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수무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정미숙(鄭美淑)
갱신일 2018-09-13

정의

구름·물결·산 등의 자연물대상으로 도안한 무늬.

내용

자연산수무늬[自然山水紋]는 구름이 대표적이며 그 이외에 물결·산·바위 등이 있다. 구름은 하늘과 자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도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화되는 모습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매우 신령스러운 존재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14세기 고려시대 불복장 직물에서 구름무늬를 볼 수 있다. 1346년 장곡사의 불복장 직물에는 머리가 영지버섯 같은 모습을 한 영지운靈芝雲이 작은 새와 함께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문수사 불복장 직물에서는 한 개의 꼬리에서 구름머리가 좌우로 점점 솟아올라 날아가는 듯한 구름[飛雲]을 볼 수 있다. 구름무늬가 표현된 조선시대 출토복식은 현재 발견된 것 중 15세기에 제작된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주로 남성의 단령·답호·직령·철릭·중치막 등의 겉옷에 사용되었는데, 특히 관복 단령에는 단령 착용이 폐지된 1900년까지 구름무늬가 꾸준하게 사용되어 관료주의 사회에서의 높은 신분을 나타냈다. 그뿐 아니라 여성의 원삼·저고리·치마 등에도 구름무늬 비단이 사용된 것이 종종 확인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등에도 남녀의 복식에 구름무늬 비단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성별의 제한 없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구름무늬에 대한 명칭은 15세기까지의 기록에는 ‘골타운骨朶雲’, 보배무늬와 함께 있을 경우에는 ‘팔보운八寶雲’, ‘팔보골타운八寶骨朶雲’, ‘골타운감팔보骨朶雲嵌八寶’로 나타나며, 그 이후에는 ‘운문雲紋’으로 기록하고 있어 시대에 따라 명칭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골타운감팔보에 등장하는 ‘감팔보’는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 ‘八寶 문’으로 언해되어 있는데, 이에 ‘감嵌’을 ‘끼워 넣다’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주 무늬인 구름무늬 사이에 보조 무늬인 여덟 가지 보배무늬를 함께 표현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골타’는 몽둥이 한쪽 끝이 마늘 대가리 같은 모양을 한 고대의 무기인데, 구름머리와 모양이 유사하여 붙은 이름이다. 보배무늬는 직물이나 각종 생활 기물에 상징성을 부여하여 장식무늬로 사용한 것인데, 직물에 나타나는 보배무늬는 여러 가지 귀한 물건을 도안한 잡보문雜寶紋, 불교에서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여덟 가지 물건을 도안화한 팔길상문八吉祥紋, 도교의 여덟 신선이 지니고 있는 물건을 도안화한 암팔선문暗八仙紋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조선 전기의 보배무늬는 주로 잡보문으로 구름무늬 사이에 작게 표현되었지만, 17세기 이후로는 점점 팔길상문과 암팔선문으로 자주 나타나면서 규모가 커졌다. 또한 이 세 종류의 보배무늬를 섞어 한꺼번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구름무늬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꾸준히 사용되었으며, 대개 한쪽 끝이 말린 구름 네 개가 모인 사합여의형四合如意形 구름머리, 좌우 또는 한쪽에만 붙은 구름꼬리, 구름머리와 구름머리를 연결하는 구름선으로 이루어졌다. 구름무늬는 구름선을 따라 ㄷ자 또는 사선으로 계속 배열하여 옷감 전체를 가득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구름선 없이 구름머리와 구름꼬리 넷으로만 이루어진 卍자 모양 구름이 다른 구름과 이어지지 않고 규칙적으로 반복되기도 하였다. 구름무늬는 시대마다 약간씩 변형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구름머리가 크고 구름선이 짧게 표현되다가 후기로 갈수록 구름선과 구름꼬리가 길어지고 구름머리가 작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조선 말기에 들어서는 구름머리 형태가 단순해지면서 구름이 실선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구름머리에서 구름선이 떨어져 나가 흩어지게 도안되기도 하는 등 구름무늬가 확연히 달라졌다. 그중 ㄷ자 배열은 17세기 이전의 자료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그 외에 구름선과 구름꼬리 없이 구름머리로만 표현된 여의운如意雲이 있으며, 용·봉황 등 다른 무늬들과 조합을 이루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물결무늬는 물이 흐르는 모습을 도안한 것으로 한자로는 수파문水波紋 또는 수파랑水波浪이라고 한다.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모습을 따 도안되었는데 물리적인 힘이 가해져 솟구치는 파도 모양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문수사에서 발견된 1346년의 고려시대 불복장 직물에는 잔잔한 물결과 물고기 꼬리를 한 어룡魚龍 이 함께 반복되었다. 조선시대의 물결무늬는 직물 바탕 전체에 반복되어 기하학적으로 표현되거나, 관리의 관복 장식인 흉배에서 물결(수파)·바위·산 등과 함께 조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언충李彦忠(1524~1582)의 묘에서 출토된 답호와 권우權堣(1610~1675)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조복의 동정 감에 물결무늬가 지그재그로 표현되었다. 최원립崔元立(1618~1690)의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말 전복에는 마치 빙판 위에 균열이 간 것처럼 도안한 빙렬氷裂무늬 사이에 꽃송이를 엇갈리게 반복 배열하였다. 이러한 빙렬무늬는 겨울을 상징하는 매화나 대나무를 함께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조선 말기까지도 꾸준하게 유행하여 도자기나 궁궐의 담 장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산과 물의 도안은 수산복해壽山福海라고 하여 장수와 복을 누린다는 의미가 있다. 그중 물결은 ‘밀물 조潮’ 자가 ‘아침 조朝’ 자와 발음이 같다 하여 조정朝廷을 상징하고, 그런 이유에서 관복의 흉배를 물결무늬로 장식했다고도 한다. 물결과 함께 표현된 바위에는 오랜 세월 변치 않는다고 하여 장수의 의미가 있으며, 비바람을 가리지 않고 말없이 의연한 자태를 지닌다 하여 군자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또, 산은 하늘과 가까우며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숭배와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인천 석남동에서 출토된 15세기 말 대금형 상의의 흉배에는 곡선으로 표현된 물결 중심에 삼산이 있으며, 좌우에는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다. 연안 김씨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반의 단령형 원삼에는 흉배 하단에 깔린 여의형 구름 위로 중심과 좌우에는 삼산이, 그 사이에는 물결이 표현되었다. 심익창沈益昌(1652~1725)의 묘에서 출토된 18세기 단령의 흉배에는 중심에 구멍이 있는 바위와 좌우로 삼산이 있으며, 그 사이에 물결이 있다. 19세기의 단학흉배 중심에는 바위가 있는데, 구멍 위치에 보배무늬가 있으며 좌우로는 삼산이, 그 사이에 무지개 모양의 물결무늬가 배치되어 있다. 각 시대마다 장식 기법, 구성과 형태에 있어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왕이 입는 면복의 겉옷인 장복章服에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 오악五嶽을 장식했는데, 양어깨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용을, 등 중심에는 땅을 상징하는 산을 그려 천하를 진정하는 통솔력을 표현하였다.

특징 및 의의

직물 무늬로 사용된 자연산수무늬로는 구름무늬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조선 전기에는 남녀 복식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품목에서 나타나다가 후기로 갈수록 남성의 복식에 주로 나타났다. 산·바위·물결무늬는 주로 흉배, 활옷, 방석 등 전체가 하나의 그림처럼 표현한 회화풍의 구도에서 볼 수 있으나, 18세기 이후로는 관복용 단령의 무늬 외에 구름무늬의 사용이 감소되는 현상을 보인다.

참고문헌

우리나라전통무늬1-직물(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의문의 조선-무늬(민속원·경기도박물관, 2016), 중국미술상징사전(노자키 세이킨, 변영섭·안영섭 역,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한국직물문양 이천년(심연옥, 고대직물연구소출판부, 2006).

자연산수무늬

자연산수무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정미숙(鄭美淑)
갱신일 2018-09-13

정의

구름·물결·산 등의 자연물을 대상으로 도안한 무늬.

내용

자연산수무늬[自然山水紋]는 구름이 대표적이며 그 이외에 물결·산·바위 등이 있다. 구름은 하늘과 자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도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화되는 모습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매우 신령스러운 존재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14세기 고려시대 불복장 직물에서 구름무늬를 볼 수 있다. 1346년 장곡사의 불복장 직물에는 머리가 영지버섯 같은 모습을 한 영지운靈芝雲이 작은 새와 함께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문수사 불복장 직물에서는 한 개의 꼬리에서 구름머리가 좌우로 점점 솟아올라 날아가는 듯한 구름[飛雲]을 볼 수 있다. 구름무늬가 표현된 조선시대 출토복식은 현재 발견된 것 중 15세기에 제작된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주로 남성의 단령·답호·직령·철릭·중치막 등의 겉옷에 사용되었는데, 특히 관복 단령에는 단령 착용이 폐지된 1900년까지 구름무늬가 꾸준하게 사용되어 관료주의 사회에서의 높은 신분을 나타냈다. 그뿐 아니라 여성의 원삼·저고리·치마 등에도 구름무늬 비단이 사용된 것이 종종 확인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등에도 남녀의 복식에 구름무늬 비단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성별의 제한 없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조선시대 구름무늬에 대한 명칭은 15세기까지의 기록에는 ‘골타운骨朶雲’, 보배무늬와 함께 있을 경우에는 ‘팔보운八寶雲’, ‘팔보골타운八寶骨朶雲’, ‘골타운감팔보骨朶雲嵌八寶’로 나타나며, 그 이후에는 ‘운문雲紋’으로 기록하고 있어 시대에 따라 명칭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골타운감팔보에 등장하는 ‘감팔보’는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 ‘八寶 문’으로 언해되어 있는데, 이에 ‘감嵌’을 ‘끼워 넣다’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주 무늬인 구름무늬 사이에 보조 무늬인 여덟 가지 보배무늬를 함께 표현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골타’는 몽둥이 한쪽 끝이 마늘 대가리 같은 모양을 한 고대의 무기인데, 구름머리와 모양이 유사하여 붙은 이름이다. 보배무늬는 직물이나 각종 생활 기물에 상징성을 부여하여 장식무늬로 사용한 것인데, 직물에 나타나는 보배무늬는 여러 가지 귀한 물건을 도안한 잡보문雜寶紋, 불교에서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여덟 가지 물건을 도안화한 팔길상문八吉祥紋, 도교의 여덟 신선이 지니고 있는 물건을 도안화한 암팔선문暗八仙紋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조선 전기의 보배무늬는 주로 잡보문으로 구름무늬 사이에 작게 표현되었지만, 17세기 이후로는 점점 팔길상문과 암팔선문으로 자주 나타나면서 규모가 커졌다. 또한 이 세 종류의 보배무늬를 섞어 한꺼번에 사용하기도 하였다.구름무늬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꾸준히 사용되었으며, 대개 한쪽 끝이 말린 구름 네 개가 모인 사합여의형四合如意形 구름머리, 좌우 또는 한쪽에만 붙은 구름꼬리, 구름머리와 구름머리를 연결하는 구름선으로 이루어졌다. 구름무늬는 구름선을 따라 ㄷ자 또는 사선으로 계속 배열하여 옷감 전체를 가득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구름선 없이 구름머리와 구름꼬리 넷으로만 이루어진 卍자 모양 구름이 다른 구름과 이어지지 않고 규칙적으로 반복되기도 하였다. 구름무늬는 시대마다 약간씩 변형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구름머리가 크고 구름선이 짧게 표현되다가 후기로 갈수록 구름선과 구름꼬리가 길어지고 구름머리가 작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조선 말기에 들어서는 구름머리 형태가 단순해지면서 구름이 실선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구름머리에서 구름선이 떨어져 나가 흩어지게 도안되기도 하는 등 구름무늬가 확연히 달라졌다. 그중 ㄷ자 배열은 17세기 이전의 자료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그 외에 구름선과 구름꼬리 없이 구름머리로만 표현된 여의운如意雲이 있으며, 용·봉황 등 다른 무늬들과 조합을 이루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물결무늬는 물이 흐르는 모습을 도안한 것으로 한자로는 수파문水波紋 또는 수파랑水波浪이라고 한다.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모습을 따 도안되었는데 물리적인 힘이 가해져 솟구치는 파도 모양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문수사에서 발견된 1346년의 고려시대 불복장 직물에는 잔잔한 물결과 물고기 꼬리를 한 어룡魚龍 이 함께 반복되었다. 조선시대의 물결무늬는 직물 바탕 전체에 반복되어 기하학적으로 표현되거나, 관리의 관복 장식인 흉배에서 물결(수파)·바위·산 등과 함께 조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언충李彦忠(1524~1582)의 묘에서 출토된 답호와 권우權堣(1610~1675)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조복의 동정 감에 물결무늬가 지그재그로 표현되었다. 최원립崔元立(1618~1690)의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말 전복에는 마치 빙판 위에 균열이 간 것처럼 도안한 빙렬氷裂무늬 사이에 꽃송이를 엇갈리게 반복 배열하였다. 이러한 빙렬무늬는 겨울을 상징하는 매화나 대나무를 함께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조선 말기까지도 꾸준하게 유행하여 도자기나 궁궐의 담 장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산과 물의 도안은 수산복해壽山福海라고 하여 장수와 복을 누린다는 의미가 있다. 그중 물결은 ‘밀물 조潮’ 자가 ‘아침 조朝’ 자와 발음이 같다 하여 조정朝廷을 상징하고, 그런 이유에서 관복의 흉배를 물결무늬로 장식했다고도 한다. 물결과 함께 표현된 바위에는 오랜 세월 변치 않는다고 하여 장수의 의미가 있으며, 비바람을 가리지 않고 말없이 의연한 자태를 지닌다 하여 군자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또, 산은 하늘과 가까우며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숭배와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인천 석남동에서 출토된 15세기 말 대금형 상의의 흉배에는 곡선으로 표현된 물결 중심에 삼산이 있으며, 좌우에는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다. 연안 김씨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반의 단령형 원삼에는 흉배 하단에 깔린 여의형 구름 위로 중심과 좌우에는 삼산이, 그 사이에는 물결이 표현되었다. 심익창沈益昌(1652~1725)의 묘에서 출토된 18세기 단령의 흉배에는 중심에 구멍이 있는 바위와 좌우로 삼산이 있으며, 그 사이에 물결이 있다. 19세기의 단학흉배 중심에는 바위가 있는데, 구멍 위치에 보배무늬가 있으며 좌우로는 삼산이, 그 사이에 무지개 모양의 물결무늬가 배치되어 있다. 각 시대마다 장식 기법, 구성과 형태에 있어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왕이 입는 면복의 겉옷인 장복章服에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 오악五嶽을 장식했는데, 양어깨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용을, 등 중심에는 땅을 상징하는 산을 그려 천하를 진정하는 통솔력을 표현하였다.

특징 및 의의

직물 무늬로 사용된 자연산수무늬로는 구름무늬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조선 전기에는 남녀 복식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품목에서 나타나다가 후기로 갈수록 남성의 복식에 주로 나타났다. 산·바위·물결무늬는 주로 흉배, 활옷, 방석 등 전체가 하나의 그림처럼 표현한 회화풍의 구도에서 볼 수 있으나, 18세기 이후로는 관복용 단령의 무늬 외에 구름무늬의 사용이 감소되는 현상을 보인다.

참고문헌

우리나라전통무늬1-직물(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의문의 조선-무늬(민속원·경기도박물관, 2016), 중국미술상징사전(노자키 세이킨, 변영섭·안영섭 역,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한국직물문양 이천년(심연옥, 고대직물연구소출판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