발이의 눈치를 본다. 취발이가 먹중을 쫓아내자 피조리들이 피하는데, 취발이는 그중의 한 피조리에게 다가가 농탕을 친다. 후에 다른 피조리를 보고는 중놈하고 놀아났다며 툭 치자 피조리들은 샐쭉거린다. 이에 취발이는 피조리들을 앞세워 춤이나 한번 추자고 하면 함께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특징 및 의의

소무는 그동안 가면극 연구의 초기에 대본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생긴 용어로서, 가면극의 소무나 소매각시는 나례의 소매로부터 유래한 인물이다. 예쁜 여자인 소무는 대부분 술집 여자•기생의 신분으로 나타나는데 가면극의 노장 과장에서는 노장•취발이와 함께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참고문헌

남사당패 연구(심우성, 동문선, 1974), 봉산탈춤(박전열, 화산문화, 2001),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강령탈춤 대사 채록과정에 대하여(임석재 구술, 임돈희 채록, 비교민속학9, 비교민속학회, 1992), 하회별신굿탈놀이(박진태, 피아, 2006), 한•중 두 나라의 가무와 잡희(김학주,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한국의 가면극(전경욱, 열화당,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