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뼈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갱신일 2016-11-02

정의

집이나 마을에 침입할지도 모르는 악귀 또는 역귀를 위협해 미리 물리치고자 대문, 당산나무, 장승, 바위 등에 매달아두는 짐승의 뼈.

내용

뼈는 동물의 몸 안에 들어 있는 것이어서 의학적인 해부나 수술을 통하지 않고는 평소에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뼈를 발라내어 눈으로 본다면 이미 그 동물은 죽은 상태이다. 죽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뼈는 죽음을 상징한다. 민속신앙에서 대문이나 마을 어귀를 지키는 당산나무 또는 장승에 뼈를 매다는 것에는 악귀, 역질 등이 침입하면 너도 죽어서 이처럼 백골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협적인 경고의 의미가 있다.

뼈를 매다는 장소는 집의 대문 위나 문설주의 상단부, 즉 귀신이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소의 코뚜레, 가시 달린 엄나무 가지, 마른 쑥 묶음 등을 대문에 매다는 것도 뼈를 매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뼈를 당산나무에 매다는 것은 마을에 침입할지도 모르는 악귀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산나무는 대개 마을의 입구나 중앙에 위치하여 마을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으로 믿는다. 뼈를 장승에 매다는 이치도 이와 같다. 장승은 대체로 마을의 입구나 마을로 들어서는 고갯마루 등지에 서 있다. 여기에 무서운 짐승의 뼈를 매달아 놓음으로써 마을로 들어오려는 악귀들이 감히 침범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위에 금줄을 치고 붉은 살점이 붙은 뼈를 큼직하게 매달아 두는 것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지역사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라는 큰 집이 있다. 이 집 대문 위에는 높다랗게 짐승의 뼈 두 조각이 걸려 있다. 이 집은 조선시대 후기 영조 대에 평북병마절도사를 지낸 유이주(柳爾冑, 1726~1797)가 지었으며,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유이주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셌다. 그는 절도사로 부임하러 평안도로 가는 도중에 묘향산에서 만난 호랑이를 채찍으로 때려잡아 호피는 영조대왕에게 바치고 호랑이의 뼈는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퇴임한 뒤에 고향으로 가져왔다. 그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자리인 이곳에다 운조루를 짓고 악귀의 침범을 막고자 대문 위에 호랑이 뼈를 매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운조루에 사는 그는 집안이 흥하여 큰 부자가 되었고, 많은 농지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집 앞에다 쌀이 나오는 뒤주를 마련해 놓고 가난한 주민들이 굶지 않도록 구휼하는 온정을 베풀기도 했다고 전한다.

주인 유홍수(남, 1954년생) 씨의 말에 따르면 입향조인 유이주가 호랑이 뼈를 통째로 매달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고 했다. 호랑이 뼈는 만병통치약으로 쓰이기도 하고, 집에 걸면 잡귀의 범접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 사람들이 밤에 몰래 떼어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랑 뼈 두 개만 매달려 있다. 지난 40년 동안 도둑이 17차례나 들어와 여러 유물을 가져가면서 호랑이 뼈도 가져갔다는 것이다. 2010년에는 딸만 12명을 낳았다는 어느 여인이 찾아와서 호랑이 뼈를 지니면 득남할 수 있다고 애걸하여 조금 떼어주었다. 그 뒤 소원성취를 한 여인이 다시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갔다고 한다. 한편 호랑이 뼈를 잃고 말뼈를 대신 달아 오다가 그마저도 구하기 힘들어 근간에는 쇠뼈를 매달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유홍수 씨에게 확인했더니 호랑이 뼈가 맞다고 단언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경기도 세시풍속』을 보면 경기도 시흥시 포동 새우개마을에서는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 위에 큰 가시가 많은 엄나무를 꺾어다가 왼새끼로 묶어놓기도 하고, 짐승의 뼈를 풀에 싸서 왼새끼로 묶어 두기도 한다. 이는 악귀의 침범을 막기 위해 쇠뼈를 매달아 둔 것으로 보인다.

안성시 금광면 한운리 하동마을에서는 정초에 엄나무와 소 턱뼈를 묶어서 대문에 걸어두면 한 해 운수가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엄나무는 가시가 많아 그것을 걸어두면 잡귀잡신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상구산마을에서는 정초에 엄나무를 대문에 건다. 엄나무를 걸어두어야 그 집 안으로 사악한 귀신이 일 년 내내 들어오지 못한다. 다른 마을에서는 소 턱뼈를 걸어둔다. 이 마을에서는 이사 갈 때만 방문 위에 쇠코뚜레를 건다. 이는 이사 갈 집에 잡귀가 있을 수 있어 사람이 아닌 짐승이 먼저 들어가서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엄나무, 소의 턱뼈, 쇠코뚜레를 달아 잡귀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전남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세등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마을 앞 당산나무에 쇠뼈를 매단 짐대를 세운다. 대보름날 밤에 미륵바위를 모신 마을 제당에 가서 동제를 지낸 뒤 당산나무가 있는 짐대로 와 짐대제를 지낸다. 이 제사를 거리에서 지낸다고 하여 ‘거리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물에는 반드시 주과포혜(酒果脯醯)와 쇠머리를 준비한다. 먼저 짐대를 준비하여 당산나무 앞에 갖다 놓고 큰 명태 한 마리를 하얀 참종이에 싸둔 다음 무섭게 생긴 아주 큰 소의 턱뼈를 명태와 함께 묶어 짐대의 윗부분에 매단다. 이를 세워 넘어지지 않도록 당산나무의 둥치에 고정시킨 뒤 짐대 앞에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 명태는 당산에 바치는 제물이지만 소의 턱뼈는 강한 힘으로 악귀를 씹어 버리겠다는 위협용 장치물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학리에서도 당산나무에 짐승의 뼈를 매단다. 이곳에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마을의 뒷산 중턱에 있는 할배당에서 제사를 지낸 뒤 제당 앞에 있는 수백 년 된 당산나무의 중간 허리에 붉은 살이 달린 큼직한 돼지고기를 뼈째로 매단다. 고깃덩이는 상당히 큰 편이다. 유독 붉은 살이 달린 뼈를 매단 이유는 붉은색을 보고 잡귀잡신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뼈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효과까지 생각한 것이다. 고기의 살점을 묶어 제공하는 것은 몰려든 잡귀잡신이 이 고기를 흠향하고 해코지 없이 물러가라는 의미도 있다. 이렇게 당산나무에 매단 뼈에는 이 마을에 침입하는 악귀를 막아주고 마을 개개인의 가정이 무사태평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가정신앙을 다루는 자리에 당산나무에서 마을제사를 지내는 공동체 신앙을 예시로 든 것이 적절치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 신앙이라고는 해도 마을 구성원 개개인의 가정신앙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당산제가 마을 제사이기는 하지만 마을 제사에서도 개개인의 바람을 빈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당산에 가서 절하며 안녕과 무사함을 빌고, 돌아와서는 무사히 돌아온 것을 당산신에게 감사드린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밤중에 간단한 제물을 마련하여 당산에 와서 여러 번 절을 하며 자신의 소원성취를 빌기도 한다. 이러한 예거는 공동체 신앙의 대상이 가정이나 개인의 신앙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경남 남해군의 여러 곳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먼저 각 가정에서 준비한 제물을 당산에 갖다놓고 가정의 평안과 번성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그런 뒤에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당산제를 지낸다. 이처럼 당산나무와 장승과 바위에 뼈를 매다는 것은 공동체 신앙이자 가정신앙 또는 개인신앙의 대상이 된다.

남해군 삼동면 봉화리 내산마을에서도 당산나무에 쇠뼈를 매다는 신앙이 있다.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으로 동쪽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하나 있을 뿐이다. 마을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 그 앞에 당산나무, 밥무덤, 돌탑 등이 있는 작은 숲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숲거리 또는 숲당산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음력 시월 열나흗날 밤 12시에 동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동제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마음을 가다듬고 자기 집 대청마루에서 숲당산을 향하여 두 번 절한다. 그런 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당산제를 지내는 곳으로 가기도 하고 집에 남아 자기 일을 보기도 한다. 또한 동제를 지내고 나서는 악귀의 범접을 막고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위하고자 당산나무에 큼직한 쇠뼈를 매달아 놓는다. 동제를 잘 지내도 쇠뼈를 걸어두지 않으면 아무런 효험이 없다고 한다. 이 마을의 쇠뼈 걸기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으며, 이를 걸지 않으면 마을에 탈이 생긴다고 한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대지포마을에서도 동제를 지낸 뒤 당산나무에 큼직한 소의 넓적다리뼈를 매단다. 대지포는 물건리에서 미조리로 가는 국도 중간 지점의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포구 마을이다. 도로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마을 들머리에 당산이 있다. 이곳에는 수령 약 300년의 느티나무 당산목과 그 아래 큰 밥무덤이 있다. 반원형을 이루는 당산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당산의 왼쪽에는 당산목이 서 있고, 가운데에는 밥무덤이 있다. 둘레에는 야트막한 돌담이 쳐져 있다. 성대히 제수를 마련하여 음력 시월 열나흗날 자정에 당산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낸 뒤 밥무덤에 메를 묻고 나서 소의 넓적다리뼈를 당산나무에 매단다. 쇠뼈를 매달아야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여 마을에 아무런 탈이 없고, 가정이 평안하며, 바다에 나가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했다.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금포마을에서도 당산제를 지내고 쇠뼈를 매단다. 이 마을은 미조리에서 상주리로 가는 중간쯤 바닷가의 경사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전형적인 어촌으로, 주민 대부분이 바다와 관련된 일을 생업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곳의 당산은 해변도로의 위쪽 언덕에 있다. 당산에는 크지 않지만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음력 시월 열나흗날 밤 12시에 당산제를 지낸 뒤 당산나무 허리에 왼새끼를 감고 거기에 소의 넓적다리뼈를 매달아 놓았다. 뼈에 대한 신앙심은 다른 마을의 사례와 같다.

이 밖에 남해군 상주리와 남해읍 서변리에서도 과거에는 쇠뼈를 매달았지만 요즘은 매달지 않는다. 남해군 서면 노구리의 노구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낸 뒤 제단 앞에서 쇠뼈를 불에 태운다. 이는 뼈를 태우는 고약한 냄새를 맡고 악귀나 잡귀잡신이 멀리 달아나라는 이유에서이다. 남해군 삼동면 영지리 수곡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낸 뒤 닭을 한 마리 잡아 털을 뽑아서 나무에다 매달아 둔다. 잡귀잡신이나 역신이 이 마을에 함부로 침입하면 닭처럼 털이 뽑혀 죽는다는 위협의 뜻이 있다고 한다. 요새는 쇠뼈 태우기도 닭 매달기도 하지 않는다.

대전광역시 중구 금동에서도 거리제를 마치고 당산나무에 소의 턱뼈를 매달아 놓는다. 쇠머리의 절반은 산제당에 바치고, 나머지 반은 턱뼈를 발라 당산나무에 줄을 쳐서 매달아 둔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에서는 마을 입구 양쪽에 서까래 굵기의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금줄로 연결시켜 짐승의 뼈를 매달았다고 한다. 이 뼈가 어떤 짐승의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지만 쇠뼈일 가능성이 높다.

전남 진도군 군내면 덕병마을에는 서북쪽 당막개 갯가에서 진살등이라는 둔덕을 지나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나 있다. 이곳 진살등에 외부로부터 들어올지도 모르는 나쁜 악귀를 막기 위해 2기의 돌장승을 세워놨다. 남장승의 앞면에는 한자로 대장군, 여장승에는 진살등이라고 각각 새겨 놓았다. ‘진살등’이란 말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쁜 살기를 진압하여 박살낸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장승들에 무척 크고 이빨이 선명히 드러나는 소의 턱뼈를 왼새끼로 묶어서 매달았다. 옛날에는 붉은 살점이 붙은 것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그리고 좀 더 무시무시하도록 장승과 턱뼈에 소의 피까지 뿌려 악귀나 역귀는 얼씬도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동제와 장승제를 지내고 장승의 목에 소의 턱뼈를 매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장승 앞에서 짚단에 불을 붙여 놓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춤추며 이 불을 넘었다. 이를 ‘불넘기’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그해 모든 액운이 사라진다고 여겼다.

바위에 금줄을 치고 뼈를 매단 사례도 있다.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학리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바다에서 용왕제를 지내고 붉은 살점이 붙은 돼지뼈를 바닷가 바위에 왼새끼로 동여 매달아 두었다. 고기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한 어촌인 이 마을에서는, 바다의 들머리에 있는 바위에 고기와 뼈를 매단다. 이는 고기잡이 하는 데 잡귀잡신의 범접을 막아 풍어를 기약하고 어민들의 안전과 무사태평을 보장받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대지포마을에서 만난 김상지(여, 1930년생) 씨는 “우리 마을의 이 당산은 참 영검이 많습니다. 이 앞을 지나갈 때는 머리를 숙이고 경건히 지나갑니다. 절대로 침을 뱉지 않으며, 말없이 조용히 지나갑니다. 당산할배신을 숭앙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외지로 출타할 때, 고기잡이 나갈 때, 시험 치러 갈 때, 사업이 잘 안 될 때, 고기가 잘 안 잡힐 때, 우환이 있을 때,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 병자가 있을 때, 혼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취업이 안 될 때,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할 때, 차 운전하는 사람이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때 이 당산에 와서 빈다고 한다. 또한 한이 많은 여인들은 밤에 몰래 와서 자신의 소망을 두 손 모아 빌고 절한다고 한다. 이것은 비단 대지포 당산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지역의 당산신을 믿고 사는 주민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믿음이다.

이처럼 대문이나 당산나무에 뼈를 매달아서 악귀를 쫓고자 하는 신앙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당산나무에 뼈를 매다는 신앙 행위는 주로 남해지역에서 볼 수 있다. 마을의 당산은 마을 공동체의 신앙 장소이지만 개인이나 가정의 무사태평과 벽사진경(辟邪進慶)을 비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산은 마을신앙의 장소인 동시에 가정신앙 또는 개인신앙의 대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남해안의 민속신앙 (하종갑, 우석, 1984)
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전남지방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6)
경남의 막돌탑과 선돌 (이봉우, 집문당, 2000)
뼈 매달기 (배도식, 한국민속신앙사전-마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10)

짐승뼈

짐승뼈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갱신일 2016-11-02

정의

집이나 마을에 침입할지도 모르는 악귀 또는 역귀를 위협해 미리 물리치고자 대문, 당산나무, 장승, 바위 등에 매달아두는 짐승의 뼈.

내용

뼈는 동물의 몸 안에 들어 있는 것이어서 의학적인 해부나 수술을 통하지 않고는 평소에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뼈를 발라내어 눈으로 본다면 이미 그 동물은 죽은 상태이다. 죽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뼈는 죽음을 상징한다. 민속신앙에서 대문이나 마을 어귀를 지키는 당산나무 또는 장승에 뼈를 매다는 것에는 악귀, 역질 등이 침입하면 너도 죽어서 이처럼 백골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협적인 경고의 의미가 있다. 뼈를 매다는 장소는 집의 대문 위나 문설주의 상단부, 즉 귀신이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소의 코뚜레, 가시 달린 엄나무 가지, 마른 쑥 묶음 등을 대문에 매다는 것도 뼈를 매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뼈를 당산나무에 매다는 것은 마을에 침입할지도 모르는 악귀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산나무는 대개 마을의 입구나 중앙에 위치하여 마을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으로 믿는다. 뼈를 장승에 매다는 이치도 이와 같다. 장승은 대체로 마을의 입구나 마을로 들어서는 고갯마루 등지에 서 있다. 여기에 무서운 짐승의 뼈를 매달아 놓음으로써 마을로 들어오려는 악귀들이 감히 침범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위에 금줄을 치고 붉은 살점이 붙은 뼈를 큼직하게 매달아 두는 것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지역사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라는 큰 집이 있다. 이 집 대문 위에는 높다랗게 짐승의 뼈 두 조각이 걸려 있다. 이 집은 조선시대 후기 영조 대에 평북병마절도사를 지낸 유이주(柳爾冑, 1726~1797)가 지었으며,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유이주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셌다. 그는 절도사로 부임하러 평안도로 가는 도중에 묘향산에서 만난 호랑이를 채찍으로 때려잡아 호피는 영조대왕에게 바치고 호랑이의 뼈는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퇴임한 뒤에 고향으로 가져왔다. 그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자리인 이곳에다 운조루를 짓고 악귀의 침범을 막고자 대문 위에 호랑이 뼈를 매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운조루에 사는 그는 집안이 흥하여 큰 부자가 되었고, 많은 농지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집 앞에다 쌀이 나오는 뒤주를 마련해 놓고 가난한 주민들이 굶지 않도록 구휼하는 온정을 베풀기도 했다고 전한다. 주인 유홍수(남, 1954년생) 씨의 말에 따르면 입향조인 유이주가 호랑이 뼈를 통째로 매달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고 했다. 호랑이 뼈는 만병통치약으로 쓰이기도 하고, 집에 걸면 잡귀의 범접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 사람들이 밤에 몰래 떼어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랑 뼈 두 개만 매달려 있다. 지난 40년 동안 도둑이 17차례나 들어와 여러 유물을 가져가면서 호랑이 뼈도 가져갔다는 것이다. 2010년에는 딸만 12명을 낳았다는 어느 여인이 찾아와서 호랑이 뼈를 지니면 득남할 수 있다고 애걸하여 조금 떼어주었다. 그 뒤 소원성취를 한 여인이 다시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갔다고 한다. 한편 호랑이 뼈를 잃고 말뼈를 대신 달아 오다가 그마저도 구하기 힘들어 근간에는 쇠뼈를 매달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유홍수 씨에게 확인했더니 호랑이 뼈가 맞다고 단언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경기도 세시풍속』을 보면 경기도 시흥시 포동 새우개마을에서는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 위에 큰 가시가 많은 엄나무를 꺾어다가 왼새끼로 묶어놓기도 하고, 짐승의 뼈를 풀에 싸서 왼새끼로 묶어 두기도 한다. 이는 악귀의 침범을 막기 위해 쇠뼈를 매달아 둔 것으로 보인다. 안성시 금광면 한운리 하동마을에서는 정초에 엄나무와 소 턱뼈를 묶어서 대문에 걸어두면 한 해 운수가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엄나무는 가시가 많아 그것을 걸어두면 잡귀잡신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상구산마을에서는 정초에 엄나무를 대문에 건다. 엄나무를 걸어두어야 그 집 안으로 사악한 귀신이 일 년 내내 들어오지 못한다. 다른 마을에서는 소 턱뼈를 걸어둔다. 이 마을에서는 이사 갈 때만 방문 위에 쇠코뚜레를 건다. 이는 이사 갈 집에 잡귀가 있을 수 있어 사람이 아닌 짐승이 먼저 들어가서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엄나무, 소의 턱뼈, 쇠코뚜레를 달아 잡귀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전남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세등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마을 앞 당산나무에 쇠뼈를 매단 짐대를 세운다. 대보름날 밤에 미륵바위를 모신 마을 제당에 가서 동제를 지낸 뒤 당산나무가 있는 짐대로 와 짐대제를 지낸다. 이 제사를 거리에서 지낸다고 하여 ‘거리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물에는 반드시 주과포혜(酒果脯醯)와 쇠머리를 준비한다. 먼저 짐대를 준비하여 당산나무 앞에 갖다 놓고 큰 명태 한 마리를 하얀 참종이에 싸둔 다음 무섭게 생긴 아주 큰 소의 턱뼈를 명태와 함께 묶어 짐대의 윗부분에 매단다. 이를 세워 넘어지지 않도록 당산나무의 둥치에 고정시킨 뒤 짐대 앞에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 명태는 당산에 바치는 제물이지만 소의 턱뼈는 강한 힘으로 악귀를 씹어 버리겠다는 위협용 장치물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학리에서도 당산나무에 짐승의 뼈를 매단다. 이곳에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마을의 뒷산 중턱에 있는 할배당에서 제사를 지낸 뒤 제당 앞에 있는 수백 년 된 당산나무의 중간 허리에 붉은 살이 달린 큼직한 돼지고기를 뼈째로 매단다. 고깃덩이는 상당히 큰 편이다. 유독 붉은 살이 달린 뼈를 매단 이유는 붉은색을 보고 잡귀잡신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뼈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효과까지 생각한 것이다. 고기의 살점을 묶어 제공하는 것은 몰려든 잡귀잡신이 이 고기를 흠향하고 해코지 없이 물러가라는 의미도 있다. 이렇게 당산나무에 매단 뼈에는 이 마을에 침입하는 악귀를 막아주고 마을 개개인의 가정이 무사태평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가정신앙을 다루는 자리에 당산나무에서 마을제사를 지내는 공동체 신앙을 예시로 든 것이 적절치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 신앙이라고는 해도 마을 구성원 개개인의 가정신앙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당산제가 마을 제사이기는 하지만 마을 제사에서도 개개인의 바람을 빈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당산에 가서 절하며 안녕과 무사함을 빌고, 돌아와서는 무사히 돌아온 것을 당산신에게 감사드린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밤중에 간단한 제물을 마련하여 당산에 와서 여러 번 절을 하며 자신의 소원성취를 빌기도 한다. 이러한 예거는 공동체 신앙의 대상이 가정이나 개인의 신앙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경남 남해군의 여러 곳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먼저 각 가정에서 준비한 제물을 당산에 갖다놓고 가정의 평안과 번성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그런 뒤에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당산제를 지낸다. 이처럼 당산나무와 장승과 바위에 뼈를 매다는 것은 공동체 신앙이자 가정신앙 또는 개인신앙의 대상이 된다. 남해군 삼동면 봉화리 내산마을에서도 당산나무에 쇠뼈를 매다는 신앙이 있다.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으로 동쪽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하나 있을 뿐이다. 마을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 그 앞에 당산나무, 밥무덤, 돌탑 등이 있는 작은 숲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숲거리 또는 숲당산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음력 시월 열나흗날 밤 12시에 동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동제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마음을 가다듬고 자기 집 대청마루에서 숲당산을 향하여 두 번 절한다. 그런 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당산제를 지내는 곳으로 가기도 하고 집에 남아 자기 일을 보기도 한다. 또한 동제를 지내고 나서는 악귀의 범접을 막고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위하고자 당산나무에 큼직한 쇠뼈를 매달아 놓는다. 동제를 잘 지내도 쇠뼈를 걸어두지 않으면 아무런 효험이 없다고 한다. 이 마을의 쇠뼈 걸기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으며, 이를 걸지 않으면 마을에 탈이 생긴다고 한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대지포마을에서도 동제를 지낸 뒤 당산나무에 큼직한 소의 넓적다리뼈를 매단다. 대지포는 물건리에서 미조리로 가는 국도 중간 지점의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포구 마을이다. 도로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마을 들머리에 당산이 있다. 이곳에는 수령 약 300년의 느티나무 당산목과 그 아래 큰 밥무덤이 있다. 반원형을 이루는 당산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당산의 왼쪽에는 당산목이 서 있고, 가운데에는 밥무덤이 있다. 둘레에는 야트막한 돌담이 쳐져 있다. 성대히 제수를 마련하여 음력 시월 열나흗날 자정에 당산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낸 뒤 밥무덤에 메를 묻고 나서 소의 넓적다리뼈를 당산나무에 매단다. 쇠뼈를 매달아야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여 마을에 아무런 탈이 없고, 가정이 평안하며, 바다에 나가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했다.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금포마을에서도 당산제를 지내고 쇠뼈를 매단다. 이 마을은 미조리에서 상주리로 가는 중간쯤 바닷가의 경사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전형적인 어촌으로, 주민 대부분이 바다와 관련된 일을 생업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곳의 당산은 해변도로의 위쪽 언덕에 있다. 당산에는 크지 않지만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음력 시월 열나흗날 밤 12시에 당산제를 지낸 뒤 당산나무 허리에 왼새끼를 감고 거기에 소의 넓적다리뼈를 매달아 놓았다. 뼈에 대한 신앙심은 다른 마을의 사례와 같다. 이 밖에 남해군 상주리와 남해읍 서변리에서도 과거에는 쇠뼈를 매달았지만 요즘은 매달지 않는다. 남해군 서면 노구리의 노구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낸 뒤 제단 앞에서 쇠뼈를 불에 태운다. 이는 뼈를 태우는 고약한 냄새를 맡고 악귀나 잡귀잡신이 멀리 달아나라는 이유에서이다. 남해군 삼동면 영지리 수곡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낸 뒤 닭을 한 마리 잡아 털을 뽑아서 나무에다 매달아 둔다. 잡귀잡신이나 역신이 이 마을에 함부로 침입하면 닭처럼 털이 뽑혀 죽는다는 위협의 뜻이 있다고 한다. 요새는 쇠뼈 태우기도 닭 매달기도 하지 않는다. 대전광역시 중구 금동에서도 거리제를 마치고 당산나무에 소의 턱뼈를 매달아 놓는다. 쇠머리의 절반은 산제당에 바치고, 나머지 반은 턱뼈를 발라 당산나무에 줄을 쳐서 매달아 둔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에서는 마을 입구 양쪽에 서까래 굵기의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금줄로 연결시켜 짐승의 뼈를 매달았다고 한다. 이 뼈가 어떤 짐승의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지만 쇠뼈일 가능성이 높다. 전남 진도군 군내면 덕병마을에는 서북쪽 당막개 갯가에서 진살등이라는 둔덕을 지나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나 있다. 이곳 진살등에 외부로부터 들어올지도 모르는 나쁜 악귀를 막기 위해 2기의 돌장승을 세워놨다. 남장승의 앞면에는 한자로 대장군, 여장승에는 진살등이라고 각각 새겨 놓았다. ‘진살등’이란 말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쁜 살기를 진압하여 박살낸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장승들에 무척 크고 이빨이 선명히 드러나는 소의 턱뼈를 왼새끼로 묶어서 매달았다. 옛날에는 붉은 살점이 붙은 것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그리고 좀 더 무시무시하도록 장승과 턱뼈에 소의 피까지 뿌려 악귀나 역귀는 얼씬도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동제와 장승제를 지내고 장승의 목에 소의 턱뼈를 매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장승 앞에서 짚단에 불을 붙여 놓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춤추며 이 불을 넘었다. 이를 ‘불넘기’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그해 모든 액운이 사라진다고 여겼다. 바위에 금줄을 치고 뼈를 매단 사례도 있다.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학리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바다에서 용왕제를 지내고 붉은 살점이 붙은 돼지뼈를 바닷가 바위에 왼새끼로 동여 매달아 두었다. 고기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한 어촌인 이 마을에서는, 바다의 들머리에 있는 바위에 고기와 뼈를 매단다. 이는 고기잡이 하는 데 잡귀잡신의 범접을 막아 풍어를 기약하고 어민들의 안전과 무사태평을 보장받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대지포마을에서 만난 김상지(여, 1930년생) 씨는 “우리 마을의 이 당산은 참 영검이 많습니다. 이 앞을 지나갈 때는 머리를 숙이고 경건히 지나갑니다. 절대로 침을 뱉지 않으며, 말없이 조용히 지나갑니다. 당산할배신을 숭앙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외지로 출타할 때, 고기잡이 나갈 때, 시험 치러 갈 때, 사업이 잘 안 될 때, 고기가 잘 안 잡힐 때, 우환이 있을 때,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 병자가 있을 때, 혼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취업이 안 될 때,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할 때, 차 운전하는 사람이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때 이 당산에 와서 빈다고 한다. 또한 한이 많은 여인들은 밤에 몰래 와서 자신의 소망을 두 손 모아 빌고 절한다고 한다. 이것은 비단 대지포 당산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지역의 당산신을 믿고 사는 주민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믿음이다. 이처럼 대문이나 당산나무에 뼈를 매달아서 악귀를 쫓고자 하는 신앙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당산나무에 뼈를 매다는 신앙 행위는 주로 남해지역에서 볼 수 있다. 마을의 당산은 마을 공동체의 신앙 장소이지만 개인이나 가정의 무사태평과 벽사진경(辟邪進慶)을 비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산은 마을신앙의 장소인 동시에 가정신앙 또는 개인신앙의 대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남해안의 민속신앙 (하종갑, 우석, 1984)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전남지방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6)경남의 막돌탑과 선돌 (이봉우, 집문당, 2000)뼈 매달기 (배도식, 한국민속신앙사전-마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