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가릿대세우기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이관호(李官浩)
갱신일 2016-11-07

정의

정월 대보름에 짚이나 헝겊 등에 벼·보리·조·기장·수수·콩·팥 등 갖가지 곡식을 싸서 장대에 매단 다음, 우물이나 마당 또는 외양간 옆에 높다랗게 세워놓고 풍요를 기원하는 풍속. 곡식을 싸서 매달아 놓은 장대를 ‘볏가릿대’라고 하는데 이는 입간민속(立竿民俗)의 상징물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볏가릿대·볏가리·노적가리·볏가리 장대라 칭하고, 대부분의 전라도 지역에서는 낟가릿대·유지기·유지지·주저리·유두새·노적·봉오리·오조지·농사장원기라 하며, 경남 지역에서는 유지방 등으로 불린다. 한자어로는 화간(禾竿)·화적(禾積)·도간(稻竿)이라고도 한다. 현재 충청도 지역에서는 볏가릿대나 노적가리로 불리고 있으며, 전라도 지역의 경우에는 유지기·농사장원기·낟가릿대란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유래 및 역사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正月) 상원조(上元條)와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 상원조(上元條)에 보면 “시골 인가에서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 깃대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속에 벼·기장·피·조 등의 이삭을 싸고, 또 목화의 터진 열매를 장대 끝에 매단다. 이를 집 곁에다 세우고 새끼줄을 펼쳐 고정시킨다. 이것을 ‘화적’이라 하는데, 이로써 풍년을 비는 것이다. 산골 풍속으로는 가지가 많은 나무를 외양간 뒤에 세우고, 곡식 이삭이나 목화를 걸어 둔다.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나무 둘레를 빙빙 돌며 노래를 부르면서 풍년을 기원한다. 우리나라 고사(故事)에 정월 보름날 대궐 안에서는 『시경(詩經)』 빈풍(豳風) 7월편의 갈고 거두는 형상을 본떠 좌우로 나누어 승부를 겨룬다. 대개 풍년을 비는 뜻이다. 항간에서 화간(禾竿)을 하는 것이 이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석남 송석하는 1934년 발표한 『풍신고(風神考)』에서 현재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는 볏가릿대 농경의례는 한강 이남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는 입간민속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자(李耔)의 『음애일기(陰崖日記)』나 권용정(權用正)의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 등에서도 볏가릿대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내용

{볏가릿대의 어원과 의미} ‘볏가릿대’는 벼를 베어서 가려 놓거나 또는 볏단을 차곡차곡 가려서 쌓은 더미인 ‘볏가리(낟가리)’에서 나온 말로, 풍년이 들어 볏가리를 긴 나뭇대(竿) 높이만큼 쌓게 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풍년기원 우주목(宇宙木)인 볏가릿대는 어려운 살림살이를 극복하기 위한 욕구의 소산물로서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나 보름에 세워서 2월 초하루에 내리는 농부들의 진솔한 마음과 극복의 염원을 담은 풍농기원 의례이자 놀이이다. 이러한 볏가릿대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볏가릿대세우기의 내용} 세우는 위치도 각 지역이나 마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주된 목적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공급받는 데 있으므로 대개 볏가릿대는 우물가나 들판, 바깥마당과 안마당, 외양간 옆 등에 세운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주체에도 전남 진도 지역의 경우에는 대개 개인적으로 농가에서 볏가릿대를 세우는 반면, 충청도 서산·당진 일대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공동우물이나 들판이나 공동 우물, 또는 마을 회관 등지에 세운다. 한편 충청 지역의 경우 볏가릿대를 공공장소에 세우는 외에 개인 농가 마당이나 개인 우물 옆에도 세운다. 그러나 진도 지역과 다른 점은 볏가릿대를 세우는 주체가 개인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볏가릿대 생김새도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다. 대개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소나무나 대나무를 베어 장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묵은 대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하는 마을도 있으며, 대나무와 소나무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진도나 완도 등 전남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볏가릿대의 모습은 긴 장대 위에 볏짚단의 밑 부분을 묶고 그 안에 벼·조·피·기장 등의 온갖 곡식을 이삭채 싸서 매달고, 그 밑에는 목화송이나 새끼줄 등을 늘어뜨려 놓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충남 서산·당진 지역의 경우에는 소나무나 대나무를 베어다가 맨 꼭대기에 오곡(五穀)을 헝겊에 싸서 매달고 짚으로 주저리를 틀듯이 장대를 감싼 다음, 벼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 3개를 거꾸로 틀어 줄을 매어 세운다.

충남 서산시 인지면 차리의 경우, 1996년경만 하더라도 마을에서 볏가릿대를 4곳에 세웠다. 차리는 행정상 4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풍물을 치고 돌아다니면서 각 반에서 가장 잘 사는 집 마당에다 볏가릿대를 세워 주었다. 볏가릿대세우기가 끝나면 풍물패는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고, 이어 그 집에서는 답례로 술과 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우선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어렵게 살던 시절 서로 도우며 나눌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미덕을 엿볼 수 있다.

정월 열나흗날이나 보름에 세운 볏가릿대는 음력 2월 초하룻날 거둔다. 2월 초하루는 ‘머슴날’이라 하여 농사가 시작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바탕 놀 수 있는 농부들의 명절이다. 따라서 이날 부잣집에서는 머슴이나 소작인에게 많은 술과 음식을 장만해 주고 맘껏 놀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무렵에 세워 놓았던 볏가릿대를 눕히고 장대에 매달아 놓았던 오곡으로 풍흉을 점치는 볏가리제를 지낸다. 볏가리제 역시 마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진행된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운산5리의 사례를 통해 볏가리제의 진행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마을 사람들은 단정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마을 회관으로 모여 고사에 쓸 제물을 준비한다. 이어 11시경이 되면 사람들은 농기(農旗)와 삼재축출기(三災逐出旗)·향약기(鄕約旗)를 들고 풍물패를 앞세운 다음, 제물을 지고 마을 공동 우물인 참샘으로 가서 참샘고사를 지낸다. 참샘고사가 끝나면 곧바로 볏가릿대 앞에 제상을 차려놓고 제를 올린다. 영좌(領座)가 비손문을 외우고 참가한 주민 일동이 재배를 한다. 제의가 끝나면 집사가 ‘고수레’를 한 다음 떡과 술을 나누어 먹고 한마당 신명나게 ‘농사놀이(두레놀이)’를 한다. 그런 다음 볏가릿대를 눕히고 오곡 주머니를 풀어 씨앗이 튼 것을 확인하여 풍흉을 점친다. 이때 서북쪽의 싹이 잘 텄으면 육답(陸沓, 육지 쪽에 있는 농토) 농사가 잘되고 동남쪽이 잘 텄으면 갯가의 간척지 농사가 잘 될 징조라고 한다. 이어 눕힌 볏가릿대 줄과 짚은 작두로 썰어서 볏섬에 담아 집안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가을에 거름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풍년이 든다고 하여 서로 볏짚을 가져가려고 한다.

이와 같이 볏가릿대를 세울 때에는 대개 간단한 의례가 치러지나 볏가릿대를 내릴 때에는 성대한 의례가 치러진다. 이는 충남 당진군 구룡리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구룡리 역시 음력으로 2월 1일 머슴날에 볏가릿대를 내리는데,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즉, 2월 초하루 아침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면서 제물을 준비하여 볏가릿대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제물로는 돼지머리·삼색실과·술(막걸리) 등을 준비한다. 이어 준비한 제물을 볏가릿대 앞에 진설한다. 제의는 마을 연장자가 주관하는데 그 절차는 간단하다. 술은 석 잔을 올리며, 잔을 올릴 때마다 재배를 하고 이어 독축(讀祝)을 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축원과 함께 소지를 올리는데 축원과 소지는 무당이 담당한다. 이때 무당은 삼지창에 돼지머리를 꽂아 세우는 의례를 행한다.

이러한 제의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볏가릿대를 쓰러뜨린다. 우선 3개의 동아줄을 푼 다음 볏가릿대를 서서히 넘어뜨린다. 이어 오곡이 담긴 종태미를 내려 상 위에 놓고 열어 본다. 이때 오곡에 싹이 트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싹이 트지 않고 마른 채 그대로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점친다. 점을 친 오곡은 다섯 사람이 각각 나누어 가지고 인근에 있는 논으로 가서 뿌린다. 이때에도 “올 일년 풍년 들게 해 주십시오.” 하고 축원을 한다. 한편 옛날에는 눕힌 볏가릿대 줄과 짚을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가을에 거름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나 요즘에는 곧바로 논에서 불을 놓아 태워버린다.

이처럼 대개 볏가릿대를 내릴 때에는 제물을 간단하게 차려놓고 독축과 함께 풍년을 기원한다. 제의 양상에서도 충청도 지역과 같이 대개 마을 주민들에 의해 공동으로 제의가 치러지기도 하나 전라도 지역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제의가 치러지기도 한다. 특히 볏가릿대는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로 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제의에 앞서 물의 풍부함을 기원하는 의례를 행하기도 한다. 즉, 제의에 앞서 풍물을 치면서 맑은 물을 그릇에 담아놓고 “뚫어라! 뚫어라! 물구녕(구멍)만 뚫어라.” 하고 고사소리를 한다. 그럼으로써 일년 내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기원한다.

지역사례

볏가릿대세우기의 사례는 충남 당진군 당진읍 구룡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날 구룡리에서는 볏가릿대를 마을 사람 공동으로 자연 마을마다 하나씩 세우는 것 외에 부잣집에도 세워 주었다. 그러면 부잣집에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놓는다. 한편 부잣집 마당에 세워 두었던 볏가릿대의 역시 음력 2월 초하룻날 넘어뜨리는데, 이때 볏가릿대에 감았던 볏짚은 풍년이 든다고 하여 볏섬에 담아서 그 집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풍습은 6·25전쟁 이후 중단되었다가 1991년 농촌지도소에서 파견 나온 ‘주재 지도사’가 이를 발굴하여 재현함으로써 현재는 3년마다 한 번씩 윤달이 드는 해에 마을 회관에 볏가릿대 하나를 세우고 있다.

실제 사례를 통해 유형별로 그 생김새를 살펴보면, 충남 당진군 구룡리의 경우 볏가릿대를 세우려면 우선 약 6미터 정도 되는 긴 소나무 한 그루와 왕대나무 한 그루를 윗가지를 자르지 않은 채 베어 온다. 대나무는 휘어지지 않고 곧게 뻗어 올라가므로 마을의 운수가 대나무와 같이 곧게 뻗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용하고, 소나무 역시 솔잎처럼 푸름과 곧은 절개를 닮으라는 의미에서 사용한다. 마당 중앙에 두 개의 나무를 포개어 세운 다음 그 대를 짚으로 주저리처럼 감싸는데, 이를 ‘옷입힌다’고 한다. 볏가리를 쌓는 의미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나무가 드러나면 보기에 흉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짚으로 3개의 동아줄을 꼬아 위로부터 바닥에 고정시킨다. 대의 꼭대기에는 짚으로 지름이 약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오쟁이를 만들고 그 안에 오곡을 각기 주머니에 담아 넣는다. 여기서 오쟁이를 ‘종태미’라고 부른다. 오곡은 벼·조·팥·수수·기장으로 각기 이를 재배한 집의 것을 사용한다. 즉, 기장을 심은 집에서는 기장을 내놓고, 콩을 심은 집에서는 콩을 내놓는다. 한편 볏가릿대 옆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쓴 농기를 세워 놓는다.

두 번째 사례로 충남 서산시 인지면 야당리의 볏가릿대를 들 수 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은 인근 야산에서 약 15년생 정도 되는 소나무(길이 약 5미터, 밑지름 약 15~20센티미터) 한 그루를 베어와 볏가릿대를 세운다. 이를 마을 사람들은 “볏가리 세운다.”고 한다. 볏가리를 세우는 데 사용되는 재료로는 소나무·볏짚·오곡종자(벼·조·수수·기장·콩)·한지·무명천 등이 필요하다. 소나무는 윗가지만 남겨 놓고 잔가지는 모두 베어낸다. 볏짚은 삼방(三方)줄을 꼬는 데 이용된다. 삼방줄은 세 방향으로 소나무의 윗부분에 매어달고, 땅에 말뚝을 박아 고정한다. 삼방줄은 소나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동아줄을 엮듯이 하며, 닭벼슬처럼 짚을 길게 늘어뜨린다. 한편 오곡종자는 각 종자마다 한지에 싸서 무명천으로 감싼 다음 소나무와 삼방줄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에 매달아 놓는다.

또한 충남 서산시 대산면 운산리의 경우 나무를 소나무나 대나무 중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벼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을 거꾸로 틀어 줄을 맨다는 점이 다른 마을과 다르다. 이외에 다른 형태의 볏가릿대로는 충남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를 비롯한 지곡면 일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지역의 볏가릿대는 살아 있는 대나무 대신 죽은 대나무를 장대로 하고 그 맨 꼭대기에 수수대나 꿩장목을 묶어 놓는다.

속신과 금기

볏가릿대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아침 일찍 집안 어린애로 하여금 볏가릿대 주위를 돌면서 풍년 들게 해달라는 말을 해가 뜰 때까지 노래로 부르게 한다. 볏가릿대를 거둘 때에는 짚단 안에 넣었던 곡식이나 나뭇가지에 매달았던 곡식을 찧어서 떡을 만들어 먹는다. 떡의 크기는 손바닥만하기도 하고 새알심만하기도 하며, 떡 안에 콩이나 팥으로 소를 만들어 넣기도 한다. 이런 떡은 집안 식구끼리 먹지만 머슴이나 하인에게도 나누어 준다. 그러나 이웃집에는 나누어 주지 않는다.

볏가릿대를 헐기에 앞서 섬이나 가마니 같은 것을 가져다 곡물을 넣는 시늉을 하면서 큰 소리로 “벼가 몇 만 석이요.”, “조가 몇 천 석이요.”, “콩이 몇 백 석이요.”, “팥이 몇 십 석이요.” 하고 소리쳐서 마치 많이 수확한 것처럼 한다. 그러면 그해에 풍년이 들어 수확을 많이 거두게 된다고 한다.

한편 볏가릿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금기(禁忌)가 요구되기도 한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날에는 키가 작은 사람은 남의 집 방문을 삼가야 한다. 볏가리를 만든 14일에 찾아오는 손님의 키가 작고 큼에 따라서 그해 농작물의 성장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키가 큰 손님이 오면 오곡이 모두 크게 잘 자라지만 키가 작은 손님이 오면 곡물도 왜소(矮小)해져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또 이날 여인이 아침 일찍 찾아오면 재수가 없다고 전하므로 여인들의 가급적 외출을 피한다.

의의

농사는 해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주기성을 바탕으로 농경세시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농사가 생산과정에 따라 주기성을 띠고 있음에 따라 그에 따른 의례도 내용을 달리한다. 연초에는 대동으로 풍년을 기원하고, 성장기에는 농신(農神)에게 성장의 촉진을 기원하고, 수확기에는 조상과 여러 신들에게 감사의 예를 올린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볏가릿대 행사는 연초에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의례(祈豊儀禮)이다. 즉, 볏가릿대 세울 때의 시기와 장소, 볏가릿대 눕힐 때의 시기와 의례 등은 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시기인 음력 정월 대보름과 샘은 시공간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보름의 상징적 의미는 ‘보름-여성-풍요’라는 의미로 연결되고, 샘의 상징적 의미는 ‘샘-용수’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볏가릿대를 눕히는 시기인 2월 초하루는 세시풍속 상으로 볼 때 영등날·머슴날로도 불린다. 이 시점은 해동(解冬)이 되고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사의 축원 내용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러한 의례 역시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전승되던 볏가릿대세우기는 충남 서산·당진 등과 같은 내포 지역(內浦地域)을 비롯하여 전남 진도 등과 같은 일부 해안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京都雜志, 東國歲時記, 陰崖日記, 漢陽歲時記
風神考-附 禾竿考 (宋錫夏, 震檀學報1, 震檀學會, 1934)
韓國民俗大觀4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81)
韓國歲時風俗硏究 (任東權, 集文堂, 1985)
韓國의 歲時風俗 (金星元, 明文堂, 1987)
한국민속학개설 (이두현 외, 일조각,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韓國人의 敎育歲時風俗 (孫仁銖, 文音社, 1991)
당진의 민간신앙 (이인화, 당진문화원, 1996)
考古와 民俗1 (이필영, 한韓南大學校博物館, 1998)
볏가릿대고 (이관호, 생활문물연구4, 국립민속박물관, 2002)
한국민속문화대사전 상권 (김용덕 편, 창솔, 2004)

볏가릿대세우기

볏가릿대세우기
사전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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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관호(李官浩)
갱신일 2016-11-07

정의

정월 대보름에 짚이나 헝겊 등에 벼·보리·조·기장·수수·콩·팥 등 갖가지 곡식을 싸서 장대에 매단 다음, 우물이나 마당 또는 외양간 옆에 높다랗게 세워놓고 풍요를 기원하는 풍속. 곡식을 싸서 매달아 놓은 장대를 ‘볏가릿대’라고 하는데 이는 입간민속(立竿民俗)의 상징물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볏가릿대·볏가리·노적가리·볏가리 장대라 칭하고, 대부분의 전라도 지역에서는 낟가릿대·유지기·유지지·주저리·유두새·노적·봉오리·오조지·농사장원기라 하며, 경남 지역에서는 유지방 등으로 불린다. 한자어로는 화간(禾竿)·화적(禾積)·도간(稻竿)이라고도 한다. 현재 충청도 지역에서는 볏가릿대나 노적가리로 불리고 있으며, 전라도 지역의 경우에는 유지기·농사장원기·낟가릿대란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유래 및 역사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正月) 상원조(上元條)와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 상원조(上元條)에 보면 “시골 인가에서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 깃대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속에 벼·기장·피·조 등의 이삭을 싸고, 또 목화의 터진 열매를 장대 끝에 매단다. 이를 집 곁에다 세우고 새끼줄을 펼쳐 고정시킨다. 이것을 ‘화적’이라 하는데, 이로써 풍년을 비는 것이다. 산골 풍속으로는 가지가 많은 나무를 외양간 뒤에 세우고, 곡식 이삭이나 목화를 걸어 둔다.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나무 둘레를 빙빙 돌며 노래를 부르면서 풍년을 기원한다. 우리나라 고사(故事)에 정월 보름날 대궐 안에서는 『시경(詩經)』 빈풍(豳風) 7월편의 갈고 거두는 형상을 본떠 좌우로 나누어 승부를 겨룬다. 대개 풍년을 비는 뜻이다. 항간에서 화간(禾竿)을 하는 것이 이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석남 송석하는 1934년 발표한 『풍신고(風神考)』에서 현재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는 볏가릿대 농경의례는 한강 이남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는 입간민속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자(李耔)의 『음애일기(陰崖日記)』나 권용정(權用正)의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 등에서도 볏가릿대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내용

{볏가릿대의 어원과 의미} ‘볏가릿대’는 벼를 베어서 가려 놓거나 또는 볏단을 차곡차곡 가려서 쌓은 더미인 ‘볏가리(낟가리)’에서 나온 말로, 풍년이 들어 볏가리를 긴 나뭇대(竿) 높이만큼 쌓게 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풍년기원 우주목(宇宙木)인 볏가릿대는 어려운 살림살이를 극복하기 위한 욕구의 소산물로서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나 보름에 세워서 2월 초하루에 내리는 농부들의 진솔한 마음과 극복의 염원을 담은 풍농기원 의례이자 놀이이다. 이러한 볏가릿대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볏가릿대세우기의 내용} 세우는 위치도 각 지역이나 마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주된 목적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공급받는 데 있으므로 대개 볏가릿대는 우물가나 들판, 바깥마당과 안마당, 외양간 옆 등에 세운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주체에도 전남 진도 지역의 경우에는 대개 개인적으로 농가에서 볏가릿대를 세우는 반면, 충청도 서산·당진 일대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공동우물이나 들판이나 공동 우물, 또는 마을 회관 등지에 세운다. 한편 충청 지역의 경우 볏가릿대를 공공장소에 세우는 외에 개인 농가 마당이나 개인 우물 옆에도 세운다. 그러나 진도 지역과 다른 점은 볏가릿대를 세우는 주체가 개인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볏가릿대 생김새도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다. 대개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소나무나 대나무를 베어 장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묵은 대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하는 마을도 있으며, 대나무와 소나무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진도나 완도 등 전남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볏가릿대의 모습은 긴 장대 위에 볏짚단의 밑 부분을 묶고 그 안에 벼·조·피·기장 등의 온갖 곡식을 이삭채 싸서 매달고, 그 밑에는 목화송이나 새끼줄 등을 늘어뜨려 놓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충남 서산·당진 지역의 경우에는 소나무나 대나무를 베어다가 맨 꼭대기에 오곡(五穀)을 헝겊에 싸서 매달고 짚으로 주저리를 틀듯이 장대를 감싼 다음, 벼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 3개를 거꾸로 틀어 줄을 매어 세운다. 충남 서산시 인지면 차리의 경우, 1996년경만 하더라도 마을에서 볏가릿대를 4곳에 세웠다. 차리는 행정상 4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풍물을 치고 돌아다니면서 각 반에서 가장 잘 사는 집 마당에다 볏가릿대를 세워 주었다. 볏가릿대세우기가 끝나면 풍물패는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고, 이어 그 집에서는 답례로 술과 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우선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어렵게 살던 시절 서로 도우며 나눌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미덕을 엿볼 수 있다. 정월 열나흗날이나 보름에 세운 볏가릿대는 음력 2월 초하룻날 거둔다. 2월 초하루는 ‘머슴날’이라 하여 농사가 시작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바탕 놀 수 있는 농부들의 명절이다. 따라서 이날 부잣집에서는 머슴이나 소작인에게 많은 술과 음식을 장만해 주고 맘껏 놀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무렵에 세워 놓았던 볏가릿대를 눕히고 장대에 매달아 놓았던 오곡으로 풍흉을 점치는 볏가리제를 지낸다. 볏가리제 역시 마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진행된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운산5리의 사례를 통해 볏가리제의 진행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마을 사람들은 단정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마을 회관으로 모여 고사에 쓸 제물을 준비한다. 이어 11시경이 되면 사람들은 농기(農旗)와 삼재축출기(三災逐出旗)·향약기(鄕約旗)를 들고 풍물패를 앞세운 다음, 제물을 지고 마을 공동 우물인 참샘으로 가서 참샘고사를 지낸다. 참샘고사가 끝나면 곧바로 볏가릿대 앞에 제상을 차려놓고 제를 올린다. 영좌(領座)가 비손문을 외우고 참가한 주민 일동이 재배를 한다. 제의가 끝나면 집사가 ‘고수레’를 한 다음 떡과 술을 나누어 먹고 한마당 신명나게 ‘농사놀이(두레놀이)’를 한다. 그런 다음 볏가릿대를 눕히고 오곡 주머니를 풀어 씨앗이 튼 것을 확인하여 풍흉을 점친다. 이때 서북쪽의 싹이 잘 텄으면 육답(陸沓, 육지 쪽에 있는 농토) 농사가 잘되고 동남쪽이 잘 텄으면 갯가의 간척지 농사가 잘 될 징조라고 한다. 이어 눕힌 볏가릿대 줄과 짚은 작두로 썰어서 볏섬에 담아 집안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가을에 거름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풍년이 든다고 하여 서로 볏짚을 가져가려고 한다. 이와 같이 볏가릿대를 세울 때에는 대개 간단한 의례가 치러지나 볏가릿대를 내릴 때에는 성대한 의례가 치러진다. 이는 충남 당진군 구룡리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구룡리 역시 음력으로 2월 1일 머슴날에 볏가릿대를 내리는데,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즉, 2월 초하루 아침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면서 제물을 준비하여 볏가릿대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제물로는 돼지머리·삼색실과·술(막걸리) 등을 준비한다. 이어 준비한 제물을 볏가릿대 앞에 진설한다. 제의는 마을 연장자가 주관하는데 그 절차는 간단하다. 술은 석 잔을 올리며, 잔을 올릴 때마다 재배를 하고 이어 독축(讀祝)을 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축원과 함께 소지를 올리는데 축원과 소지는 무당이 담당한다. 이때 무당은 삼지창에 돼지머리를 꽂아 세우는 의례를 행한다. 이러한 제의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볏가릿대를 쓰러뜨린다. 우선 3개의 동아줄을 푼 다음 볏가릿대를 서서히 넘어뜨린다. 이어 오곡이 담긴 종태미를 내려 상 위에 놓고 열어 본다. 이때 오곡에 싹이 트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싹이 트지 않고 마른 채 그대로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점친다. 점을 친 오곡은 다섯 사람이 각각 나누어 가지고 인근에 있는 논으로 가서 뿌린다. 이때에도 “올 일년 풍년 들게 해 주십시오.” 하고 축원을 한다. 한편 옛날에는 눕힌 볏가릿대 줄과 짚을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가을에 거름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나 요즘에는 곧바로 논에서 불을 놓아 태워버린다. 이처럼 대개 볏가릿대를 내릴 때에는 제물을 간단하게 차려놓고 독축과 함께 풍년을 기원한다. 제의 양상에서도 충청도 지역과 같이 대개 마을 주민들에 의해 공동으로 제의가 치러지기도 하나 전라도 지역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제의가 치러지기도 한다. 특히 볏가릿대는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로 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제의에 앞서 물의 풍부함을 기원하는 의례를 행하기도 한다. 즉, 제의에 앞서 풍물을 치면서 맑은 물을 그릇에 담아놓고 “뚫어라! 뚫어라! 물구녕(구멍)만 뚫어라.” 하고 고사소리를 한다. 그럼으로써 일년 내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기원한다.

지역사례

볏가릿대세우기의 사례는 충남 당진군 당진읍 구룡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날 구룡리에서는 볏가릿대를 마을 사람 공동으로 자연 마을마다 하나씩 세우는 것 외에 부잣집에도 세워 주었다. 그러면 부잣집에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놓는다. 한편 부잣집 마당에 세워 두었던 볏가릿대의 역시 음력 2월 초하룻날 넘어뜨리는데, 이때 볏가릿대에 감았던 볏짚은 풍년이 든다고 하여 볏섬에 담아서 그 집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풍습은 6·25전쟁 이후 중단되었다가 1991년 농촌지도소에서 파견 나온 ‘주재 지도사’가 이를 발굴하여 재현함으로써 현재는 3년마다 한 번씩 윤달이 드는 해에 마을 회관에 볏가릿대 하나를 세우고 있다. 실제 사례를 통해 유형별로 그 생김새를 살펴보면, 충남 당진군 구룡리의 경우 볏가릿대를 세우려면 우선 약 6미터 정도 되는 긴 소나무 한 그루와 왕대나무 한 그루를 윗가지를 자르지 않은 채 베어 온다. 대나무는 휘어지지 않고 곧게 뻗어 올라가므로 마을의 운수가 대나무와 같이 곧게 뻗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용하고, 소나무 역시 솔잎처럼 푸름과 곧은 절개를 닮으라는 의미에서 사용한다. 마당 중앙에 두 개의 나무를 포개어 세운 다음 그 대를 짚으로 주저리처럼 감싸는데, 이를 ‘옷입힌다’고 한다. 볏가리를 쌓는 의미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나무가 드러나면 보기에 흉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짚으로 3개의 동아줄을 꼬아 위로부터 바닥에 고정시킨다. 대의 꼭대기에는 짚으로 지름이 약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오쟁이를 만들고 그 안에 오곡을 각기 주머니에 담아 넣는다. 여기서 오쟁이를 ‘종태미’라고 부른다. 오곡은 벼·조·팥·수수·기장으로 각기 이를 재배한 집의 것을 사용한다. 즉, 기장을 심은 집에서는 기장을 내놓고, 콩을 심은 집에서는 콩을 내놓는다. 한편 볏가릿대 옆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쓴 농기를 세워 놓는다. 두 번째 사례로 충남 서산시 인지면 야당리의 볏가릿대를 들 수 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은 인근 야산에서 약 15년생 정도 되는 소나무(길이 약 5미터, 밑지름 약 15~20센티미터) 한 그루를 베어와 볏가릿대를 세운다. 이를 마을 사람들은 “볏가리 세운다.”고 한다. 볏가리를 세우는 데 사용되는 재료로는 소나무·볏짚·오곡종자(벼·조·수수·기장·콩)·한지·무명천 등이 필요하다. 소나무는 윗가지만 남겨 놓고 잔가지는 모두 베어낸다. 볏짚은 삼방(三方)줄을 꼬는 데 이용된다. 삼방줄은 세 방향으로 소나무의 윗부분에 매어달고, 땅에 말뚝을 박아 고정한다. 삼방줄은 소나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동아줄을 엮듯이 하며, 닭벼슬처럼 짚을 길게 늘어뜨린다. 한편 오곡종자는 각 종자마다 한지에 싸서 무명천으로 감싼 다음 소나무와 삼방줄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에 매달아 놓는다. 또한 충남 서산시 대산면 운산리의 경우 나무를 소나무나 대나무 중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벼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을 거꾸로 틀어 줄을 맨다는 점이 다른 마을과 다르다. 이외에 다른 형태의 볏가릿대로는 충남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를 비롯한 지곡면 일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지역의 볏가릿대는 살아 있는 대나무 대신 죽은 대나무를 장대로 하고 그 맨 꼭대기에 수수대나 꿩장목을 묶어 놓는다.

속신과 금기

볏가릿대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아침 일찍 집안 어린애로 하여금 볏가릿대 주위를 돌면서 풍년 들게 해달라는 말을 해가 뜰 때까지 노래로 부르게 한다. 볏가릿대를 거둘 때에는 짚단 안에 넣었던 곡식이나 나뭇가지에 매달았던 곡식을 찧어서 떡을 만들어 먹는다. 떡의 크기는 손바닥만하기도 하고 새알심만하기도 하며, 떡 안에 콩이나 팥으로 소를 만들어 넣기도 한다. 이런 떡은 집안 식구끼리 먹지만 머슴이나 하인에게도 나누어 준다. 그러나 이웃집에는 나누어 주지 않는다. 볏가릿대를 헐기에 앞서 섬이나 가마니 같은 것을 가져다 곡물을 넣는 시늉을 하면서 큰 소리로 “벼가 몇 만 석이요.”, “조가 몇 천 석이요.”, “콩이 몇 백 석이요.”, “팥이 몇 십 석이요.” 하고 소리쳐서 마치 많이 수확한 것처럼 한다. 그러면 그해에 풍년이 들어 수확을 많이 거두게 된다고 한다. 한편 볏가릿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금기(禁忌)가 요구되기도 한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날에는 키가 작은 사람은 남의 집 방문을 삼가야 한다. 볏가리를 만든 14일에 찾아오는 손님의 키가 작고 큼에 따라서 그해 농작물의 성장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키가 큰 손님이 오면 오곡이 모두 크게 잘 자라지만 키가 작은 손님이 오면 곡물도 왜소(矮小)해져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또 이날 여인이 아침 일찍 찾아오면 재수가 없다고 전하므로 여인들의 가급적 외출을 피한다.

의의

농사는 해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주기성을 바탕으로 농경세시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농사가 생산과정에 따라 주기성을 띠고 있음에 따라 그에 따른 의례도 내용을 달리한다. 연초에는 대동으로 풍년을 기원하고, 성장기에는 농신(農神)에게 성장의 촉진을 기원하고, 수확기에는 조상과 여러 신들에게 감사의 예를 올린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볏가릿대 행사는 연초에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의례(祈豊儀禮)이다. 즉, 볏가릿대 세울 때의 시기와 장소, 볏가릿대 눕힐 때의 시기와 의례 등은 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볏가릿대를 세우는 시기인 음력 정월 대보름과 샘은 시공간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보름의 상징적 의미는 ‘보름-여성-풍요’라는 의미로 연결되고, 샘의 상징적 의미는 ‘샘-용수’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볏가릿대를 눕히는 시기인 2월 초하루는 세시풍속 상으로 볼 때 영등날·머슴날로도 불린다. 이 시점은 해동(解冬)이 되고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사의 축원 내용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러한 의례 역시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전승되던 볏가릿대세우기는 충남 서산·당진 등과 같은 내포 지역(內浦地域)을 비롯하여 전남 진도 등과 같은 일부 해안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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