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악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집필자 박전열(朴銓烈)

정의

사자춤 행진과 무언극으로 구성되어 사찰을 중심으로 연희되었던 가면 무용극.

역사

『일본서기日本書紀』(720)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일본은 신라•백제•고구려 등의 삼국과 빈번히 접촉하면서 많은 문물을 수입하였다. 무용을 포함한 삼국의 음악을 도입하고 이를 궁중 예악禮樂으로 삼았으며, 아악료雅樂寮에서 이를 관장했다. 일본은 삼국 중에서도 특히 백제와 교류가 빈번했으며, 미마지未摩之(『교훈초敎訓抄』에는 미마지未摩之) 이전에도 백제인 악사樂士들이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612년에는 “미마지가 일본에 귀화하여 말하기를, 오吳에서 배워 기악의 춤을 익혔으며 이에 곧 사쿠라이櫻井라는 곳에 살면서 소년들을 모아서 기악무伎樂舞를 배우도록 했다又百濟人味摩之歸化. 曰, 學于吳, 得伎樂儛. 則安置櫻井, 而集少年, 令習伎樂儛.”라고 전하는 기록도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이미 악기•가면•의상 등이 전래되어 있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교습과 연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악은 궁중과 사찰의 의례에서 자주 연희되었으며, 지금도 일본 왕실의 보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이나 오래된 사찰인 호류사法隆寺, 다이안사大安寺 등에는 기악 가면이 전해지고 있다. 752년에는 도다이사東大寺에서 대규모 기악 공연이 있었는데, 이후로 기악이 차츰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1233년에 악사 가문인 고마노狛近眞가 이 연희의 내용과 비법을 후손들에게 전수하려고 기록한 『교훈초』는 기악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1980년에 도다이사 중수重修 축하 법회에서 기악을 복원하여 공연하였다. 복원된 기악은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었고, 최근에는 진기악眞伎樂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연출이 이루어져 사찰극이나 축제극으로 공연되고 있다.

내용

기악의 내용은 『신찬악보新撰樂譜』(966), 『회중보懷中譜』(1095), 『인지요록仁智要錄』(1192년 이전), 『기악곡妓樂曲』(1294) 등의 오래된 악보와 『교훈초』의 내용, 현전하는 가면 등을 통하여 재구성해 볼 수 있다.

『교훈초』는 한자와 일본어 혼용체의 필사본으로 전체가 열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시 악사 가문에 전해 오는 악樂과 무舞의 역사와 내용을 담고 있어 일본 최고의 종합적 악서로 손꼽히고 있다. 고마는 자신의 종가에 전해지는 악무의 유산을 기록하면서, 서두에서 아악에 관한 구전이 차츰 사라져 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이대로 가다가는 장님이 지팡이를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니, 하늘의 원망을 사지 않도록 후세 사람들이 읽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고 저술 목적을 밝혔다. 복원된 기악은 대개 사월초파일의 불생회佛生會나 칠월백중의 기악회妓樂會에서 공연한다. 기악은 노인들이 말하기를 “화려한 장식을 한 신들이 노니는 모습과 같다.”라고 했는데, 서두에서는 조음調音으로 시작하여 사자獅子•오공吳公•금강金剛•가루라迦樓羅•바라문婆羅門•곤륜崑崙•역사力士•대고大孤•취호醉胡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아악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이다. 등장인물에 따른 악무와 연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입장: 악사는 먼저 악기의 음정을 반섭조盤涉調로 조율하고, 대기실에서 나와 악사석으로 가며 연주를 시작한다. 행렬은 사자가 앞장서고 무인舞人, 피리, 관을 쓴 사람들, 북과 징이 뒤따른다.

  2. 사자춤: 곡조는 일월조음壹越調音인데, 능왕陵王이라는 곡의 빠른 박자와 비슷하며, 도드리[喚頭, 換頭]가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빠른 도드리장단을 세 번 반복하고 세 번 높이 뛰어오르며 추고, 입을 세 번 아래로 향한다.

  3. 오공: 부채를 쥐고 있고, 악기는 반섭조로 세 번씩 연주한다. 기씨무인설紀氏舞人說에 의하면, 오공이 나와서 악사석을 향하여 피리를 부는 시늉을 하면 악사가 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멈추는 시늉을 하면 피리 또한 멈춘다.

  4. 금강: 세 번을 거듭해서 반섭조로 연주한다. 또는 기록에는 가란假蘭•전처前妻•당녀唐女 등의 이름이 병기되어 있으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5. 가루라: 가루라는 딱따구리라고도 한다. 박자는 13박이며 세 번씩 거듭해서 분다. 그러나 근년에는 아악곡인 빠른 환성락을 연주한다. 빠른 춤(주무走舞)을 춘다.

  6. 바라문: 이 대목은 기저귀 빨래하기라고 하며, 손뼉을 치면서 즐거워한다. 박자는 11박이며 일월조음을 세 번씩 반복한다.

  7. 곤륜: 박자는 10박이며 일월조를 세 번씩 연주한다. 먼저 다섯 여자가 나와서 등롱燈籠 앞에 선다. 두 사람은 부채를 들고 두 사람은 자루를 이고 있다. 이어서 두 무인이 나와서 춤을 추다가 부채를 이마에 대고, 두 여인을 사모해 바라보는 시늉을 한다.

  8. 역사: 손뼉을 치며 등장하고, 금강은 입을 벌린다. 일월조음을 아주 빠르게 세 차례씩 분다. 이른바 남근을 휘두르는 춤이다. 그 다섯 여인과 희롱하고 있는 외도外道 곤륜을 항복시키는 흉내를 낸다. 남근 모형을 끈으로 묶어서 당기거나 때리기도 하며 의기양양하게 춤춘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는 석가불의 남근이라고도 한다.

  9. 대고: 대고는 의붓자식 과장이라고도 한다. 처음에 평조음平調音으로 세 번 반복해서 분다. 노파 차림의 인물이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무릎을 쳐서 허리를 구부리도록 하고 부처에게 참배하도록 한다.

  10. 취호: 취호는 취호왕醉胡王이라고도 하는데, 촌장이라고도 하고 외국인이라고도 하며 요란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일월조음을 다섯 번 반복해 분다.

여기까지는 등장인물의 연기 내용이며, 연기에 이어서 원래의 기악곡이 아닌 아악곡 가운데 승화악昇和樂이나 무덕악武德樂으로 마무리한다.

특징 및 의의

기악은 한반도를 통해서 불교와 함께 일본에 유입되었고, 고대 연극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백제로부터 기악에 필요한 악기•도구•가면 등이 전래되었고, 이어서 미마지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교습소를 세워 소년들에게 기악을 지도했다. 이 기악은 나라[奈良]시대에 각 사원의 의례에 도입되어 융성하였다. 이후 악사 가문을 통해서 전승되면서 다른 연극 장르에 영향을 주었으나, 기악 그 자체는 쇠퇴하였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전통극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으면서, 복원 공연과 재창작 공연이 이어져 새로운 고전으로 정착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연극인과 무용인 또는 부여 지역의 유지들을 중심으로 기악의 재현 공연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4년에 간행된 일부 한국사 교과서에는 일본의 고대 문화 형성에 기여한 미마지를 수록하기도 하여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연극사의 접점을 소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기악 추적고(서정완, 한림일본학22,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013), 기악의 사쿠라이 지명에 대한 고찰(이응수, 한국연극학37, 한국연극학회, 2009), 산대극과 기악(이혜구,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사, 1957), 일본 기악의 연구(박전열, 한국민속학23, 한국민속학회, 1990).

기악

기악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집필자 박전열(朴銓烈)

정의

사자춤 행진과 무언극으로 구성되어 사찰을 중심으로 연희되었던 가면 무용극.

역사

『일본서기日本書紀』(720)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일본은 신라•백제•고구려 등의 삼국과 빈번히 접촉하면서 많은 문물을 수입하였다. 무용을 포함한 삼국의 음악을 도입하고 이를 궁중 예악禮樂으로 삼았으며, 아악료雅樂寮에서 이를 관장했다. 일본은 삼국 중에서도 특히 백제와 교류가 빈번했으며, 미마지未摩之(『교훈초敎訓抄』에는 미마지未摩之) 이전에도 백제인 악사樂士들이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612년에는 “미마지가 일본에 귀화하여 말하기를, 오吳에서 배워 기악의 춤을 익혔으며 이에 곧 사쿠라이櫻井라는 곳에 살면서 소년들을 모아서 기악무伎樂舞를 배우도록 했다又百濟人味摩之歸化. 曰, 學于吳, 得伎樂儛. 則安置櫻井, 而集少年, 令習伎樂儛.”라고 전하는 기록도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이미 악기•가면•의상 등이 전래되어 있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교습과 연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악은 궁중과 사찰의 의례에서 자주 연희되었으며, 지금도 일본 왕실의 보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이나 오래된 사찰인 호류사法隆寺, 다이안사大安寺 등에는 기악 가면이 전해지고 있다. 752년에는 도다이사東大寺에서 대규모 기악 공연이 있었는데, 이후로 기악이 차츰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1233년에 악사 가문인 고마노狛近眞가 이 연희의 내용과 비법을 후손들에게 전수하려고 기록한 『교훈초』는 기악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1980년에 도다이사 중수重修 축하 법회에서 기악을 복원하여 공연하였다. 복원된 기악은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었고, 최근에는 진기악眞伎樂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연출이 이루어져 사찰극이나 축제극으로 공연되고 있다.

내용

기악의 내용은 『신찬악보新撰樂譜』(966), 『회중보懷中譜』(1095), 『인지요록仁智要錄』(1192년 이전), 『기악곡妓樂曲』(1294) 등의 오래된 악보와 『교훈초』의 내용, 현전하는 가면 등을 통하여 재구성해 볼 수 있다. 『교훈초』는 한자와 일본어 혼용체의 필사본으로 전체가 열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시 악사 가문에 전해 오는 악樂과 무舞의 역사와 내용을 담고 있어 일본 최고의 종합적 악서로 손꼽히고 있다. 고마는 자신의 종가에 전해지는 악무의 유산을 기록하면서, 서두에서 아악에 관한 구전이 차츰 사라져 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이대로 가다가는 장님이 지팡이를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니, 하늘의 원망을 사지 않도록 후세 사람들이 읽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고 저술 목적을 밝혔다. 복원된 기악은 대개 사월초파일의 불생회佛生會나 칠월백중의 기악회妓樂會에서 공연한다. 기악은 노인들이 말하기를 “화려한 장식을 한 신들이 노니는 모습과 같다.”라고 했는데, 서두에서는 조음調音으로 시작하여 사자獅子•오공吳公•금강金剛•가루라迦樓羅•바라문婆羅門•곤륜崑崙•역사力士•대고大孤•취호醉胡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아악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이다. 등장인물에 따른 악무와 연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입장: 악사는 먼저 악기의 음정을 반섭조盤涉調로 조율하고, 대기실에서 나와 악사석으로 가며 연주를 시작한다. 행렬은 사자가 앞장서고 무인舞人, 피리, 관을 쓴 사람들, 북과 징이 뒤따른다. 사자춤: 곡조는 일월조음壹越調音인데, 능왕陵王이라는 곡의 빠른 박자와 비슷하며, 도드리[喚頭, 換頭]가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빠른 도드리장단을 세 번 반복하고 세 번 높이 뛰어오르며 추고, 입을 세 번 아래로 향한다. 오공: 부채를 쥐고 있고, 악기는 반섭조로 세 번씩 연주한다. 기씨무인설紀氏舞人說에 의하면, 오공이 나와서 악사석을 향하여 피리를 부는 시늉을 하면 악사가 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멈추는 시늉을 하면 피리 또한 멈춘다. 금강: 세 번을 거듭해서 반섭조로 연주한다. 또는 기록에는 가란假蘭•전처前妻•당녀唐女 등의 이름이 병기되어 있으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가루라: 가루라는 딱따구리라고도 한다. 박자는 13박이며 세 번씩 거듭해서 분다. 그러나 근년에는 아악곡인 빠른 환성락을 연주한다. 빠른 춤(주무走舞)을 춘다. 바라문: 이 대목은 기저귀 빨래하기라고 하며, 손뼉을 치면서 즐거워한다. 박자는 11박이며 일월조음을 세 번씩 반복한다. 곤륜: 박자는 10박이며 일월조를 세 번씩 연주한다. 먼저 다섯 여자가 나와서 등롱燈籠 앞에 선다. 두 사람은 부채를 들고 두 사람은 자루를 이고 있다. 이어서 두 무인이 나와서 춤을 추다가 부채를 이마에 대고, 두 여인을 사모해 바라보는 시늉을 한다. 역사: 손뼉을 치며 등장하고, 금강은 입을 벌린다. 일월조음을 아주 빠르게 세 차례씩 분다. 이른바 남근을 휘두르는 춤이다. 그 다섯 여인과 희롱하고 있는 외도外道 곤륜을 항복시키는 흉내를 낸다. 남근 모형을 끈으로 묶어서 당기거나 때리기도 하며 의기양양하게 춤춘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는 석가불의 남근이라고도 한다. 대고: 대고는 의붓자식 과장이라고도 한다. 처음에 평조음平調音으로 세 번 반복해서 분다. 노파 차림의 인물이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무릎을 쳐서 허리를 구부리도록 하고 부처에게 참배하도록 한다. 취호: 취호는 취호왕醉胡王이라고도 하는데, 촌장이라고도 하고 외국인이라고도 하며 요란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일월조음을 다섯 번 반복해 분다. 여기까지는 등장인물의 연기 내용이며, 연기에 이어서 원래의 기악곡이 아닌 아악곡 가운데 승화악昇和樂이나 무덕악武德樂으로 마무리한다.

특징 및 의의

기악은 한반도를 통해서 불교와 함께 일본에 유입되었고, 고대 연극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백제로부터 기악에 필요한 악기•도구•가면 등이 전래되었고, 이어서 미마지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교습소를 세워 소년들에게 기악을 지도했다. 이 기악은 나라[奈良]시대에 각 사원의 의례에 도입되어 융성하였다. 이후 악사 가문을 통해서 전승되면서 다른 연극 장르에 영향을 주었으나, 기악 그 자체는 쇠퇴하였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전통극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으면서, 복원 공연과 재창작 공연이 이어져 새로운 고전으로 정착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연극인과 무용인 또는 부여 지역의 유지들을 중심으로 기악의 재현 공연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4년에 간행된 일부 한국사 교과서에는 일본의 고대 문화 형성에 기여한 미마지를 수록하기도 하여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연극사의 접점을 소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기악 추적고(서정완, 한림일본학22,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013), 기악의 사쿠라이 지명에 대한 고찰(이응수, 한국연극학37, 한국연극학회, 2009), 산대극과 기악(이혜구,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사, 1957), 일본 기악의 연구(박전열, 한국민속학23, 한국민속학회,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