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정병모(鄭炳模)
갱신일 2017-12-20

정의

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

역사

거리는 먹을거리, 입을거리, 볼거리 등과 같이 복수의 의미를 갖는다. 거리巨里의 한자는 발음을 딴 이두식 표기이다. 책거리는 지금의 서가인 책가가 그려진 책가도冊架圖와 책가가 없는 책거리로 나눌 수 있다. 책거리는 문방도文房圖라고도 불리었다. 책거리는 정조 때 유별난 책사랑과 유교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펼친 책정치로 인해 시작되었다. 1788년 9월 18일 신한평과 이종현이 책거리를 그리지 않았다고 멀리 귀양을 보내고, 바로 그날 장한종張漢宗, 1768~1815, 김재공金在恭, 허용許容을 자비대령 화원으로 임명할 정도로 정조는 책그림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된 장한종이 그린 <책가도병풍>이 바로 이 무렵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책가 위에 휘장을 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책들을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후 1791년 정조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병풍 대신 책가도 병풍을 펼치고 정조가 ‘부패한 글’이라고 비난한 청대의 패관잡기류의 문체를 지양하고 고전古典의 문체를 쓰라고 지시했다. 문체반정文體反正에 책가도를 상징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정조가 책가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자 당시 귀인貴人들이 앞을 다투어 책가도 병풍을 집에 설치했다. 김홍도金弘道가 책거리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홍도의 책거리는 현재 전하는 작품이 없다. 19세기에는 이형록李亨祿이 책거리로 이름을 떨쳤다. 이형록은 57세(1864년)에 이응록李膺祿, 64세(1871년)에 이택균李宅均으로 이름을 바꾼 이력이 있다. 이형록의 책거리는 실제 책가로 혼동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구성이 더욱 간결해졌으며 기존의 갈색과 더불어 녹색이나 청색과 같이 새로운 배경의 색을 실험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궁중화풍의 책거리가 민화풍의 책거리로 확산되면서 병풍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책가가 있는 형식보다 책가가 없는 형식이 더 많이 그려졌다. 아울러 책가 대신에 규모가 작은 탁자나 사랑방 가구를 활용했고, 책을 비롯한 물품들의 사이를 밀착시켜 한 덩어리로 표현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이는 작은 화면에 많은 것을 담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구성은 점차 자유로워지고 색채도 화려하게 베풀어졌다.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어떤 작품은 추상적인 이미지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문양이 다양하게 그려지면서 전반적으로 장식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내용

정조가 어좌 뒤에 설치했던 책가도는 책 위주로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정조가 “이것은 책이 아니라 그림이다.”라고 한 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정조 때는 아니지만 19세기 책가도 중에는 책가에 책만 가득 담겨 있는 책가도가 전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책거리는 책과 더불어 도자기, 청동기, 문방구, 화병, 향로, 자명종, 악기 등 여러 물품들도 함께 등장한다. 이들 물품은 대부분 중국 청나라로부터 수입한 것이고, 자명종이나 시계, 안경처럼 중국을 통해서 들여온 서양 물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상류계층의 사치풍조라기보다는 세계화에 대한 염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 외교 및 문화교류가 원활하지 못하면서 어려워진 경제적인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18세기 중엽 정조 때에 청과의 문물교류가 활발해지는데, 이때 물 밀 듯이 들여온 중국 및 외래 문물이 책거리에 등장한 것이다.
민화로 확산되면서 책과 더불어 다산, 장수, 출세 등의 행복을 추구하는 도상들이 증가했다. 서민들의 현실적인 욕망이 책거리 속에 짙게 반영된 것이다. 책거리가 점차 실생활과 밀착되면서, 책거리에 등장하는 물품들도 중국의 것에서 우리의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아울러 책거리가 서수도, 화조도, 문자도 등 다른 장르와 자유롭게 조합하면서 책거리의 세계가 폭넓어졌다. 특히 용, 봉황, 사슴, 거북 등과 같은 서수들이 노니는 서재의 풍경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장면으로 신비롭고 환상적인 상상력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여성의 서재가 그려진 책거리가 출현하고 심지어 에로틱한 책거리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민화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힘입어 책으로 시작된 책거리의 내용과 이미지의 세계가 풍요로워진 것이다.

특징 및 의의

책거리는 책을 사랑하고 책정치까지 펼쳤던 한국 문화를 대변하는 그림이다. 다른 나라에서 더러 책을 그린 적은 있어도 한국처럼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200여 년간 그것도 왕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만민이 즐겼던 나라는 없다. 그 덕분에 책거리에는 한국인이 표현할 수 있는 구성의 미감이 한껏 펼쳐져 있고, 한국인의 바람과 염원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책거리는 한국적인 정물화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궁중 책거리와 민화 책거리의 비교(정병모, 민화연구3, 계명대학교 한국민화연구소, 2014),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예술의전당·현대화랑, 2016),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경기도박물관, 2012), 책거리소고(이원복, 근대한국미술논총, 학고재, 1992), 한국의 채색화3-책거리와 문자도(다할미디어, 2015), Kay E. Black with Edward W.Wagner, “Court Style Ch’aekkŏri”(Hopes and Aspiration, 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 1998).

책거리

책거리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정병모(鄭炳模)
갱신일 2017-12-20

정의

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

역사

거리는 먹을거리, 입을거리, 볼거리 등과 같이 복수의 의미를 갖는다. 거리巨里의 한자는 발음을 딴 이두식 표기이다. 책거리는 지금의 서가인 책가가 그려진 책가도冊架圖와 책가가 없는 책거리로 나눌 수 있다. 책거리는 문방도文房圖라고도 불리었다. 책거리는 정조 때 유별난 책사랑과 유교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펼친 책정치로 인해 시작되었다. 1788년 9월 18일 신한평과 이종현이 책거리를 그리지 않았다고 멀리 귀양을 보내고, 바로 그날 장한종張漢宗, 1768~1815, 김재공金在恭, 허용許容을 자비대령 화원으로 임명할 정도로 정조는 책그림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된 장한종이 그린 이 바로 이 무렵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책가 위에 휘장을 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책들을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이후 1791년 정조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병풍 대신 책가도 병풍을 펼치고 정조가 ‘부패한 글’이라고 비난한 청대의 패관잡기류의 문체를 지양하고 고전古典의 문체를 쓰라고 지시했다. 문체반정文體反正에 책가도를 상징으로 활용한 것이다.이처럼 정조가 책가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자 당시 귀인貴人들이 앞을 다투어 책가도 병풍을 집에 설치했다. 김홍도金弘道가 책거리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홍도의 책거리는 현재 전하는 작품이 없다. 19세기에는 이형록李亨祿이 책거리로 이름을 떨쳤다. 이형록은 57세(1864년)에 이응록李膺祿, 64세(1871년)에 이택균李宅均으로 이름을 바꾼 이력이 있다. 이형록의 책거리는 실제 책가로 혼동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구성이 더욱 간결해졌으며 기존의 갈색과 더불어 녹색이나 청색과 같이 새로운 배경의 색을 실험하기도 했다.19세기에는 궁중화풍의 책거리가 민화풍의 책거리로 확산되면서 병풍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책가가 있는 형식보다 책가가 없는 형식이 더 많이 그려졌다. 아울러 책가 대신에 규모가 작은 탁자나 사랑방 가구를 활용했고, 책을 비롯한 물품들의 사이를 밀착시켜 한 덩어리로 표현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이는 작은 화면에 많은 것을 담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구성은 점차 자유로워지고 색채도 화려하게 베풀어졌다.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어떤 작품은 추상적인 이미지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문양이 다양하게 그려지면서 전반적으로 장식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내용

정조가 어좌 뒤에 설치했던 책가도는 책 위주로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정조가 “이것은 책이 아니라 그림이다.”라고 한 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정조 때는 아니지만 19세기 책가도 중에는 책가에 책만 가득 담겨 있는 책가도가 전한다.그런데 대부분의 책거리는 책과 더불어 도자기, 청동기, 문방구, 화병, 향로, 자명종, 악기 등 여러 물품들도 함께 등장한다. 이들 물품은 대부분 중국 청나라로부터 수입한 것이고, 자명종이나 시계, 안경처럼 중국을 통해서 들여온 서양 물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상류계층의 사치풍조라기보다는 세계화에 대한 염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 외교 및 문화교류가 원활하지 못하면서 어려워진 경제적인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18세기 중엽 정조 때에 청과의 문물교류가 활발해지는데, 이때 물 밀 듯이 들여온 중국 및 외래 문물이 책거리에 등장한 것이다.민화로 확산되면서 책과 더불어 다산, 장수, 출세 등의 행복을 추구하는 도상들이 증가했다. 서민들의 현실적인 욕망이 책거리 속에 짙게 반영된 것이다. 책거리가 점차 실생활과 밀착되면서, 책거리에 등장하는 물품들도 중국의 것에서 우리의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아울러 책거리가 서수도, 화조도, 문자도 등 다른 장르와 자유롭게 조합하면서 책거리의 세계가 폭넓어졌다. 특히 용, 봉황, 사슴, 거북 등과 같은 서수들이 노니는 서재의 풍경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장면으로 신비롭고 환상적인 상상력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여성의 서재가 그려진 책거리가 출현하고 심지어 에로틱한 책거리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민화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힘입어 책으로 시작된 책거리의 내용과 이미지의 세계가 풍요로워진 것이다.

특징 및 의의

책거리는 책을 사랑하고 책정치까지 펼쳤던 한국 문화를 대변하는 그림이다. 다른 나라에서 더러 책을 그린 적은 있어도 한국처럼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200여 년간 그것도 왕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만민이 즐겼던 나라는 없다. 그 덕분에 책거리에는 한국인이 표현할 수 있는 구성의 미감이 한껏 펼쳐져 있고, 한국인의 바람과 염원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책거리는 한국적인 정물화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궁중 책거리와 민화 책거리의 비교(정병모, 민화연구3, 계명대학교 한국민화연구소, 2014),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예술의전당·현대화랑, 2016),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경기도박물관, 2012), 책거리소고(이원복, 근대한국미술논총, 학고재, 1992), 한국의 채색화3-책거리와 문자도(다할미디어, 2015), Kay E. Black with Edward W.Wagner, &ldquo;Court Style Ch&rsquo;aekkŏri&rdquo;(Hopes and Aspiration, 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