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

한자명

鳶-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놀이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6-11-08

정의

주로 겨울철에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는 민속놀이. 종이에 가는 대나무가지를 붙여 연을 만들고, 얼레에 감은 실을 연결한 다음 날리며 논다.

유래 및 변천과정

연날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서 찾아볼 수 있다. 647년에 선덕 여왕이 죽고 진덕 여왕이 즉위하자, 비담(毘曇)과 염종(廉宗)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김유신 장군이 반란군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또 『고려사(高麗史)』 권33 충선왕조(忠宣王條)에는 어떤 궁노(宮奴)가 동리 아이들의 연을 빼앗아 충선왕에게 바쳤더니 왕이 책망하면서 곧 돌려주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한시 ‘칠월 삼일에 바람을 읊다(七月三日 詠風).’에서는 음력 7월에 접어들면서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읊고 있다.

조선시대 채수(蔡壽)의 『나재집(懶齋集)』 권2에 실린 ‘지연(紙鳶)’이라는 한시도 연에 관한 내용을 읊고 있는데, “머리 부분은 화살촉과 같고 꼬리는 깃발과 흡사하네(箭頭旗尾正依俙).”라는 표현으로 보아 가오리연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의 김유신 장군과 관련된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연날리기는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군사적 목적으로 연을 날릴 때는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필요할 때 날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연날리기를 오락으로 삼게 되고, 그것이 민속과 결합되면서 연을 날리는 시기가 고정된 듯하다.

조선 후기의 세시기(歲時記)에는 음력 12월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데, 특히 정초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연날리기가 성행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연을 날리다가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하면서 연날리기를 마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월 대보름 이후에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연날리기는 현재 서울특별시 시도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보유자로 노유상(盧裕相, 1904년생)옹이 있다.

연의 명칭

연은 옛날 기록에 보통 지연(紙鳶)·풍연(風鳶)·방연(放鳶)·풍금(風禽) 등으로 나오는데, ‘지연’이 가장 널리 쓰인 용어이다. 한국 연의 종류는 연의 형태와 문양에 따라 분류되며 그 종류가 100여 종에 이르고 있다. 형태 면에서 살펴보면, 한국 연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사각 장방형의 중앙에 방구멍이 뚫려 있는 방패연이 대부분을 이룬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날리는 꼬리가 달린 가오리연이 있고, 사람·동물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제작자의 창의성에 따라 만드는 창작연이 있다.

방패연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것으로서 연의 가운데에 방구멍을 내어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즉시 메워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을 받아도 잘 빠지게 되어 있어 웬만큼 강한 바람에는 연이 잘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상승과 하강, 좌우로 빙빙돌기, 급상승과 급강하, 전진과 후퇴가 가능하다. 또한 얼마든지 높이 날릴 수도 있고 빠르게 날릴 수도 있다.

한국 연은 외국의 연과 같이 명칭에 따라서 연의 모양이 아주 다른 것이 아니다. 방패연에 색깔을 칠한다든가, 색지의 모양만을 다르게 오려 붙임으로써 어떤 특징을 나타내어 거기에 따라 일정한 명칭을 붙여 구별할 뿐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기반(碁斑)·묵액(墨額)·쟁반(錚盤)·방혁(方革)·묘안(猫眼)·작령(鵲翎)·어린(魚鱗)·용미(龍尾) 등 연의 종류에 대한 여러 명칭이 나타난다. 기반은 바둑판연을 말한다. 쟁반은 연의 하반부에 쟁반을 그린 연이다. 방혁은 방패 모양의 연이다. 묘안은 고양이 눈을 그린 것 같은 연인데, 눈깔머리동이연이나 눈깔허리동이연이 여기에 해당한다. 작령은 까치날개 모양을 그린 연이다. 어린은 고기비늘 모양을 그린 연이다. 용미는 용의 꼬리 모양같이 길게 된 연을 말한다.

연의 종류

꼭지연에서 꼭지는 연의 이마 가운데에 붙이는 둥근 원형의 색지를 말한다. 꼭지는 방구멍(연의 한 가운데에 둥글게 뚫린 구멍)을 오려낸 종이로 만든다. 꼭지연은 바탕색이 백색이며, 꼭지의 빛깔에 따라 연의 명칭이 결정된다. 먹꼭지(먹구다리)연·청꼭지연·홍꼭지연·금꼭지연·쪽꼭지연·별꼭지연 등이 있다.

반달연은 이마 가운데에 반달형의 색지를 오려 붙인 연을 말한다. 그 반달의 빛깔에 따라 명칭이 각각 다르다. 먹반달연·홍반달연·청반달연·임반달연·쪽반달연 등이 있다.

치마연은 상반부는 백색 그대로 놓아 두고, 하반부만 여러 가지 빛깔을 칠한 연을 말한다. 마치 여인들의 치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치마의 빛깔에 따라 각각 연의 명칭이 달라진다. 먹치마연·청치마연·홍치마(일명 분홍치마)연·황치마연·보라치마연·이동치마연·삼동치마연·사동치마연 등이 있다.

동이연은 연의 머리나 허리에 색칠을 한 것이다. 동이연은 동이의 빛깔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먹머리동이연·청머리동이연·홍머리동이연·보라머리동이연·반머리동이연·실머리동이연·눈깔머리동이연·허리동이연·눈깔허리동이연 등이 있다.초연은 연의 꼭지만을 제외하고 전체를 동일한 빛깔로 칠한 것을 말한다. 먹초연·청초연·홍초연·황초연·보라초연 등이 있다.

박이연은 연의 전체나 일부분에 동전 크기의 점이나 눈[眼], 긴 코 같은 모양을 박은 연을 말한다. 돈점박이연·귀머리장군 긴코박이연·눈깔귀머리장군연·눈깔귀머리장군 긴코박이연 등이 있다.

발연은 연의 맨 아래나 좌우 가장자리에 발 모양의 종이를 붙인 연이다. 사족발연·국수발연·지네발연 등이 있다.

내용 및 특징

대개 음력 12월, 즉 섣달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연날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정초 세배와 성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마을 앞이나 갯벌에서 띄우는데, 정월 대보름 수일 전에 그 절정을 이룬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밤이 되면 달맞이를 하고 난 후에 각자 띄우던 연을 가지고 나와 액막이연을 날리는 풍속이 있다. 연에다 ‘액(厄)’자 쓰거나 ‘송액(送厄)’ 혹은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을 쓴 후, 자기의 생년월일과 성명을 적는다. 액막이연을 정월 대보름에 날려 보내는 이유는 한국에서 여러 종류의 액막이 풍속이 대개 정월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액막이는 으레 정월 대보름에 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명종(明宗) 21년(1566) 1월 15일조에 의하면, 액막이연이 집에 떨어지면 그해에 재앙이 있다고 믿는 속신이 있었다.

‘액막이연’에 대한 첫 기록은 정철(鄭澈)의 시조 ‘속전지연가(俗傳紙鳶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 집의 모든 액(厄)을 너 홀로 가져다가, 인가(人家)에 전치 말고 야수(野樹)에 걸렸다가, 비 오고 바람 불 때 자연소멸(自然消滅) 하거라.”는 내용이다.

연싸움에 대한 세시풍속은 ‘연줄 끊어먹기’와 ‘연 높이날리기’가 있다. 연싸움은 쌀밥이나 민어부레로 만든 풀에 유리가루나 사기가루를 섞어서 연줄에 발라 상대방의 연줄을 끊는 것이다. 장유(張維)의 ‘지연(紙鳶)’이라는 한시에 “연싸움의 열기가 더운 지방의 열대병에 걸린 것보다 치열하여 하늘을 날던 연이 허공 속으로 뚝뚝 떨어져 나가네” 하는 내용이 보인다. 그리고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 및 이학규(李學逵)의 『낙하생문집(洛下生文集)』 그리고 19세기 초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및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에도 연싸움과 관련된 기록이 나타난다. 정범조(丁範祖)의 『해좌집(海左集)』 권9에는 연싸움과 바람개비 돌리기의 풍속이 묘사되어 있다. 연을 날리느라고 오랫동안 눈을 치뜨고 있어 눈을 상하게 될까봐 연싸움을 한 후에 바람개비를 돌려서 시선을 낮추게 하여 눈동자를 바로잡는 풍속을 전해 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서울 청계천의 수표교 근처에서 정월 대보름 하루 이틀 전에 연싸움이 매우 성행했다고 한다.

지역사례

함남 북청지방에서는 가오리연은 거의 날리지 않고 주로 방패연을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방패연에 꼬리를 단 꼬리연은 암놈으로 간주했고, 꼬리가 없는 몽동연은 숫놈으로 간주했다.
평남 안주와 개천에서는 문자연(門字鳶)·용자연(龍字鳶)·팔자연(八字鳶)·팔자(八字)형 쌍공작연·일자연(一字鳶)·엽전연 등이 있었다. 문자연·용자연·팔자연·일자연은 모두 연의 전면에 한자로 문(門)·용(龍)·팔(八)·일(一)자를 써 넣은 것이다. 팔자형 쌍공작연은 연의 전면에 양쪽으로 팔자 모양으로 공작 두 마리를 그려 넣은 것이다. 엽전연은 연의 전면에 엽전 서너 개를 그려 넣은 것이다.

경북 예천에는 상투빗연과 바둑판연이 있었다. 상투빗연은 연의 꼭지에 머리를 빗는 참빗 모양의 문양을 그린 것이다. 바둑판연은 연의 전면에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 병행선을 긋고 한 칸씩 걸러서 먹을 칠한 연을 말한다.

경남 통영에는 머리연·머리눈쟁이연·이봉산연·이봉산 눈쟁이연·삼봉산연·삼봉산눈쟁이연·귀바리연·귀바리눈쟁이연·귀봉산연·치마머리연·반장연·외당가리연·까만외당가리연·홍외당가리연·황외당가리연·청홍외당가리연·홍치마당가리연·윗까치당가리연·아래까치당가리연·수리당가리연·중머리연·짧은꼬리연·짧은꼬리눈쟁이연·긴꼬리연·긴꼬리눈쟁이연·돌독바지기(돌쪽바지게)연·돌독바지기눈쟁이연·치마고리연·용연·된방구쟁이연 등이 있었다. 통영은 한산대첩의 전적지로서 삼군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이 지방에는 임진왜란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연에 문양을 그려 넣어 전투용 신호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현재 ‘충무비연동우회’가 통영지방의 연을 보급하면서 매년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부산 동래에는 청귀머리연·흑귀머리연·별머리연·희자머리색동연·희자머리 연두초연·청꼭지색동치마연·홍꼭지녹치마연 등이 있었다. 바다가 인접해 있는 동래지방에서는 바다를 향해 연을 날려서, 연이 바다에 떨어지지 않고 얼마나 높고 멀리 날릴 수 있는가를 겨루는 경기가 있었다. 현재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해운대 백사장에서 전국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관련구비문학

연에 얽힌 설화로는 세종대왕릉의 이전과 연줄리 전설, 단종의 연이 떨어진 성황당 전설, 세 대감의 연시합 등이 있다. 연날리기를 노래한 민요로는 경남 진주의 민요인 “서울선부(선비) 연을 띄워 곤륜산(崑崙山)에 걸렸다. 아홉방의 세녀들아 연줄거는 구경가세.”와 경기민요인 “정월이라 십오일 구머리장군 긴코배기 액(厄)막이연이 떴다. 에라디여 에헤요 에이여라 방아흥아로다.”에 해당하는 ‘잦은방아타령’이 있고 전라도 민요인 “연걸렸구나 연이 걸렸구나 오갈피 상나무에가 연걸렸네.”인 ‘육자배기’가 있다.

연에 관한 수수께끼로는 “몸뚱이 하나에 꼬리 달고 하늘에서 춤추는 것은?”, “배꼽을 떼어서 등에 붙이고 공중으로 떠다니는 것은?”, “배꼽을 떼어서 정수리에 붙인 것은?”, “배꼽을 떼어 이마에 붙이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볼수록 높이 올라가는 것은?”, “뼈대뿐인 것이 종이옷을 입고 공중에서 춤추는 것은?” 등이 있다.

의의

우리나라에서는 연날리기를 통해서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액막이연의 민속이 매우 성행했다. 그리고 연날리기는 우리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추운 겨울인데도 따뜻한 안방에 있는 것보다 산이나 들판에 나가 연을 날리는 것이 더 즐거웠으니, 어린이들의 겨울철 운동과 취미활동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이다. 연날리기는 심신 양면에 활동과 휴식을 준다. 연을 멋지게 만들어 감상하기도 하고, 연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며 날림으로써 생활의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懶齋集, 東國歲時記
韓國 紙鳶의 硏究 (崔常壽, 高麗書籍株式會社, 1958)
韓·中·日 연의 역사와 민속 (전경욱, 태학사, 1996)

연날리기

연날리기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놀이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6-11-08

정의

주로 겨울철에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는 민속놀이. 종이에 가는 대나무가지를 붙여 연을 만들고, 얼레에 감은 실을 연결한 다음 날리며 논다.

유래 및 변천과정

연날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서 찾아볼 수 있다. 647년에 선덕 여왕이 죽고 진덕 여왕이 즉위하자, 비담(毘曇)과 염종(廉宗)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김유신 장군이 반란군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또 『고려사(高麗史)』 권33 충선왕조(忠宣王條)에는 어떤 궁노(宮奴)가 동리 아이들의 연을 빼앗아 충선왕에게 바쳤더니 왕이 책망하면서 곧 돌려주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한시 ‘칠월 삼일에 바람을 읊다(七月三日 詠風).’에서는 음력 7월에 접어들면서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읊고 있다. 조선시대 채수(蔡壽)의 『나재집(懶齋集)』 권2에 실린 ‘지연(紙鳶)’이라는 한시도 연에 관한 내용을 읊고 있는데, “머리 부분은 화살촉과 같고 꼬리는 깃발과 흡사하네(箭頭旗尾正依俙).”라는 표현으로 보아 가오리연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의 김유신 장군과 관련된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연날리기는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군사적 목적으로 연을 날릴 때는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필요할 때 날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연날리기를 오락으로 삼게 되고, 그것이 민속과 결합되면서 연을 날리는 시기가 고정된 듯하다. 조선 후기의 세시기(歲時記)에는 음력 12월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데, 특히 정초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연날리기가 성행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연을 날리다가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하면서 연날리기를 마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월 대보름 이후에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연날리기는 현재 서울특별시 시도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보유자로 노유상(盧裕相, 1904년생)옹이 있다.

연의 명칭

연은 옛날 기록에 보통 지연(紙鳶)·풍연(風鳶)·방연(放鳶)·풍금(風禽) 등으로 나오는데, ‘지연’이 가장 널리 쓰인 용어이다. 한국 연의 종류는 연의 형태와 문양에 따라 분류되며 그 종류가 100여 종에 이르고 있다. 형태 면에서 살펴보면, 한국 연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사각 장방형의 중앙에 방구멍이 뚫려 있는 방패연이 대부분을 이룬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날리는 꼬리가 달린 가오리연이 있고, 사람·동물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제작자의 창의성에 따라 만드는 창작연이 있다. 방패연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것으로서 연의 가운데에 방구멍을 내어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즉시 메워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을 받아도 잘 빠지게 되어 있어 웬만큼 강한 바람에는 연이 잘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상승과 하강, 좌우로 빙빙돌기, 급상승과 급강하, 전진과 후퇴가 가능하다. 또한 얼마든지 높이 날릴 수도 있고 빠르게 날릴 수도 있다. 한국 연은 외국의 연과 같이 명칭에 따라서 연의 모양이 아주 다른 것이 아니다. 방패연에 색깔을 칠한다든가, 색지의 모양만을 다르게 오려 붙임으로써 어떤 특징을 나타내어 거기에 따라 일정한 명칭을 붙여 구별할 뿐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기반(碁斑)·묵액(墨額)·쟁반(錚盤)·방혁(方革)·묘안(猫眼)·작령(鵲翎)·어린(魚鱗)·용미(龍尾) 등 연의 종류에 대한 여러 명칭이 나타난다. 기반은 바둑판연을 말한다. 쟁반은 연의 하반부에 쟁반을 그린 연이다. 방혁은 방패 모양의 연이다. 묘안은 고양이 눈을 그린 것 같은 연인데, 눈깔머리동이연이나 눈깔허리동이연이 여기에 해당한다. 작령은 까치날개 모양을 그린 연이다. 어린은 고기비늘 모양을 그린 연이다. 용미는 용의 꼬리 모양같이 길게 된 연을 말한다.

연의 종류

꼭지연에서 꼭지는 연의 이마 가운데에 붙이는 둥근 원형의 색지를 말한다. 꼭지는 방구멍(연의 한 가운데에 둥글게 뚫린 구멍)을 오려낸 종이로 만든다. 꼭지연은 바탕색이 백색이며, 꼭지의 빛깔에 따라 연의 명칭이 결정된다. 먹꼭지(먹구다리)연·청꼭지연·홍꼭지연·금꼭지연·쪽꼭지연·별꼭지연 등이 있다. 반달연은 이마 가운데에 반달형의 색지를 오려 붙인 연을 말한다. 그 반달의 빛깔에 따라 명칭이 각각 다르다. 먹반달연·홍반달연·청반달연·임반달연·쪽반달연 등이 있다. 치마연은 상반부는 백색 그대로 놓아 두고, 하반부만 여러 가지 빛깔을 칠한 연을 말한다. 마치 여인들의 치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치마의 빛깔에 따라 각각 연의 명칭이 달라진다. 먹치마연·청치마연·홍치마(일명 분홍치마)연·황치마연·보라치마연·이동치마연·삼동치마연·사동치마연 등이 있다. 동이연은 연의 머리나 허리에 색칠을 한 것이다. 동이연은 동이의 빛깔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먹머리동이연·청머리동이연·홍머리동이연·보라머리동이연·반머리동이연·실머리동이연·눈깔머리동이연·허리동이연·눈깔허리동이연 등이 있다.초연은 연의 꼭지만을 제외하고 전체를 동일한 빛깔로 칠한 것을 말한다. 먹초연·청초연·홍초연·황초연·보라초연 등이 있다. 박이연은 연의 전체나 일부분에 동전 크기의 점이나 눈[眼], 긴 코 같은 모양을 박은 연을 말한다. 돈점박이연·귀머리장군 긴코박이연·눈깔귀머리장군연·눈깔귀머리장군 긴코박이연 등이 있다. 발연은 연의 맨 아래나 좌우 가장자리에 발 모양의 종이를 붙인 연이다. 사족발연·국수발연·지네발연 등이 있다.

내용 및 특징

대개 음력 12월, 즉 섣달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연날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정초 세배와 성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마을 앞이나 갯벌에서 띄우는데, 정월 대보름 수일 전에 그 절정을 이룬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밤이 되면 달맞이를 하고 난 후에 각자 띄우던 연을 가지고 나와 액막이연을 날리는 풍속이 있다. 연에다 ‘액(厄)’자 쓰거나 ‘송액(送厄)’ 혹은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을 쓴 후, 자기의 생년월일과 성명을 적는다. 액막이연을 정월 대보름에 날려 보내는 이유는 한국에서 여러 종류의 액막이 풍속이 대개 정월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액막이는 으레 정월 대보름에 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명종(明宗) 21년(1566) 1월 15일조에 의하면, 액막이연이 집에 떨어지면 그해에 재앙이 있다고 믿는 속신이 있었다. ‘액막이연’에 대한 첫 기록은 정철(鄭澈)의 시조 ‘속전지연가(俗傳紙鳶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 집의 모든 액(厄)을 너 홀로 가져다가, 인가(人家)에 전치 말고 야수(野樹)에 걸렸다가, 비 오고 바람 불 때 자연소멸(自然消滅) 하거라.”는 내용이다. 연싸움에 대한 세시풍속은 ‘연줄 끊어먹기’와 ‘연 높이날리기’가 있다. 연싸움은 쌀밥이나 민어부레로 만든 풀에 유리가루나 사기가루를 섞어서 연줄에 발라 상대방의 연줄을 끊는 것이다. 장유(張維)의 ‘지연(紙鳶)’이라는 한시에 “연싸움의 열기가 더운 지방의 열대병에 걸린 것보다 치열하여 하늘을 날던 연이 허공 속으로 뚝뚝 떨어져 나가네” 하는 내용이 보인다. 그리고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 및 이학규(李學逵)의 『낙하생문집(洛下生文集)』 그리고 19세기 초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및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에도 연싸움과 관련된 기록이 나타난다. 정범조(丁範祖)의 『해좌집(海左集)』 권9에는 연싸움과 바람개비 돌리기의 풍속이 묘사되어 있다. 연을 날리느라고 오랫동안 눈을 치뜨고 있어 눈을 상하게 될까봐 연싸움을 한 후에 바람개비를 돌려서 시선을 낮추게 하여 눈동자를 바로잡는 풍속을 전해 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서울 청계천의 수표교 근처에서 정월 대보름 하루 이틀 전에 연싸움이 매우 성행했다고 한다.

지역사례

함남 북청지방에서는 가오리연은 거의 날리지 않고 주로 방패연을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방패연에 꼬리를 단 꼬리연은 암놈으로 간주했고, 꼬리가 없는 몽동연은 숫놈으로 간주했다.평남 안주와 개천에서는 문자연(門字鳶)·용자연(龍字鳶)·팔자연(八字鳶)·팔자(八字)형 쌍공작연·일자연(一字鳶)·엽전연 등이 있었다. 문자연·용자연·팔자연·일자연은 모두 연의 전면에 한자로 문(門)·용(龍)·팔(八)·일(一)자를 써 넣은 것이다. 팔자형 쌍공작연은 연의 전면에 양쪽으로 팔자 모양으로 공작 두 마리를 그려 넣은 것이다. 엽전연은 연의 전면에 엽전 서너 개를 그려 넣은 것이다. 경북 예천에는 상투빗연과 바둑판연이 있었다. 상투빗연은 연의 꼭지에 머리를 빗는 참빗 모양의 문양을 그린 것이다. 바둑판연은 연의 전면에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 병행선을 긋고 한 칸씩 걸러서 먹을 칠한 연을 말한다. 경남 통영에는 머리연·머리눈쟁이연·이봉산연·이봉산 눈쟁이연·삼봉산연·삼봉산눈쟁이연·귀바리연·귀바리눈쟁이연·귀봉산연·치마머리연·반장연·외당가리연·까만외당가리연·홍외당가리연·황외당가리연·청홍외당가리연·홍치마당가리연·윗까치당가리연·아래까치당가리연·수리당가리연·중머리연·짧은꼬리연·짧은꼬리눈쟁이연·긴꼬리연·긴꼬리눈쟁이연·돌독바지기(돌쪽바지게)연·돌독바지기눈쟁이연·치마고리연·용연·된방구쟁이연 등이 있었다. 통영은 한산대첩의 전적지로서 삼군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이 지방에는 임진왜란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연에 문양을 그려 넣어 전투용 신호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현재 ‘충무비연동우회’가 통영지방의 연을 보급하면서 매년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부산 동래에는 청귀머리연·흑귀머리연·별머리연·희자머리색동연·희자머리 연두초연·청꼭지색동치마연·홍꼭지녹치마연 등이 있었다. 바다가 인접해 있는 동래지방에서는 바다를 향해 연을 날려서, 연이 바다에 떨어지지 않고 얼마나 높고 멀리 날릴 수 있는가를 겨루는 경기가 있었다. 현재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해운대 백사장에서 전국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관련구비문학

연에 얽힌 설화로는 세종대왕릉의 이전과 연줄리 전설, 단종의 연이 떨어진 성황당 전설, 세 대감의 연시합 등이 있다. 연날리기를 노래한 민요로는 경남 진주의 민요인 “서울선부(선비) 연을 띄워 곤륜산(崑崙山)에 걸렸다. 아홉방의 세녀들아 연줄거는 구경가세.”와 경기민요인 “정월이라 십오일 구머리장군 긴코배기 액(厄)막이연이 떴다. 에라디여 에헤요 에이여라 방아흥아로다.”에 해당하는 ‘잦은방아타령’이 있고 전라도 민요인 “연걸렸구나 연이 걸렸구나 오갈피 상나무에가 연걸렸네.”인 ‘육자배기’가 있다. 연에 관한 수수께끼로는 “몸뚱이 하나에 꼬리 달고 하늘에서 춤추는 것은?”, “배꼽을 떼어서 등에 붙이고 공중으로 떠다니는 것은?”, “배꼽을 떼어서 정수리에 붙인 것은?”, “배꼽을 떼어 이마에 붙이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볼수록 높이 올라가는 것은?”, “뼈대뿐인 것이 종이옷을 입고 공중에서 춤추는 것은?” 등이 있다.

의의

우리나라에서는 연날리기를 통해서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액막이연의 민속이 매우 성행했다. 그리고 연날리기는 우리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추운 겨울인데도 따뜻한 안방에 있는 것보다 산이나 들판에 나가 연을 날리는 것이 더 즐거웠으니, 어린이들의 겨울철 운동과 취미활동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이다. 연날리기는 심신 양면에 활동과 휴식을 준다. 연을 멋지게 만들어 감상하기도 하고, 연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며 날림으로써 생활의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懶齋集, 東國歲時記韓國 紙鳶의 硏究 (崔常壽, 高麗書籍株式會社, 1958)韓·中·日 연의 역사와 민속 (전경욱, 태학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