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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김상보(金尙寶)
갱신일 2016-10-18

정의

제례에서 신에게 올리는 찬 또는 안주按酒로, 양념하여 구운 고기.

역사

『의례儀禮』 「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에는 공이 대부에게 식사를 접대하는 예가 기술되어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앉아있는 손님인 빈賓을 위하여 음식을 내놓을 때 가장 존귀한 밥반찬은 소・양・돼지로 만든 구이인 적炙이었다.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에 의하면 1609년(광해군 원년) 조선정부에 최고의 손님인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에도 가장 존귀한 밥반찬으로 낸것은 다섯 가지 어육魚肉을 구워서 한 그릇에 담아 올린 ‘오색적합성五色炙合盛 1기器’였다.

「공식대부례」에 등장하는 쇠고기적[牛炙]・양고기적[羊炙]・돼지고기적[豕炙]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꼬치에 꿰어 양념하여서 굽는 형태였는데, 이 꼬치구이적은 1609년에도 적용되었다.

내용

신을 위하여 향연을 베푸는 것이 제례祭禮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귀한 손님인 신神 역시 「공식대부례」 속의 빈과 마찬가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모시고, 향찬을 차려 올릴 때에도 가장 존귀한 밥반찬 또는 술안주는 ‘적’이 된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길례吉禮에 속하는 기신제나 시제 등에서 신께 음식을 차려 올릴 때 ‘적’을 가장 존귀한 찬품으로 설정하였다.

이재李縡(1680~1746)가 쓴 『사례편람四禮便覽』과 이것의 영향을 받아 그 후에 나온 『증보사례편람』, 『사례집의四禮集儀』, 『광례람廣禮覽』 등과 같은 가례서家禮書에 등장하는 제사상 차림 물목에서도 ‘적’은 신께 올리는 가장 존귀한 찬품이 되었다.

‘적’은 원래 꼬치에 꿰서 양념하여 굽는 것이었다 . 1800년대 말에 나온 필사본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 「제물부祭物部」에서는 삼적三炙을 하는데, 그중 싸리나무로 만든 꼬치에 손바닥 두께로 저민 쇠고기를 꿰서 구운 것을 ‘육적’이라 하였다.

구이와 적을 나누어 보면, ‘구이류’에는 가리구이・가지구이・간산적구이・갈비구이・갈치구이・게구이・계란구이・김구이・골뚜기구이・꽁치구이・꿩구이・너비아니구이・대합구이・더덕구이・도루묵구이・도미구이・동태구이・돼지갈비구이・민어구이・방어구이・방자구이・병어구이・복어구이・뱅어포구이・비웃구이・붕어구이・삼치구이・상어구이・생복구이・생치구이・소라구이・숭어구이・양구이・염통구이・오리알구이・잉어구이・자라구이・장어구이・조기구이・제육구이・죽순구이・콩팥구이・편포구이・표고버섯구이 등이 있다. 그리고 ‘적류’에는 가지적・굴적・낙지적・누름적・닭섭산적・닭적・도라지산적・동아적・마작적・반적・복어적・북어적・산대적・산적・상어산적・생선적・생치적・설리적・설하멱적・소적・송이산적・쇠고기산적・계적・승검초산적・아저적・약산적・어산적・우두적・움파산적・쇠지라적・잡누름적・잡산적・장산적・족적・파산적・게적 등이 있다.

1975년에 나온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는 제사 때, 3적에서 8적까지 올렸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두툼하게 저며서 조미하여 나무 꼬치로 꿰서 지진다. 갈비적은 갈비 3대를 붙인 채로 적틀에 맞추어 잘라서 양념하여 지진다. 생선적은 조기나 숭어 세 마리를 소금으로 간하였다가 함께 나무 꼬치로 꿰서 양념하여 찐 다음, 달걀지단채와 버섯채를 고명으로 얹어 머리를 동쪽으로 가게 하여 육적위에 놓는다. 8색으로 할 경우에는 두부전・생선전・쇠고기간・천엽・집느리미 등을 썼다. 대체로 꼬치에 꿰서 구운 형태를 보여준다.

특징 및 의의

현재 ‘적’을 ‘구이[炙伊]’라고도 한다. 수조육류・어패류・가지・더덕과 같은 채소류에 소금으로 간하거나 또는 갖은 양념을 하여 불에 구운 음식의 총칭이다. 그중 고기를 두둑하게 저며서 양념하여 꼬치에 꿰어 구운 것을 ‘적’이라 하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廣禮覽, 國朝續五禮儀, 四禮便覽, 世宗實錄, 是義全書, 迎接都監儀軌, 儀禮, 增補四禮便覽,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김상보, 수학사, 1995),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충남(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5).

적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김상보(金尙寶)
갱신일 2016-10-18

정의

제례에서 신에게 올리는 찬 또는 안주按酒로, 양념하여 구운 고기.

역사

『의례儀禮』 「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에는 공이 대부에게 식사를 접대하는 예가 기술되어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앉아있는 손님인 빈賓을 위하여 음식을 내놓을 때 가장 존귀한 밥반찬은 소・양・돼지로 만든 구이인 적炙이었다.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에 의하면 1609년(광해군 원년) 조선정부에 최고의 손님인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에도 가장 존귀한 밥반찬으로 낸것은 다섯 가지 어육魚肉을 구워서 한 그릇에 담아 올린 ‘오색적합성五色炙合盛 1기器’였다. 「공식대부례」에 등장하는 쇠고기적[牛炙]・양고기적[羊炙]・돼지고기적[豕炙]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꼬치에 꿰어 양념하여서 굽는 형태였는데, 이 꼬치구이적은 1609년에도 적용되었다.

내용

신을 위하여 향연을 베푸는 것이 제례祭禮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귀한 손님인 신神 역시 「공식대부례」 속의 빈과 마찬가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모시고, 향찬을 차려 올릴 때에도 가장 존귀한 밥반찬 또는 술안주는 ‘적’이 된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길례吉禮에 속하는 기신제나 시제 등에서 신께 음식을 차려 올릴 때 ‘적’을 가장 존귀한 찬품으로 설정하였다. 이재李縡(1680~1746)가 쓴 『사례편람四禮便覽』과 이것의 영향을 받아 그 후에 나온 『증보사례편람』, 『사례집의四禮集儀』, 『광례람廣禮覽』 등과 같은 가례서家禮書에 등장하는 제사상 차림 물목에서도 ‘적’은 신께 올리는 가장 존귀한 찬품이 되었다. ‘적’은 원래 꼬치에 꿰서 양념하여 굽는 것이었다 . 1800년대 말에 나온 필사본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 「제물부祭物部」에서는 삼적三炙을 하는데, 그중 싸리나무로 만든 꼬치에 손바닥 두께로 저민 쇠고기를 꿰서 구운 것을 ‘육적’이라 하였다. 구이와 적을 나누어 보면, ‘구이류’에는 가리구이・가지구이・간산적구이・갈비구이・갈치구이・게구이・계란구이・김구이・골뚜기구이・꽁치구이・꿩구이・너비아니구이・대합구이・더덕구이・도루묵구이・도미구이・동태구이・돼지갈비구이・민어구이・방어구이・방자구이・병어구이・복어구이・뱅어포구이・비웃구이・붕어구이・삼치구이・상어구이・생복구이・생치구이・소라구이・숭어구이・양구이・염통구이・오리알구이・잉어구이・자라구이・장어구이・조기구이・제육구이・죽순구이・콩팥구이・편포구이・표고버섯구이 등이 있다. 그리고 ‘적류’에는 가지적・굴적・낙지적・누름적・닭섭산적・닭적・도라지산적・동아적・마작적・반적・복어적・북어적・산대적・산적・상어산적・생선적・생치적・설리적・설하멱적・소적・송이산적・쇠고기산적・계적・승검초산적・아저적・약산적・어산적・우두적・움파산적・쇠지라적・잡누름적・잡산적・장산적・족적・파산적・게적 등이 있다. 1975년에 나온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는 제사 때, 3적에서 8적까지 올렸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두툼하게 저며서 조미하여 나무 꼬치로 꿰서 지진다. 갈비적은 갈비 3대를 붙인 채로 적틀에 맞추어 잘라서 양념하여 지진다. 생선적은 조기나 숭어 세 마리를 소금으로 간하였다가 함께 나무 꼬치로 꿰서 양념하여 찐 다음, 달걀지단채와 버섯채를 고명으로 얹어 머리를 동쪽으로 가게 하여 육적위에 놓는다. 8색으로 할 경우에는 두부전・생선전・쇠고기간・천엽・집느리미 등을 썼다. 대체로 꼬치에 꿰서 구운 형태를 보여준다.

특징 및 의의

현재 ‘적’을 ‘구이[炙伊]’라고도 한다. 수조육류・어패류・가지・더덕과 같은 채소류에 소금으로 간하거나 또는 갖은 양념을 하여 불에 구운 음식의 총칭이다. 그중 고기를 두둑하게 저며서 양념하여 꼬치에 꿰어 구운 것을 ‘적’이라 하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廣禮覽, 國朝續五禮儀, 四禮便覽, 世宗實錄, 是義全書, 迎接都監儀軌, 儀禮, 增補四禮便覽,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김상보, 수학사, 1995),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충남(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