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왕

한자명

竈王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신격

집필자 신영순(申永順)
갱신일 2016-11-01

정의

불신[火神]으로, 부엌에서 모셔지는 신령.

유래

조왕의 연원(淵源)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불을 다루는 데서 유래되어 불을 신성시하여 숭배하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신앙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불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집안의 흥망성쇠, 가족의 안녕, 가정의 길흉화복 등과 동일시하여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불씨를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주부가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불씨가 담긴 화로를 시어머니가 맏며느리에게 물려주었으며, 집을 새로 지었을 때 맏아들이 불씨가 담긴 화로나 솥을 제일 먼저 들고 새집에 들어갔다. 이사할 때도 집에서 쓰던 화로나 아궁이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기거나 택일한 길일 길시에 남이 먼저 들어가 불을 붙인 뒤에 짐을 옮겼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東夷傳)」 변진조에 따르면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법은 다르나 문의 서쪽에 모두들 부엌신[조신(竈神)]을 모신다.’라고 하여 기원전부터 조왕을 모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왕을 모시는 방법은 근래처럼 집집마다 다르지만 조왕을 모시는 장소는 동일하게 정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신이 중국 『전국책(戰國策)』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전국시대인 기원전 5∼3세기에 조왕이 알려지게 되었고, 신앙은 한대 이후에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서에서는 조왕을 염제, 황제, 오, 축융, 괄, 별신, 송무기, 소길리, 선, 장단, 외, 장자곽 등으로 보고 있다. 염제는 태양신이자 조왕신, 염제와 축융은 반인반금(伴人半禽), 축융과 소길리는 같은 인물로 각각 묘사되어 서로 연관성이 있다. 조신은 노부인 또는 적의를 입은 미녀 등 여신, 부인과 여섯 딸이 있는 남신 또는 부부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조왕신, 조왕보살, 조군, 동주사명, 취사명, 사명조군, 호택천존, 정복신군 등으로 불리면서 천존․신․왕․군 등 최고의 신명에서 사명과 같이 하늘의 부름을 받고 명을 행하는 신령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신의 생일은 8월 3일이고 부인의 생일은 8월 24일이라 하며, 섣달그믐날에 하늘에 올라가 인간들의 선악을 옥황상제께 고하는 사명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좋은 말을 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도록 아궁이에 술, 엿, 탕원보(쌀과 설탕을 반죽하여 만듦), 사조단 등을 붙인다. 일본의 오키나와 등지에서는 조왕신을 ‘가마도[竈, 부뚜막]신’이라 하며, 집을 수호하는 신으로 기능을 한다고 한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왕의 기원이 단군의 신시, 임동권은 중국에서 각각 유래되었다고 보았다. 또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는 조왕의 명칭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조왕이 기원전 6∼5세기에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기원 전후의 기록은 있지만 불의 사용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화(發火)가 어려운 전통사회에서는 불에 대한 관념이 매우 강하여 부뚜막 옆에 불씨 보호장치를 두었다. 강원도의 화투, 제주도의 봉덕과 화로 등이 그것이다. 부여 송국리 청동기 유적에서도 불씨 저장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단양 수양개의 주거지인 초기철기 유적지에서는 발화석과 발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허준(許浚)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발화법, 홍만선(洪萬選)은 『산림경제(山林經濟)』 「잡방(雜方)」에서 불씨의 보관방법을 각각 소개하였다. 이처럼 한 가정에서의 불씨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이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집안에 며느리가 들어오면 새 며느리는 목숨을 걸고 불을 지켜야 할 책임을 맡았다. 이는 불씨가 꺼지면 집안이 망한다는 관념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지키려 하였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주부(며느리)가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불씨를 간수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동원하였다. 이와 관련된 설화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돌고개 전설>, <며느리의 혼불>, <불씨의 복>, <불씨와 동삼> 등이 그것이다.

불씨는 집안 계승의 상징이어서 주로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 전승된다. 또한 불씨를 잘 관리하면 상(은항아리, 동삼)을 받지만 잘 관리하지 못하면 시댁에서 쫓겨나거나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엄청난 체벌을 감당해야 했다. 전통사회에서 불이 꺼져 이웃에 불씨를 얻으러 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남 영광군의 영월 신씨 종가에서는 500여 년 동안 불씨를 이어왔다고 한다.

제주도 무속신화인 <문전본풀이>에 의하면 남선비를 중심으로 조왕신과 측신(변소신)의 처첩관계, 주목지신과 오방토신 등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조왕신의 내력담을 찾을 수 있다.

옛날 남선비와 여산고을 여산부인이 일곱 형제를 낳고 살았는데 살림이 어려워 남선비가 무곡(貿穀)장사를 하러 갔다가 간악한 노일제대귀일의 딸을 만나 돈도 탕진하고 봉사가 되었다. 이때 여산부인은 남편을 찾으러 왔다가 귀일의 딸의 꾐에 빠져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귀일의 딸이 본부인 행세를 하며 본가로 돌아와 재물을 다 빼앗기 위해 일곱 형제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 흉계가 드러나자 귀일의 딸은 측간으로 도망가 측간신인 측도부인(厠道婦人)이 되고 남선비는 달아나다 정낭에 목이 걸려 주목지신(柱木之神)이 되었다. 일곱 형제는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화를 얻어다가 어머니를 살려 조왕신으로 모시고, 일곱 형제는 사방(四方)신과 뒷문전, 일문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신들의 이름은 심방(무당)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조왕은 여신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경기도 화성지역의 <성주굿 무가>에서는 조왕할아버지 또는 조왕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로 나타난다. 경북 안동지역 무가의 ‘성주드리는 말문’에서는 조왕이 성주의 아내가 되는 신화가 전한다. 성주가 하늘에서 죄를 지어 땅에 내려와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온갖 치장을 다하고 장가를 들어 양위분이 될 수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옥녀 세 명이 지상으로 유배되어 성주를 찾아온다. 성주는 한 분은 삼신할머니, 한 분은 제석님, 나머지 한 분은 조왕님으로 모셨다. 조왕은 베를 짜서 성주님의 도포를 짓는 등 부지런히 살림을 하는 현모양처로 묘사되기도 하고 성주 부모의 의례 대상인 ‘조왕세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제주도의 <차사본풀이>에서는 차사인 강님이 염라대왕을 잡으러 갈 때 길을 안내해 주는 신령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처럼 조왕은 불신앙과 더불어 오랜 역사, 신화, 전설, 무가 등을 통해 내력을 지닌 신령으로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내용

부엌은 주부가 관할하는 곳이므로 조왕은 주부, 즉 시어머니 또는 며느리가 모시는 신령이다. 민간에서는 이 신령을 조왕각시, 조왕할매, 조왕대신, 정지각시, 삼덕할망과 같이 여성 신격으로 모신다. 그러나 무가나 불교계에서는 부부 또는 남성 신격으로 모시고 있다. 이 신령은 가정에서 모시는 가신 중에서 성주, 조상과 함께 상위에 위치한다.

혼인이나 분가 등으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면 조왕을 모시게 된다. 이때 대부분은 시어머니가 모시던 것을 며느리가 물려받는다. 이 신령은 성주나 삼신처럼 잘못 모신 경우, 집안이 불안한 경우, 집을 떠난 경우 등에 다시 받아서 모시는 성격의 신이 아니다.

조왕은 부엌에 좌정하여 집안의 길흉화복과 자손들의 안녕과 건강 등을 기원하는 신령이다. 조왕은 ‘竈’자와 ‘王’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유사어로는 조신(竈神), 조군(竈君) 등이 있다. ‘조(竈)’자는 ‘구멍 혈(穴)’자에 ‘맹꽁이 맹(黽)’자를 합쳐서 이루어진 글자로, 집 또는 구멍 속에 맹꽁이가 있는 형상이다. ‘조(竈)’는 아궁이, 부뚜막, 부엌, 부엌귀신을 의미한다. 즉 한자 자체가 부엌에서 모시는 신령을 의미한다. 여기에 ‘왕(王)’이 결합된다. 왕은 임금 또는 군주를 의미하는 용어로, 여러 중의 으뜸을 나타낸다.

조왕은 조왕, 지앙, 조왕공, 조왕(주왕)각시, 조왕할매, 정지조왕, 정지각시, 삼덕할망, 조왕중발, 조왕보시기, 조왕단지 등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조왕이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다. 강원도와 경남지역에서 성주와 조왕을 함께 부엌에서 모시면서 ‘성주조왕’이라고 한다. 경남지역에서는 한지를 직사각형으로 접고 그 위에 ‘성주조왕’이라는 신명을 기입하기도 한다. 전남지역에서는 조왕을 대조왕과 소조왕으로 구분하여 대조왕은 불을 지피는 아궁이, 소조왕은 부뚜막 벽에 각각 모신다. 조왕은 인격화로 정지각시, 조왕님네, 조왕할매, 주왕(조왕)각시, 삼덕할망 등과 같이 여성으로 나타난다. 또한 조왕은 각시와 할매(할망), 즉 젊고 아리따운 새색시와 늙은 여자로 동시에 불린다. 반면에 남성 신격으로 인식되어 조왕(주왕)대감, 조상대감 등으로 불리는 지역도 있지만 소수이다. 경기도 화성지역의 <성주무가>에도 조왕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조왕할아버지 또는 조왕할아버지와 조왕할머니 부부로 나타나기도 한다.

조왕의 신체(神體)는 지역 또는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물을 담은 종지․주발․중발․보시기․뚝배기․옹기그릇․항아리․바가지․상자 등 용기 형태, 문종이에 ‘나무조왕 삼왕대신’이라 쓴 종이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헝겊이나 백지를 붙이거나 창호지와 마른 명태를 걸어 놓는 부적 형태, 방석 모양으로 접은 부적과 명태와 독을 동시에 모시는 복합 형태도 나타난다. 이외에 부뚜막의 솥과 솥뚜껑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신체가 없는 것을 건궁조왕이라 한다. 평상시에는 치성을 드리지 않지만 조왕 자리는 항상 조심한다. 제일에는 떡과 제물을 준비하여 제의를 올린다.

조왕의 용기에는 정화수, 쌀, 삼베 등을 넣는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물(정화수)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내리는 비(물)와 타고 있는 불 그 자체 모양에서 경외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파괴성, 엄청나게 불어나는 풍요성, 더러움이나 잡귀의 침입을 막는 정화력 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과 물이 생활상의 필수품이라는 점과 생활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는 위압감을 느끼는 한편 이것들의 전화, 신성, 풍요, 제액초복 등을 신의 상징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벼(쌀)는 다산을 의미하는 식물이다. 다산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농업에도 관계되는 것이며, 다산 소망이 곡식을 통해 조왕의 신체로 모셔진 것이다. 쌀을 제물로 쓴 곳은 서울, 강원, 충북, 경남지역이다. 쌀은 20세기 중반까지 조왕의 신체로 사용하였지만 근래에는 정화수나 건궁으로 모신다.

이 밖에 조왕의 신체처럼 모셔지는 것들로 솥과 솥뚜껑, 부뚜막과 아궁이가 있다. 솥은 단순히 음식물을 조리하는 용기만이 아닌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로서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 종교적 의기, 사자(死者)의 식량 용기 등 고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부뚜막과 아궁이는 단순히 취사와 난방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늘, 사계절, 십이시(十二時), 태양과 달과 바람 등을 나타내는 우주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부뚜막과 아궁이의 설치 위치, 방향, 설치일, 수리일 등도 음행오행설에 의해 정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민속상 혼례, 상례, 민간용법 등에서도 의미 있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혼례를 마치고 신행을 갔을 때 신랑이 부엌에 들어가 부뚜막에 다리를 올려놓고 국수를 먹거나 어린아이의 아명을 ‘부뚜막’으로 붙이는 것 등은 오래 살라는 의미로 보인다. 장례 때 관이 나가면 곧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관습은 시신이 있던 자리의 습기를 제거하고 소독할 뿐만 아니라 시신의 부정을 정화하기 위해 행해졌다. 그리고 민간에서 두드러기 등을 부뚜막 위에서 치료하였다. 이는 부뚜막이 질병을 치료하는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잣집 흙을 파와 자기 집 부뚜막에 바르면 그 복이 전해져 잘 살게 된다고 하여 ‘복토 훔치기’라는 민속이 있었다. 이는 부뚜막과 아궁이가 불을 조절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곳에 조왕이 내재해 있다는 인식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조왕을 모시는 공간은 부엌이다.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는 물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신령이 내재한 신성공간이며 부정을 씻는 정화의 장소이다. 『민택삼요(民宅三要)』에 의하면 부엌의 방향은 대문, 안방 다음으로 고려되었다. 일반적으로 동향이나 동남향을 길향으로 쳤고, 동북향이나 서남향은 귀문사상에 의해 흉하다고 하였다. 또 우물 앞이나 대청 뒤 또는 대문의 정면에 위치하는 것을 꺼렸다. 흙도 우물을 판 흙을 사용하지 않았다. 부엌을 만들거나 수리할 때에도 음양오행설에 의해 택일하였으며, 만통화성흉일(萬通火星凶日)을 피하였다. 만통화성흉일에 부엌을 비롯하여 방이나 대청 등 건물을 건조 및 수리를 하거나 이엉을 올리면 화재를 당한다고 한다.

부엌에는 조왕을 비롯하여 성주, 업, 조상, 제석, 구눙, 걸립, 영등할머니 등 거의 모든 가택신령이 모셔진다. 아키바 다카시에 따르면 서부지방과 북부지방에서는 고방 또는 부엌 선반에 신단지와 신고리를 설치해 놓고 제석단지, 칠성행리(七星行李), 조상단지, 조상마을, 원귀를 모시고 있다. 또한 그 집의 주부는 부엌에 모셔진 신령들의 각 제일에 맞추어 정성을 들인다. 정성 들이는 날 이외에 오월 진일에 돼지머리로 부엌에서 제를 지내면 재산이 만 배, 사월 정사일에 제를 지내면 재산이 백 배 늘어난다고 한다. 정월 기축일에 백계(白鷄)로 제를 지내면 누에가 잘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개로 제사를 지내면 흉패(凶敗)하고, 여자가 부엌에 제사를 지내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부엌에서 거의 모든 가택신령을 모시는 것은 민간에서 특히 신성한 장소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통과의례, 즉 혼례․상례․출산 의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부엌은 중요한 장소로 이용된다. 혼례를 마친 후 신행 때 신랑이 신부보다 앞서 집에 도착하면 말에서 내린 뒤 부엌에 들어가서 바가지에 국수를 담아 주걱으로 떠먹고(경기도), 신행 온 지 사흘 만에 ‘입주(入廚)’라 하여 신부가 처음 부엌에 나가 일을 하게 된다. 이때 신부는 먼저 부엌에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시작한다. 신부의 입주는 새 삶을 시작하는 뜻이며, 따라서 부엌의 주신인 조왕께 먼저 아뢴다는 의미로 보인다. 예전에 상가(喪家)에 갔다 오거나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우선 부엌부터 먼저 들렀다가 방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이는 상가나 긴 여행에서 묻어 왔을지도 모르는 잡귀나 부정스러운 것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부엌에는 부정을 씻는 정화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기의 첫 외출 때에도 부엌을 먼저 거쳐 가야 길하다고 한다.

또한 신축한 집에서는 방에서 아이를 낳지 않고 부엌(정지)에서 짚을 깔고 낳는다. 집안에 임부가 있으면 부엌이나 변소를 치우지 않고, 산중(産中)에 부엌이나 굴뚝을 고치면 나쁘며, 산달에 문을 바르면 난산을 한다고 한다. 이는 부엌이나 굴뚝, 문 등을 산도(産道)와 동일시하여 산도에 상처를 내거나 막는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조왕은 특정일이나 굿의 과정에서 모셔지는 여느 가신들과 달리 특정일뿐만 아니라 매일 모셔진다. 주부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남들이 먼저 물을 떠가기 전에 우물에 가서 세수를 하고 물을 떠와 정화수를 올렸다. 그러나 근래에는 수도를 사용함으로써 새벽 또는 밥짓기 전에 수돗물을 깨끗하게 받아서 싱크대(예전에는 부뚜막)에 올려놓고 빈다. 매월 삭망(초하루, 보름)과 유두, 백중, 추석, 섣달그믐, 칠석, 양날, 범날, 소날, 부모 제삿날, 가족 생일, 집 신축일, 가족 중에 출타한 사람이 있을 때 조왕에 정화를 올리고 빈다. 이는 집집마다 다르다. 이 밖에도 안택이나 집안에서 고사를 지내는 경우에 다른 신령들과 같이 모신다.

조왕은 집안마다 차이가 있지만 집안의 길흉화복을 빌고, 가장(家長)과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신다. 특히 가족 중에 객지에 출타하거나 군대 간 아들이 있으면 그 사람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매우 지성으로 모신다. 이 밖에 기자(祈子), 해산, 육아 등을 위해서도 모신다.

의의

조왕의 연원은 알 수 없지만 불의 사용과 함께 모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에게 불씨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이를 지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등 불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점차 인격화되면서 조왕이라는 가정 신령으로 모셔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조왕은 불신으로 모셔지다가 중국의 체계화된 조신이 전래됨으로써 조왕의 불신으로서의 순수한 형태는 사라지고 중국 계통의 조왕신인 부엌신, 부뚜막신으로 역할과 기능이 축소된 것으로 추측된다. 근래에 와서 발화법의 간편화, 수도의 보급, 난방과 음식 조리의 장소 분리, 화장실 위치의 이동 등 집안 구조의 변화, 입식부엌 사용(부뚜막에서 싱크대 사용)으로 인하여 조왕의 중요성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참고문헌

제주도무속연구 (현용준, 집문당, 1986)
조왕신앙연구 (신영순,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
불과 조왕신앙 (신영순, 불의 민속, 국립민속박물관, 1996)
한국의 집지킴이 (김광언, 다락방, 2000)
무속신화를 통해 본 조왕신과 측신의 성격 (김명자, 한국의 가정신앙-상, 민속원, 2005)
중국의 가정신앙 (정연학, 한국의 가정신앙-상, 민속원, 2005)
조왕의 성격과 전승양상 (최숙경, 지방사와 지방문화 12, 역사문화학회, 2009)

조왕

조왕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신격

집필자 신영순(申永順)
갱신일 2016-11-01

정의

불신[火神]으로, 부엌에서 모셔지는 신령.

유래

조왕의 연원(淵源)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불을 다루는 데서 유래되어 불을 신성시하여 숭배하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신앙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불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집안의 흥망성쇠, 가족의 안녕, 가정의 길흉화복 등과 동일시하여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불씨를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주부가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불씨가 담긴 화로를 시어머니가 맏며느리에게 물려주었으며, 집을 새로 지었을 때 맏아들이 불씨가 담긴 화로나 솥을 제일 먼저 들고 새집에 들어갔다. 이사할 때도 집에서 쓰던 화로나 아궁이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기거나 택일한 길일 길시에 남이 먼저 들어가 불을 붙인 뒤에 짐을 옮겼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東夷傳)」 변진조에 따르면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법은 다르나 문의 서쪽에 모두들 부엌신[조신(竈神)]을 모신다.’라고 하여 기원전부터 조왕을 모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왕을 모시는 방법은 근래처럼 집집마다 다르지만 조왕을 모시는 장소는 동일하게 정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신이 중국 『전국책(戰國策)』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전국시대인 기원전 5∼3세기에 조왕이 알려지게 되었고, 신앙은 한대 이후에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서에서는 조왕을 염제, 황제, 오, 축융, 괄, 별신, 송무기, 소길리, 선, 장단, 외, 장자곽 등으로 보고 있다. 염제는 태양신이자 조왕신, 염제와 축융은 반인반금(伴人半禽), 축융과 소길리는 같은 인물로 각각 묘사되어 서로 연관성이 있다. 조신은 노부인 또는 적의를 입은 미녀 등 여신, 부인과 여섯 딸이 있는 남신 또는 부부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조왕신, 조왕보살, 조군, 동주사명, 취사명, 사명조군, 호택천존, 정복신군 등으로 불리면서 천존․신․왕․군 등 최고의 신명에서 사명과 같이 하늘의 부름을 받고 명을 행하는 신령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신의 생일은 8월 3일이고 부인의 생일은 8월 24일이라 하며, 섣달그믐날에 하늘에 올라가 인간들의 선악을 옥황상제께 고하는 사명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좋은 말을 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도록 아궁이에 술, 엿, 탕원보(쌀과 설탕을 반죽하여 만듦), 사조단 등을 붙인다. 일본의 오키나와 등지에서는 조왕신을 ‘가마도[竈, 부뚜막]신’이라 하며, 집을 수호하는 신으로 기능을 한다고 한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왕의 기원이 단군의 신시, 임동권은 중국에서 각각 유래되었다고 보았다. 또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는 조왕의 명칭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조왕이 기원전 6∼5세기에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기원 전후의 기록은 있지만 불의 사용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화(發火)가 어려운 전통사회에서는 불에 대한 관념이 매우 강하여 부뚜막 옆에 불씨 보호장치를 두었다. 강원도의 화투, 제주도의 봉덕과 화로 등이 그것이다. 부여 송국리 청동기 유적에서도 불씨 저장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단양 수양개의 주거지인 초기철기 유적지에서는 발화석과 발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허준(許浚)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발화법, 홍만선(洪萬選)은 『산림경제(山林經濟)』 「잡방(雜方)」에서 불씨의 보관방법을 각각 소개하였다. 이처럼 한 가정에서의 불씨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이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집안에 며느리가 들어오면 새 며느리는 목숨을 걸고 불을 지켜야 할 책임을 맡았다. 이는 불씨가 꺼지면 집안이 망한다는 관념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지키려 하였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주부(며느리)가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불씨를 간수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동원하였다. 이와 관련된 설화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 , , 등이 그것이다. 불씨는 집안 계승의 상징이어서 주로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 전승된다. 또한 불씨를 잘 관리하면 상(은항아리, 동삼)을 받지만 잘 관리하지 못하면 시댁에서 쫓겨나거나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엄청난 체벌을 감당해야 했다. 전통사회에서 불이 꺼져 이웃에 불씨를 얻으러 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남 영광군의 영월 신씨 종가에서는 500여 년 동안 불씨를 이어왔다고 한다. 제주도 무속신화인 에 의하면 남선비를 중심으로 조왕신과 측신(변소신)의 처첩관계, 주목지신과 오방토신 등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조왕신의 내력담을 찾을 수 있다. 옛날 남선비와 여산고을 여산부인이 일곱 형제를 낳고 살았는데 살림이 어려워 남선비가 무곡(貿穀)장사를 하러 갔다가 간악한 노일제대귀일의 딸을 만나 돈도 탕진하고 봉사가 되었다. 이때 여산부인은 남편을 찾으러 왔다가 귀일의 딸의 꾐에 빠져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귀일의 딸이 본부인 행세를 하며 본가로 돌아와 재물을 다 빼앗기 위해 일곱 형제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 흉계가 드러나자 귀일의 딸은 측간으로 도망가 측간신인 측도부인(厠道婦人)이 되고 남선비는 달아나다 정낭에 목이 걸려 주목지신(柱木之神)이 되었다. 일곱 형제는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화를 얻어다가 어머니를 살려 조왕신으로 모시고, 일곱 형제는 사방(四方)신과 뒷문전, 일문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신들의 이름은 심방(무당)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조왕은 여신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경기도 화성지역의 에서는 조왕할아버지 또는 조왕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로 나타난다. 경북 안동지역 무가의 ‘성주드리는 말문’에서는 조왕이 성주의 아내가 되는 신화가 전한다. 성주가 하늘에서 죄를 지어 땅에 내려와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온갖 치장을 다하고 장가를 들어 양위분이 될 수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옥녀 세 명이 지상으로 유배되어 성주를 찾아온다. 성주는 한 분은 삼신할머니, 한 분은 제석님, 나머지 한 분은 조왕님으로 모셨다. 조왕은 베를 짜서 성주님의 도포를 짓는 등 부지런히 살림을 하는 현모양처로 묘사되기도 하고 성주 부모의 의례 대상인 ‘조왕세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제주도의 에서는 차사인 강님이 염라대왕을 잡으러 갈 때 길을 안내해 주는 신령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처럼 조왕은 불신앙과 더불어 오랜 역사, 신화, 전설, 무가 등을 통해 내력을 지닌 신령으로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내용

부엌은 주부가 관할하는 곳이므로 조왕은 주부, 즉 시어머니 또는 며느리가 모시는 신령이다. 민간에서는 이 신령을 조왕각시, 조왕할매, 조왕대신, 정지각시, 삼덕할망과 같이 여성 신격으로 모신다. 그러나 무가나 불교계에서는 부부 또는 남성 신격으로 모시고 있다. 이 신령은 가정에서 모시는 가신 중에서 성주, 조상과 함께 상위에 위치한다. 혼인이나 분가 등으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면 조왕을 모시게 된다. 이때 대부분은 시어머니가 모시던 것을 며느리가 물려받는다. 이 신령은 성주나 삼신처럼 잘못 모신 경우, 집안이 불안한 경우, 집을 떠난 경우 등에 다시 받아서 모시는 성격의 신이 아니다. 조왕은 부엌에 좌정하여 집안의 길흉화복과 자손들의 안녕과 건강 등을 기원하는 신령이다. 조왕은 ‘竈’자와 ‘王’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유사어로는 조신(竈神), 조군(竈君) 등이 있다. ‘조(竈)’자는 ‘구멍 혈(穴)’자에 ‘맹꽁이 맹(黽)’자를 합쳐서 이루어진 글자로, 집 또는 구멍 속에 맹꽁이가 있는 형상이다. ‘조(竈)’는 아궁이, 부뚜막, 부엌, 부엌귀신을 의미한다. 즉 한자 자체가 부엌에서 모시는 신령을 의미한다. 여기에 ‘왕(王)’이 결합된다. 왕은 임금 또는 군주를 의미하는 용어로, 여러 중의 으뜸을 나타낸다. 조왕은 조왕, 지앙, 조왕공, 조왕(주왕)각시, 조왕할매, 정지조왕, 정지각시, 삼덕할망, 조왕중발, 조왕보시기, 조왕단지 등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조왕이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다. 강원도와 경남지역에서 성주와 조왕을 함께 부엌에서 모시면서 ‘성주조왕’이라고 한다. 경남지역에서는 한지를 직사각형으로 접고 그 위에 ‘성주조왕’이라는 신명을 기입하기도 한다. 전남지역에서는 조왕을 대조왕과 소조왕으로 구분하여 대조왕은 불을 지피는 아궁이, 소조왕은 부뚜막 벽에 각각 모신다. 조왕은 인격화로 정지각시, 조왕님네, 조왕할매, 주왕(조왕)각시, 삼덕할망 등과 같이 여성으로 나타난다. 또한 조왕은 각시와 할매(할망), 즉 젊고 아리따운 새색시와 늙은 여자로 동시에 불린다. 반면에 남성 신격으로 인식되어 조왕(주왕)대감, 조상대감 등으로 불리는 지역도 있지만 소수이다. 경기도 화성지역의 에도 조왕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조왕할아버지 또는 조왕할아버지와 조왕할머니 부부로 나타나기도 한다. 조왕의 신체(神體)는 지역 또는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물을 담은 종지․주발․중발․보시기․뚝배기․옹기그릇․항아리․바가지․상자 등 용기 형태, 문종이에 ‘나무조왕 삼왕대신’이라 쓴 종이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헝겊이나 백지를 붙이거나 창호지와 마른 명태를 걸어 놓는 부적 형태, 방석 모양으로 접은 부적과 명태와 독을 동시에 모시는 복합 형태도 나타난다. 이외에 부뚜막의 솥과 솥뚜껑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신체가 없는 것을 건궁조왕이라 한다. 평상시에는 치성을 드리지 않지만 조왕 자리는 항상 조심한다. 제일에는 떡과 제물을 준비하여 제의를 올린다. 조왕의 용기에는 정화수, 쌀, 삼베 등을 넣는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물(정화수)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내리는 비(물)와 타고 있는 불 그 자체 모양에서 경외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파괴성, 엄청나게 불어나는 풍요성, 더러움이나 잡귀의 침입을 막는 정화력 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과 물이 생활상의 필수품이라는 점과 생활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는 위압감을 느끼는 한편 이것들의 전화, 신성, 풍요, 제액초복 등을 신의 상징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벼(쌀)는 다산을 의미하는 식물이다. 다산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농업에도 관계되는 것이며, 다산 소망이 곡식을 통해 조왕의 신체로 모셔진 것이다. 쌀을 제물로 쓴 곳은 서울, 강원, 충북, 경남지역이다. 쌀은 20세기 중반까지 조왕의 신체로 사용하였지만 근래에는 정화수나 건궁으로 모신다. 이 밖에 조왕의 신체처럼 모셔지는 것들로 솥과 솥뚜껑, 부뚜막과 아궁이가 있다. 솥은 단순히 음식물을 조리하는 용기만이 아닌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로서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 종교적 의기, 사자(死者)의 식량 용기 등 고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부뚜막과 아궁이는 단순히 취사와 난방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늘, 사계절, 십이시(十二時), 태양과 달과 바람 등을 나타내는 우주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부뚜막과 아궁이의 설치 위치, 방향, 설치일, 수리일 등도 음행오행설에 의해 정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민속상 혼례, 상례, 민간용법 등에서도 의미 있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혼례를 마치고 신행을 갔을 때 신랑이 부엌에 들어가 부뚜막에 다리를 올려놓고 국수를 먹거나 어린아이의 아명을 ‘부뚜막’으로 붙이는 것 등은 오래 살라는 의미로 보인다. 장례 때 관이 나가면 곧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관습은 시신이 있던 자리의 습기를 제거하고 소독할 뿐만 아니라 시신의 부정을 정화하기 위해 행해졌다. 그리고 민간에서 두드러기 등을 부뚜막 위에서 치료하였다. 이는 부뚜막이 질병을 치료하는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잣집 흙을 파와 자기 집 부뚜막에 바르면 그 복이 전해져 잘 살게 된다고 하여 ‘복토 훔치기’라는 민속이 있었다. 이는 부뚜막과 아궁이가 불을 조절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곳에 조왕이 내재해 있다는 인식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조왕을 모시는 공간은 부엌이다.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는 물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신령이 내재한 신성공간이며 부정을 씻는 정화의 장소이다. 『민택삼요(民宅三要)』에 의하면 부엌의 방향은 대문, 안방 다음으로 고려되었다. 일반적으로 동향이나 동남향을 길향으로 쳤고, 동북향이나 서남향은 귀문사상에 의해 흉하다고 하였다. 또 우물 앞이나 대청 뒤 또는 대문의 정면에 위치하는 것을 꺼렸다. 흙도 우물을 판 흙을 사용하지 않았다. 부엌을 만들거나 수리할 때에도 음양오행설에 의해 택일하였으며, 만통화성흉일(萬通火星凶日)을 피하였다. 만통화성흉일에 부엌을 비롯하여 방이나 대청 등 건물을 건조 및 수리를 하거나 이엉을 올리면 화재를 당한다고 한다. 부엌에는 조왕을 비롯하여 성주, 업, 조상, 제석, 구눙, 걸립, 영등할머니 등 거의 모든 가택신령이 모셔진다. 아키바 다카시에 따르면 서부지방과 북부지방에서는 고방 또는 부엌 선반에 신단지와 신고리를 설치해 놓고 제석단지, 칠성행리(七星行李), 조상단지, 조상마을, 원귀를 모시고 있다. 또한 그 집의 주부는 부엌에 모셔진 신령들의 각 제일에 맞추어 정성을 들인다. 정성 들이는 날 이외에 오월 진일에 돼지머리로 부엌에서 제를 지내면 재산이 만 배, 사월 정사일에 제를 지내면 재산이 백 배 늘어난다고 한다. 정월 기축일에 백계(白鷄)로 제를 지내면 누에가 잘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개로 제사를 지내면 흉패(凶敗)하고, 여자가 부엌에 제사를 지내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부엌에서 거의 모든 가택신령을 모시는 것은 민간에서 특히 신성한 장소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통과의례, 즉 혼례․상례․출산 의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부엌은 중요한 장소로 이용된다. 혼례를 마친 후 신행 때 신랑이 신부보다 앞서 집에 도착하면 말에서 내린 뒤 부엌에 들어가서 바가지에 국수를 담아 주걱으로 떠먹고(경기도), 신행 온 지 사흘 만에 ‘입주(入廚)’라 하여 신부가 처음 부엌에 나가 일을 하게 된다. 이때 신부는 먼저 부엌에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시작한다. 신부의 입주는 새 삶을 시작하는 뜻이며, 따라서 부엌의 주신인 조왕께 먼저 아뢴다는 의미로 보인다. 예전에 상가(喪家)에 갔다 오거나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우선 부엌부터 먼저 들렀다가 방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이는 상가나 긴 여행에서 묻어 왔을지도 모르는 잡귀나 부정스러운 것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부엌에는 부정을 씻는 정화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기의 첫 외출 때에도 부엌을 먼저 거쳐 가야 길하다고 한다. 또한 신축한 집에서는 방에서 아이를 낳지 않고 부엌(정지)에서 짚을 깔고 낳는다. 집안에 임부가 있으면 부엌이나 변소를 치우지 않고, 산중(産中)에 부엌이나 굴뚝을 고치면 나쁘며, 산달에 문을 바르면 난산을 한다고 한다. 이는 부엌이나 굴뚝, 문 등을 산도(産道)와 동일시하여 산도에 상처를 내거나 막는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조왕은 특정일이나 굿의 과정에서 모셔지는 여느 가신들과 달리 특정일뿐만 아니라 매일 모셔진다. 주부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남들이 먼저 물을 떠가기 전에 우물에 가서 세수를 하고 물을 떠와 정화수를 올렸다. 그러나 근래에는 수도를 사용함으로써 새벽 또는 밥짓기 전에 수돗물을 깨끗하게 받아서 싱크대(예전에는 부뚜막)에 올려놓고 빈다. 매월 삭망(초하루, 보름)과 유두, 백중, 추석, 섣달그믐, 칠석, 양날, 범날, 소날, 부모 제삿날, 가족 생일, 집 신축일, 가족 중에 출타한 사람이 있을 때 조왕에 정화를 올리고 빈다. 이는 집집마다 다르다. 이 밖에도 안택이나 집안에서 고사를 지내는 경우에 다른 신령들과 같이 모신다. 조왕은 집안마다 차이가 있지만 집안의 길흉화복을 빌고, 가장(家長)과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신다. 특히 가족 중에 객지에 출타하거나 군대 간 아들이 있으면 그 사람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매우 지성으로 모신다. 이 밖에 기자(祈子), 해산, 육아 등을 위해서도 모신다.

의의

조왕의 연원은 알 수 없지만 불의 사용과 함께 모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에게 불씨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이를 지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등 불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점차 인격화되면서 조왕이라는 가정 신령으로 모셔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조왕은 불신으로 모셔지다가 중국의 체계화된 조신이 전래됨으로써 조왕의 불신으로서의 순수한 형태는 사라지고 중국 계통의 조왕신인 부엌신, 부뚜막신으로 역할과 기능이 축소된 것으로 추측된다. 근래에 와서 발화법의 간편화, 수도의 보급, 난방과 음식 조리의 장소 분리, 화장실 위치의 이동 등 집안 구조의 변화, 입식부엌 사용(부뚜막에서 싱크대 사용)으로 인하여 조왕의 중요성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참고문헌

제주도무속연구 (현용준, 집문당, 1986)조왕신앙연구 (신영순,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불과 조왕신앙 (신영순, 불의 민속, 국립민속박물관, 1996)한국의 집지킴이 (김광언, 다락방, 2000)무속신화를 통해 본 조왕신과 측신의 성격 (김명자, 한국의 가정신앙-상, 민속원, 2005)중국의 가정신앙 (정연학, 한국의 가정신앙-상, 민속원, 2005)조왕의 성격과 전승양상 (최숙경, 지방사와 지방문화 12, 역사문화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