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매화타령

한자명

江陵梅花打令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판소리 다섯마당 외

집필자 김헌선(金憲宣)
갱신일 2019-01-10

정의

강원도 강릉을 무대로 하여 골생원과 매화가 사랑 행각을 벌이는 과정을 담은 판소리 사설.

개관

<강릉매화타령(江陵梅花打令)>은 남녀의 애정 행각을 중심으로 하는 판소리 열두마당 사설 가운데 하나이다. 창이 전하지 않으므로 사설로서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던 것인데, 최근에 들어서 판소리 사설이 발견되어 그 존재를 입증 받았다.

내용

강원도 강릉 사또 도임 시에 책방으로 골생원이 내려온다. 골생원과 강릉 일등 명기 매화가 서로 만나게 된다. 골생원과 매화가 흐벅지게 노닐며 지낸다. 서울 본댁에서 사환이 부친의 편지를 갖고 오는데, 편지에는 와서 과거를 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골생원과 매화는 서로 다시 만날 것을 언약하고 이별한다.

골생원이 이별한 뒤에도 서울로 올라가며 매화와 놀던 것을 잊지 못하며 그리워한다. 서울에 와서 부친과 일가친척을 찾아보고, 시지를 품에 품고 가면서도 매화를 잊지 못한다. 과장에서 다른 문사들이 글을 짓기에 여념이 없는데, 골생원은 매화를 그리는 “此時無梅花이 春來不似春이라 不知太平春”이라는 시를 짓는다. 시관 앞에 시를 바치니 상시관이 시지를 던져버린다. 골생원이 과장을 나와 매화에게 줄 정표 신물을 사기 위해 시전으로 간다. 골생원이 시전의 물화를 구경하다가 구경만 하고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뺨을 맞고 도망친다. 골생원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가지고 매화에게 줄 바느질 연장을 산다.

정표를 사고 골생원이 본댁에 가서 하직을 하고 다시 강릉으로 내려온다. ‘이’ 강릉 사또가 골생원을 속이기 위해 매화를 감추고 죽었다고 큰길가에 헛무덤을 쓰고, 백성에게 신칙하여 죽었다고 하라고 당부한다. 골생원이 대관령을 넘어서 오다가 초동목부를 만나 매화가 죽은 사실을 알고 무덤을 찾아간다. 처음에 믿지 않던 골생원이 무덤과 목비를 보고 매화가 죽었음을 비로소 확인한다. 골생원이 슬퍼하다가, 사또를 만나서 큰길가에 무덤을 쓴 사연을 듣고 더욱 슬퍼한다.

골생원이 무덤에 가서 제수를 진설하고 축문을 읽고 위무한다. 골생원이 곡을 지극히 하자 방자가 부모 상사났느냐고 비웃는다. 골생원이 방자에게 분부하여 환쟁이를 불러다가 매화의 모습을 일러주어 그림으로 그리게 한다. 사또가 매화에게 분부하여 귀신인 채 속이면서 책방에 들어가 골생원을 만나라 한다. 매화가 황혼시에 골생원을 만난다. 이튿날 사또가 매화를 불러 골서방을 “훨적 벼겨 鏡浦臺임 샐꺼든 그이 오랴 분부고” 약속한다. 매화가 골생원과 함께 만나 농락한 뒤에 돌아간다. 이튿날 밤에 매화가 골생원 방 앞에 있는 신장과 예불 소리 때문에 못 들어가겠다고 하고, 자기와 함께 가자고 꾄다. 매화가 “서방님 의북이 인간의 유표온이 상하의북을 훨적 볏고 나을 따라가자.”고 골생원에게 말한다. 매화가 골생원 옷을 벗겨 경포대로 데려온다. 경포대에 있는 하인들이 모두 이 모습을 보고 모른 척한다. 사또가 분부하여 상여꾼들로 하여금 상엿소리를 하게 한다.

매화가 골생원에게 상여는 서방님 것인데, “서방님 혼은 날을 다아오고 신쳐논 셔울노 모셔 가나나이다.”라고 하자, 골생원은 매우 슬퍼한다. 사또가 음식을 배설하고 풍악을 울리자, 매화가 골생원을 데리고 경포대로 올라온다. 골생원이 “連日不食 쥴인  주욱을 실거 먹고 陽지 긋 안”다가 사또가 두 넋을 위해 풍악을 울리자 골생원과 매화가 함께 춤을 춘다. 골생원이 흥이 나서 한참 놀 때에, 사또가 “담잔을로 밧삭 지지이”, 골생원이 “감작 놀야 본이 인간이 分明”하다. 세상 사람에게 주색을 탐치 말라고 경계의 말을 한다.

문헌적 근거로서 <강릉매화타령>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핵심적인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戲)」를 살펴보면 <강릉매화타령>과 일치하는 점이 확인된다.

一別梅花尙淚痕
한번 매화와 이별한 뒤 오히려 눈물 자욱 남았는데
歸來蘇小只孤墳
돌아오는 길 蘇小小 단지 외로운 무덤뿐이네.
癡情轉墮迷人圈
남은 정리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계략에 떨어뜨려
錯認黃昏返倩魂
황혼녘에 되돌아온 아름다운 넋으로 잘못 알았네.

이 시는 <강릉매화타령>의 핵심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강릉의 매화와 골생원의 치정에 얽힌 사건들을 갈무리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는 요약이라고 판단된다.
신재효(申在孝)가 지은 <오섬가(烏蟾歌)>에서도 이에 대한 의미를 환기하는 내용이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 한가지 우슬 이리 강능 방 골원을 화가 쇽이라고 쥬에  을 거즛도이 쥭엇다고 활신벽겨 압셰우고 샹에 뒤를 라가며 이 도 건드리고 져 도 건드리며 지예 방울 고 달랑달랑 노는 것이 그도 한 굿실네라

이 자료는 <강릉매화타령>의 실상을 전하는 자료로 유일하게 알려진 것이다. 작품의 결말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이 부분이 <강릉매화타령>의 사설을 옮긴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신재효의 관점에서 우스운 구경거리로 <강릉매화타령>의 내용을 포착하고 압축한 것임이 환기된다. 신재효 당시에 여섯마당에 들지 못한 점은 해명되지 않으나, 신재효에 의해서 <강릉매화타령>이 언급되고 있음은 여하튼 주목되는 방증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이 지은 『교방가요(敎坊歌謠)』에도 <강릉매화타령>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신재효와 편지로 친분을 유지했던 정현석은 초계(草溪) 사람으로 진양 수령을 거쳐 황해 감사를 역임한 이로 신재효가 환갑을 맞이하던 해인 1972년에 『교방가요』를 완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1872년 당시까지도 <강릉매화타령>이 존속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교방가요』에 언급된 <강릉매화타령>에 대한 대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梅花打令 惑妓忘軀 此懲淫也

정현석은 가무에 대한 식견이 진실로 대단한 인물이어서 당시에 가요와 음악, 그리고 무용 등에 해박한 지식을 남긴 인물인데, <강릉매화타령>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평가하였다. ‘기생에게 미혹되어서 몸가짐을 잃은 것이니 이는 음란함을 징계한 것’이라고 지적하였으니, <강릉매화타령>은 그러한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강릉매화타령>의 주제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주목된다.

창본

<강릉매화타령>의 창본은 겉표지가 없고, 속 면의 첫 장에 <매화가(梅花歌)>라고 되어 있다. 실제적인 사설의 내용은 총 19장으로 되어 있다. 이 사설의 뒤에 택일법(擇日法), 궁합법(宮合法) 등을 합치면 모두 26장이다. 책 크기는 가로 21.7㎝×세로 23.6㎝이다. 한 줄당 21자 안팎으로 필사되어 있다. 필사자나 필사 연대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발견된 사설은 문헌의 간접적인 증거로만 확인되었던 판소리를 다시금 복원할 수 있게 한 자료이다. 사설은 물론하고 창이 일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강릉매화타령>을 찾아서 자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로써 「게우사」로 되었던 <무숙이타령>에 이어서 <강릉매화타령>이 추가로 발견되어 판소리 열한마당의 온전한 복원이 가능하여 판소리의 열두마당이라고 하는 레퍼토리에 좀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강릉매화타령>의 발견으로 19세기 판소리사의 이해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고, 판소리 열두마당의 추이와 탈락 경위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강릉매화타령>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강릉매화타령>의 자료를 검토한 결과 판소리 형성에 대한 핵심적 가설이 하나 해명되게 되었다. 설화의 내용을 판소리로 차용해서 불렀다는 주장이 적지 않게 제기되었는데, 기실 판소리의 내용과 근원설화를 부합시킬 만한 판소리 자료가 없었다. 이것은 판소리의 형성에 따른 근원설화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강릉매화타령>의 내용과 유사한 소설로 지목된 『오유란전(烏有蘭傳)』, 『배비장전(裵裨將傳)』과 비교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강릉 지방에 전하는 설화가 깊은 영향을 미쳤을 터인데, <강릉매화타령>의 판소리 성립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도 가능하게 되었다.

<강릉매화타령>이 발견되어 작품의 문면에 지시된 사회적 구도를 얻을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는 둘 사이를 오가는 구도 속에서 한양과 강릉의 문물이나 풍정들을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강릉매화타령>은 등장인물이 면밀하게 맞물리지 못한 채 각기 따로 놀고 있어서 여타 판소리의 등장인물들과는 변별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판소리 사설에서 찾기 힘든 특이한 시정 세태가 반영되어 있고, 또 생생한 단면을 획득하고 있다.

참고문헌

강릉매화타령 발견의 의의(김헌선, 국어국문학109, 국어국문학회, 1993), 매화가라의 전반적인 이해(한정미, 판소리연구10, 판소리학회, 1999), 송만재의 관우희(이혜구,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인물작명과 골생원의 형상으로 본 강릉매화타령(이문성, 판소리연구30, 판소리학회, 2010), 판소리 사설집(신재효, 교문사, 1984), 판소리 연구(김동욱, 한국가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61), 판소리의 이론(강한영, 판소리의 이해, 창작과비평사, 1978), 판소리의 탐구(정병욱, 한국의 판소리, 집문당, 1980).

강릉매화타령

강릉매화타령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판소리 다섯마당 외

집필자 김헌선(金憲宣)
갱신일 2019-01-10

정의

강원도 강릉을 무대로 하여 골생원과 매화가 사랑 행각을 벌이는 과정을 담은 판소리 사설.

개관

은 남녀의 애정 행각을 중심으로 하는 판소리 열두마당 사설 가운데 하나이다. 창이 전하지 않으므로 사설로서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던 것인데, 최근에 들어서 판소리 사설이 발견되어 그 존재를 입증 받았다.

내용

강원도 강릉 사또 도임 시에 책방으로 골생원이 내려온다. 골생원과 강릉 일등 명기 매화가 서로 만나게 된다. 골생원과 매화가 흐벅지게 노닐며 지낸다. 서울 본댁에서 사환이 부친의 편지를 갖고 오는데, 편지에는 와서 과거를 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골생원과 매화는 서로 다시 만날 것을 언약하고 이별한다. 골생원이 이별한 뒤에도 서울로 올라가며 매화와 놀던 것을 잊지 못하며 그리워한다. 서울에 와서 부친과 일가친척을 찾아보고, 시지를 품에 품고 가면서도 매화를 잊지 못한다. 과장에서 다른 문사들이 글을 짓기에 여념이 없는데, 골생원은 매화를 그리는 “此時無梅花이 春來不似春이라 不知太平春”이라는 시를 짓는다. 시관 앞에 시를 바치니 상시관이 시지를 던져버린다. 골생원이 과장을 나와 매화에게 줄 정표 신물을 사기 위해 시전으로 간다. 골생원이 시전의 물화를 구경하다가 구경만 하고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뺨을 맞고 도망친다. 골생원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가지고 매화에게 줄 바느질 연장을 산다. 정표를 사고 골생원이 본댁에 가서 하직을 하고 다시 강릉으로 내려온다. ‘이’ 강릉 사또가 골생원을 속이기 위해 매화를 감추고 죽었다고 큰길가에 헛무덤을 쓰고, 백성에게 신칙하여 죽었다고 하라고 당부한다. 골생원이 대관령을 넘어서 오다가 초동목부를 만나 매화가 죽은 사실을 알고 무덤을 찾아간다. 처음에 믿지 않던 골생원이 무덤과 목비를 보고 매화가 죽었음을 비로소 확인한다. 골생원이 슬퍼하다가, 사또를 만나서 큰길가에 무덤을 쓴 사연을 듣고 더욱 슬퍼한다. 골생원이 무덤에 가서 제수를 진설하고 축문을 읽고 위무한다. 골생원이 곡을 지극히 하자 방자가 부모 상사났느냐고 비웃는다. 골생원이 방자에게 분부하여 환쟁이를 불러다가 매화의 모습을 일러주어 그림으로 그리게 한다. 사또가 매화에게 분부하여 귀신인 채 속이면서 책방에 들어가 골생원을 만나라 한다. 매화가 황혼시에 골생원을 만난다. 이튿날 사또가 매화를 불러 골서방을 “훨적 벼겨 鏡浦臺임 샐꺼든 그이 오랴 분부고” 약속한다. 매화가 골생원과 함께 만나 농락한 뒤에 돌아간다. 이튿날 밤에 매화가 골생원 방 앞에 있는 신장과 예불 소리 때문에 못 들어가겠다고 하고, 자기와 함께 가자고 꾄다. 매화가 “서방님 의북이 인간의 유표온이 상하의북을 훨적 볏고 나을 따라가자.”고 골생원에게 말한다. 매화가 골생원 옷을 벗겨 경포대로 데려온다. 경포대에 있는 하인들이 모두 이 모습을 보고 모른 척한다. 사또가 분부하여 상여꾼들로 하여금 상엿소리를 하게 한다. 매화가 골생원에게 상여는 서방님 것인데, “서방님 혼은 날을 다아오고 신쳐논 셔울노 모셔 가나나이다.”라고 하자, 골생원은 매우 슬퍼한다. 사또가 음식을 배설하고 풍악을 울리자, 매화가 골생원을 데리고 경포대로 올라온다. 골생원이 “連日不食 쥴인  주욱을 실거 먹고 陽지 긋 안”다가 사또가 두 넋을 위해 풍악을 울리자 골생원과 매화가 함께 춤을 춘다. 골생원이 흥이 나서 한참 놀 때에, 사또가 “담잔을로 밧삭 지지이”, 골생원이 “감작 놀야 본이 인간이 分明”하다. 세상 사람에게 주색을 탐치 말라고 경계의 말을 한다. 문헌적 근거로서 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핵심적인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戲)」를 살펴보면 과 일치하는 점이 확인된다. 一別梅花尙淚痕한번 매화와 이별한 뒤 오히려 눈물 자욱 남았는데歸來蘇小只孤墳돌아오는 길 蘇小小 단지 외로운 무덤뿐이네.癡情轉墮迷人圈남은 정리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계략에 떨어뜨려錯認黃昏返倩魂황혼녘에 되돌아온 아름다운 넋으로 잘못 알았네. 이 시는 의 핵심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강릉의 매화와 골생원의 치정에 얽힌 사건들을 갈무리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는 요약이라고 판단된다.신재효(申在孝)가 지은 에서도 이에 대한 의미를 환기하는 내용이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 한가지 우슬 이리 강능 방 골원을 화가 쇽이라고 쥬에  을 거즛도이 쥭엇다고 활신벽겨 압셰우고 샹에 뒤를 라가며 이 도 건드리고 져 도 건드리며 지예 방울 고 달랑달랑 노는 것이 그도 한 굿실네라 이 자료는 의 실상을 전하는 자료로 유일하게 알려진 것이다. 작품의 결말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이 부분이 의 사설을 옮긴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신재효의 관점에서 우스운 구경거리로 의 내용을 포착하고 압축한 것임이 환기된다. 신재효 당시에 여섯마당에 들지 못한 점은 해명되지 않으나, 신재효에 의해서 이 언급되고 있음은 여하튼 주목되는 방증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이 지은 『교방가요(敎坊歌謠)』에도 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신재효와 편지로 친분을 유지했던 정현석은 초계(草溪) 사람으로 진양 수령을 거쳐 황해 감사를 역임한 이로 신재효가 환갑을 맞이하던 해인 1972년에 『교방가요』를 완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1872년 당시까지도 이 존속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교방가요』에 언급된 에 대한 대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梅花打令 惑妓忘軀 此懲淫也 정현석은 가무에 대한 식견이 진실로 대단한 인물이어서 당시에 가요와 음악, 그리고 무용 등에 해박한 지식을 남긴 인물인데, 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평가하였다. ‘기생에게 미혹되어서 몸가짐을 잃은 것이니 이는 음란함을 징계한 것’이라고 지적하였으니, 은 그러한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의 주제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주목된다.

창본

의 창본은 겉표지가 없고, 속 면의 첫 장에 라고 되어 있다. 실제적인 사설의 내용은 총 19장으로 되어 있다. 이 사설의 뒤에 택일법(擇日法), 궁합법(宮合法) 등을 합치면 모두 26장이다. 책 크기는 가로 21.7㎝×세로 23.6㎝이다. 한 줄당 21자 안팎으로 필사되어 있다. 필사자나 필사 연대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발견된 사설은 문헌의 간접적인 증거로만 확인되었던 판소리를 다시금 복원할 수 있게 한 자료이다. 사설은 물론하고 창이 일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을 찾아서 자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로써 「게우사」로 되었던 에 이어서 이 추가로 발견되어 판소리 열한마당의 온전한 복원이 가능하여 판소리의 열두마당이라고 하는 레퍼토리에 좀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의 발견으로 19세기 판소리사의 이해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고, 판소리 열두마당의 추이와 탈락 경위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의 자료를 검토한 결과 판소리 형성에 대한 핵심적 가설이 하나 해명되게 되었다. 설화의 내용을 판소리로 차용해서 불렀다는 주장이 적지 않게 제기되었는데, 기실 판소리의 내용과 근원설화를 부합시킬 만한 판소리 자료가 없었다. 이것은 판소리의 형성에 따른 근원설화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의 내용과 유사한 소설로 지목된 『오유란전(烏有蘭傳)』, 『배비장전(裵裨將傳)』과 비교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강릉 지방에 전하는 설화가 깊은 영향을 미쳤을 터인데, 의 판소리 성립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 발견되어 작품의 문면에 지시된 사회적 구도를 얻을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는 둘 사이를 오가는 구도 속에서 한양과 강릉의 문물이나 풍정들을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은 등장인물이 면밀하게 맞물리지 못한 채 각기 따로 놀고 있어서 여타 판소리의 등장인물들과는 변별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판소리 사설에서 찾기 힘든 특이한 시정 세태가 반영되어 있고, 또 생생한 단면을 획득하고 있다.

참고문헌

강릉매화타령 발견의 의의(김헌선, 국어국문학109, 국어국문학회, 1993), 매화가라의 전반적인 이해(한정미, 판소리연구10, 판소리학회, 1999), 송만재의 관우희(이혜구,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인물작명과 골생원의 형상으로 본 강릉매화타령(이문성, 판소리연구30, 판소리학회, 2010), 판소리 사설집(신재효, 교문사, 1984), 판소리 연구(김동욱, 한국가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61), 판소리의 이론(강한영, 판소리의 이해, 창작과비평사, 1978), 판소리의 탐구(정병욱, 한국의 판소리, 집문당,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