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부인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조현설(趙顯卨)
갱신일 2016-11-29

정의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주몽의 어머니로 건국 후 여신으로 추숭된 유화부인에 관한 신화.

줄거리

독립된 유화부인의 신화는 없다. 유화부인은 고구려 건국신화에 시조모로 등장하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나타나는 ‘유화’ 부분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화는 본래 하백의 딸인데 웅심산 아래에 있는 압록강에 놀러 나갔다가 자칭 천자의 아들이라고 하는 해모수와 통정한다. 그 뒤 해모수는 혼자 떠나버리고 유화는 중매도 없이 통정을 했다 하여 우발수로 쫓겨났다가 동부여 왕 금와에게 발견된다. 금와왕의 궁실에 갇혀 있었는데 햇빛이 몸을 비추어 임신한 뒤 닷 되 크기의 알을 낳는다. 금와왕이 알을 길가에 버리자 소와 말이 피하고, 들판에 버리자 새가 날개로 덮어주고, 쪼개려고 해도 쪼갤 수가 없어서 다시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그 안에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온다. 이 아이가 바로 주몽이다. 주몽이 성장한 뒤 동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세웠으므로 유화는 시조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분석

유화로 추정되는 인물이 가장 먼저 기록에 나타나는 사례는 <광개토왕비문> 등의 금석문이다. 그러나 금석문에 유화라는 이름은 없고 하백(河伯)의 딸로 나타난다. 하백은 강의 신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다. 중국신화에서 하백은 황하의 신이지만, <주몽신화>에 등장하는 하백은 압록강의 신이다. 하백은 압록강 주변에 거주하고 있던 집단들이 숭앙하던 수신(水神)으로 보인다. 수신 숭배와 관련이 있는 연개소문 집안의 <천헌성묘지명(泉獻誠墓誌銘)>을 보면 하백의 후손이라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고구려를 구성한 여러 씨족 집단 가운데 하백을 숭배하던 집단이 있었고, 이들이 건국시조의 모계가 된 것이다.

유화라는 이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동명왕편(東明王篇)」 등에 나타나는데, 이 가운데 「동명왕편」은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구삼국사』 기록이 가장 이르다. 그런데 『구삼국사』의 기록에는 하백에게 세 딸이 있는데 그 가운데 맏이가 유화로 나타난다. 유화에게는 훤화, 위화라는 두 동생이 있고, 이들이 함께 청하에서 나와 웅심연에서 놀다가 해모수를 만난다. 해모수가 이들을 술에 취하게 한 뒤 잡으려고 하자 두 동생은 도망쳤지만 유화는 붙잡힌다. 『구삼국사』를 기준으로 보면 이후의 문헌들은 유화만 기록하고 두 동생은 생략한 것이다.

유화라는 이름에 담긴 버드나무, 유화와 두 자매에 관한 모티프로 인해 유화와 만주신화의 관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만주기원신화에 따르면 천녀 셋이 부르후리라는 호수에 목욕을 하러 왔다가 검은 새가 떨어뜨린 붉은 열매를 막내 부쿠룬이 먹고 임신을 하여 지상에 남은 뒤 아들 부쿠리용순을 낳는다. 이 아이가 성장하여 어머니가 전한 천명(天命)에 따라 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 세 부족을 통합하여 나라를 세운다. 부쿠룬 역시 건국주를 혼자 키워 천명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시조모이고, 목욕을 하러 왔던 세 자매 가운데 하나여서 유화와 대단히 닮았다. 더구나 만주족은 버드나무를 신성시하여 버들잎으로부터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신화, 버드나무에서 시조가 탄생했다는 신화도 전승하고 있어 만주신화와 유화의 신화는 같은 계통의 신화소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징

유화부인은 시조모일 뿐만 아니라 농경신, 또는 곡모신의 속성도 가지고 있다. 『구삼국사』에 따르면 유화는 동부여를 떠나는 아들에게 오곡(五穀)의 종자를 싸서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주몽은 어머니와의 애절한 이별에 마음이 팔려 종자 챙기는 걸 잊어버린다. 동부여를 떠난 주몽이 나무 밑에서 쉬고 있을 때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는데, 주몽은 “신모(神母)가 보리 종자를 보낸 것”이라고 하면서 활을 쏘아 떨어뜨린다. 주몽은 비둘기의 목에서 종자를 얻고 물을 뿜어 다시 비둘기를 살려 보낸다. 주몽도 신적 능력이 있지만 주몽이 신모라고 부른 어머니 또한 비둘기를 보낼 정도로 신성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유화는 본래 수신 하백의 딸로 수신 계통에 속한다. 유화가 부친에게 쫓겨날 때, 하백은 유화의 입을 잡아당겨 석 자나 되게 만든다. 가문을 욕되게 한 데 대한 징벌이었다. 나중에 유화는 통발 속의 물고기를 먹다가 강력부추라는 어부에게 잡힌다. 그런데 입술이 길어 말을 못하므로 입술을 세 번 자른 뒤에야 말을 하여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긴 입술,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은 유화가 수신계에 속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새의 형상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수신 유화가 아들에게 오곡의 종자를 증여하는 모습은 고구려 건국 이후 유화가 시조모로 숭배되면서 곡모신의 직능까지 획득한 결과일 것이다.

유화는 고구려가 건국된 이후 국가적 제전의 주요 신이 된다. 『삼국사기』의 제사 조에 따르면 『북사(北史)』를 인용하여 고구려가 10월에 하늘 제사를 지내는데 부여신(扶餘神)과 고등신(高登神)을 모시는 두 개의 신묘가 있다고 하였다. 부여신은 나무로 조각한 부인의 신상인데 하백의 딸이고, 고등신은 부여신의 아들 주몽을 말한다고 하였다. 또,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동명왕 14년 8월에 유화부인이 동부여에서 죽으매 그 나라의 왕 금와가 태후의 예를 갖추어 장사지낸 뒤 신묘(神廟)를 세웠고, 태조왕 69년 10월에 왕이 부여에 가서 태후의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보면 유화는 아들을 보낸 후 동부여에 남아 있다가 죽었으며, 동부여에 신묘가 세워진다. 뿐만 아니라 후에 고구려에서는 주몽이 죽은 후 주몽과 더불어 시조모의 목각상을 모시고 국가적인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유화부인을 부여신이라고 한 것은 이 여신이 부여계 집단 공동의 시조모였기 때문이다.

의의

고구려 건국신화에 형상화되어 있는 유화부인은 시조모가 국가 제전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며 시조모의 신화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단군신화>의 웅녀가 고조선의 제의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단군신화>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화부인은 시조모로서 아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중개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좋은 말을 알아보는 능력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곡모신의 형상도 지니고 있다. 또 유화부인은 고구려 건국 이후 고구려 및 백제계 왕들에 의해 부여신으로 숭앙된다. <유화부인신화>는 시조모의 신화적, 제의적 위상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출처

東明王篇, 三國史記, 三國遺事.

참고문헌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조현설, 문학과지성사, 2003), 한국 건국신화의 실상과 이해(이지영, 월인, 2000).

유화부인

유화부인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조현설(趙顯卨)
갱신일 2016-11-29

정의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주몽의 어머니로 건국 후 여신으로 추숭된 유화부인에 관한 신화.

줄거리

독립된 유화부인의 신화는 없다. 유화부인은 고구려 건국신화에 시조모로 등장하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나타나는 ‘유화’ 부분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화는 본래 하백의 딸인데 웅심산 아래에 있는 압록강에 놀러 나갔다가 자칭 천자의 아들이라고 하는 해모수와 통정한다. 그 뒤 해모수는 혼자 떠나버리고 유화는 중매도 없이 통정을 했다 하여 우발수로 쫓겨났다가 동부여 왕 금와에게 발견된다. 금와왕의 궁실에 갇혀 있었는데 햇빛이 몸을 비추어 임신한 뒤 닷 되 크기의 알을 낳는다. 금와왕이 알을 길가에 버리자 소와 말이 피하고, 들판에 버리자 새가 날개로 덮어주고, 쪼개려고 해도 쪼갤 수가 없어서 다시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그 안에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온다. 이 아이가 바로 주몽이다. 주몽이 성장한 뒤 동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세웠으므로 유화는 시조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분석

유화로 추정되는 인물이 가장 먼저 기록에 나타나는 사례는 등의 금석문이다. 그러나 금석문에 유화라는 이름은 없고 하백(河伯)의 딸로 나타난다. 하백은 강의 신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다. 중국신화에서 하백은 황하의 신이지만, 에 등장하는 하백은 압록강의 신이다. 하백은 압록강 주변에 거주하고 있던 집단들이 숭앙하던 수신(水神)으로 보인다. 수신 숭배와 관련이 있는 연개소문 집안의 을 보면 하백의 후손이라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고구려를 구성한 여러 씨족 집단 가운데 하백을 숭배하던 집단이 있었고, 이들이 건국시조의 모계가 된 것이다. 유화라는 이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동명왕편(東明王篇)」 등에 나타나는데, 이 가운데 「동명왕편」은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구삼국사』 기록이 가장 이르다. 그런데 『구삼국사』의 기록에는 하백에게 세 딸이 있는데 그 가운데 맏이가 유화로 나타난다. 유화에게는 훤화, 위화라는 두 동생이 있고, 이들이 함께 청하에서 나와 웅심연에서 놀다가 해모수를 만난다. 해모수가 이들을 술에 취하게 한 뒤 잡으려고 하자 두 동생은 도망쳤지만 유화는 붙잡힌다. 『구삼국사』를 기준으로 보면 이후의 문헌들은 유화만 기록하고 두 동생은 생략한 것이다. 유화라는 이름에 담긴 버드나무, 유화와 두 자매에 관한 모티프로 인해 유화와 만주신화의 관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만주기원신화에 따르면 천녀 셋이 부르후리라는 호수에 목욕을 하러 왔다가 검은 새가 떨어뜨린 붉은 열매를 막내 부쿠룬이 먹고 임신을 하여 지상에 남은 뒤 아들 부쿠리용순을 낳는다. 이 아이가 성장하여 어머니가 전한 천명(天命)에 따라 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 세 부족을 통합하여 나라를 세운다. 부쿠룬 역시 건국주를 혼자 키워 천명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시조모이고, 목욕을 하러 왔던 세 자매 가운데 하나여서 유화와 대단히 닮았다. 더구나 만주족은 버드나무를 신성시하여 버들잎으로부터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신화, 버드나무에서 시조가 탄생했다는 신화도 전승하고 있어 만주신화와 유화의 신화는 같은 계통의 신화소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징

유화부인은 시조모일 뿐만 아니라 농경신, 또는 곡모신의 속성도 가지고 있다. 『구삼국사』에 따르면 유화는 동부여를 떠나는 아들에게 오곡(五穀)의 종자를 싸서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주몽은 어머니와의 애절한 이별에 마음이 팔려 종자 챙기는 걸 잊어버린다. 동부여를 떠난 주몽이 나무 밑에서 쉬고 있을 때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는데, 주몽은 “신모(神母)가 보리 종자를 보낸 것”이라고 하면서 활을 쏘아 떨어뜨린다. 주몽은 비둘기의 목에서 종자를 얻고 물을 뿜어 다시 비둘기를 살려 보낸다. 주몽도 신적 능력이 있지만 주몽이 신모라고 부른 어머니 또한 비둘기를 보낼 정도로 신성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유화는 본래 수신 하백의 딸로 수신 계통에 속한다. 유화가 부친에게 쫓겨날 때, 하백은 유화의 입을 잡아당겨 석 자나 되게 만든다. 가문을 욕되게 한 데 대한 징벌이었다. 나중에 유화는 통발 속의 물고기를 먹다가 강력부추라는 어부에게 잡힌다. 그런데 입술이 길어 말을 못하므로 입술을 세 번 자른 뒤에야 말을 하여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긴 입술,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은 유화가 수신계에 속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새의 형상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수신 유화가 아들에게 오곡의 종자를 증여하는 모습은 고구려 건국 이후 유화가 시조모로 숭배되면서 곡모신의 직능까지 획득한 결과일 것이다. 유화는 고구려가 건국된 이후 국가적 제전의 주요 신이 된다. 『삼국사기』의 제사 조에 따르면 『북사(北史)』를 인용하여 고구려가 10월에 하늘 제사를 지내는데 부여신(扶餘神)과 고등신(高登神)을 모시는 두 개의 신묘가 있다고 하였다. 부여신은 나무로 조각한 부인의 신상인데 하백의 딸이고, 고등신은 부여신의 아들 주몽을 말한다고 하였다. 또,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동명왕 14년 8월에 유화부인이 동부여에서 죽으매 그 나라의 왕 금와가 태후의 예를 갖추어 장사지낸 뒤 신묘(神廟)를 세웠고, 태조왕 69년 10월에 왕이 부여에 가서 태후의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보면 유화는 아들을 보낸 후 동부여에 남아 있다가 죽었으며, 동부여에 신묘가 세워진다. 뿐만 아니라 후에 고구려에서는 주몽이 죽은 후 주몽과 더불어 시조모의 목각상을 모시고 국가적인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유화부인을 부여신이라고 한 것은 이 여신이 부여계 집단 공동의 시조모였기 때문이다.

의의

고구려 건국신화에 형상화되어 있는 유화부인은 시조모가 국가 제전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며 시조모의 신화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의 웅녀가 고조선의 제의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화부인은 시조모로서 아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중개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좋은 말을 알아보는 능력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곡모신의 형상도 지니고 있다. 또 유화부인은 고구려 건국 이후 고구려 및 백제계 왕들에 의해 부여신으로 숭앙된다. 는 시조모의 신화적, 제의적 위상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출처

東明王篇, 三國史記, 三國遺事.

참고문헌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조현설, 문학과지성사, 2003), 한국 건국신화의 실상과 이해(이지영, 월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