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

한자명

裵裨將打令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판소리 다섯마당 외

집필자 인권환(印權煥)

정의

배비장이 제주 목사를 수행하여 제주도에 따라가서 기생 애랑에게 홀려 관청 뜰에서 망신당한다는 내용의 판소리열두마당의 하나.

개관

<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은 18세기 중엽에 지어진 유진한(柳振漢)의 『만화집(晩華集)』에 처음으로 그 이름이 나타난다. 즉 유진한이 판소리 <춘향가(春香歌)>를 직접 보고 듣고 한시로 엮은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의 내용에 있는 “제주에선 배비장이 앞니를 남길테지.”라고 한 것이 그것인데, 유진한의 춘향가가 판소리 관계 기록의 최초임을 감안할 때 이미 그 당시에 <배비장타령>이 존재했음을 말해주고 있어, 판소리 열두마당 중 그 형성 시기가 매우 빨랐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의 제시(題詩) 중 “애랑에게 빠져 자신의 몸 돌보지 않고(愛浪沈渝不顧身), 술자리서 기생을 업은 배비장이라(中筵負妓裵裨將).”라는 대목이 등장한 것을 보아 당시에 이미 <배비장타령>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識)』, 이유원(李裕元)의 「관극팔령(觀劇八令)」에도 이와 같은 예가 언급되고 있어 당시 <배비장타령>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재효(申在孝)가 전승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하면서 지은 가사(歌詞)인 <오섬가(烏蟾歌)> 중에도 “제주 기생 애랑이가 정비장을 후리려고 강두에 이별할 제 거짓 사랑 거짓 울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 배비장 들어서 궤 속에 잡아넣고 무수한 조롱 작난 어찌 아니 허망하리.”라는 구절 역시 <배비장타령>의 이야기여서 19세기 중엽까지도 계속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배비장타령>의 창은 단절되었고, 이 때문에 그 창본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전하는 <배비장타령>은 과거의 창본이 전승과정에서 소설화한 것뿐이다. 이로 인해 그 명칭도 배비장‘전’으로 호칭되고 있다. 현재 전하는 『배비장전(裵裨將傳)』의 이본은 활자본으로 1916년 신구서림본, 1950년 국제문화관본(김삼불 교주본), 1956년 세창서관본 등이 있으며 국문 필사본으로는 박순호본이 전한다. 이들 중 국제문화관본과 세창서관본은 문체가 판소리 사설체로 되어 있고, 박순호본은 신구서림본의 사본이다. 그리고 국제문화관본은 배비장이 망신을 당하고 난 후의 후일담이 생략되어 있고, 세창서관본은 신구서림본을 바탕으로 한자를 빼고 다듬은 것이다. 이로 볼 때 가장 빠르게 간행된 것은 1916년에 간행된 신구서림본으로 그 이전의 사설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대략 당시까지 전하던 판소리 사설이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배비장은 평범한 인물로서 제주 목사로 부임하는 김경을 따라 풍랑으로 고생한 끝에 제주도에 도착한다. 도착 직후 정비장과 애랑이 이별하면서 애랑이 정비장으로부터 이별 선물로 온갖 물건을 다 받아내고 마침내 그의 이빨까지 뺏는 광경을 목도한다. 이를 보고 배비장이 정비장을 비웃자 방자와 애랑을 두고 내기를 건다. 이에 배비장은 기생과 술자리를 멀리하며 도덕군자인 체 하나, 목사·애랑·방자 3인의 계교에 말려들어 애랑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상사병에 걸린다. 어느 날 배비장이 방자의 안내를 받아 애랑의 집에 이르렀는데, 방자가 남편의 행세를 하며 들이닥치자 황급히 자루 속에 들어가 몸을 피했다가 틈을 보아 피나무 궤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방자는 ‘궤를 불사른다’는 둥, ‘톱으로 자른다’는 둥 겁을 주다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청 마루로 옮기고는 바다에 던져버린다고 위협한다. 다급한 배비장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사공으로 가장한 사령들이 궤의 문을 열어주니 배비장은 눈을 감은 채 맨몸으로 대청에 나와 망신을 당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김삼불이 교주한 국제문화관본의 내용이다. 그런데 신구서림본에는 배비장이 망신을 당한 후 목사와 하직하고 서울 가는 배를 탔다가 여기서 다시 애랑을 만나고, 함께 해남에 이르러 후에 정의현감이 되고 그 고을에서 선정을 베풀며 잘 살았다는 후일담이 첨부되어 있다. 이로써 국제문화관본은 신구서림본의 후일담을 김삼불이 의도적으로 생략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배비장전』의 줄거리는 전래의 문헌설화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수록된 <발치설화(拔齒說話)>와 이원명(李原命)의 『동야휘집(東野彙集)』에 있는 <미궤설화(米櫃說話)>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사랑하는 기생과 이별할 때 이를 뽑아주었던 소년의 이야기인 <발치설화>가 배비장전의 앞부분 애랑과 정비장의 이야기에, 그리고 기생을 멀리한다고 했다가 오히려 기생의 계교에 빠져 알몸으로 궤에 갇힌 채 망신을 당하는 <미궤설화>가 끝부분에 각각 나타난 것이다. 결국 『배비장전』은 전래의 <미궤설화>와 <발치설화>가 설화적 근간이 되고 여기에 조선 후기 서민층의 이야기에 다수 나타나는 지략담·공모담·실패담·망신담 등의 요소들이 가미되어 성립된 것이다. 그 중에도 짜고 속여 망신 주기 유형에 속하는 <정승 속여 평양 감사 된 사람>의 내용 중에, 아들을 계교로 옷을 벗겨 궤 속에 가두었다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오게 하여 망신을 주는 내용도 『배비장전』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그리고 이들 유화들은 조선 후기 다수 생겨난 이른 바 세태소설인 『매화전(梅花傳)』, 『종옥전(鍾玉傳)』, 『오유란전(烏有蘭傳)』, 『이춘풍전(李春風傳)』 등과도 관련된다. 설화와 판소리 사설, 그리고 소설이란 장르를 초월한 공통적 화소들은 상호 교섭하면서 조선 후기 서민 구비 문학의 중추를 이루었다.

<배비장타령>이 무슨 이유로 창을 잃게 되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원본이 되는 판소리 사설로서의 <배비장타령>의 존재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어, 최초의 이본인 신구서림본과의 비교가 불가능한 데다 기존 <배비장타령>과의 서사적 차이마저 감지되고 있는 터여서 신구서림본의 정확한 성립 과정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본 중 김삼불 교주본과 세창서관본은 모두 판소리 사설체로 되어 있어 판소리 사설과의 근접성을 말해 준다. 특히 제주 목사로 부임하는 김경 일행이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대목의 <자탄사설>은 <적벽가(赤壁歌)>의 <군사설움타령>과 유사하고, 배비장이 목욕하는 애랑의 정체를 알기 위해 방자에게 묻는 대목에 나오는 정체 확인 사설(금옥사설)은 <춘향가(春香歌)>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두 양식 간의 공통점을 말해준다. 그 외에 <기생점고>, <청도기행렬 사설>, <새타령> 등 다른 판소리에 등장하는 삽입가요가 나타나며, 판소리 공식적 표현구 관용구가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어 상호 연관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등장인물

<배비장타령>은 조선 후기의 다양한 인물 유형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방자로 이를 통해 기성의 도덕을 힐난하면서 양반층의 위선과 약점을 폭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 방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해학과 풍자,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방자는 가면극에 나오는 말뚝이의 존재와도 유사하며 비슷한 역할인 <춘향가>의 방자보다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풍자를 보여준다. 애랑은 미색과 애교로 양반을 골탕 먹이는 전형적인 기생으로 사건의 주요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배비장은 어리석은 인물로 조작된 작전에 말려들어 방자와 애랑에게 우롱당하고 풍자와 해학의 표적이 되는데 당시 사회에서 허위와 가식으로 도덕군자 행세를 하는 위선적 인물의 전형이다.

특징 및 의의

<배비장타령>의 주제는 풍자와 비판, 해학과 골계(滑稽)의 양면으로 나타난다. 전자는 주로 당시 관인 사회의 모순과 비리, 타락과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면, 후자는 전자를 통한 서민적인 익살과 조롱(嘲弄)으로 관인사회의 부조리를 비웃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당시 사회의 타락해 가는 유가의 윤리와 관리들의 비행을 고발하는 서민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또 이야기의 소재에는 관청에 처음 부임하는 이들에 대한 신참례(新參禮)의 관속(官俗)이 관여된 것으로도 판단된다. <배비장타령>은 처음 구비설화로 떠돌다가 판소리 사설로 흡수되어 18세기 중엽 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로 성립되어 19세기 중엽까지 약 1세기 동안 유행하였고, 19세기 말 창을 잃고 그 사설만이 소설화되어 독서물로 고착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설화에서 판소리, 판소리에서 소설로 변화해온 <배비장타령>은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창극과 마당극으로 발전하여 조선 후기의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서민 문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배비장전 유형의 소설연구(김종철, 관악어문연구10,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5), 배비장전의 풍자층위와 역사적 성격(권순긍, 반교어문연구7, 반교어문학회, 1996), 판소리 창자와 실전 사설 연구(인권환, 집문당, 2002).

배비장타령

배비장타령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판소리 다섯마당 외

집필자 인권환(印權煥)

정의

배비장이 제주 목사를 수행하여 제주도에 따라가서 기생 애랑에게 홀려 관청 뜰에서 망신당한다는 내용의 판소리로 열두마당의 하나.

개관

은 18세기 중엽에 지어진 유진한(柳振漢)의 『만화집(晩華集)』에 처음으로 그 이름이 나타난다. 즉 유진한이 판소리 를 직접 보고 듣고 한시로 엮은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의 내용에 있는 “제주에선 배비장이 앞니를 남길테지.”라고 한 것이 그것인데, 유진한의 춘향가가 판소리 관계 기록의 최초임을 감안할 때 이미 그 당시에 이 존재했음을 말해주고 있어, 판소리 열두마당 중 그 형성 시기가 매우 빨랐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의 제시(題詩) 중 “애랑에게 빠져 자신의 몸 돌보지 않고(愛浪沈渝不顧身), 술자리서 기생을 업은 배비장이라(中筵負妓裵裨將).”라는 대목이 등장한 것을 보아 당시에 이미 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識)』, 이유원(李裕元)의 「관극팔령(觀劇八令)」에도 이와 같은 예가 언급되고 있어 당시 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재효(申在孝)가 전승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하면서 지은 가사(歌詞)인 중에도 “제주 기생 애랑이가 정비장을 후리려고 강두에 이별할 제 거짓 사랑 거짓 울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 배비장 들어서 궤 속에 잡아넣고 무수한 조롱 작난 어찌 아니 허망하리.”라는 구절 역시 의 이야기여서 19세기 중엽까지도 계속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의 창은 단절되었고, 이 때문에 그 창본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전하는 은 과거의 창본이 전승과정에서 소설화한 것뿐이다. 이로 인해 그 명칭도 배비장‘전’으로 호칭되고 있다. 현재 전하는 『배비장전(裵裨將傳)』의 이본은 활자본으로 1916년 신구서림본, 1950년 국제문화관본(김삼불 교주본), 1956년 세창서관본 등이 있으며 국문 필사본으로는 박순호본이 전한다. 이들 중 국제문화관본과 세창서관본은 문체가 판소리 사설체로 되어 있고, 박순호본은 신구서림본의 사본이다. 그리고 국제문화관본은 배비장이 망신을 당하고 난 후의 후일담이 생략되어 있고, 세창서관본은 신구서림본을 바탕으로 한자를 빼고 다듬은 것이다. 이로 볼 때 가장 빠르게 간행된 것은 1916년에 간행된 신구서림본으로 그 이전의 사설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대략 당시까지 전하던 판소리 사설이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배비장은 평범한 인물로서 제주 목사로 부임하는 김경을 따라 풍랑으로 고생한 끝에 제주도에 도착한다. 도착 직후 정비장과 애랑이 이별하면서 애랑이 정비장으로부터 이별 선물로 온갖 물건을 다 받아내고 마침내 그의 이빨까지 뺏는 광경을 목도한다. 이를 보고 배비장이 정비장을 비웃자 방자와 애랑을 두고 내기를 건다. 이에 배비장은 기생과 술자리를 멀리하며 도덕군자인 체 하나, 목사·애랑·방자 3인의 계교에 말려들어 애랑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상사병에 걸린다. 어느 날 배비장이 방자의 안내를 받아 애랑의 집에 이르렀는데, 방자가 남편의 행세를 하며 들이닥치자 황급히 자루 속에 들어가 몸을 피했다가 틈을 보아 피나무 궤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방자는 ‘궤를 불사른다’는 둥, ‘톱으로 자른다’는 둥 겁을 주다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청 마루로 옮기고는 바다에 던져버린다고 위협한다. 다급한 배비장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사공으로 가장한 사령들이 궤의 문을 열어주니 배비장은 눈을 감은 채 맨몸으로 대청에 나와 망신을 당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김삼불이 교주한 국제문화관본의 내용이다. 그런데 신구서림본에는 배비장이 망신을 당한 후 목사와 하직하고 서울 가는 배를 탔다가 여기서 다시 애랑을 만나고, 함께 해남에 이르러 후에 정의현감이 되고 그 고을에서 선정을 베풀며 잘 살았다는 후일담이 첨부되어 있다. 이로써 국제문화관본은 신구서림본의 후일담을 김삼불이 의도적으로 생략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배비장전』의 줄거리는 전래의 문헌설화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수록된 와 이원명(李原命)의 『동야휘집(東野彙集)』에 있는 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사랑하는 기생과 이별할 때 이를 뽑아주었던 소년의 이야기인 가 배비장전의 앞부분 애랑과 정비장의 이야기에, 그리고 기생을 멀리한다고 했다가 오히려 기생의 계교에 빠져 알몸으로 궤에 갇힌 채 망신을 당하는 가 끝부분에 각각 나타난 것이다. 결국 『배비장전』은 전래의 와 가 설화적 근간이 되고 여기에 조선 후기 서민층의 이야기에 다수 나타나는 지략담·공모담·실패담·망신담 등의 요소들이 가미되어 성립된 것이다. 그 중에도 짜고 속여 망신 주기 유형에 속하는 의 내용 중에, 아들을 계교로 옷을 벗겨 궤 속에 가두었다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오게 하여 망신을 주는 내용도 『배비장전』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그리고 이들 유화들은 조선 후기 다수 생겨난 이른 바 세태소설인 『매화전(梅花傳)』, 『종옥전(鍾玉傳)』, 『오유란전(烏有蘭傳)』, 『이춘풍전(李春風傳)』 등과도 관련된다. 설화와 판소리 사설, 그리고 소설이란 장르를 초월한 공통적 화소들은 상호 교섭하면서 조선 후기 서민 구비 문학의 중추를 이루었다. 이 무슨 이유로 창을 잃게 되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원본이 되는 판소리 사설로서의 의 존재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어, 최초의 이본인 신구서림본과의 비교가 불가능한 데다 기존 과의 서사적 차이마저 감지되고 있는 터여서 신구서림본의 정확한 성립 과정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본 중 김삼불 교주본과 세창서관본은 모두 판소리 사설체로 되어 있어 판소리 사설과의 근접성을 말해 준다. 특히 제주 목사로 부임하는 김경 일행이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대목의 은 의 과 유사하고, 배비장이 목욕하는 애랑의 정체를 알기 위해 방자에게 묻는 대목에 나오는 정체 확인 사설(금옥사설)은 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두 양식 간의 공통점을 말해준다. 그 외에 , , 등 다른 판소리에 등장하는 삽입가요가 나타나며, 판소리 공식적 표현구 관용구가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어 상호 연관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등장인물

은 조선 후기의 다양한 인물 유형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방자로 이를 통해 기성의 도덕을 힐난하면서 양반층의 위선과 약점을 폭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 방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해학과 풍자,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방자는 가면극에 나오는 말뚝이의 존재와도 유사하며 비슷한 역할인 의 방자보다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풍자를 보여준다. 애랑은 미색과 애교로 양반을 골탕 먹이는 전형적인 기생으로 사건의 주요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배비장은 어리석은 인물로 조작된 작전에 말려들어 방자와 애랑에게 우롱당하고 풍자와 해학의 표적이 되는데 당시 사회에서 허위와 가식으로 도덕군자 행세를 하는 위선적 인물의 전형이다.

특징 및 의의

의 주제는 풍자와 비판, 해학과 골계(滑稽)의 양면으로 나타난다. 전자는 주로 당시 관인 사회의 모순과 비리, 타락과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면, 후자는 전자를 통한 서민적인 익살과 조롱(嘲弄)으로 관인사회의 부조리를 비웃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당시 사회의 타락해 가는 유가의 윤리와 관리들의 비행을 고발하는 서민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또 이야기의 소재에는 관청에 처음 부임하는 이들에 대한 신참례(新參禮)의 관속(官俗)이 관여된 것으로도 판단된다. 은 처음 구비설화로 떠돌다가 판소리 사설로 흡수되어 18세기 중엽 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로 성립되어 19세기 중엽까지 약 1세기 동안 유행하였고, 19세기 말 창을 잃고 그 사설만이 소설화되어 독서물로 고착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설화에서 판소리, 판소리에서 소설로 변화해온 은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창극과 마당극으로 발전하여 조선 후기의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서민 문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배비장전 유형의 소설연구(김종철, 관악어문연구10,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5), 배비장전의 풍자층위와 역사적 성격(권순긍, 반교어문연구7, 반교어문학회, 1996), 판소리 창자와 실전 사설 연구(인권환, 집문당,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