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적삼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안애영(安愛英)
갱신일 2018-10-16

정의

땀이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저고리 안에 입는 속저고리.

내용

속적삼은 홑옷으로 만든 속저고리이다. 속적삼은 저고리 안에 입어 살에 닿는 옷이므로 땀이 배어들기 때문에 땀받이적삼, 즉 한삼汗衫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국장國葬 기록 가운데 하나인 『빈전도감의궤殯殿都監儀軌』에 염습의대斂襲衣襨는 생전에 입었던 옷을 기록하였다. 선조宣祖의 왕비 의인왕후(1600)와 계비 인목왕후(1632)의 염습의대에 백색 저포(모시)로 만든 소적삼과 한삼(소한삼, 장한삼)이 있다. 또 『상방정례尙方定例』에는 국혼國婚인 가례嘉禮 복식 기록에 활한삼濶汗衫과 삼아衫兒가 있다.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 삼아는 일명 ‘땀받이적삼’으로 언해되었고, 『동문유해同文類解』에도 삼아가 적삼으로 언해되었다. 이와 같이 적삼과 한삼, 삼아는 저고리와 함께 안에 입는 홑으로 된 속적삼으로 기록되어 있다. 1819년 이후 기록인 「궁중발기宮中撥記」에도 의대나 「의복발기」에 속저고리인 적삼과 한삼이 있다.
「궁중발기」에는 저고리가 송화색저고리와 분홍색 저고리를 일작一作으로 기록하였다. 여기에서 분홍색 저고리는 소고의小古衣로 속저고리이다. 이 속저고리는 분홍색 주紬나 사紗로 만들어 속적삼 위에 입는데 속적삼보다 넉넉하고 겉저고리보다는 약간 작게 한다. 보통 겹저고리로 하지만 추울 때는 얇게 솜을 넣기도 하였다. 이것은 영친왕비(1901~1989) 유물 저고리 일작一作에서도 분홍색 속저고리가 확인된다.

특징 및 의의

속적삼은 해평 윤씨(1660~1701) 출토복인 속적삼처럼 홑옷으로 저고리보다 약간 작게 만들며 동정과 고름을 달지 않았다. 조선 말기 전세 유물 속적삼 가운데에도 홑으로 되어 동정과 고름이 없고 어깨와 겨드랑이 밑 등 터지기 쉬운 부분에 바대를 대고, 매듭단추로 여미게 되어 있는 것이 다수 있다.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소장품에는 앞길을 맞깃으로 하여 매듭단추로 여민 근대유물이 있으며, 20세기 유물 가운데는 진동에 이음선이 나타나지 않도록 뒷 중심선에서 수구까지 온폭으로 재단했다. 또 깃 대신에 너비 1의 레이스로 깃을 달아 맞깃으로 여미고 수구와 도련도 레이스를 달아 장식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의한 속적삼의 색과 소재(의차, 옷감)를 보면, 『상방정례』에서 활한삼과 삼아는 백초·백저포·백숙초·백정주로 하였으며, 「발기」에서는 적삼과 한삼을 백색과 분홍색의 저포苧布·세저포·저항라와 사紗 등으로 하였다. 19~20세기의 전세 유물에서도 적삼과 한삼의 색상은 보통 흰색, 옅은 분홍색이며 옷감은 여름용으로 모시삼베, 봄·가을용으로 주아사나 생고사, 인조견, 겨울용으로는 무명·옥양목·견직물 등을 사용하였다. 개화기 이후에는 서양사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래로 민간풍속에 혼례 때는 팔자가 시원하다는 속신俗信이 있어서 겨울에도 분홍모시로 된 속적삼을 입었다고 한다.
발기류의 기록과 궁중유물에서 확인되는 송화색 겉저고리와 일작을 이루는 속저고리[小古衣]는 색상이 분홍과 보라색으로 겹저고리 또는 얇게 솜을 둔 솜저고리로 계절에 따라 입었으며, 고름과 동정이 달려 있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 尙方定例, 명선-하(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5),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옛 속옷과 침선(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6), 조선조 궁중복식연구(김용숙, 일지사, 1987), 한국복식문화사(유희경·김문자, 교문사, 1981).

속적삼

속적삼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안애영(安愛英)
갱신일 2018-10-16

정의

땀이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저고리 안에 입는 속저고리.

내용

속적삼은 홑옷으로 만든 속저고리이다. 속적삼은 저고리 안에 입어 살에 닿는 옷이므로 땀이 배어들기 때문에 땀받이적삼, 즉 한삼汗衫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국장國葬 기록 가운데 하나인 『빈전도감의궤殯殿都監儀軌』에 염습의대斂襲衣襨는 생전에 입었던 옷을 기록하였다. 선조宣祖의 왕비 의인왕후(1600)와 계비 인목왕후(1632)의 염습의대에 백색 저포(모시)로 만든 소적삼과 한삼(소한삼, 장한삼)이 있다. 또 『상방정례尙方定例』에는 국혼國婚인 가례嘉禮 복식 기록에 활한삼濶汗衫과 삼아衫兒가 있다.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 삼아는 일명 ‘땀받이적삼’으로 언해되었고, 『동문유해同文類解』에도 삼아가 적삼으로 언해되었다. 이와 같이 적삼과 한삼, 삼아는 저고리와 함께 안에 입는 홑으로 된 속적삼으로 기록되어 있다. 1819년 이후 기록인 「궁중발기宮中撥記」에도 의대나 「의복발기」에 속저고리인 적삼과 한삼이 있다.「궁중발기」에는 저고리가 송화색저고리와 분홍색 저고리를 일작一作으로 기록하였다. 여기에서 분홍색 저고리는 소고의小古衣로 속저고리이다. 이 속저고리는 분홍색 주紬나 사紗로 만들어 속적삼 위에 입는데 속적삼보다 넉넉하고 겉저고리보다는 약간 작게 한다. 보통 겹저고리로 하지만 추울 때는 얇게 솜을 넣기도 하였다. 이것은 영친왕비(1901~1989) 유물 저고리 일작一作에서도 분홍색 속저고리가 확인된다.

특징 및 의의

속적삼은 해평 윤씨(1660~1701) 출토복인 속적삼처럼 홑옷으로 저고리보다 약간 작게 만들며 동정과 고름을 달지 않았다. 조선 말기 전세 유물 속적삼 가운데에도 홑으로 되어 동정과 고름이 없고 어깨와 겨드랑이 밑 등 터지기 쉬운 부분에 바대를 대고, 매듭단추로 여미게 되어 있는 것이 다수 있다.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소장품에는 앞길을 맞깃으로 하여 매듭단추로 여민 근대유물이 있으며, 20세기 유물 가운데는 진동에 이음선이 나타나지 않도록 뒷 중심선에서 수구까지 온폭으로 재단했다. 또 깃 대신에 너비 1의 레이스로 깃을 달아 맞깃으로 여미고 수구와 도련도 레이스를 달아 장식하기도 하였다.기록에 의한 속적삼의 색과 소재(의차, 옷감)를 보면, 『상방정례』에서 활한삼과 삼아는 백초·백저포·백숙초·백정주로 하였으며, 「발기」에서는 적삼과 한삼을 백색과 분홍색의 저포苧布·세저포·저항라와 사紗 등으로 하였다. 19~20세기의 전세 유물에서도 적삼과 한삼의 색상은 보통 흰색, 옅은 분홍색이며 옷감은 여름용으로 모시나 삼베, 봄·가을용으로 주아사나 생고사, 인조견, 겨울용으로는 무명·옥양목·견직물 등을 사용하였다. 개화기 이후에는 서양사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래로 민간풍속에 혼례 때는 팔자가 시원하다는 속신俗信이 있어서 겨울에도 분홍모시로 된 속적삼을 입었다고 한다.발기류의 기록과 궁중유물에서 확인되는 송화색 겉저고리와 일작을 이루는 속저고리[小古衣]는 색상이 분홍과 보라색으로 겹저고리 또는 얇게 솜을 둔 솜저고리로 계절에 따라 입었으며, 고름과 동정이 달려 있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 尙方定例, 명선-하(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5),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옛 속옷과 침선(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6), 조선조 궁중복식연구(김용숙, 일지사, 1987), 한국복식문화사(유희경·김문자, 교문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