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마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강재철(姜在哲)
갱신일 2016-10-17

정의

신행길에 신부가 타고 가는 가마. 가마는 앞뒤에서 멜빵에 걸어 메고 사람을 태우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만 집 모양의 탈것.

내용

신행新行 시 신부가마는 무명 샅바로 앞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면을 X자형으로 엮어 두르거나 호피를 뚜껑에 덮어 표시한다. 신부가마는 채색이나 술을 다는 등 화려하게 꾸몄는데, 짝지어 노는 새나 짐승・물고기 그림은 부부의 금실과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이때 “신부의 가마 채(다리)가 부러지면 백년해로 못 한다.”라는 말이 있다. 신부가마는 꽃가마라고도 불렸는데, 그렇다고 꽃가마가 모두 신부가마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한편 신행 시 신랑이 말을 타는 대신 가마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신랑가마도 있었는데, 신랑이 타는 가마는 꾸밈이 별로 없다.

가마[乘轎]는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이전에 사람이나 물건들을 실어 나르던 운반 수단의 하나였다. 크기는 다양한데, 신부가마인 경우 일례를 들면 길이 89.3㎝, 높이 105.3㎝, 폭 71.5㎝, 가마채 250㎝ 정도 되는 것이 있다. 신부가마는 앞뒤 각각 두 사람씩 한 줄로 서서 모두 네 사람이 메는 사인교四人轎로서, 멜빵에 장대를 걸어 어깨에 메게 되어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용하였으나,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사라졌다.

조선시대는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시대로 수레나 가마도 차등을 두어 제한하였다. 교여지제轎輿之制에의하면 평교자平轎子・사인교四人轎・초헌軺軒・사인남여四人籃輿・ 남여籃輿・장보교帳步轎의 6등급을 두었다. 평교자는 종일품이나 기로耆老, 사인교는 정이품에 해당하는 판서判書나 그에 상당하는 관원, 초헌은 종이품 이상의 관원, 사인남여는 종이품의 참판參判 이상, 남여는 정삼품 이상의 승지承旨와 육조의 참의參議 이상이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장보교는 위의 관원 이하의 벼슬아치가 현직에 있고 없고 간에 탈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신분과 용도에 따라 신여神輿・연輦・덩・가교駕轎・삿갓가마・팔인교八人轎・교여轎輿・용정자龍亭子・보교步轎・장독교帳獨轎・쌍가마・채여彩輿・혼여婚輿・상여喪輿・영여靈輿・견여肩輿・요여腰輿・가자[架子] 등 다양한 가마와 명칭이 있었다. 옛날 신분이 높은 사람이 길을 가는 것을 ‘행차’라 하였는데, 지체가 높은 귀인은 남녀 불문하고 공사 간에 반드시 가마를 타고 하인들을 따르게 하여 돋보이게 하였다.

전통혼례 시 신부가마의 행렬은 지체 높은 귀인의 행차와 흡사하다. 양반이 아닌 평민이라 할지라도 이날만큼은 귀인의 대접을 받아 가마를 타도록 했다. 신랑이 앞서고 혼여꾼婚輿軍이 메고 가는 신부가마 뒤엔 상객上客・수모手母・짐꾼・등롱군燈籠軍 등 많은 사람이 뒤따랐다. 품계에 따라 철저히 규제했던 복식이나 품석品席, 품등品燈 등에서 모두 고관대작의 예우를 받았는데, 신부는 공주나 옹주처럼 활옷[闊衣]에 응장성식凝粧盛飾을 하고, 신랑은 관복인 단령團領에 사모관대를 하고 신행길에 올랐다. 벼슬의 등급에 따라 표피・호피・구피・양피 등 방석의 종별도 달랐는데, 신부가마는 뚜껑에 당상관이나 되어야 깔고 앉거나 드리우는 호피를 사용하였다. 벼슬 등급에 따라 등롱의 빛깔 또한 달랐는데, 신행길에는 정이품 이하 정삼품의 당상관이 사용할 수 있었던 청사등롱을 들고 갔다. 우리는 이러한 혼례가마[婚輿]의 습속에서 치자가 구현하고자 한 민본・애민사상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1960년대만 하더라도 “꽃가마 타고 아홉 살 새색시가 시집을 간다네.”라고 하던 때는 지나가고, 가마에서 자동차로, 이제는 비행기로 신혼여행을 가는 시대가 되었다. 60년대 신행과 지금의 신혼여행은 방식과 의미가 달라 비교하기 어렵지만, 신행의 전통에 외래의 신혼여행이 접목된 것만은 틀림없다. 요즘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신부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신랑 집으로 가는데, 이는 신부 집에서 혼례를 올리고 다음날 신행길에 오르던 풍습과 유사하다.

참고문헌

국학도감(이훈종, 일조각, 1970), 기러기 아범의 두루마기-한국의 통과의례와 상징(강재철,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민속학개론(박계홍, 형설출판사, 1987), 한국의례의 연구(송재용, 박문사, 2010).

신부가마

신부가마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강재철(姜在哲)
갱신일 2016-10-17

정의

신행길에 신부가 타고 가는 가마. 가마는 앞뒤에서 멜빵에 걸어 메고 사람을 태우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만 집 모양의 탈것.

내용

신행新行 시 신부가마는 무명 샅바로 앞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면을 X자형으로 엮어 두르거나 호피를 뚜껑에 덮어 표시한다. 신부가마는 채색이나 술을 다는 등 화려하게 꾸몄는데, 짝지어 노는 새나 짐승・물고기 그림은 부부의 금실과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이때 “신부의 가마 채(다리)가 부러지면 백년해로 못 한다.”라는 말이 있다. 신부가마는 꽃가마라고도 불렸는데, 그렇다고 꽃가마가 모두 신부가마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한편 신행 시 신랑이 말을 타는 대신 가마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신랑가마도 있었는데, 신랑이 타는 가마는 꾸밈이 별로 없다. 가마[乘轎]는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이전에 사람이나 물건들을 실어 나르던 운반 수단의 하나였다. 크기는 다양한데, 신부가마인 경우 일례를 들면 길이 89.3㎝, 높이 105.3㎝, 폭 71.5㎝, 가마채 250㎝ 정도 되는 것이 있다. 신부가마는 앞뒤 각각 두 사람씩 한 줄로 서서 모두 네 사람이 메는 사인교四人轎로서, 멜빵에 장대를 걸어 어깨에 메게 되어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용하였으나,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사라졌다. 조선시대는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시대로 수레나 가마도 차등을 두어 제한하였다. 교여지제轎輿之制에의하면 평교자平轎子・사인교四人轎・초헌軺軒・사인남여四人籃輿・ 남여籃輿・장보교帳步轎의 6등급을 두었다. 평교자는 종일품이나 기로耆老, 사인교는 정이품에 해당하는 판서判書나 그에 상당하는 관원, 초헌은 종이품 이상의 관원, 사인남여는 종이품의 참판參判 이상, 남여는 정삼품 이상의 승지承旨와 육조의 참의參議 이상이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장보교는 위의 관원 이하의 벼슬아치가 현직에 있고 없고 간에 탈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신분과 용도에 따라 신여神輿・연輦・덩・가교駕轎・삿갓가마・팔인교八人轎・교여轎輿・용정자龍亭子・보교步轎・장독교帳獨轎・쌍가마・채여彩輿・혼여婚輿・상여喪輿・영여靈輿・견여肩輿・요여腰輿・가자[架子] 등 다양한 가마와 명칭이 있었다. 옛날 신분이 높은 사람이 길을 가는 것을 ‘행차’라 하였는데, 지체가 높은 귀인은 남녀 불문하고 공사 간에 반드시 가마를 타고 하인들을 따르게 하여 돋보이게 하였다. 전통혼례 시 신부가마의 행렬은 지체 높은 귀인의 행차와 흡사하다. 양반이 아닌 평민이라 할지라도 이날만큼은 귀인의 대접을 받아 가마를 타도록 했다. 신랑이 앞서고 혼여꾼婚輿軍이 메고 가는 신부가마 뒤엔 상객上客・수모手母・짐꾼・등롱군燈籠軍 등 많은 사람이 뒤따랐다. 품계에 따라 철저히 규제했던 복식이나 품석品席, 품등品燈 등에서 모두 고관대작의 예우를 받았는데, 신부는 공주나 옹주처럼 활옷[闊衣]에 응장성식凝粧盛飾을 하고, 신랑은 관복인 단령團領에 사모관대를 하고 신행길에 올랐다. 벼슬의 등급에 따라 표피・호피・구피・양피 등 방석의 종별도 달랐는데, 신부가마는 뚜껑에 당상관이나 되어야 깔고 앉거나 드리우는 호피를 사용하였다. 벼슬 등급에 따라 등롱의 빛깔 또한 달랐는데, 신행길에는 정이품 이하 정삼품의 당상관이 사용할 수 있었던 청사등롱을 들고 갔다. 우리는 이러한 혼례가마[婚輿]의 습속에서 치자가 구현하고자 한 민본・애민사상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1960년대만 하더라도 “꽃가마 타고 아홉 살 새색시가 시집을 간다네.”라고 하던 때는 지나가고, 가마에서 자동차로, 이제는 비행기로 신혼여행을 가는 시대가 되었다. 60년대 신행과 지금의 신혼여행은 방식과 의미가 달라 비교하기 어렵지만, 신행의 전통에 외래의 신혼여행이 접목된 것만은 틀림없다. 요즘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신부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신랑 집으로 가는데, 이는 신부 집에서 혼례를 올리고 다음날 신행길에 오르던 풍습과 유사하다.

참고문헌

국학도감(이훈종, 일조각, 1970), 기러기 아범의 두루마기-한국의 통과의례와 상징(강재철,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한국민속학개론(박계홍, 형설출판사, 1987), 한국의례의 연구(송재용,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