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마수리 농요(忠州 馬水里 農謠)

한자명

忠州 馬水里 農謠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이창신(李昌信)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에서 전승되고 있는 농요.

개관

이 농요가 전승되고 있는 곳은 가섭산 동쪽에 위치한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로서, 마을의 형상이 말발굽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제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수리 농요는 1972년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여, 1994년 12월 30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목의 명칭은 ‘중원 마수리 농요’로 지정되었으나, 2012년 ‘충주 마수리 농요’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설

1974년에 연행되었던 사설은 다음과 같다.

  1. 모찌기소리 : <절우자>
    (받)절우자 절우자 이 못자리를 절우자
    (메)여보시오 농부님들 이 못자리를 절우자
    신롱씨에 뿌린 씨를 우리 농부가 가꾸어보세
    이 못자리를 얼릉 절워 저 논빼미에 옮겨 심어

  2. 모심기소리 : <아라성>
    (받)아라리야 아라리요 아리랑 얼싸 아라성아
    (메)여기 꽂고 저기나 꽂고 삼사 백출 자리로 심어만 주소
    이 논배미다 모를 심어 장잎이 나 훨훨훨 영화로다
    긴긴 해 서산에 해가 지고 월출은 뒷(동)녘에 달뜨기 전에
    이 논배미를 얼릉 다 심고 저 논배미를 마저 심어

  3. 초벌매기소리 : <긴방아소리>
    (받)에헤이 어라 방아호
    (메)선천수 후천수는 억만 세계두 무궁한데
    천황씨가 탄생 후에 지황씨도 탄생을 하고

  4. 초벌매기소리 : <자진방아소리>
    (받)에헤이 어라 방아호
    (메)청풍명월에 우리 고장 방아소리로 이름이 났고
    지조 창생한 연후에도

  5. 초벌매기소리 : <대허리소리(이듭매기)>
    (받)어화굼실 대허리야
    (메)여보시오 농부님들 초한 승부 들어나 보소
    불쌍하구두 가련도 하니

내용

농요는 남성요와 여성요로 나누어진다. 남성요는 <절우자>·<아라성>·<긴방아>·<중거리방아>·<자진방아>·<대허리소리>로 구성되어 있고, 여성요는 <진방아>·<중거리방아>·<자진방아>·<갈 뜯는 소리>가 있다. 마수리 농요는 3음 음계로서 완전 4도 위에 단3도를 쌓은 모습이다. 그 위에 제4음으로서 장2도 위의 음이 메기는소리에서 질러낼 때 나온다. 기음에는 주로 요성이 나오고 있다. 농요의 여러 곡들은 상호 변주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선율과 리듬의 축소, 시가 변형, 경과음의 첨가, 종지형의 변화 등의 변주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마수리 마제마을은 박혁거세의 40세손인 박중화(朴仲華)를 시조로 하는 운봉 박씨(雲峯 朴氏) 20여 가구가 모여 있는 집성촌이다. 그러나 농요의 최초 기능보유자로는 지남기(池南基, 1926~2005)가 지정되었는데, 그는 특이하게도 괴산군 불정면 웅동리에서 출생하여 35세(1960)에 마제마을에 정착한 외지인이었다. 지남기는 마제마을로 이주한 후 메기는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상쇠 역할을 하면서 농악대도 이끌었다. 지남기의 소리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충주시를 대표하는 농요로 변화되었다. 즉 괴산군 불정면의 농요와 농악이 충주 마수리에 이식되어 현재의 충주 마수리 농요가 성립되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민속지(충청북도 문화공보담당관실, 1987), 충주 중원지(충주문화원, 1985), 충북마수리농요의 농요연구(이창신, 청예논총15, 청주대학교 예술문화연구소, 1998).

충주 마수리 농요

충주 마수리 농요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이창신(李昌信)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에서 전승되고 있는 농요.

개관

이 농요가 전승되고 있는 곳은 가섭산 동쪽에 위치한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로서, 마을의 형상이 말발굽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제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수리 농요는 1972년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여, 1994년 12월 30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목의 명칭은 ‘중원 마수리 농요’로 지정되었으나, 2012년 ‘충주 마수리 농요’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설

1974년에 연행되었던 사설은 다음과 같다. 모찌기소리 : (받)절우자 절우자 이 못자리를 절우자(메)여보시오 농부님들 이 못자리를 절우자신롱씨에 뿌린 씨를 우리 농부가 가꾸어보세이 못자리를 얼릉 절워 저 논빼미에 옮겨 심어 모심기소리 : (받)아라리야 아라리요 아리랑 얼싸 아라성아(메)여기 꽂고 저기나 꽂고 삼사 백출 자리로 심어만 주소이 논배미다 모를 심어 장잎이 나 훨훨훨 영화로다긴긴 해 서산에 해가 지고 월출은 뒷(동)녘에 달뜨기 전에이 논배미를 얼릉 다 심고 저 논배미를 마저 심어 초벌매기소리 : (받)에헤이 어라 방아호(메)선천수 후천수는 억만 세계두 무궁한데천황씨가 탄생 후에 지황씨도 탄생을 하고 초벌매기소리 : (받)에헤이 어라 방아호(메)청풍명월에 우리 고장 방아소리로 이름이 났고지조 창생한 연후에도 초벌매기소리 : (받)어화굼실 대허리야(메)여보시오 농부님들 초한 승부 들어나 보소불쌍하구두 가련도 하니

내용

농요는 남성요와 여성요로 나누어진다. 남성요는 ·····로 구성되어 있고, 여성요는 ···가 있다. 마수리 농요는 3음 음계로서 완전 4도 위에 단3도를 쌓은 모습이다. 그 위에 제4음으로서 장2도 위의 음이 메기는소리에서 질러낼 때 나온다. 기음에는 주로 요성이 나오고 있다. 농요의 여러 곡들은 상호 변주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선율과 리듬의 축소, 시가 변형, 경과음의 첨가, 종지형의 변화 등의 변주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마수리 마제마을은 박혁거세의 40세손인 박중화(朴仲華)를 시조로 하는 운봉 박씨(雲峯 朴氏) 20여 가구가 모여 있는 집성촌이다. 그러나 농요의 최초 기능보유자로는 지남기(池南基, 1926~2005)가 지정되었는데, 그는 특이하게도 괴산군 불정면 웅동리에서 출생하여 35세(1960)에 마제마을에 정착한 외지인이었다. 지남기는 마제마을로 이주한 후 메기는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상쇠 역할을 하면서 농악대도 이끌었다. 지남기의 소리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충주시를 대표하는 농요로 변화되었다. 즉 괴산군 불정면의 농요와 농악이 충주 마수리에 이식되어 현재의 충주 마수리 농요가 성립되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민속지(충청북도 문화공보담당관실, 1987), 충주 중원지(충주문화원, 1985), 충북마수리농요의 농요연구(이창신, 청예논총15, 청주대학교 예술문화연구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