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타령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판소리 다섯마당

집필자 정충권(鄭忠權)
갱신일 2019-01-10

정의

<흥보가(興甫歌)> 중 흥보 혹은 흥보 아내가 가난을 한탄하며 부르는 자탄 형식의 사설로 이루어진 소리 대목.

개관

<가난타령>은 이 대목을 중모리로 부르는 박녹주(朴綠珠)를 제외한 대부분의 창자가 진양조장단에다 계면조로 부르는 소리 대목이다. 흥보가 속에서 흥보보다는 흥보 처가 부르는 것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다. <가난타령>의 위치는 동편제서편제 창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동편제 창자들은 흥보 부부가 박을 타려 할 즈음에 <가난타령>을 부른다. 하지만 서편제 창자의 경우에는 흥보가 매품팔이에 실패하고 형 놀보로부터도 양식을 얻지 못하여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가난타령>을 부른다. 흥보 부부가 박을 타려 할 즈음에도 다시 반복하여 부르기는 하나 이때는 핵심 어구를 위주로 하여 변형시켜 부른다.

내용

<가난타령>은 흥보 부부의 가난 자탄 사설로 이루어져 있다. 서두는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녀러 가난이야.”로 시작된다. 창자에 따라 ‘원수 년’, ‘원수 놈’이라 하기도 하나 비칭(卑稱)으로 처리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극단적인 가난에 처한 이들에게 가난이란 원수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가난에 대한 원망에 이어 “잘 살고 못 살기는 묘 쓰기에 매였는가. 삼신제왕님이 집자리에 떨어질 적에 명과 수복을 점지를 하였나(강도근 창본).”라며 가난이 운명적인 일인가 항변해본다. 하지만 결국 잘 사는 다른 집과 비교하며 팔자 탓을 하면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한다. 도승이 등장하기 직전에 <가난타령>을 부를 경우, 흥보 부부가 자결을 시도하는 사건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가난타령>을 도승 등장 직전에 부르기도 하고 흥보가 박을 타려 할 즈음에 부르기도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도승 등장 직전은 흥보가 매품팔이와 양식 구걸에 모두 실패한 직후이므로 흥보 부부의 궁핍이 최고조에 도달해 있을 때이다. 흥보는 도승이 등장하여 집터를 잡아 주어 그곳에 집을 지은 이후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도승 등장 직전에 <가난타령>을 부르는 것은 그 시점이 서사의 분기점이자 가난의 극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흥보가 박을 타려 할 즈음에 <가난타령>을 부르는 것은 이때야말로 가난의 참상이 최고조에 도달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흥보가 박을 타려 했던 것은 추석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을 것이 없어 박 속은 끓여 먹고 바가지는 팔아다가 양식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박을 탄 이후에는 부자가 되므로 그 직전에 <가난타령>을 위치시킴으로써 극적 효과를 의도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징 및 의의

<가난타령>은 흥보가에서 비장미를 유발하는 몇 안 되는 대목 중 하나이다. <가난타령>의 비장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았던 흥보가 잘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극단적인 궁핍에 처해 있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으나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데에서 유발된다. 흥보가 처한 가난은 당시 보릿고개를 넘기기 여의치 않던 하층민들의 현실이기도 하여 높은 호소력과 공감을 자아냈을 것이다.

흥보가에는 골계적 웃음을 유발하는 대목들이 많다. 두 개의 박타령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후반부는 그러한 웃음을 유발하는 대목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소리는 골계미와 비장미가 적절히 어울릴 때 청중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난타령>은 골계미 편향으로 기울 수도 있는 흥보가에 그런대로 최소한의 미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소리 대목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다.

참고문헌

판소리 더늠의 시학(정양, 문학동네, 2001), 판소리 흥보가 가난타령 연구(김은영,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흥부전 연구(인권환 편저, 집문당, 1991), 흥부전 연구(정충권, 월인, 2003), 흥부전 전집1(김진영 외, 박이정, 1997).

가난타령

가난타령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판소리 다섯마당

집필자 정충권(鄭忠權)
갱신일 2019-01-10

정의

중 흥보 혹은 흥보 아내가 가난을 한탄하며 부르는 자탄 형식의 사설로 이루어진 소리 대목.

개관

은 이 대목을 중모리로 부르는 박녹주(朴綠珠)를 제외한 대부분의 창자가 진양조장단에다 계면조로 부르는 소리 대목이다. 흥보가 속에서 흥보보다는 흥보 처가 부르는 것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다. 의 위치는 동편제와 서편제 창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동편제 창자들은 흥보 부부가 박을 타려 할 즈음에 을 부른다. 하지만 서편제 창자의 경우에는 흥보가 매품팔이에 실패하고 형 놀보로부터도 양식을 얻지 못하여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을 부른다. 흥보 부부가 박을 타려 할 즈음에도 다시 반복하여 부르기는 하나 이때는 핵심 어구를 위주로 하여 변형시켜 부른다.

내용

은 흥보 부부의 가난 자탄 사설로 이루어져 있다. 서두는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녀러 가난이야.”로 시작된다. 창자에 따라 ‘원수 년’, ‘원수 놈’이라 하기도 하나 비칭(卑稱)으로 처리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극단적인 가난에 처한 이들에게 가난이란 원수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가난에 대한 원망에 이어 “잘 살고 못 살기는 묘 쓰기에 매였는가. 삼신제왕님이 집자리에 떨어질 적에 명과 수복을 점지를 하였나(강도근 창본).”라며 가난이 운명적인 일인가 항변해본다. 하지만 결국 잘 사는 다른 집과 비교하며 팔자 탓을 하면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한다. 도승이 등장하기 직전에 을 부를 경우, 흥보 부부가 자결을 시도하는 사건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을 도승 등장 직전에 부르기도 하고 흥보가 박을 타려 할 즈음에 부르기도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도승 등장 직전은 흥보가 매품팔이와 양식 구걸에 모두 실패한 직후이므로 흥보 부부의 궁핍이 최고조에 도달해 있을 때이다. 흥보는 도승이 등장하여 집터를 잡아 주어 그곳에 집을 지은 이후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도승 등장 직전에 을 부르는 것은 그 시점이 서사의 분기점이자 가난의 극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흥보가 박을 타려 할 즈음에 을 부르는 것은 이때야말로 가난의 참상이 최고조에 도달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흥보가 박을 타려 했던 것은 추석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을 것이 없어 박 속은 끓여 먹고 바가지는 팔아다가 양식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박을 탄 이후에는 부자가 되므로 그 직전에 을 위치시킴으로써 극적 효과를 의도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징 및 의의

은 흥보가에서 비장미를 유발하는 몇 안 되는 대목 중 하나이다. 의 비장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았던 흥보가 잘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극단적인 궁핍에 처해 있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으나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데에서 유발된다. 흥보가 처한 가난은 당시 보릿고개를 넘기기 여의치 않던 하층민들의 현실이기도 하여 높은 호소력과 공감을 자아냈을 것이다. 흥보가에는 골계적 웃음을 유발하는 대목들이 많다. 두 개의 박타령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후반부는 그러한 웃음을 유발하는 대목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소리는 골계미와 비장미가 적절히 어울릴 때 청중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은 골계미 편향으로 기울 수도 있는 흥보가에 그런대로 최소한의 미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소리 대목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다.

참고문헌

판소리 더늠의 시학(정양, 문학동네, 2001), 판소리 흥보가 가난타령 연구(김은영,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흥부전 연구(인권환 편저, 집문당, 1991), 흥부전 연구(정충권, 월인, 2003), 흥부전 전집1(김진영 외, 박이정,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