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최원오(崔元午)
갱신일 2016-11-29

정의

태양 안에 산다거나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 세 발 달린 상상의 새에 관한 설화.

역사

중국 기록을 보면 삼족오(三足烏)의 이름은 태양 안에 있는 흑점이 까마귀처럼 보인 데서 비롯하며, 발이 세 개인 것에 대해서는 양(陽)을 나타내는 수라는 설과 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는 설이 있다. 한국 자료로는 진파리 1호분, 덕화리 1호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삼족오를 두루 확인할 수 있다. 대개는 공작 벼슬을 달고 있으며, 날아오르려고 하거나 날개를 접고 얌전히 서 있는 까마귀의 모습으로 원륜(圓輪) 안에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까마귀의 모습 대신에 비둘기나 기러기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예도 있다. 그리고 삼족오의 문양은 고려 지광국사현묘탑비(址智光國師塔碑), 삼보명자수가사(三寶名刺繡袈裟)와 조선시대 이곤(李坤, 1462~1524)의 묘비, 박운(朴雲, 1493~1562)의 묘표 등에서도 확인된다.

줄거리

삼족오로 추정되는 새가 등장하는 설화는 두 편이 있다. 구전으로는 <금오산전설>을 들 수 있다. 금오산(金烏山)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산인데, 금오산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에 “금오산은 원래 대본산(大本山)이었다. 당나라 국사가 빛을 내며 나는 새를 따라왔더니 이 금오산에 와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이후로 까마귀가 빛을 내어 날아왔다고 하여 금오산이 되었다고 한다.”라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문헌으로는 <연오랑세오녀>를 들 수 있다. 157년(아달라왕 4)에 동해 바닷가에 살던 연오와 세오 부부가 움직이는 바위를 타고 일본에 가자 일본 사람들이 두 사람을 왕과 귀비로 모셨다. 그때 신라에는 해와 달의 빛이 없어졌다. 변고를 살핀 관원이 해와 달의 정기가 신라에 있다가 일본에 갔기 때문에 이변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아달라왕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 연오와 세오 부부에게 돌아오라고 하였으나, 연오는 아내인 세오가 짠 비단을 신라에 가져가서 하늘에 제사지내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하였더니 해와 달이 전처럼 다시 밝아졌다.

분석

<금오산전설>에는 태양조(太陽鳥)인 까마귀가 지명전설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며, <연오랑세오녀>에는 인격화되어 등장한다. 해가 지상의 임금에 비유되는 천체라는 점에서 볼 때, <금오산전설>의 까마귀는 정치적 권력의 상징물에서 퇴색하여 그저 하나의 신물로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특징

<사금갑(賜金匣)>에는 까마귀가 신조로 등장한다. 까마귀가 날아와 왕이 신하들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려 주는데, 그 때문에 왕은 죽을 위기를 모면한다. 그래서 왕은 까마귀를 기념하여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찰밥을 지어 제사지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삼족오에 대한 신화적 숭배가 만들어 낸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

삼족오설화는 고구려의 문화 유물에서 나타나는 상징으로서, 고구려 민족의 태양 숭배와 신화적 표상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三國遺事, 금오산 도립공원(www.geumo.net).

참고문헌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전호태, 풀빛, 1999), 삼족오설화와 문학연구(윤경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논집1, 부산외국어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1985).

삼족오

삼족오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최원오(崔元午)
갱신일 2016-11-29

정의

태양 안에 산다거나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 세 발 달린 상상의 새에 관한 설화.

역사

중국 기록을 보면 삼족오(三足烏)의 이름은 태양 안에 있는 흑점이 까마귀처럼 보인 데서 비롯하며, 발이 세 개인 것에 대해서는 양(陽)을 나타내는 수라는 설과 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는 설이 있다. 한국 자료로는 진파리 1호분, 덕화리 1호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삼족오를 두루 확인할 수 있다. 대개는 공작 벼슬을 달고 있으며, 날아오르려고 하거나 날개를 접고 얌전히 서 있는 까마귀의 모습으로 원륜(圓輪) 안에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까마귀의 모습 대신에 비둘기나 기러기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예도 있다. 그리고 삼족오의 문양은 고려 지광국사현묘탑비(址智光國師塔碑), 삼보명자수가사(三寶名刺繡袈裟)와 조선시대 이곤(李坤, 1462~1524)의 묘비, 박운(朴雲, 1493~1562)의 묘표 등에서도 확인된다.

줄거리

삼족오로 추정되는 새가 등장하는 설화는 두 편이 있다. 구전으로는 을 들 수 있다. 금오산(金烏山)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산인데, 금오산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에 “금오산은 원래 대본산(大本山)이었다. 당나라 국사가 빛을 내며 나는 새를 따라왔더니 이 금오산에 와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이후로 까마귀가 빛을 내어 날아왔다고 하여 금오산이 되었다고 한다.”라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문헌으로는 를 들 수 있다. 157년(아달라왕 4)에 동해 바닷가에 살던 연오와 세오 부부가 움직이는 바위를 타고 일본에 가자 일본 사람들이 두 사람을 왕과 귀비로 모셨다. 그때 신라에는 해와 달의 빛이 없어졌다. 변고를 살핀 관원이 해와 달의 정기가 신라에 있다가 일본에 갔기 때문에 이변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아달라왕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 연오와 세오 부부에게 돌아오라고 하였으나, 연오는 아내인 세오가 짠 비단을 신라에 가져가서 하늘에 제사지내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하였더니 해와 달이 전처럼 다시 밝아졌다.

분석

에는 태양조(太陽鳥)인 까마귀가 지명전설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며, 에는 인격화되어 등장한다. 해가 지상의 임금에 비유되는 천체라는 점에서 볼 때, 의 까마귀는 정치적 권력의 상징물에서 퇴색하여 그저 하나의 신물로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특징

에는 까마귀가 신조로 등장한다. 까마귀가 날아와 왕이 신하들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려 주는데, 그 때문에 왕은 죽을 위기를 모면한다. 그래서 왕은 까마귀를 기념하여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찰밥을 지어 제사지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삼족오에 대한 신화적 숭배가 만들어 낸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

삼족오설화는 고구려의 문화 유물에서 나타나는 상징으로서, 고구려 민족의 태양 숭배와 신화적 표상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三國遺事, 금오산 도립공원(www.geumo.net).

참고문헌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전호태, 풀빛, 1999), 삼족오설화와 문학연구(윤경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논집1, 부산외국어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