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가면극

집필자 박진태(朴鎭泰)

정의

경상북도 안동 풍천면 하회리에 전승되어 오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서 서낭신의 현신現身을 나타내는 등장인물.

내용

각시는 하회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이다. 15세 과부가 죽어서 된 신이라는 전설과 17세 처녀가 허 도령을 사모한 탓에 금기를 어기고 몰래 엿봄으로써 을 만들던 허 도령을 신벌로 토혈하고 죽게 만든 뒤 죽어서 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경쟁 관계를 이룬다. 1928년에는 17세 총각이 각시의 역할을 하는 각시광대가 되었다고 하여 전승 집단이 17세 처녀설을 지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탈의 제작자도 안 도령이라는 전설이 있어 서낭각시의 배우자도 허 도령과 안 도령으로 엇갈린다. 이처럼 각시의 나이와 짝을 이루는 도령에 대해서 전승 집단 내부에서도 상반된 주장을 한다. 그러나 각시가 무진년戊辰年에 태어난 용띠이고, 이팔청춘의 나이에 죽은 원혼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격화되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각시는 인간이 아니라 서낭신이 하회마을에 현신한 존재이므로 각시의 역할을 하는 각시광대는 광대들 안에서도 서열이 연출자의 역할을 하는 큰광대 다음으로 높았고, 동사에 합숙할 때도 양반광대와 선비광대보다도 상석을 차지하였다. 서낭신을 맞이할 때에도 산주(종신제 제관), 대 메는 광대, 큰광대, 각시광대, 양반광대, 선비광대, 다른 광대들(연령의 순), 부정이 없는 동민의 순서로 행렬을 지어 서낭당에 올라갔다. 그리고 산주가 서낭당 안에 들어가 빌면 서낭신이 서낭대에 하강하므로 각시광대가 맨 먼저 탈을 얼굴에 쓰고, 다른 광대들도 위계질서에 따라 순서대로 탈을 쓴다. 각시광대가 각시 탈을 얼굴에 써서 서낭각시로 변신하는 데에는 탈의 동일화 원리에 주로 의지하지만, 무속적인 신열神悅(ecstasy)과 빙신憑神(spirit‐possession)의 원리도 미약하게나마 작용한다. 그리하여 서낭신이 하강한 서낭대와 탈을 쓴 각시가 동격이 되며, 서낭대를 모시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하는 서낭굿과 각시가 무동춤을 추고 걸립을 하는 서낭각시놀이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제의적 기능은 동일한 것이다.

탈놀이가 시작되면, 각시는 무동을 타고 춤을 추면서 탈판을 돌고, 이어서 꽹과리를 들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걸립乞粒을 한다. 각시가 무동을 타는 것은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이 아니라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양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몽두리춤을 추는 것은 서낭각시신이 마을에 하강하여 춤으로 신명풀이를 하고 악귀와 재난을 물리치는 것이다. 걸립은 마을 사람이 신에게 공물을 바치며 명命과 복을 비는 행위이다. 각시의 무동춤과 걸립에 이어서 주지, 초랭이, 백정, 할미, 중, 부네, 양반, 선비, 이매 등이 등장하여 주지 마당─백정 마당─할미 마당─중 마당─양반•선비 마당의 순서로 탈놀이를 한다. 이는 서낭신인 각시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탈놀이를 봉헌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중 마당은 1928년에는 부네가 오금춤을 추며 걸어가다가 소변을 보고, 중이 소변 냄새를 맡고 흥분하여 부네의 뒤를 따르다가 초랭이한테 발각되면 옆구리에 끼고 달아난다. 1940년 민속학자 송석하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각시가 춤을 추며 걸어서 등장하는 장면과 중이 각시의 등을 마주대고 양팔을 벌려 춤을 추는 장면이 확인된다. 별신굿의 맥락에서 중 마당을 연행할 때는 중의 상대역이 부네이었지만, 별신굿과 무관한 임시 공연에서는 각시가 중 마당에 등장하여 신성한 서낭각시보다는 중을 파계시키는 요염한 여인상으로 세속화되었다. 각시의 성적 행위가 파계승을 풍자하는 희극으로 표현된 것인데, 1928년의 별신굿에서는 서낭신의 신성 결혼으로 연출되었다.

각시의 혼례식은 선비가 신랑이 되고 양반이 홀기笏記를 불어 비밀 의식으로 거행하였다. 초저녁에 마을 입구의 진밭에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우고 멍석을 깔고 장고를 세우고 그 위에 꽃갓을 올려놓고, 양반이 “서동부서婿東婦西”하면 각시와 선비가 초례상(장고)을 사이에 두고 마주섰다. 양반이 “절해라.” 하면 신부가 두 번, 신랑이 한 번 했다. 이처럼 약식으로 초례醮禮를 마치고, 신방도 같은 멍석 위에서 치렀다. 양반이 “신방 들어가라.” 하니 선비가 각시를 눕히고 올라탔다. 각시는 양반이 시키는 대로 “아야”를 세 번 했다. 혼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인 초례는 신랑과 신부가 절을 주고받는 절차인 교배례交拜禮와 술잔을 주고받는 절차인 합근례合卺禮로 진행되는데, 서낭각시의 초례는 교배례만 약식으로 진행된다. 합근례는 생략되었다. 이러한 혼례식은 신혼의례극神婚儀禮劇으로, 마을 사람 중에서 자식이 없는 사람이 선비탈을 쓰고 신랑의 역할을 하면 득남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각시의 혼례식은 각시의 원혼을 위로하고 하회마을 공동체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적 연극이다.

특징 및 의의

각시는 결혼을 했거나 안 했거나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데,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각시는 혼자서 무동춤을 추고 걸립을 하다가 선비와 초례 의식을 치루고 초야初夜의 성행위를 모의적으로 연기한다. 이러한 각시는 양반광대와 사랑춤을 추다가 시시딱딱이에게 희롱당하는 강릉 관노 가면극의 소매각시와 동류에 속한다.

참고문헌

탈놀이의 기원과 구조(박진태, 새문사, 1990), 하회별신굿탈놀이(박진태, 피아, 2006), 한국탈놀이의 미학(박진태, 태학사, 2014).

각시

각시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가면극

집필자 박진태(朴鎭泰)

정의

경상북도 안동 풍천면 하회리에 전승되어 오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서 서낭신의 현신現身을 나타내는 등장인물.

내용

각시는 하회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이다. 15세 과부가 죽어서 된 신이라는 전설과 17세 처녀가 허 도령을 사모한 탓에 금기를 어기고 몰래 엿봄으로써 탈을 만들던 허 도령을 신벌로 토혈하고 죽게 만든 뒤 죽어서 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경쟁 관계를 이룬다. 1928년에는 17세 총각이 각시의 역할을 하는 각시광대가 되었다고 하여 전승 집단이 17세 처녀설을 지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탈의 제작자도 안 도령이라는 전설이 있어 서낭각시의 배우자도 허 도령과 안 도령으로 엇갈린다. 이처럼 각시의 나이와 짝을 이루는 도령에 대해서 전승 집단 내부에서도 상반된 주장을 한다. 그러나 각시가 무진년戊辰年에 태어난 용띠이고, 이팔청춘의 나이에 죽은 원혼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격화되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각시는 인간이 아니라 서낭신이 하회마을에 현신한 존재이므로 각시의 역할을 하는 각시광대는 광대들 안에서도 서열이 연출자의 역할을 하는 큰광대 다음으로 높았고, 동사에 합숙할 때도 양반광대와 선비광대보다도 상석을 차지하였다. 서낭신을 맞이할 때에도 산주(종신제 제관), 대 메는 광대, 큰광대, 각시광대, 양반광대, 선비광대, 다른 광대들(연령의 순), 부정이 없는 동민의 순서로 행렬을 지어 서낭당에 올라갔다. 그리고 산주가 서낭당 안에 들어가 빌면 서낭신이 서낭대에 하강하므로 각시광대가 맨 먼저 탈을 얼굴에 쓰고, 다른 광대들도 위계질서에 따라 순서대로 탈을 쓴다. 각시광대가 각시 탈을 얼굴에 써서 서낭각시로 변신하는 데에는 탈의 동일화 원리에 주로 의지하지만, 무속적인 신열神悅(ecstasy)과 빙신憑神(spirit‐possession)의 원리도 미약하게나마 작용한다. 그리하여 서낭신이 하강한 서낭대와 탈을 쓴 각시가 동격이 되며, 서낭대를 모시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하는 서낭굿과 각시가 무동춤을 추고 걸립을 하는 서낭각시놀이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제의적 기능은 동일한 것이다. 탈놀이가 시작되면, 각시는 무동을 타고 춤을 추면서 탈판을 돌고, 이어서 꽹과리를 들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걸립乞粒을 한다. 각시가 무동을 타는 것은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이 아니라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양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몽두리춤을 추는 것은 서낭각시신이 마을에 하강하여 춤으로 신명풀이를 하고 악귀와 재난을 물리치는 것이다. 걸립은 마을 사람이 신에게 공물을 바치며 명命과 복을 비는 행위이다. 각시의 무동춤과 걸립에 이어서 주지, 초랭이, 백정, 할미, 중, 부네, 양반, 선비, 이매 등이 등장하여 주지 마당─백정 마당─할미 마당─중 마당─양반•선비 마당의 순서로 탈놀이를 한다. 이는 서낭신인 각시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탈놀이를 봉헌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중 마당은 1928년에는 부네가 오금춤을 추며 걸어가다가 소변을 보고, 중이 소변 냄새를 맡고 흥분하여 부네의 뒤를 따르다가 초랭이한테 발각되면 옆구리에 끼고 달아난다. 1940년 민속학자 송석하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각시가 춤을 추며 걸어서 등장하는 장면과 중이 각시의 등을 마주대고 양팔을 벌려 춤을 추는 장면이 확인된다. 별신굿의 맥락에서 중 마당을 연행할 때는 중의 상대역이 부네이었지만, 별신굿과 무관한 임시 공연에서는 각시가 중 마당에 등장하여 신성한 서낭각시보다는 중을 파계시키는 요염한 여인상으로 세속화되었다. 각시의 성적 행위가 파계승을 풍자하는 희극으로 표현된 것인데, 1928년의 별신굿에서는 서낭신의 신성 결혼으로 연출되었다. 각시의 혼례식은 선비가 신랑이 되고 양반이 홀기笏記를 불어 비밀 의식으로 거행하였다. 초저녁에 마을 입구의 진밭에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우고 멍석을 깔고 장고를 세우고 그 위에 꽃갓을 올려놓고, 양반이 “서동부서婿東婦西”하면 각시와 선비가 초례상(장고)을 사이에 두고 마주섰다. 양반이 “절해라.” 하면 신부가 두 번, 신랑이 한 번 했다. 이처럼 약식으로 초례醮禮를 마치고, 신방도 같은 멍석 위에서 치렀다. 양반이 “신방 들어가라.” 하니 선비가 각시를 눕히고 올라탔다. 각시는 양반이 시키는 대로 “아야”를 세 번 했다. 혼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인 초례는 신랑과 신부가 절을 주고받는 절차인 교배례交拜禮와 술잔을 주고받는 절차인 합근례合卺禮로 진행되는데, 서낭각시의 초례는 교배례만 약식으로 진행된다. 합근례는 생략되었다. 이러한 혼례식은 신혼의례극神婚儀禮劇으로, 마을 사람 중에서 자식이 없는 사람이 선비탈을 쓰고 신랑의 역할을 하면 득남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각시의 혼례식은 각시의 원혼을 위로하고 하회마을 공동체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적 연극이다.

특징 및 의의

각시는 결혼을 했거나 안 했거나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데,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각시는 혼자서 무동춤을 추고 걸립을 하다가 선비와 초례 의식을 치루고 초야初夜의 성행위를 모의적으로 연기한다. 이러한 각시는 양반광대와 사랑춤을 추다가 시시딱딱이에게 희롱당하는 강릉 관노 가면극의 소매각시와 동류에 속한다.

참고문헌

탈놀이의 기원과 구조(박진태, 새문사, 1990), 하회별신굿탈놀이(박진태, 피아, 2006), 한국탈놀이의 미학(박진태, 태학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