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희

한자명

手搏戱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정일

집필자 안상복(安祥馥)
갱신일 2016-11-07

정의

맨손으로 승부를 가리는 무예 수박(手搏)을 놀이로 삼은 것. 수박은 수박(手拍), 권법(拳法), 슈벽, 수벽치기, 수벽타(手癖打)로도 불렀다.

유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따르면 수박의 기원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내용이 중국의 것이어서 우리나라의 수박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성립되고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신채호(申采浩)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신수두 단전(壇前)의 경기회(競技會)에서 뽑힌 선배[先人, 仙人]들이 수박, 격검(擊劍) 같은 각종 기예를 익혔다고 하였는데, 이 설은 아직 문헌으로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구려 무용총과 안악 제3호분의 벽화에 그려진 두 사람이 겨루는 장면을 볼 때, 당시에 수박희를 놀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박 및 수박희란 명칭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고려시대이다. 『고려사(高麗史)』 「두경승전(杜景升傳)」에 수박하는 자가 경승을 불러 대오(隊伍)를 삼으려 했다고 하고, 「이의민전(李義旼傳)」에는 이의민이 수박을 잘해서 의종(毅宗)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최충헌전(崔忠獻傳)」에는 수박에서 이긴 군사에게 교위(校尉), 대정(隊正) 자리를 상으로 주었다고 하였다. 또 「정중부전(鄭仲夫傳)」에는 의종이 보현원(普賢院)에서 무신들에게 오병(五兵)의 수박희를 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말의 충혜왕(忠惠王)은 수박희를 즐겨 관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전기에도 고려 수박의 전통은 그대로 계승된다.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에는 수박희로 시험하여 군사를 뽑았다거나, 왕이 수박 잘하는 사람을 별도로 뽑아서 연회 때 하게 했다는 수박과 관련된 기록이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수박희가 15세기에 이미 민간의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충청도 은진현(恩津縣)과 전라도 여산군(礪山郡)의 경계 지역인 작지(鵲旨)에서 매년 7월 15일 근방의 두 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수박희로 승부를 겨루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 권법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수박은 새롭게 체계화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무예도보통지』 제4권 「권법편」에 실려 있다. 『재물보(才物譜)』나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따르면, 18세기 이후 전통 수박은 다시 발기술 위주의 탁견(托肩)과 손기술 위주의 슈벽[수벽치기, 手癖打]으로 분화, 발전한다. 최근 택견 인간문화재 송덕기, 신한승의 제자들에 계승되고 있으며, 손기술을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손발과 몸을 모두 사용하는 수박과 구별된다. 『재물보』에서 당시의 슈벽이 수박과 다르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

『무예도보통지』를 보면 두 사람이 하던 수박은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데, 전반부에서는 각기 정해진 세(勢)의 변화를 시범하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마주 서서 겨루기를 연출한다. 제4권의 권법보(拳法譜)에서는 세의 변화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였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두 사람이 각각 왼손과 오른손을 허리에 끼고 나란히 섰다가 먼저 탐마세를 취하고, 오른손으로 왼어깨를 쳐 열면서 즉시 요란주세를 취한다. 왼손으로 오른어깨를 쳐 열고 ② 앞으로 전진해 현각허이세를 취한다. 오른발로 오른손을 차고 왼발로 왼손을 차고 오른발로 오른손을 차고는 바로 순란주세를 취한다. 왼쪽으로 한 번 돌고 왼손으로 오른발을 한 번 치고 ③ 그대로 칠성권세를 취한다. 좌우로 씻고 고사평세를 취한다. 오른손과 왼발을 앞으로 한 번 찌르고 ④ 바로 도삽세를 취한다. 두 손을 높이 든 채 돌아보며 몸을 돌려 뒤를 향해 일삽보세를 취한다. 오른손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⑤ 그대로 요단편세를 취한다. 한 걸음 뛰어 오른손으로 오른쪽 둔부를 치고 그대로 복호세를 취한다. 나아가 앉았다가 오른쪽으로 돌면서 일어나 다시 현각허이세를 취한다.

⑥ 그대로 하삽세를 취하고 왼쪽으로 한 번 돌면서 오른손과 왼발을 한 번 치고 바로 당두포세를 취한다. 왼손으로 앞을 막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⑦ 그대로 기고세를 취한다. 좌우를 씻고 다시 중사평세를 취한다. 오른손과 왼발을 뒤로 한 번 찌르고, 그대로 도삽세를 취한다. 앞을 돌아보고 ⑧ 몸을 돌려 도기룡세를 취한다. 왼손과 오른손을 열면서 요단편세를 취한다. 앞으로 전진하면서 그대로 매복세를 취한다. 일자로 나아가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현각허이세를 취한다. 그대로 하삽세, 당두포세를 취하고, 다시 기고세, 고사평세, 도삽세를 취하고, 바로 일삽보세, 요단편세를 취한다.

⑨ 바로 오화전신세를 취하고, 오른손과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돌려 ⑩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서 안시측신세와 과호세를 취한다. 두 손을 열고 닫으며 좌우로 서로 탐색하다가 ⑪ 갑이 현각허이세를 취하여 좌로 차고 우로 차며 앞으로 몰고 나가면, 을이 구류세를 취하여 좌우 손으로 막으며 물러나 안시측신세, 과호세를 취한다. 서로 돌아선다. 을이 현각허이세를 취하여 진격하면 갑이 다시 구류세를 취하여 물러난다. 두 사람이 바로 안시측신세, 과호세를 취한다. 서로 돌아선다.

⑫ 갑이 나아가 복호세를 취하면, 을이 금사세를 취하고 뛰어넘어 즉시 복호세를 취한다. 갑 또한 금나세를 취하고 뛰어넘어 ⑬ 두 사람이 바로 포가세를 취한다. 두 손으로 오른발등을 치고 다시 점주세를 취한다. ⑭ 갑이 오른손으로 을의 왼어깨를 잡으면, 을은 오른손으로 갑의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부터 들어가 목을 꼬아 갑의 왼어깨를 잡고, 각기 등뒤로 왼손을 건다. 갑이 을을 업어서 빗겨 들어 거꾸로 던지면, 을은 물레가 돌듯 순식간에 땅에 내려서고, 을이 다시 갑을 들어 앞의 예와 같이 하고 끝낸다.

참고문헌

高麗史, 東國輿地勝覽, 武藝圖譜通志, 才物譜, 朝鮮王朝實錄, 海東竹枝
朝鮮上古史 (申采浩, 鍾路書院, 1948)
韓國 遊戱史 硏究-甲午更張以前을 中心으로 (羅絢成, 百祥文化社, 1977)

수박희

수박희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정일

집필자 안상복(安祥馥)
갱신일 2016-11-07

정의

맨손으로 승부를 가리는 무예 수박(手搏)을 놀이로 삼은 것. 수박은 수박(手拍), 권법(拳法), 슈벽, 수벽치기, 수벽타(手癖打)로도 불렀다.

유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따르면 수박의 기원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내용이 중국의 것이어서 우리나라의 수박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성립되고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신채호(申采浩)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신수두 단전(壇前)의 경기회(競技會)에서 뽑힌 선배[先人, 仙人]들이 수박, 격검(擊劍) 같은 각종 기예를 익혔다고 하였는데, 이 설은 아직 문헌으로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구려 무용총과 안악 제3호분의 벽화에 그려진 두 사람이 겨루는 장면을 볼 때, 당시에 수박희를 놀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박 및 수박희란 명칭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고려시대이다. 『고려사(高麗史)』 「두경승전(杜景升傳)」에 수박하는 자가 경승을 불러 대오(隊伍)를 삼으려 했다고 하고, 「이의민전(李義旼傳)」에는 이의민이 수박을 잘해서 의종(毅宗)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최충헌전(崔忠獻傳)」에는 수박에서 이긴 군사에게 교위(校尉), 대정(隊正) 자리를 상으로 주었다고 하였다. 또 「정중부전(鄭仲夫傳)」에는 의종이 보현원(普賢院)에서 무신들에게 오병(五兵)의 수박희를 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말의 충혜왕(忠惠王)은 수박희를 즐겨 관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전기에도 고려 수박의 전통은 그대로 계승된다.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에는 수박희로 시험하여 군사를 뽑았다거나, 왕이 수박 잘하는 사람을 별도로 뽑아서 연회 때 하게 했다는 수박과 관련된 기록이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수박희가 15세기에 이미 민간의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충청도 은진현(恩津縣)과 전라도 여산군(礪山郡)의 경계 지역인 작지(鵲旨)에서 매년 7월 15일 근방의 두 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수박희로 승부를 겨루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 권법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수박은 새롭게 체계화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무예도보통지』 제4권 「권법편」에 실려 있다. 『재물보(才物譜)』나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따르면, 18세기 이후 전통 수박은 다시 발기술 위주의 탁견(托肩)과 손기술 위주의 슈벽[수벽치기, 手癖打]으로 분화, 발전한다. 최근 택견 인간문화재 송덕기, 신한승의 제자들에 계승되고 있으며, 손기술을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손발과 몸을 모두 사용하는 수박과 구별된다. 『재물보』에서 당시의 슈벽이 수박과 다르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

『무예도보통지』를 보면 두 사람이 하던 수박은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데, 전반부에서는 각기 정해진 세(勢)의 변화를 시범하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마주 서서 겨루기를 연출한다. 제4권의 권법보(拳法譜)에서는 세의 변화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였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두 사람이 각각 왼손과 오른손을 허리에 끼고 나란히 섰다가 먼저 탐마세를 취하고, 오른손으로 왼어깨를 쳐 열면서 즉시 요란주세를 취한다. 왼손으로 오른어깨를 쳐 열고 ② 앞으로 전진해 현각허이세를 취한다. 오른발로 오른손을 차고 왼발로 왼손을 차고 오른발로 오른손을 차고는 바로 순란주세를 취한다. 왼쪽으로 한 번 돌고 왼손으로 오른발을 한 번 치고 ③ 그대로 칠성권세를 취한다. 좌우로 씻고 고사평세를 취한다. 오른손과 왼발을 앞으로 한 번 찌르고 ④ 바로 도삽세를 취한다. 두 손을 높이 든 채 돌아보며 몸을 돌려 뒤를 향해 일삽보세를 취한다. 오른손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⑤ 그대로 요단편세를 취한다. 한 걸음 뛰어 오른손으로 오른쪽 둔부를 치고 그대로 복호세를 취한다. 나아가 앉았다가 오른쪽으로 돌면서 일어나 다시 현각허이세를 취한다. ⑥ 그대로 하삽세를 취하고 왼쪽으로 한 번 돌면서 오른손과 왼발을 한 번 치고 바로 당두포세를 취한다. 왼손으로 앞을 막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⑦ 그대로 기고세를 취한다. 좌우를 씻고 다시 중사평세를 취한다. 오른손과 왼발을 뒤로 한 번 찌르고, 그대로 도삽세를 취한다. 앞을 돌아보고 ⑧ 몸을 돌려 도기룡세를 취한다. 왼손과 오른손을 열면서 요단편세를 취한다. 앞으로 전진하면서 그대로 매복세를 취한다. 일자로 나아가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현각허이세를 취한다. 그대로 하삽세, 당두포세를 취하고, 다시 기고세, 고사평세, 도삽세를 취하고, 바로 일삽보세, 요단편세를 취한다. ⑨ 바로 오화전신세를 취하고, 오른손과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돌려 ⑩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서 안시측신세와 과호세를 취한다. 두 손을 열고 닫으며 좌우로 서로 탐색하다가 ⑪ 갑이 현각허이세를 취하여 좌로 차고 우로 차며 앞으로 몰고 나가면, 을이 구류세를 취하여 좌우 손으로 막으며 물러나 안시측신세, 과호세를 취한다. 서로 돌아선다. 을이 현각허이세를 취하여 진격하면 갑이 다시 구류세를 취하여 물러난다. 두 사람이 바로 안시측신세, 과호세를 취한다. 서로 돌아선다. ⑫ 갑이 나아가 복호세를 취하면, 을이 금사세를 취하고 뛰어넘어 즉시 복호세를 취한다. 갑 또한 금나세를 취하고 뛰어넘어 ⑬ 두 사람이 바로 포가세를 취한다. 두 손으로 오른발등을 치고 다시 점주세를 취한다. ⑭ 갑이 오른손으로 을의 왼어깨를 잡으면, 을은 오른손으로 갑의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부터 들어가 목을 꼬아 갑의 왼어깨를 잡고, 각기 등뒤로 왼손을 건다. 갑이 을을 업어서 빗겨 들어 거꾸로 던지면, 을은 물레가 돌듯 순식간에 땅에 내려서고, 을이 다시 갑을 들어 앞의 예와 같이 하고 끝낸다.

참고문헌

高麗史, 東國輿地勝覽, 武藝圖譜通志, 才物譜, 朝鮮王朝實錄, 海東竹枝朝鮮上古史 (申采浩, 鍾路書院, 1948)韓國 遊戱史 硏究-甲午更張以前을 中心으로 (羅絢成, 百祥文化社,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