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별신제

한자명

恩山別神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이필영(李弼泳)
갱신일 2016-11-01

정의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전승되어 오는 별신제. 이 별신제는 1966년 2월 1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은산별신제가 어떠한 역사적 경로를 거쳐서 형성·전개되었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별신제의 일반적 형성 배경을 고려한다면 은산리가 역촌(驛村)과 장시(場市)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던 조선 후기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저산팔읍(苧産八邑)을 중심으로 한 장시의 발달은 주목된다. 그 이전 시기에는 상당의 산신과 하당의 장승·진대에 대한 제의로 구성되었던 은산리의 동제가 역촌과 장시의 발달 때문에 별신제로 확대·개편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에 장군신에 대한 유교식 제사와 단골 무녀의 상·하당굿이 새로이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은산별신제의 성립 이념에는 ‘어떤 전쟁에서 패몰한 장졸(將卒)’ 또는 백제 고토(故土)란 지역의 역사성과 연계된 ‘백제부흥전쟁의 전몰(戰歿) 장병(將兵)’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제의(祭儀)의 구성에 군사적 요소가 편성되고 부각된 이유이다. 은산별신제의 연기(緣起) 설화에서 고을의 전염병, 들판에 나뒹굴고 있는 패몰 장병의 유해, 백마(白馬)를 탄 장군의 현몽(顯夢), 유골(遺骨)의 수습과 장례 및 제사 등은 중심 화소(話素)이다.

내용

은산별신제는 일제강점기 말기와 광복·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쇠퇴·인멸의 위기에 놓이자 정부에서 민속학자 임동권(任東權)에게 조사를 의뢰하여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1. 제당(祭堂)<
    표제어연결 민속신앙=“2642” 세시풍속=“491”>은산별신제의 제당은 별신당과 독산제당[산신당], 장승과 진대가 있는 장승거리, 그리고 하당터 및 이곳의 괴목(槐木)을 들 수 있다. 진대를 베어오는 산이나 꽃을 제작하는 화등방(花燈方), 꽃을 받아오는 삼충사(三忠祠) 등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종교적 공간이다.

    별신당 안에는 별신제 주신들의 영정위패가 모셔져 있다. 별신당 북측 주벽(主壁)의 중앙에는 산신도를 봉안하고, 그 좌우에는 각각 토진대사와 복신장군의 영정을 모신다. 독산제당은 별신당 왼쪽 옆 고목(古木) 아래에 있다. 당산의 서편 벼랑에 위치하며, 그 바로 옆에는 은산천이 흐른다. 전형적인 야외의 자연 제당인 것이다. 이곳이 원래의 산제당으로 보인다. 산신의 좌우에 봉안한 토진대사와 복신 장군은 백제부흥전쟁의 영웅들이다. 토진대사(土進大師)는 백제 말기 때 당(唐)에 저항하여 군사를 일으킨 승려 도침(道琛, ?~661)임이 거의 분명하다. 은산리는 네 방향의 길목에 각각 장승과 진대를 세우고 이를 하당신으로 위한다.

  2. 제의 절차
    은산별신제는 원래 다른 별신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3년에 한 번 모시는 것이 관례였다. 이즈음의 대제(大祭)와 소제(小祭)란 개념은 1978년부터 은산별신제보존회가 행사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정한 원칙이다. 소제에는 대제에서 행하는 진대베기·꽃받기·상당굿·하당굿은 하지 않고 본제와 독산제·장승제를 지낼 뿐이다. 먼저 보존회에서는 별신제를 수행할 임원을 뽑는다. 제관으로 화주(化主)·육화주(肉化主)·별좌(別座)·축관(祝官)·집례(執禮) 등을 선정하고, 무관으로 대장(大將)·중군(中軍)·영장(領將)·선배비장(先陪裨將)·후배비장(後陪裨將)·사명집사(司命執事)·통인(通引)·좌수(座首) 등을 뽑는다. 이 밖에 무녀(巫女)·악공(樂工)을 비롯하여 풍물패, 나팔수, 영기수 사명기수, 대기수, 24방 기수, 제물 봉송자, 진대 운반자, 병졸 등도 필요하다.

    ‘깨끗한 사람’으로 자체 선발한 화주와 별신제의 상·하당굿을 주도하는 단골 무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주는 산신과 별신들에게 기본적으로 유교식 제사로 치제(致祭)를 하고, 무녀는 노래와 춤으로 그 신령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한다. 조화장(造花匠)도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조화는 제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별신의 가호(加護)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수단이다.

    은산별신제는 근래에 들어 3월 말에서 4월 초순에 치러지며, 6일간 행사로 정형화되었다. 제1일에는 은산천의 물봉하기, 화주집의 조라술 담그기, 임원집을 순방하는 집굿 행사가 있다. 제2일에는 은산리에서 인근의 경둔리에 가서 진대를 베어오며, 저녁에는 역시 임원 집을 순방하면서 집굿 행사를 벌인다. 제3일에는 은산에서 부여 부소산의 삼충사에 가서 꽃받기를 하며, 저녁에는 3일째 집굿이 거행된다. 제4일에는 별신당에서 상당 행사와 더불어 본제 행사가 치러진다. 제5일에는 오전에 별신당에서 상당굿, 오후에 하당굿터에서 하당굿이 각각 열린다. 마지막 제6일에는 별신당 옆에서 독산제가 모셔진다. 이때 한편에서는 은산리의 사방에 세워져 있는 장승에서 제사를 지낸다.

다음에는 이들 순서에 따라 그 제의 절차를 간략히 설명한다.

  1. 물봉하기, 조라술 담그기, 집굿
    별신을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장을 보아 오고, 은산천의 물을 봉(封)하여 별신만을 위한 정수(淨水)로 변환시키며, 세속과 차단시킨 이 깨끗한 물로 신주(神酒)인 조라술을 담근다. 짧은 시간에 별신의 음조(陰助)로 술은 맛있게 익는다. 금줄황토, 및 기치(旗幟)도 설치하여 은산리를 스스로 정화시키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어떤 부정의 가능성도 차단한다. 물을 봉한 날로부터 3일 동안은 별신제에 막중한 책임을 맡은 임원들의 집을 풍장패가 차례로 방문하여 집굿을 쳐 준다. 임원 집들의 지신을 밟아주어 평안하게 하는 한편 역시 온갖 부정을 가셔낸다. 임원들은 집굿을 통하여 정화된다. 이렇게 임원들이 깨끗해진 연후에야 비로소 별신을 모실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2. 진대베기
    둘째날 오전에 하당굿 터에는 모군석(募軍席)이 설치된다. 군사를 일으키는 날이기 때문에 대장은 가장 먼저 도착하여 명(命)을 발동한다. 사명집사, 선배비장, 중군, 영장, 후배비장, 좌수, 별좌 등이 차레대로 모인다. 모군석에 임원들이 좌정하고, 진대베기에 참여할 많은 사람이 대오(隊伍)를 갖추고 떠날 채비를 한다.

    진대를 베어 올 산은 은산리 인근에 있는 경둔리 뒤편의 야산이다. 행군 도중에 가끔 넓은 공터가 나오면 ‘오방돌기’라 하여 요란한 풍장 소리에 맞추어 진(陣)치는 모습을 흉내 낸다. 군사의 위용을 떨치는 행군의 한 과정이다.

    산에 도착하면 요란한 풍물패의 쇠가락 속에서 별좌와 승마 임원들이 미리 보아둔 참나무를 향하여 삼배(三拜)를 올린다. 배(拜)마다 고개를 세 번 끄덕거려서 더욱 공손한 예를 표한다. 이를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라 한다. 이는 본제(本祭)에서 행하는 고두백배(叩頭百拜)와 함께 은산별신제 배례(拜禮)의 특징이다.

    참나무는 모두 4개를 베어낸다. 상단 부분에만 가지와 잎이 달린 참나무는 이제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진대’가 된다. 진대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이른바 우주목(cosmic tree)의 잔영(殘影)이다. 천상의 원형을 지닌 산에서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내, 인간의 정주 공간으로 옮긴 우주목이 진대이다. 진대는 그 위에 새가 앉혀져 있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솟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와 기능을 지닌다.

    진대를 가지고 하산하면 차일을 쳐서 잠시의 여흥을 위한 공연 장소를 마련한다. 이곳에서 잠시 한바탕 논 다음에 다시 행렬을 지어 은산리로 회군한다.

    하당터의 모군석에는 다시 승마 임원과 병졸들이 집결한다. 다만 대장과 후배비장은 모군석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의 모군석은 회군한 군대가 머무는 항전의 본거지인 성채를 의미한다. 병졸들은 창과 기치로서 하당터의 입구를 막고 양쪽으로 대오를 갖춘다. 대장과 후배비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졸들만 모군석으로 회군한 것은 조금 전의 격렬한 전쟁에서 많은 인마(人馬)가 손상당했음을 나타낸다. 대장과 후배비장은 전쟁에서 낙오된 것이다. 대장의 낙오는 참패를 뜻하고, 회군한 군대 역시 패잔병임을 시사한다. 이윽고 대장의 입성을 허락한다. 대장은 전투에서 낙오하였으나 무사히 귀환한 것이다. 백제부흥전쟁의 참담한 실패가 은산별신제의 한 절차로 삽입되어 있다. 이러한 과장(科場)을 구성한 은산별신제의 역사인식에는 백제의 패배를 사실로 인정하는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3. 꽃받기
    셋째날의 꽃받기는 별신당에 제물과 함께 올릴 꽃을 받아오는 절차이다. 형형색색의 지화(紙花)를 꽂은 꽃병 6개와 신령들이 오는 길을 환히 밝히는 화등 6개를 받아 온다. 꽃받기를 할 때에도 진대베기의 경우처럼 군사 행렬을 지어 나간다. 물론 이때에도 중간에 오방진을 치며 위용을 떨친다.

    근래에는 꽃받기를 부여의 백마강 동편에 있는 부소산의 삼충사로 가지만, 예전에는 별신제가 있을 때마다 매번 꽃을 제작할 화등방을 별도로 선정하였다. 대개는 은산리 주변의 절이나 사당 또는 마을 등에 화등방을 설치하였다.

    이 꽃은 별신제가 모두 끝나면 하당굿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녀가 나누어 준다. 이 꽃을 안방이나 마루 등에 정성스럽게 보관하면 다음 별신제가 열릴 때까지 제액초복(除厄招福)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4. 상당 행사와 본제
    넷째날 오후에 화주댁에서 별신당으로 제물을 봉송하는 상당 행사가 열린다. 이는 본제인 상당제를 지내기에 앞서 제물과 꽃을 상당에 받들어 보내는 행사이다.

    남자인 화주와 별좌들만 제물을 조리한다. 새벽부터 진편과 백편을 찌기 시작한다. 오전에는 모든 제물을 각각의 항아리와 그릇에 넣어 봉한다. 여기에는 일일이 오색 종이를 붙여장식한다. 또 오색 물감으로 밀가루를 색깔별로 각각 반죽하여 다섯 가지 색깔을 띠는 화전(花煎)을 만든다.

    제물 봉송자들은 제물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건네받은 다음 행진을 시작한다. 제물은 한 사람이 하나씩만 두 손으로 받들어 옮긴다. 이때 부정을 물리며 근신한다는 뜻으로 입에 백지 한 장씩을 문다. 화주가 별좌와 더불어 진설하면 화주 및 임원은 삼배를 올린다.

    한편 육화주(肉化主)의 집에서는 곧바로 돼지와 닭을 잡는다. 풍물패의 쇠가락 속에 육화주는 희생동물에게 배례한다. 풍물패의 선도(先導)하에 육화주는 날돼지와 날닭을 큰 그릇에 담아 별신당으로 봉송한다. 날돼지를 먼저 올리는 것은 산신을 위한 제물이기 때문이다.

    날돼지는 육화주의 배례 후에 곧바로 다시 육화주 집으로 옮긴다. 가마솥에 넣고 삶기 위해서이다. 이 시간 동안에 여러 임원은 휴식을 취하며 희생동물이 완숙되기를 기다린다.

    육화주 집에서 돼지와 닭을 충분히 삶아 별신당에 올리면 오후 9시경이 된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상당의 본제는 산신과 별신에 대한 유교식 제사로 치러진다. 집례의 홀기에 따라 ①화주분향삼배, ②화주강신삼배, ③제관참신삼배, ④화주초헌, ⑤산신축독축, ⑥장군축독축, ⑦대장아헌, ⑧이장종헌, ⑨제관전원헌작, ⑩동민축독축, ⑪전제관백배, ⑫동민헌작, ⑬소지, ⑭파제의 순서로 진행된다.

  5. 상당굿과 하당굿
    다섯째날 오전에 신령이 전날의 본제를 잘 받았는지 가늠하는 상당굿을 벌인다. 별신당 바로 앞에 상당굿 터를 마련하며, 이곳에 쌀을 담은 큰 함지박에 대기를 세워 놓는다. 3명의 무녀는 춤을 추고 무가를 부르면서 복신 장군과 토진대사의 슬픈 죽음을 위로하면서 정성을 잘 받았으면 설설이 내려 달라고 축원을 한다. 이윽고 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는 점점 심하게 요동을 치며, 대를 붙잡고 있는 화주나 대장은 물론 그 주변의 모든 구경꾼도 함께 긴장하며 대의 떨림을 예의주시한다. 이때가 은산별신제의 절정 순간이다. 구경꾼들조차 이 대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한다.

    오후에는 마을 한복판의 괴목 아래에 굿판을 준비한다. 이곳을 흔히 하당굿터라고 부른다. 하당굿에서는 하당의 신령을 위하고, 별신제에 초대받지 못한 여러 원혼을 위무(慰撫)하며 풀어먹인다. 괴목 바로 앞에는 대장을 위시하여 승마 임원들이 차례로 앉는다. 이들 앞에는 별신에게 바치는 축원상인 교자상(交子床)이 하나씩 놓이고, 그 위에는 ‘꽃반’이라 하여 불밝이쌀을 놓는다. 그 앞은 무녀들의 굿판이 된다.

    여기에서도 상당굿과 마찬가지로 큰 함지박에 대기를 꽂아놓고 화주와 대장이 붙잡고 있는다. 무녀들은 춤과 노래로 하당의 신령과 잡귀 및 잡신들을 위로하고 풀어먹이며, 또한 임원을 비롯하여 굿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축원해 준다. 굿은 대기가 심하게 흔들리며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날 때까지 계속된다. 굿이 끝나면 무녀는 별신이 내려준 지화, 곧 신화를 임원 이하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별신이 내린 신주로 음복을 하였듯이 별신이 내린 신화로써 다음 별신을 모실 때까지 그 축복을 보장하는 신표(信標)로 삼는 것이다.

  6. 독산제
    독산제는 화주 홀로 모시는 산제이다. 산신에게 별신제를 모두 마쳤음을 고하며 감사하는 제사이다. 장군신을 중요하게 모시는 은산별신제에서 독산제로 모든 제의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산신과 별신의 관계, 그리고 이들 사이의 위상이 어떠한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곧 은산별신제에서 별신은 매우 중심된 신격의 위상을 지니지만, 격년 또는 삼년마다 모셔지는 특별한 신령들이다. 은산리의 주신은 역시 당산의 산신이다. 굳이 비유한다면 산신은 주인이고 별신은 손님인 셈이다.

  7. 장승제
    과거에 장승제는 독산제를 마친 다음날에 치렀다. 그러나 별신제의 간략화로 인하여 근래에는 독산제를 지내는 시간에 별좌가 풍물패와 영기를 앞세우고 장승제를 동시에 모신다.

    은산리는 사통팔달(四通八達)한 평지에 있다. 은산시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의 길목마다 장승을 세웠다. 사방에 세워진 장승은 외형상 큰 차이는 없으나 각 장승이 책임을 맡은 방위 구역에 따라 동방청제축귀대장군(東方靑帝逐鬼大將軍)·서방백제축귀대장군(西方白帝逐鬼大將軍)·남방적제축귀대장군(南方赤帝逐鬼大將軍)·북방흑제축귀대장군(北方黑帝逐鬼大將軍)이라고 명명(命名)된다. 또한 이들 장승 옆에는 참나무를 상단만 남긴 채 진대라 하여 세워 둔다. 이는 별신제를 올릴 때만 새로 세운다. 다음에는 동방·서방·남방·북방 장승의 순서로 옮겨 다니며 장승제를 모신다.

오늘날의 은산별신제는 그 이념에 있어서 백제부흥전쟁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복신 장군과 토진대사 외 삼천신위(三千神位)의 한을 풀어주는 위령제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는 다른 많은 장군을 별신으로 모셨다. 거의 대부분은 중국의 장군이고, 극히 일부가 조선의 장수였다. 물론 당시에도 복신 장군에 대한 관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20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은산별신제에 백제의 이념이 점차 강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은산별신제를 떠받들고 있는 3가지 요소인 교통의 중심인 역촌, 상업의 중심인 장시, 장군인 별신 중에서 역촌과 장시의 요소는 전혀 고려되거나 인식되지 않았고 별신만 백제부흥전쟁과 관련하여 한층 뚜렷하게 자리를 잡아 나갔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은산별신제를 1300여 년 동안 지속해 온 백제 전몰 장졸의 위령제라는 오해도 확산되었다.

은산별신제는 근·현대에 부여 및 그 인근 지역에서 이루어진 백제 역사의 재창출이지 백제사 그 자체 또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대상이 아니다. 은산별신제에서 백제의 표상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조선 후기에 은산리가 지닌 역촌과 장시의 전통을 이해하는 일이다. 앞으로 은산별신제가 훌륭한 지역 축제로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도 이러한 전통들은 충분히 전제되어야 한다. 요컨대 은산별신제는 역촌과 장시의 기반 위에서 형성되었으며, 특히 시장 상인들의 자본은 중요한 물적 토대가 되었다. 한 마을이 아닌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 성격을 지닌 고을의 공동체 신앙이 어떠한 구조와 성격 및 기능을 하는지를 이를 통하여 여실히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백제의 전설 (홍사준, 통문관, 1956)
은산별신제 (임동권,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8, 1965)
은산별신고 (이양수, 부여향토문화연구회, 1969)
은산별신제 (이필영, 화산문화, 2002)

은산별신제

은산별신제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이필영(李弼泳)
갱신일 2016-11-01

정의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전승되어 오는 별신제. 이 별신제는 1966년 2월 1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은산별신제가 어떠한 역사적 경로를 거쳐서 형성·전개되었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별신제의 일반적 형성 배경을 고려한다면 은산리가 역촌(驛村)과 장시(場市)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던 조선 후기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저산팔읍(苧産八邑)을 중심으로 한 장시의 발달은 주목된다. 그 이전 시기에는 상당의 산신과 하당의 장승·진대에 대한 제의로 구성되었던 은산리의 동제가 역촌과 장시의 발달 때문에 별신제로 확대·개편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에 장군신에 대한 유교식 제사와 단골 무녀의 상·하당굿이 새로이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은산별신제의 성립 이념에는 ‘어떤 전쟁에서 패몰한 장졸(將卒)’ 또는 백제 고토(故土)란 지역의 역사성과 연계된 ‘백제부흥전쟁의 전몰(戰歿) 장병(將兵)’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제의(祭儀)의 구성에 군사적 요소가 편성되고 부각된 이유이다. 은산별신제의 연기(緣起) 설화에서 고을의 전염병, 들판에 나뒹굴고 있는 패몰 장병의 유해, 백마(白馬)를 탄 장군의 현몽(顯夢), 유골(遺骨)의 수습과 장례 및 제사 등은 중심 화소(話素)이다.

내용

은산별신제는 일제강점기 말기와 광복·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쇠퇴·인멸의 위기에 놓이자 정부에서 민속학자 임동권(任東權)에게 조사를 의뢰하여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제당(祭堂)&lt;표제어연결 민속신앙=&ldquo;2642&rdquo; 세시풍속=&ldquo;491&rdquo;&gt;은산별신제의 제당은 별신당과 독산제당[산신당], 장승과 진대가 있는 장승거리, 그리고 하당터 및 이곳의 괴목(槐木)을 들 수 있다. 진대를 베어오는 산이나 꽃을 제작하는 화등방(花燈方), 꽃을 받아오는 삼충사(三忠祠) 등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종교적 공간이다. 별신당 안에는 별신제 주신들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별신당 북측 주벽(主壁)의 중앙에는 산신도를 봉안하고, 그 좌우에는 각각 토진대사와 복신장군의 영정을 모신다. 독산제당은 별신당 왼쪽 옆 고목(古木) 아래에 있다. 당산의 서편 벼랑에 위치하며, 그 바로 옆에는 은산천이 흐른다. 전형적인 야외의 자연 제당인 것이다. 이곳이 원래의 산제당으로 보인다. 산신의 좌우에 봉안한 토진대사와 복신 장군은 백제부흥전쟁의 영웅들이다. 토진대사(土進大師)는 백제 말기 때 당(唐)에 저항하여 군사를 일으킨 승려 도침(道琛, ?~661)임이 거의 분명하다. 은산리는 네 방향의 길목에 각각 장승과 진대를 세우고 이를 하당신으로 위한다. 제의 절차은산별신제는 원래 다른 별신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3년에 한 번 모시는 것이 관례였다. 이즈음의 대제(大祭)와 소제(小祭)란 개념은 1978년부터 은산별신제보존회가 행사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정한 원칙이다. 소제에는 대제에서 행하는 진대베기·꽃받기·상당굿·하당굿은 하지 않고 본제와 독산제·장승제를 지낼 뿐이다. 먼저 보존회에서는 별신제를 수행할 임원을 뽑는다. 제관으로 화주(化主)·육화주(肉化主)·별좌(別座)·축관(祝官)·집례(執禮) 등을 선정하고, 무관으로 대장(大將)·중군(中軍)·영장(領將)·선배비장(先陪裨將)·후배비장(後陪裨將)·사명집사(司命執事)·통인(通引)·좌수(座首) 등을 뽑는다. 이 밖에 무녀(巫女)·악공(樂工)을 비롯하여 풍물패, 나팔수, 영기수 사명기수, 대기수, 24방 기수, 제물 봉송자, 진대 운반자, 병졸 등도 필요하다. ‘깨끗한 사람’으로 자체 선발한 화주와 별신제의 상·하당굿을 주도하는 단골 무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주는 산신과 별신들에게 기본적으로 유교식 제사로 치제(致祭)를 하고, 무녀는 노래와 춤으로 그 신령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한다. 조화장(造花匠)도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조화는 제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별신의 가호(加護)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수단이다. 은산별신제는 근래에 들어 3월 말에서 4월 초순에 치러지며, 6일간 행사로 정형화되었다. 제1일에는 은산천의 물봉하기, 화주집의 조라술 담그기, 임원집을 순방하는 집굿 행사가 있다. 제2일에는 은산리에서 인근의 경둔리에 가서 진대를 베어오며, 저녁에는 역시 임원 집을 순방하면서 집굿 행사를 벌인다. 제3일에는 은산에서 부여 부소산의 삼충사에 가서 꽃받기를 하며, 저녁에는 3일째 집굿이 거행된다. 제4일에는 별신당에서 상당 행사와 더불어 본제 행사가 치러진다. 제5일에는 오전에 별신당에서 상당굿, 오후에 하당굿터에서 하당굿이 각각 열린다. 마지막 제6일에는 별신당 옆에서 독산제가 모셔진다. 이때 한편에서는 은산리의 사방에 세워져 있는 장승에서 제사를 지낸다. 다음에는 이들 순서에 따라 그 제의 절차를 간략히 설명한다. 물봉하기, 조라술 담그기, 집굿별신을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장을 보아 오고, 은산천의 물을 봉(封)하여 별신만을 위한 정수(淨水)로 변환시키며, 세속과 차단시킨 이 깨끗한 물로 신주(神酒)인 조라술을 담근다. 짧은 시간에 별신의 음조(陰助)로 술은 맛있게 익는다. 금줄과 황토, 및 기치(旗幟)도 설치하여 은산리를 스스로 정화시키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어떤 부정의 가능성도 차단한다. 물을 봉한 날로부터 3일 동안은 별신제에 막중한 책임을 맡은 임원들의 집을 풍장패가 차례로 방문하여 집굿을 쳐 준다. 임원 집들의 지신을 밟아주어 평안하게 하는 한편 역시 온갖 부정을 가셔낸다. 임원들은 집굿을 통하여 정화된다. 이렇게 임원들이 깨끗해진 연후에야 비로소 별신을 모실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진대베기둘째날 오전에 하당굿 터에는 모군석(募軍席)이 설치된다. 군사를 일으키는 날이기 때문에 대장은 가장 먼저 도착하여 명(命)을 발동한다. 사명집사, 선배비장, 중군, 영장, 후배비장, 좌수, 별좌 등이 차레대로 모인다. 모군석에 임원들이 좌정하고, 진대베기에 참여할 많은 사람이 대오(隊伍)를 갖추고 떠날 채비를 한다. 진대를 베어 올 산은 은산리 인근에 있는 경둔리 뒤편의 야산이다. 행군 도중에 가끔 넓은 공터가 나오면 ‘오방돌기’라 하여 요란한 풍장 소리에 맞추어 진(陣)치는 모습을 흉내 낸다. 군사의 위용을 떨치는 행군의 한 과정이다. 산에 도착하면 요란한 풍물패의 쇠가락 속에서 별좌와 승마 임원들이 미리 보아둔 참나무를 향하여 삼배(三拜)를 올린다. 배(拜)마다 고개를 세 번 끄덕거려서 더욱 공손한 예를 표한다. 이를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라 한다. 이는 본제(本祭)에서 행하는 고두백배(叩頭百拜)와 함께 은산별신제 배례(拜禮)의 특징이다. 참나무는 모두 4개를 베어낸다. 상단 부분에만 가지와 잎이 달린 참나무는 이제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진대’가 된다. 진대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이른바 우주목(cosmic tree)의 잔영(殘影)이다. 천상의 원형을 지닌 산에서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내, 인간의 정주 공간으로 옮긴 우주목이 진대이다. 진대는 그 위에 새가 앉혀져 있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솟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와 기능을 지닌다. 진대를 가지고 하산하면 차일을 쳐서 잠시의 여흥을 위한 공연 장소를 마련한다. 이곳에서 잠시 한바탕 논 다음에 다시 행렬을 지어 은산리로 회군한다. 하당터의 모군석에는 다시 승마 임원과 병졸들이 집결한다. 다만 대장과 후배비장은 모군석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의 모군석은 회군한 군대가 머무는 항전의 본거지인 성채를 의미한다. 병졸들은 창과 기치로서 하당터의 입구를 막고 양쪽으로 대오를 갖춘다. 대장과 후배비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졸들만 모군석으로 회군한 것은 조금 전의 격렬한 전쟁에서 많은 인마(人馬)가 손상당했음을 나타낸다. 대장과 후배비장은 전쟁에서 낙오된 것이다. 대장의 낙오는 참패를 뜻하고, 회군한 군대 역시 패잔병임을 시사한다. 이윽고 대장의 입성을 허락한다. 대장은 전투에서 낙오하였으나 무사히 귀환한 것이다. 백제부흥전쟁의 참담한 실패가 은산별신제의 한 절차로 삽입되어 있다. 이러한 과장(科場)을 구성한 은산별신제의 역사인식에는 백제의 패배를 사실로 인정하는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꽃받기셋째날의 꽃받기는 별신당에 제물과 함께 올릴 꽃을 받아오는 절차이다. 형형색색의 지화(紙花)를 꽂은 꽃병 6개와 신령들이 오는 길을 환히 밝히는 화등 6개를 받아 온다. 꽃받기를 할 때에도 진대베기의 경우처럼 군사 행렬을 지어 나간다. 물론 이때에도 중간에 오방진을 치며 위용을 떨친다. 근래에는 꽃받기를 부여의 백마강 동편에 있는 부소산의 삼충사로 가지만, 예전에는 별신제가 있을 때마다 매번 꽃을 제작할 화등방을 별도로 선정하였다. 대개는 은산리 주변의 절이나 사당 또는 마을 등에 화등방을 설치하였다. 이 꽃은 별신제가 모두 끝나면 하당굿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녀가 나누어 준다. 이 꽃을 안방이나 마루 등에 정성스럽게 보관하면 다음 별신제가 열릴 때까지 제액초복(除厄招福)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상당 행사와 본제넷째날 오후에 화주댁에서 별신당으로 제물을 봉송하는 상당 행사가 열린다. 이는 본제인 상당제를 지내기에 앞서 제물과 꽃을 상당에 받들어 보내는 행사이다. 남자인 화주와 별좌들만 제물을 조리한다. 새벽부터 진편과 백편을 찌기 시작한다. 오전에는 모든 제물을 각각의 항아리와 그릇에 넣어 봉한다. 여기에는 일일이 오색 종이를 붙여장식한다. 또 오색 물감으로 밀가루를 색깔별로 각각 반죽하여 다섯 가지 색깔을 띠는 화전(花煎)을 만든다. 제물 봉송자들은 제물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건네받은 다음 행진을 시작한다. 제물은 한 사람이 하나씩만 두 손으로 받들어 옮긴다. 이때 부정을 물리며 근신한다는 뜻으로 입에 백지 한 장씩을 문다. 화주가 별좌와 더불어 진설하면 화주 및 임원은 삼배를 올린다. 한편 육화주(肉化主)의 집에서는 곧바로 돼지와 닭을 잡는다. 풍물패의 쇠가락 속에 육화주는 희생동물에게 배례한다. 풍물패의 선도(先導)하에 육화주는 날돼지와 날닭을 큰 그릇에 담아 별신당으로 봉송한다. 날돼지를 먼저 올리는 것은 산신을 위한 제물이기 때문이다. 날돼지는 육화주의 배례 후에 곧바로 다시 육화주 집으로 옮긴다. 가마솥에 넣고 삶기 위해서이다. 이 시간 동안에 여러 임원은 휴식을 취하며 희생동물이 완숙되기를 기다린다. 육화주 집에서 돼지와 닭을 충분히 삶아 별신당에 올리면 오후 9시경이 된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상당의 본제는 산신과 별신에 대한 유교식 제사로 치러진다. 집례의 홀기에 따라 ①화주분향삼배, ②화주강신삼배, ③제관참신삼배, ④화주초헌, ⑤산신축독축, ⑥장군축독축, ⑦대장아헌, ⑧이장종헌, ⑨제관전원헌작, ⑩동민축독축, ⑪전제관백배, ⑫동민헌작, ⑬소지, ⑭파제의 순서로 진행된다. 상당굿과 하당굿다섯째날 오전에 신령이 전날의 본제를 잘 받았는지 가늠하는 상당굿을 벌인다. 별신당 바로 앞에 상당굿 터를 마련하며, 이곳에 쌀을 담은 큰 함지박에 대기를 세워 놓는다. 3명의 무녀는 춤을 추고 무가를 부르면서 복신 장군과 토진대사의 슬픈 죽음을 위로하면서 정성을 잘 받았으면 설설이 내려 달라고 축원을 한다. 이윽고 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는 점점 심하게 요동을 치며, 대를 붙잡고 있는 화주나 대장은 물론 그 주변의 모든 구경꾼도 함께 긴장하며 대의 떨림을 예의주시한다. 이때가 은산별신제의 절정 순간이다. 구경꾼들조차 이 대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한다. 오후에는 마을 한복판의 괴목 아래에 굿판을 준비한다. 이곳을 흔히 하당굿터라고 부른다. 하당굿에서는 하당의 신령을 위하고, 별신제에 초대받지 못한 여러 원혼을 위무(慰撫)하며 풀어먹인다. 괴목 바로 앞에는 대장을 위시하여 승마 임원들이 차례로 앉는다. 이들 앞에는 별신에게 바치는 축원상인 교자상(交子床)이 하나씩 놓이고, 그 위에는 ‘꽃반’이라 하여 불밝이쌀을 놓는다. 그 앞은 무녀들의 굿판이 된다. 여기에서도 상당굿과 마찬가지로 큰 함지박에 대기를 꽂아놓고 화주와 대장이 붙잡고 있는다. 무녀들은 춤과 노래로 하당의 신령과 잡귀 및 잡신들을 위로하고 풀어먹이며, 또한 임원을 비롯하여 굿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축원해 준다. 굿은 대기가 심하게 흔들리며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날 때까지 계속된다. 굿이 끝나면 무녀는 별신이 내려준 지화, 곧 신화를 임원 이하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별신이 내린 신주로 음복을 하였듯이 별신이 내린 신화로써 다음 별신을 모실 때까지 그 축복을 보장하는 신표(信標)로 삼는 것이다. 독산제독산제는 화주 홀로 모시는 산제이다. 산신에게 별신제를 모두 마쳤음을 고하며 감사하는 제사이다. 장군신을 중요하게 모시는 은산별신제에서 독산제로 모든 제의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산신과 별신의 관계, 그리고 이들 사이의 위상이 어떠한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곧 은산별신제에서 별신은 매우 중심된 신격의 위상을 지니지만, 격년 또는 삼년마다 모셔지는 특별한 신령들이다. 은산리의 주신은 역시 당산의 산신이다. 굳이 비유한다면 산신은 주인이고 별신은 손님인 셈이다. 장승제과거에 장승제는 독산제를 마친 다음날에 치렀다. 그러나 별신제의 간략화로 인하여 근래에는 독산제를 지내는 시간에 별좌가 풍물패와 영기를 앞세우고 장승제를 동시에 모신다. 은산리는 사통팔달(四通八達)한 평지에 있다. 은산시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의 길목마다 장승을 세웠다. 사방에 세워진 장승은 외형상 큰 차이는 없으나 각 장승이 책임을 맡은 방위 구역에 따라 동방청제축귀대장군(東方靑帝逐鬼大將軍)·서방백제축귀대장군(西方白帝逐鬼大將軍)·남방적제축귀대장군(南方赤帝逐鬼大將軍)·북방흑제축귀대장군(北方黑帝逐鬼大將軍)이라고 명명(命名)된다. 또한 이들 장승 옆에는 참나무를 상단만 남긴 채 진대라 하여 세워 둔다. 이는 별신제를 올릴 때만 새로 세운다. 다음에는 동방·서방·남방·북방 장승의 순서로 옮겨 다니며 장승제를 모신다. 오늘날의 은산별신제는 그 이념에 있어서 백제부흥전쟁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복신 장군과 토진대사 외 삼천신위(三千神位)의 한을 풀어주는 위령제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는 다른 많은 장군을 별신으로 모셨다. 거의 대부분은 중국의 장군이고, 극히 일부가 조선의 장수였다. 물론 당시에도 복신 장군에 대한 관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20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은산별신제에 백제의 이념이 점차 강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은산별신제를 떠받들고 있는 3가지 요소인 교통의 중심인 역촌, 상업의 중심인 장시, 장군인 별신 중에서 역촌과 장시의 요소는 전혀 고려되거나 인식되지 않았고 별신만 백제부흥전쟁과 관련하여 한층 뚜렷하게 자리를 잡아 나갔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은산별신제를 1300여 년 동안 지속해 온 백제 전몰 장졸의 위령제라는 오해도 확산되었다. 은산별신제는 근·현대에 부여 및 그 인근 지역에서 이루어진 백제 역사의 재창출이지 백제사 그 자체 또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대상이 아니다. 은산별신제에서 백제의 표상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조선 후기에 은산리가 지닌 역촌과 장시의 전통을 이해하는 일이다. 앞으로 은산별신제가 훌륭한 지역 축제로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도 이러한 전통들은 충분히 전제되어야 한다. 요컨대 은산별신제는 역촌과 장시의 기반 위에서 형성되었으며, 특히 시장 상인들의 자본은 중요한 물적 토대가 되었다. 한 마을이 아닌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 성격을 지닌 고을의 공동체 신앙이 어떠한 구조와 성격 및 기능을 하는지를 이를 통하여 여실히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백제의 전설 (홍사준, 통문관, 1956)은산별신제 (임동권,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8, 1965)은산별신고 (이양수, 부여향토문화연구회, 1969)은산별신제 (이필영, 화산문화,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