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완문

한자명

甲申完文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자료

집필자 서대석(徐大錫)
갱신일 2019-01-11

정의

서기 1824년 갑신년(甲申年)에 호조에서 팔도재인(八道才人)이 올린 등장에 답한 공문.

내용

「갑신완문(甲申完文)」의 정식 명칭은 「완문, 등장팔도재인(完文, 等狀八道才人)」이다. 이 완문은 1824년(순조 24) 5월에 호조에서 발송한 것인데 그 전문의 개략은 다음과 같다.

「완문, 등장팔도재인(完文, 等狀八道才人)」
우편의 완문으로 팔도 재인 등이 병자 이후 칙령으로 행하고 설치한 일을 거행하였음을 모두 알 수 있다.
좌우 산(山)이 거행한 재인 중 도산주(都山主)라고 부르는 재임자와 각 도(道), 각 읍의 재인 등이 모두 올라와서 각각 준비를 차리고 무사히 봉행하고 돌아갔다. 갑진년 이후 좌우산이 설행(設行)하지 않았으나 전례에 기록된 칙행(勅行)시의 분부이니 각 도 재인 등은 각 도의 맡은바 관청에 등대하게 한즉 팔도 재인 중 책임을 맡은 이름을 올린 자가 곳곳에 많이 있는바 매번 착란이 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옛 법을 다시 준행하기로 한다. 팔도의 으뜸 영도의 책임을 맡은 자는 방회(房會)를 설행한 뒤에 각 도의 소임을 다만 한 명으로 정하라. 공청도 재인 중에서 팔도 도산주(八道都山主) 겸 도대방(都大房)을 맡고, 경기도 재인 중에서 팔도 우산주(右山主) 겸 도집강(都執綱)을 맡고, 전라도 재인 중에서 팔도 좌산주(左山主) 겸 도집강을 맡고, 경상도 재인 중에서 팔도 공원(八道公員) 겸 본도 대방(大房)을 맡고, 강원도 재인 중에서 팔도 공원 겸 본도 대방을 맡고, 황해도·평안도·함경도 삼도는 모두 업무와 색장(色掌)을 맡아 각각 본도 대방의 맡은 바와 각각이 맡은 바를 삼망(三望)을 갖추어 권점(卷點)을 얻은 자로 정하라. 각 도서 끝에 서명하고 그 도의 소임자 등은 처분하여 나누어 주고 절목(節目)을 만들라. 지금 이후로 각 도 재인 등은 완문을 돌려보고 이것으로써 영구히 도에서 행하는 뜻을 통촉하여 가르치라. 이 뒤로 만일 받들어 시행하지 않거나, 이 밖에 다시 분란을 일으키는 폐단이 없기를 천만 복망한다. 이 일을 가르쳐 시행하라.
갑신 5월 일 완문 손훤출(孫喧出), 김난득(金難得), 이봉국(李鳳國), 임춘학(林春鶴), 송인영(宋人英), 고수관(高壽寬), 등(等) 하은담(河殷潭) 처분
호조(戶曹): 여기에 정한 법식에 의하여 분란이나 체월(遞越)의 페단이 있으면 마땅히 엄하게 다스릴지니라.

이 완문은 병자호란 이후 청국 사신이 올 때 산대극을 봉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각 도 재인청을 재정비할 목적으로 갑진년(甲辰年) 각도 소임들이 서울에 모여 행방회를 열고 전국적인 규모로 개조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갑진년은 1784년(정조 8)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1784년 이전에는 팔도재인이 조정에서 시키는 대로 사신을 봉행하는 자리나 그 밖에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어 차질 없이 연희를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재인들이 올린 등장문은 「정해소지(丁亥所志)」가 전하는데, 이는 ‘재인 조직의 소임을 정하고 소임자의 도서(圖書)나 인장(印章)을 만들어 두었는데, 청양(靑陽)에 사는 송일문(宋日文)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공주(公州) 공인(工人) 박응선(朴膺善)·최성윤(崔聖潤)·박영대(朴英大)·박응철(朴應喆) 등이 무단히 빼앗아갔다.’ 라고 하여 포청에 올린 등장이다. 이런 점에서 재인들은 조직 내의 문제가 있으면 정부 관할 부서에 해결을 요청하는 ‘등장’을 올리고 조정에서는 ‘완문’을 보내 이에 대한 해결 방책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이 완문은 조선 후기 전국 재인들의 조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국가에서 호조를 통하여 재인청에 재인들을 관리하는 임원을 두고, 이들을 통하여 국가적 행사에 재인을 동원하여 연희를 하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재인 조직은 공청도 재인이 팔도재인의 도대방 겸 도산주를 맡고 그 밑에 경기도 재인이 우산주를, 전라도 재인이 좌산주를 맡아 재인을 통솔하였고, 경상도 재인과 강원도 재인은 도공원(都公員)을 맡았을 뿐이고, 함경도·평안도·황해도 재인은 도색장(都色掌)과 도장무(都掌務)의 하급 직책을 맡았다는 점이다. 이는 충청도를 중심으로 경기도와 전라도 등 한반도 중서부의 재인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완문에 등장하는 고수관(高壽寬), 하은담(河殷潭)은 충청도 재인이면서 판소리 명창이다. 하은담은 명창의 비조로 알려진 하한담과 동일 인물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하은담이 명창의 비조라면 판소리 발생 연대, 명창들의 활동 시기 등 판소리사가 달라질 수 있기에 이 완문은 판소리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또한 판소리 명창들이 무속인의 조직과 같은 재인청 조직에 소속되어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어 산대극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명창과 무속인의 관계나 명창들이 나례우인(儺禮優人)으로 활동하였음을 말해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 문서를 통하여 판소리 명창들이 재인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조직을 이끄는 재인들이 충청도·경기도·전라도 지역의 인물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지역은 백제 문화권으로서 판소리가 발생한 지역이고 소리 광대의 활동이 활발하였던 지역임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판소리의 발생 배경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정보가 담긴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광대의 가창 문화(손태도, 집문당, 2003), 명창들의 시대(윤석달, 작가정신, 2010), 판소리사연구(김종철, 역사비평사, 1996), 한국가요의 연구(김동욱, 을유문화사, 1961), 朝鮮巫俗の硏究-下(赤松智城·秋葉隆, 大阪屋號書店, 1938).

갑신완문

갑신완문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자료

집필자 서대석(徐大錫)
갱신일 2019-01-11

정의

서기 1824년 갑신년(甲申年)에 호조에서 팔도재인(八道才人)이 올린 등장에 답한 공문.

내용

「갑신완문(甲申完文)」의 정식 명칭은 「완문, 등장팔도재인(完文, 等狀八道才人)」이다. 이 완문은 1824년(순조 24) 5월에 호조에서 발송한 것인데 그 전문의 개략은 다음과 같다. 「완문, 등장팔도재인(完文, 等狀八道才人)」우편의 완문으로 팔도 재인 등이 병자 이후 칙령으로 행하고 설치한 일을 거행하였음을 모두 알 수 있다.좌우 산(山)이 거행한 재인 중 도산주(都山主)라고 부르는 재임자와 각 도(道), 각 읍의 재인 등이 모두 올라와서 각각 준비를 차리고 무사히 봉행하고 돌아갔다. 갑진년 이후 좌우산이 설행(設行)하지 않았으나 전례에 기록된 칙행(勅行)시의 분부이니 각 도 재인 등은 각 도의 맡은바 관청에 등대하게 한즉 팔도 재인 중 책임을 맡은 이름을 올린 자가 곳곳에 많이 있는바 매번 착란이 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옛 법을 다시 준행하기로 한다. 팔도의 으뜸 영도의 책임을 맡은 자는 방회(房會)를 설행한 뒤에 각 도의 소임을 다만 한 명으로 정하라. 공청도 재인 중에서 팔도 도산주(八道都山主) 겸 도대방(都大房)을 맡고, 경기도 재인 중에서 팔도 우산주(右山主) 겸 도집강(都執綱)을 맡고, 전라도 재인 중에서 팔도 좌산주(左山主) 겸 도집강을 맡고, 경상도 재인 중에서 팔도 공원(八道公員) 겸 본도 대방(大房)을 맡고, 강원도 재인 중에서 팔도 공원 겸 본도 대방을 맡고, 황해도·평안도·함경도 삼도는 모두 업무와 색장(色掌)을 맡아 각각 본도 대방의 맡은 바와 각각이 맡은 바를 삼망(三望)을 갖추어 권점(卷點)을 얻은 자로 정하라. 각 도서 끝에 서명하고 그 도의 소임자 등은 처분하여 나누어 주고 절목(節目)을 만들라. 지금 이후로 각 도 재인 등은 완문을 돌려보고 이것으로써 영구히 도에서 행하는 뜻을 통촉하여 가르치라. 이 뒤로 만일 받들어 시행하지 않거나, 이 밖에 다시 분란을 일으키는 폐단이 없기를 천만 복망한다. 이 일을 가르쳐 시행하라.갑신 5월 일 완문 손훤출(孫喧出), 김난득(金難得), 이봉국(李鳳國), 임춘학(林春鶴), 송인영(宋人英), 고수관(高壽寬), 등(等) 하은담(河殷潭) 처분호조(戶曹): 여기에 정한 법식에 의하여 분란이나 체월(遞越)의 페단이 있으면 마땅히 엄하게 다스릴지니라. 이 완문은 병자호란 이후 청국 사신이 올 때 산대극을 봉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각 도 재인청을 재정비할 목적으로 갑진년(甲辰年) 각도 소임들이 서울에 모여 행방회를 열고 전국적인 규모로 개조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갑진년은 1784년(정조 8)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1784년 이전에는 팔도재인이 조정에서 시키는 대로 사신을 봉행하는 자리나 그 밖에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어 차질 없이 연희를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재인들이 올린 등장문은 「정해소지(丁亥所志)」가 전하는데, 이는 ‘재인 조직의 소임을 정하고 소임자의 도서(圖書)나 인장(印章)을 만들어 두었는데, 청양(靑陽)에 사는 송일문(宋日文)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공주(公州) 공인(工人) 박응선(朴膺善)·최성윤(崔聖潤)·박영대(朴英大)·박응철(朴應喆) 등이 무단히 빼앗아갔다.’ 라고 하여 포청에 올린 등장이다. 이런 점에서 재인들은 조직 내의 문제가 있으면 정부 관할 부서에 해결을 요청하는 ‘등장’을 올리고 조정에서는 ‘완문’을 보내 이에 대한 해결 방책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이 완문은 조선 후기 전국 재인들의 조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국가에서 호조를 통하여 재인청에 재인들을 관리하는 임원을 두고, 이들을 통하여 국가적 행사에 재인을 동원하여 연희를 하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재인 조직은 공청도 재인이 팔도재인의 도대방 겸 도산주를 맡고 그 밑에 경기도 재인이 우산주를, 전라도 재인이 좌산주를 맡아 재인을 통솔하였고, 경상도 재인과 강원도 재인은 도공원(都公員)을 맡았을 뿐이고, 함경도·평안도·황해도 재인은 도색장(都色掌)과 도장무(都掌務)의 하급 직책을 맡았다는 점이다. 이는 충청도를 중심으로 경기도와 전라도 등 한반도 중서부의 재인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완문에 등장하는 고수관(高壽寬), 하은담(河殷潭)은 충청도 재인이면서 판소리 명창이다. 하은담은 명창의 비조로 알려진 하한담과 동일 인물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하은담이 명창의 비조라면 판소리 발생 연대, 명창들의 활동 시기 등 판소리사가 달라질 수 있기에 이 완문은 판소리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또한 판소리 명창들이 무속인의 조직과 같은 재인청 조직에 소속되어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어 산대극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명창과 무속인의 관계나 명창들이 나례우인(儺禮優人)으로 활동하였음을 말해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 문서를 통하여 판소리 명창들이 재인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조직을 이끄는 재인들이 충청도·경기도·전라도 지역의 인물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지역은 백제 문화권으로서 판소리가 발생한 지역이고 소리 광대의 활동이 활발하였던 지역임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판소리의 발생 배경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정보가 담긴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광대의 가창 문화(손태도, 집문당, 2003), 명창들의 시대(윤석달, 작가정신, 2010), 판소리사연구(김종철, 역사비평사, 1996), 한국가요의 연구(김동욱, 을유문화사, 1961), 朝鮮巫俗の硏究-下(赤松智城·秋葉隆, 大阪屋號書店,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