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단지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신체

집필자 김태우(金泰佑)
갱신일 2016-11-02

정의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 안에 벼나 쌀 등 곡식을 넣어 집안의 장독대나 안방, 광 등에 두고 이를 칠성이라고 여기는 단지.

역사

칠성신은 보통 무병장수, 소원성취, 자녀성장, 안과태평 등을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칠성신은 불교에서는 칠성여래불(七星如來佛)을 말하며 도교에서는 일(日)․월(月)․목성(木星)․화성(火星)․토성(土星)․금성(金星)․수성(水星) 등을 칠성 혹은 칠원성군(七元星君)이라고 한다. 무속에서는 12세기에 이미 칠성이 무신(巫神)으로 등장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흔히 칠성신을 북두칠성으로 여긴다. 특히 어린아이가 7세 미만까지는 삼신이 받들어 주어서 성장하는 것이고 7세부터는 칠성신이 보살펴서 장수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칠성신은 보통 집 뒤뜰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다 놓고 모시는 등 신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언제부터 단지형태로 모시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곡식을 넣은 단지를 신체로 모시게 된 연원에 대해서는 『규원사화(揆園史話)』나 『무당내력(巫黨來歷)』등 문헌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규원사화』단군기에는 “지금 사람들의 집에는 ‘부루단지(扶婁壇地)’라는 것이 있다. 울타리를 친 깨끗한 곳에 흙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토기에 곡식을 담아 제단 위에 놓아 볏짚으로 지붕을 이어 그것을 덮어두고 매 시월에 반드시 새로운 곡식을 올리는 것이다. 이를 ‘업주가리(業主嘉利)’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이는 곧 부루씨가 물을 다스리고 거처를 정하여 준 것에 보답하여 제사를 지내는 의미이다. 이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누르고 백성을 보호하는 신이 된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무당내력』에서는 서문에 “요임금 시절 상원 갑자 10월 3일에 신인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강림하니 이가 바로 단군이다. 이에 신교를 창설하여 장자(長子) 부루(扶婁)에게 가르쳤다. 부루는 어질고 복이 많아 백성이 존경하고 신임하여 후일 터를 골라 단을 쌓고 토기에 벼 곡식을 담아 풀을 엮어 가려놓았다. 이를 가리켜 ‘부루단지’ 또는 ‘업주가리’라고 하였다.”라고 하여 『규원사화』의 내용에서와 같이 단군의 장자인 부루를 기리기 위해 단지에 곡식을 넣어 모시기 시작했다고 하고 있다.

두 문헌의 간행 연도는 각각 1675년과 19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 연도가 정확하다면 17세기부터 현재까지 그 전통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곡식을 넣은 단지는 고대 농경사회에서 종자를 보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후 조상숭배와 곡령(穀靈)숭배가 일치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칠성단지는 이처럼 단지 안에 곡식을 넣어 신으로 모신 관습이 생겨나면서 칠성신앙과 결합하여 생겨난 신체(神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형태

칠성단지는 목이 짧고 배가 불룩한 작은 항아리가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이다. 다만 칠성단지를 장식하고 있는 모양에 따라 아무런 장식이 없이 항아리만 두고 모시는 기본형, 한지로 만든 고깔을 씌워 놓은 고깔형, 볏짚으로 주저리를 씌워놓은 짚주저리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높이는 20㎝ 안팎이다.

내용

칠성단지는 칠성항아리 또는 칠석동이 등으로도 불린다. 단지 안에는 쌀이나 벼를 넣어 두기고 하고 물을 넣어 두기도 한다. 쌀이나 벼를 넣는 경우 돈도 함께 넣기도 한다. 아예 물도 넣지 않고 그냥 단지만 두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칠성신에게 치성을 드릴 때만 물을 부어 모셨다가 고사가 끝나면 단지를 비운다. 칠성단지는 주로 뒷마당 장독대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안방에 선반을 만들어 올려놓거나 광에 두기도 한다. 칠성단지에 곡식을 넣는 경우 가을에 햇곡식이 나면 단지 안에 있는 묵은 곡식을 내고 햇곡식으로 갈아준다. 묵은 곡식은 떡이나 밥을 해서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다.

주로 칠월칠석 때 칠성단지 앞에서 칠성신에게 고사를 지낸다. 고사를 지낼 때는 제물은 비교적 간단하다. 청수 한 그릇과 촛불만 밝혀 놓기도 하고 밥이나 떡(백설기)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자식을 바라는 경우에도 정성을 들인다. 이때는 청수를 매일 갈아 올리고 절을 하면서 빈다.

칠성단지와 유사한 형태로, 칠성단지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한시적으로 항아리에 물을 담아 칠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즉 칠성신에게 치성을 드릴 때만 작은 항아리에 물을 넣고 그 앞에 제물을 차려서 빈다. 칠성다리라 하여 천을 한지에 싸서 모시는 신체도 있다. 무명천에 빌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고 이를 접어서 안방에다 모셔 놓는다.

이 밖에 칠성을 모시는 여러 형태가 있다. 흙이나 돌을 쌓아 만든 칠성단 또는 탑, 흰 종이에 칠성신위(七星神位)를 써서 상자 안에 넣고 뚜껑을 덮은 것 등을 칠성으로 모시기도 한다. 안방에 널빤지를 달아매고 그 위에 과일과 청수를 올려서 촛불을 밝혀 칠성을 모시기도 한 이를 ‘칠성판’이라고 한다.

지역사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은모시마을에서는 굿을 할 때 안마당에서 칠성을 위한다. 칠성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상위에 물동이를 올려놓는다. 물동이 위에 무명을 두르고 양 끝에서 무명을 잡아당긴다. 이때 무명은 일곱 자 일곱 치로 한다. 무명을 잡아당기면 만신이 그 위에 올라가 바라를 치면서 칠성신에게 빈다. 칠성동이는 굿을 할 때에만 사용한다. 광명시 가학동 노리실마을에서는 집안에서 가을고사를 지낼 때 팥 시루떡을 찐다. 이때 맨 위에 백설기 한 켜를 올려서 찐다. 이렇게 찐 백설기는 정화수와 함께 장독간에 가지고 가서 자손들이 잘되기를 기원하며 비손한다. 이처럼 칠성은 특별한 신체로 모시지는 않으며, 칠월 칠석에 무당에게 가서 칠석맞이를 하거나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김포시 대곶면 약암2리 약산마을이나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북송2리 요곡마을에서는 단지의 형태는 아니지만 벽 두 곳에 못을 길게 박고 하얗게 한지로 싼 것을 올려놓는다. 이를 칠성다리 또는 칠성이라고 부른다. 칠성다리는 보통 천 일곱 자 일곱 치를 끊어서 깨끗하게 접어 한지로 싸서 모신다. 칠성은 제석과 함께 자손들을 위하여 모시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제석과 칠성을 함께 모시는 경우가 많다. 명다리로 모실 경우 제석은 세 자 세 치, 칠성은 일곱 자 일곱 치이다. 칠성의 명다리에는 당골의 이름, 주소, 생시를 적어 놓는다. 안방 구석에 모실 경우 제석은 아래에 두고 위쪽에 칠성을 모신다. 여주군 능서면 번도4리에서는 칠성을 위한다고 하여 장광(장독대)에 동그랗고 납작한 돌을 세 개 정도 쌓은 뒤 그 위에 청수를 놓고 저녁마다 빌었다고 한다. 이렇게 칠성발원을 하여 아들을 낳은 집에서는 장광에 칠성항아리(칠성을 모실 때 옥수를 담는 그릇)를 해 놓고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자식을 위하여 문에 흰 종이를 매달고 백설기를 쪄서 칠성에게 치성을 드렸다.

충북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서는 칠성을 모실 때 삼베 보자기에 쌀을 넣어 안방의 횃대에 매달아 두었다. 이 보자기는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까맣게 때가 묻을 때까지 매달아 둔다. 옥천군 청산면 예곡리의 이희순 보살은 뒤편 장독에 터줏단지와 칠성단지를 나란히 모셔 놓았다. 터줏단지에는 팥을 넣었고 칠성단지는 빈 단지이다. 칠성 앞에는 칠성물을 올리기 위한 그릇을 놓았고, 집안에 무엇을 고칠 일이 있으면 칠성 앞에 불을 밝혀서 칠성님이 잘 보살펴 달라고 빈다.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양지골마을에서도 칠성을 터주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단지에 유두지(짚주저리)를 씌워서 모셨다. 칠성은 칠석날 저녁에 고사를 지내서 모셨다. 제물은 백설기와 청수뿐이다. 칠성신이 천신이기 때문에 여러 제물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칠성고사를 그만두게 되면 단지는 요왕님(용왕님)이 가져가라고 물에 띄워 보낸다. 이 밖에 빈 단지로 칠성을 모시기도 하고, 터주 안에 동전 일곱 개를 넣어 두기도 한다.

충남지역에서는 가을걷이를 하면 벼나 쌀을 형편에 따라서 조그만 단지나 항아리에 넣어서 모신다. 이를 칠성단지 또는 칠석벼라고 한다. 이것을 안방 시렁 위나 장광 또는 광 한 구석에 모셔둔다. 비교적 여유가 있으면 한 섬 정도도 넣어둔다. 칠석이 되면 이 곡식을 퍼내 밥도 짓고 떡도 쪄서 치성을 드린다. 금산군 진산면 만악리 초미동마을에서는 칠성을 모실 때 단지에 서너 되가량의 쌀을 넣어 장광의 터주 옆에 둔다. 터주와 마찬가지로 유두저리(짚주저리)를 틀어서 씌워 놓는다. 유두저리는 해마다 새것으로 갈아주며, 헌것은 아궁이에서 태워 없앤다. 가을에 타작을 하고 나서 도신(상달고사)하는 날에 단지 안의 쌀을 꺼내어 햇곡식을 넣어준다. 터주에게는 제물을 차려 위하고 칠성에게는 청수만 올린다. 도신이나 안택을 할 때에도 철성에게는 특별히 다른 제물을 차리지 않고 청수만 한 그릇 떠다 올린다. 홍성군 광천읍 옹암리의 고명순씨가 모시는 칠성은 검은색 옹기항아리이다. 입 지름과 높이가 각 15㎝ 정도로 몸통이 약간 불룩하다. 과거에는 논 한가운데 있는 ‘큰샘’에서 물을 길어와 담아 놓았으나 현재는 마을에 샘이 없어져 수돗물을 담아 놓는다. 칠성에게는 따로 제물을 준비해서 위하지는 않고 다만 가을떡을 하면 떡을 떼어둔다.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압수마을에서는 집안에 황토나 돌을 가져다가 단을 쌓고 위하기도 한다. 돌을 가져다 둔 경우 그 돌은 칠성돌, 황토로 단을 쌓아 둔 경우 칠성단이라고 한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대이리에는 과거에 ‘칠석동이’가 있었다. 칠석동이는 마루의 성주동이 아래에 두었으며, 가을에 햇곡식이 나면 칠석동이에도 쌀을 넣었다. 물동이처럼 검은색 옹기 항아리였다. 입구는 종이를 세 갈래의 고깔모양으로 접어서 얹어 두었다. 밥 한 그릇, 청수 한 그릇을 떠서 쟁반에 받쳐 집 둘레에 빙 둘러 두었다. 이는 칠석, 지석, 주왕(조왕) 등 집안 가신을 모두 모시기 위해서이다.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는 어떤 부인이 자식이 없어 자식을 낳으려고 칠성을 모셨다. 이 부인은 돌로 탑을 쌓아 이것을 칠성의 신체로 삼고 매일 물을 떠놓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신기마을의 김종순씨에게는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칠성단지가 있다. 단지는 지름 18㎝, 높이 20㎝ 정도크기이다. 안에는 쌀과 돈이 들어 있다. 한지로 단지를 덮고 그 위에 다시 한지로 고깔을 만들어 씌웠다. 지금은 자는 방에 두고 있지만 원래는 안방에 두었다. 단지 안의 쌀은 가을에 햅쌀이 나오면 갈아주고 묵은쌀은 가족끼리 밥을 해먹는다. 매월 초하루와 명절, 제사가 있는 날에는 칠성님 앞에 물을 떠 놓고 촛불을 밝힌다. 밖에서 들어온 음식이 있으면 칠성님 앞에 두었다가 먹는다.

경남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중촌마을의 최용호씨와 같이 아예 집안에 칠성 제단을 만들어 모시는 경우도 있다. 칠성단에는 쌀, 향로, 촛대 세 개, 정화수 세 그릇, 오색과자 등이 진설되어 있다. 그 옆에는 남녀 각 한 벌의 한복이 걸려 있다. 이 칠성단은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자 점바치의 권유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용암리 오대마을에서는 흰 종이에 칠성신위(七星神位)를 써서 상자 안에 넣고 뚜껑을 덮은 것을 칠성으로 모신다.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에서는 신이 지핀 점바치들이 주로 칠성을 모신다. 안방 벽에 널빤지를 달아매고 그 위에 과일과 청수를 올려서 촛불을 밝혀 놓는다. 이는 칠성을 모신 것으로 칠성판이라고 한다.

전북 고창군 고수면 초내리 내창마을에서도 칠월칠석이 되면 마당 한가운데에 열십(十)자 형태로 지푸라기를 놓고 그 위에 물동이를 놓는다. 물동이와 지푸라기 머리가 해 뜨는 쪽인 동쪽을 향하게 하고 그 앞에서 동쪽을 향해 절을 올린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에 사는 윤재순 무녀에 따르면 칠성에게 치성을 드릴 때 고추장 항아리 크기의 작은 항아리를 사다가 그 안에 물을 넣고 장독대에 놓는다. 그 위에 일곱 개의 촛불을 밝혀놓고 칠성신에게 절을 한다. 신안군 지도읍 광정리 적거마을에서는 매년 칠월칠석에 칠성을 모신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물동이를 놓는다. 칠성에 빌 때는 물동이를 앞에 두고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하며 손을 비비면서 빈다. 빌기가 끝나면 물동이에 있는 물은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서 쓴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3리 당산마을에서도 칠성을 위할 때는 마당 한가운데에 짚을 열십(十)자로 놓고 동이에 물을 떠서 그 위에 올려놓은 채 공을 드린다. 영광군 군남면 백양리에서 무업을 하고 있는 문암댁에 따르면 칠성을 위하는 집에서는 뒷문 앞에다 칠성을 모셔놓고 날마다 물을 새로 갈아준다고 한다. 이때 모시는 칠성은 항아리에다 쌀을 반 정도 채워서 그 안에다 물 한 보시기를 떠 놓은 것이다. 물을 새벽마다 새로 갈아준다. 진도의 당골인 채정례 무녀에 따르면 칠성을 모실 때는 칠석날 밤에 마당 한가운데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물을 가득 담은 물동이를 놓는다. 이 물동이 안에다 쌀을 담은 바가지를 띄운다. 바가지 안에는 초 일곱 개를 꽂아 불을 붙인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비비면서 “어디 사는 아무개 자손 누구누구 단명하니까 칠성님한테 명을 길게 해 달라.”고 빈다. 빌기가 끝나면 동서남북을 향하여 일곱 번씩 총 스물여덟 번 절을 한다.

제주도지역에서는 칠성을 안칠성밧칠성으로 구분하여 모신다. 안칠성은 할머니 신격이며, 곡식을 보관하는 고팡(광)에 있다고 여긴다. 밧칠성은 집 뒤 깨끗한 곳에 좌정해 있다고 믿으며, 집안에 뱀이 나타나면 주젱이(노적가리의 일종)를 만들어 모신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서는 고팡 안에 돌을 깔고 그 위에 항아리를 놓는다. 이를 ‘안방’이라고 하며, 이곳에 안칠성을 모셨다. 안칠성을 모실 때는 명절이나 제사 때 가장 먼저 제물을 조금씩 떼어서 접시에 놓고 안방(고팡)에 가서 항아리 위에 놓는다. 항아리에는 곡식이 들어있으며, 그 위에 제물을 올려놓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웃제반(제상에 올린 음식을 조금씩 골고루 떼어 놓은 것)을 돌 틈에 넣는다.

참고문헌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64)
한국사회경제사연구 (김삼수, 박영사, 1981)
규원사화 (북애 지음․고동영 옮김, 뿌리, 2005)
무당내력 (서울대학교규장각, 민속원, 2005)
한국무속연구 (김태곤, 집문당, 2005)
한국의 가정신앙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칠성단지

칠성단지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신체

집필자 김태우(金泰佑)
갱신일 2016-11-02

정의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 안에 벼나 쌀 등 곡식을 넣어 집안의 장독대나 안방, 광 등에 두고 이를 칠성이라고 여기는 단지.

역사

칠성신은 보통 무병장수, 소원성취, 자녀성장, 안과태평 등을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칠성신은 불교에서는 칠성여래불(七星如來佛)을 말하며 도교에서는 일(日)․월(月)․목성(木星)․화성(火星)․토성(土星)․금성(金星)․수성(水星) 등을 칠성 혹은 칠원성군(七元星君)이라고 한다. 무속에서는 12세기에 이미 칠성이 무신(巫神)으로 등장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흔히 칠성신을 북두칠성으로 여긴다. 특히 어린아이가 7세 미만까지는 삼신이 받들어 주어서 성장하는 것이고 7세부터는 칠성신이 보살펴서 장수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칠성신은 보통 집 뒤뜰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다 놓고 모시는 등 신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언제부터 단지형태로 모시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곡식을 넣은 단지를 신체로 모시게 된 연원에 대해서는 『규원사화(揆園史話)』나 『무당내력(巫黨來歷)』등 문헌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규원사화』단군기에는 “지금 사람들의 집에는 ‘부루단지(扶婁壇地)’라는 것이 있다. 울타리를 친 깨끗한 곳에 흙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토기에 곡식을 담아 제단 위에 놓아 볏짚으로 지붕을 이어 그것을 덮어두고 매 시월에 반드시 새로운 곡식을 올리는 것이다. 이를 ‘업주가리(業主嘉利)’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이는 곧 부루씨가 물을 다스리고 거처를 정하여 준 것에 보답하여 제사를 지내는 의미이다. 이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누르고 백성을 보호하는 신이 된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무당내력』에서는 서문에 “요임금 시절 상원 갑자 10월 3일에 신인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강림하니 이가 바로 단군이다. 이에 신교를 창설하여 장자(長子) 부루(扶婁)에게 가르쳤다. 부루는 어질고 복이 많아 백성이 존경하고 신임하여 후일 터를 골라 단을 쌓고 토기에 벼 곡식을 담아 풀을 엮어 가려놓았다. 이를 가리켜 ‘부루단지’ 또는 ‘업주가리’라고 하였다.”라고 하여 『규원사화』의 내용에서와 같이 단군의 장자인 부루를 기리기 위해 단지에 곡식을 넣어 모시기 시작했다고 하고 있다. 두 문헌의 간행 연도는 각각 1675년과 19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 연도가 정확하다면 17세기부터 현재까지 그 전통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곡식을 넣은 단지는 고대 농경사회에서 종자를 보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후 조상숭배와 곡령(穀靈)숭배가 일치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칠성단지는 이처럼 단지 안에 곡식을 넣어 신으로 모신 관습이 생겨나면서 칠성신앙과 결합하여 생겨난 신체(神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형태

칠성단지는 목이 짧고 배가 불룩한 작은 항아리가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이다. 다만 칠성단지를 장식하고 있는 모양에 따라 아무런 장식이 없이 항아리만 두고 모시는 기본형, 한지로 만든 고깔을 씌워 놓은 고깔형, 볏짚으로 주저리를 씌워놓은 짚주저리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높이는 20㎝ 안팎이다.

내용

칠성단지는 칠성항아리 또는 칠석동이 등으로도 불린다. 단지 안에는 쌀이나 벼를 넣어 두기고 하고 물을 넣어 두기도 한다. 쌀이나 벼를 넣는 경우 돈도 함께 넣기도 한다. 아예 물도 넣지 않고 그냥 단지만 두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칠성신에게 치성을 드릴 때만 물을 부어 모셨다가 고사가 끝나면 단지를 비운다. 칠성단지는 주로 뒷마당 장독대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안방에 선반을 만들어 올려놓거나 광에 두기도 한다. 칠성단지에 곡식을 넣는 경우 가을에 햇곡식이 나면 단지 안에 있는 묵은 곡식을 내고 햇곡식으로 갈아준다. 묵은 곡식은 떡이나 밥을 해서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다. 주로 칠월칠석 때 칠성단지 앞에서 칠성신에게 고사를 지낸다. 고사를 지낼 때는 제물은 비교적 간단하다. 청수 한 그릇과 촛불만 밝혀 놓기도 하고 밥이나 떡(백설기)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자식을 바라는 경우에도 정성을 들인다. 이때는 청수를 매일 갈아 올리고 절을 하면서 빈다. 칠성단지와 유사한 형태로, 칠성단지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한시적으로 항아리에 물을 담아 칠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즉 칠성신에게 치성을 드릴 때만 작은 항아리에 물을 넣고 그 앞에 제물을 차려서 빈다. 칠성다리라 하여 천을 한지에 싸서 모시는 신체도 있다. 무명천에 빌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고 이를 접어서 안방에다 모셔 놓는다. 이 밖에 칠성을 모시는 여러 형태가 있다. 흙이나 돌을 쌓아 만든 칠성단 또는 탑, 흰 종이에 칠성신위(七星神位)를 써서 상자 안에 넣고 뚜껑을 덮은 것 등을 칠성으로 모시기도 한다. 안방에 널빤지를 달아매고 그 위에 과일과 청수를 올려서 촛불을 밝혀 칠성을 모시기도 한 이를 ‘칠성판’이라고 한다.

지역사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은모시마을에서는 굿을 할 때 안마당에서 칠성을 위한다. 칠성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상위에 물동이를 올려놓는다. 물동이 위에 무명을 두르고 양 끝에서 무명을 잡아당긴다. 이때 무명은 일곱 자 일곱 치로 한다. 무명을 잡아당기면 만신이 그 위에 올라가 바라를 치면서 칠성신에게 빈다. 칠성동이는 굿을 할 때에만 사용한다. 광명시 가학동 노리실마을에서는 집안에서 가을고사를 지낼 때 팥 시루떡을 찐다. 이때 맨 위에 백설기 한 켜를 올려서 찐다. 이렇게 찐 백설기는 정화수와 함께 장독간에 가지고 가서 자손들이 잘되기를 기원하며 비손한다. 이처럼 칠성은 특별한 신체로 모시지는 않으며, 칠월 칠석에 무당에게 가서 칠석맞이를 하거나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김포시 대곶면 약암2리 약산마을이나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북송2리 요곡마을에서는 단지의 형태는 아니지만 벽 두 곳에 못을 길게 박고 하얗게 한지로 싼 것을 올려놓는다. 이를 칠성다리 또는 칠성이라고 부른다. 칠성다리는 보통 천 일곱 자 일곱 치를 끊어서 깨끗하게 접어 한지로 싸서 모신다. 칠성은 제석과 함께 자손들을 위하여 모시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제석과 칠성을 함께 모시는 경우가 많다. 명다리로 모실 경우 제석은 세 자 세 치, 칠성은 일곱 자 일곱 치이다. 칠성의 명다리에는 당골의 이름, 주소, 생시를 적어 놓는다. 안방 구석에 모실 경우 제석은 아래에 두고 위쪽에 칠성을 모신다. 여주군 능서면 번도4리에서는 칠성을 위한다고 하여 장광(장독대)에 동그랗고 납작한 돌을 세 개 정도 쌓은 뒤 그 위에 청수를 놓고 저녁마다 빌었다고 한다. 이렇게 칠성발원을 하여 아들을 낳은 집에서는 장광에 칠성항아리(칠성을 모실 때 옥수를 담는 그릇)를 해 놓고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자식을 위하여 문에 흰 종이를 매달고 백설기를 쪄서 칠성에게 치성을 드렸다. 충북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서는 칠성을 모실 때 삼베 보자기에 쌀을 넣어 안방의 횃대에 매달아 두었다. 이 보자기는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까맣게 때가 묻을 때까지 매달아 둔다. 옥천군 청산면 예곡리의 이희순 보살은 뒤편 장독에 터줏단지와 칠성단지를 나란히 모셔 놓았다. 터줏단지에는 팥을 넣었고 칠성단지는 빈 단지이다. 칠성 앞에는 칠성물을 올리기 위한 그릇을 놓았고, 집안에 무엇을 고칠 일이 있으면 칠성 앞에 불을 밝혀서 칠성님이 잘 보살펴 달라고 빈다.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양지골마을에서도 칠성을 터주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단지에 유두지(짚주저리)를 씌워서 모셨다. 칠성은 칠석날 저녁에 고사를 지내서 모셨다. 제물은 백설기와 청수뿐이다. 칠성신이 천신이기 때문에 여러 제물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칠성고사를 그만두게 되면 단지는 요왕님(용왕님)이 가져가라고 물에 띄워 보낸다. 이 밖에 빈 단지로 칠성을 모시기도 하고, 터주 안에 동전 일곱 개를 넣어 두기도 한다. 충남지역에서는 가을걷이를 하면 벼나 쌀을 형편에 따라서 조그만 단지나 항아리에 넣어서 모신다. 이를 칠성단지 또는 칠석벼라고 한다. 이것을 안방 시렁 위나 장광 또는 광 한 구석에 모셔둔다. 비교적 여유가 있으면 한 섬 정도도 넣어둔다. 칠석이 되면 이 곡식을 퍼내 밥도 짓고 떡도 쪄서 치성을 드린다. 금산군 진산면 만악리 초미동마을에서는 칠성을 모실 때 단지에 서너 되가량의 쌀을 넣어 장광의 터주 옆에 둔다. 터주와 마찬가지로 유두저리(짚주저리)를 틀어서 씌워 놓는다. 유두저리는 해마다 새것으로 갈아주며, 헌것은 아궁이에서 태워 없앤다. 가을에 타작을 하고 나서 도신(상달고사)하는 날에 단지 안의 쌀을 꺼내어 햇곡식을 넣어준다. 터주에게는 제물을 차려 위하고 칠성에게는 청수만 올린다. 도신이나 안택을 할 때에도 철성에게는 특별히 다른 제물을 차리지 않고 청수만 한 그릇 떠다 올린다. 홍성군 광천읍 옹암리의 고명순씨가 모시는 칠성은 검은색 옹기항아리이다. 입 지름과 높이가 각 15㎝ 정도로 몸통이 약간 불룩하다. 과거에는 논 한가운데 있는 ‘큰샘’에서 물을 길어와 담아 놓았으나 현재는 마을에 샘이 없어져 수돗물을 담아 놓는다. 칠성에게는 따로 제물을 준비해서 위하지는 않고 다만 가을떡을 하면 떡을 떼어둔다.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압수마을에서는 집안에 황토나 돌을 가져다가 단을 쌓고 위하기도 한다. 돌을 가져다 둔 경우 그 돌은 칠성돌, 황토로 단을 쌓아 둔 경우 칠성단이라고 한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대이리에는 과거에 ‘칠석동이’가 있었다. 칠석동이는 마루의 성주동이 아래에 두었으며, 가을에 햇곡식이 나면 칠석동이에도 쌀을 넣었다. 물동이처럼 검은색 옹기 항아리였다. 입구는 종이를 세 갈래의 고깔모양으로 접어서 얹어 두었다. 밥 한 그릇, 청수 한 그릇을 떠서 쟁반에 받쳐 집 둘레에 빙 둘러 두었다. 이는 칠석, 지석, 주왕(조왕) 등 집안 가신을 모두 모시기 위해서이다.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는 어떤 부인이 자식이 없어 자식을 낳으려고 칠성을 모셨다. 이 부인은 돌로 탑을 쌓아 이것을 칠성의 신체로 삼고 매일 물을 떠놓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신기마을의 김종순씨에게는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칠성단지가 있다. 단지는 지름 18㎝, 높이 20㎝ 정도크기이다. 안에는 쌀과 돈이 들어 있다. 한지로 단지를 덮고 그 위에 다시 한지로 고깔을 만들어 씌웠다. 지금은 자는 방에 두고 있지만 원래는 안방에 두었다. 단지 안의 쌀은 가을에 햅쌀이 나오면 갈아주고 묵은쌀은 가족끼리 밥을 해먹는다. 매월 초하루와 명절, 제사가 있는 날에는 칠성님 앞에 물을 떠 놓고 촛불을 밝힌다. 밖에서 들어온 음식이 있으면 칠성님 앞에 두었다가 먹는다. 경남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중촌마을의 최용호씨와 같이 아예 집안에 칠성 제단을 만들어 모시는 경우도 있다. 칠성단에는 쌀, 향로, 촛대 세 개, 정화수 세 그릇, 오색과자 등이 진설되어 있다. 그 옆에는 남녀 각 한 벌의 한복이 걸려 있다. 이 칠성단은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자 점바치의 권유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용암리 오대마을에서는 흰 종이에 칠성신위(七星神位)를 써서 상자 안에 넣고 뚜껑을 덮은 것을 칠성으로 모신다.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에서는 신이 지핀 점바치들이 주로 칠성을 모신다. 안방 벽에 널빤지를 달아매고 그 위에 과일과 청수를 올려서 촛불을 밝혀 놓는다. 이는 칠성을 모신 것으로 칠성판이라고 한다. 전북 고창군 고수면 초내리 내창마을에서도 칠월칠석이 되면 마당 한가운데에 열십(十)자 형태로 지푸라기를 놓고 그 위에 물동이를 놓는다. 물동이와 지푸라기 머리가 해 뜨는 쪽인 동쪽을 향하게 하고 그 앞에서 동쪽을 향해 절을 올린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에 사는 윤재순 무녀에 따르면 칠성에게 치성을 드릴 때 고추장 항아리 크기의 작은 항아리를 사다가 그 안에 물을 넣고 장독대에 놓는다. 그 위에 일곱 개의 촛불을 밝혀놓고 칠성신에게 절을 한다. 신안군 지도읍 광정리 적거마을에서는 매년 칠월칠석에 칠성을 모신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물동이를 놓는다. 칠성에 빌 때는 물동이를 앞에 두고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하며 손을 비비면서 빈다. 빌기가 끝나면 물동이에 있는 물은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서 쓴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3리 당산마을에서도 칠성을 위할 때는 마당 한가운데에 짚을 열십(十)자로 놓고 동이에 물을 떠서 그 위에 올려놓은 채 공을 드린다. 영광군 군남면 백양리에서 무업을 하고 있는 문암댁에 따르면 칠성을 위하는 집에서는 뒷문 앞에다 칠성을 모셔놓고 날마다 물을 새로 갈아준다고 한다. 이때 모시는 칠성은 항아리에다 쌀을 반 정도 채워서 그 안에다 물 한 보시기를 떠 놓은 것이다. 물을 새벽마다 새로 갈아준다. 진도의 당골인 채정례 무녀에 따르면 칠성을 모실 때는 칠석날 밤에 마당 한가운데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물을 가득 담은 물동이를 놓는다. 이 물동이 안에다 쌀을 담은 바가지를 띄운다. 바가지 안에는 초 일곱 개를 꽂아 불을 붙인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비비면서 “어디 사는 아무개 자손 누구누구 단명하니까 칠성님한테 명을 길게 해 달라.”고 빈다. 빌기가 끝나면 동서남북을 향하여 일곱 번씩 총 스물여덟 번 절을 한다. 제주도지역에서는 칠성을 안칠성과 밧칠성으로 구분하여 모신다. 안칠성은 할머니 신격이며, 곡식을 보관하는 고팡(광)에 있다고 여긴다. 밧칠성은 집 뒤 깨끗한 곳에 좌정해 있다고 믿으며, 집안에 뱀이 나타나면 주젱이(노적가리의 일종)를 만들어 모신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서는 고팡 안에 돌을 깔고 그 위에 항아리를 놓는다. 이를 ‘안방’이라고 하며, 이곳에 안칠성을 모셨다. 안칠성을 모실 때는 명절이나 제사 때 가장 먼저 제물을 조금씩 떼어서 접시에 놓고 안방(고팡)에 가서 항아리 위에 놓는다. 항아리에는 곡식이 들어있으며, 그 위에 제물을 올려놓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웃제반(제상에 올린 음식을 조금씩 골고루 떼어 놓은 것)을 돌 틈에 넣는다.

참고문헌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64)한국사회경제사연구 (김삼수, 박영사, 1981)규원사화 (북애 지음․고동영 옮김, 뿌리, 2005)무당내력 (서울대학교규장각, 민속원, 2005)한국무속연구 (김태곤, 집문당, 2005)한국의 가정신앙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