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오세길(吳世吉)
갱신일 2016-11-29

정의

범어사의 창건 유래와 사찰 주변 시설의 이적(異蹟) 이야기로 범어사의 호국사찰 위상을 소개한 설화.

역사

범어사 창건 설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범어사창건사적(梵魚寺創建史蹟)』에 기록되어 있다. 『범어사창건사적』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5) 때 의상(義湘)대사가 지었다고 하나, 이는 의상의 생몰연대와 일치하지 않으므로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 18년인 678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헌 기록이 가지는 권위 때문인지 현재 범어사 창건과 관련된 다른 내용의 구비설화 전승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줄거리

신라 흥덕왕 때, 왜인이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신라를 침략하려 하였다. 왕이 근심하고 있을 때,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을 청하여 화엄신중기도(華嚴神衆祈禱)를 하면 왜인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이 그에 따라 하였더니, 왜선들끼리 서로 공격하여 모든 병사가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왕은 의상을 예공대사(銳公大師)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하였다. 범어사의 사찰명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승람』에 구체적으로 나오며, “동국(東國)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巨巖)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에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에다 물속에 범천의 고기가 놀았다.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분석

범어사 창건설화 외에도 범어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범어사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거처하는 대성암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전설이다. 청룡동에서 구포로 가는 스님과 구포에서 청룡동으로 가는 도인이 대성암 앞에서 우연히 만나 선문답을 나누다 나뭇가지를 꽂아 놓았다. 그것이 자라 지금의 느티나무가 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이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들려고 하다가 천둥과 번개 그리고 벼락이 쳐 주변의 왜병 20여 명이 즉사하였다는 이야기가 현재까지 전해진다.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 직후 범어사의 주지였던 묘전 스님이 꿈에 나타난 목조미륵불을 찾아 미륵전에 모셨는데, 보통은 불상을 동해바다 쪽으로 하여 안치하지만, 이 목조여래좌상은 왜국을 싫어해 서쪽으로 안치하였다고 한다.

의의

범어사와 관련한 설화는 범어사가 호국사찰이라는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범어사 창건설화는 범어사가 왜적 퇴치라는 호국 불교의 성격으로 세워진 사찰임을 명시하고 있다. 또 대성암 느티나무는 임진왜란 후 둥치가 썩어가다가 광복과 함께 새로운 움이 돋아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이 느티나무가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같은 맥락에서 목조여래좌상과 관련한 설화도 범어사가 호국 사찰이라는 특성을 드러낸다.

출처

東國輿地勝覽, 梵魚寺創建史蹟, 三國遺事, 금정이야기(주영택, 부산시 금정구 기획감사실, 2005).

참고문헌

금정과 범어사 관련 설화 연구(정무룡, 동양한문학회, 2008), 범어사지(한국학문헌연구소 편, 아세아문화사, 1989).

범어사

범어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오세길(吳世吉)
갱신일 2016-11-29

정의

범어사의 창건 유래와 사찰 주변 시설의 이적(異蹟) 이야기로 범어사의 호국사찰 위상을 소개한 설화.

역사

범어사 창건 설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범어사창건사적(梵魚寺創建史蹟)』에 기록되어 있다. 『범어사창건사적』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5) 때 의상(義湘)대사가 지었다고 하나, 이는 의상의 생몰연대와 일치하지 않으므로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 18년인 678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헌 기록이 가지는 권위 때문인지 현재 범어사 창건과 관련된 다른 내용의 구비설화 전승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줄거리

신라 흥덕왕 때, 왜인이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신라를 침략하려 하였다. 왕이 근심하고 있을 때,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을 청하여 화엄신중기도(華嚴神衆祈禱)를 하면 왜인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이 그에 따라 하였더니, 왜선들끼리 서로 공격하여 모든 병사가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왕은 의상을 예공대사(銳公大師)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하였다. 범어사의 사찰명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승람』에 구체적으로 나오며, “동국(東國)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巨巖)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에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에다 물속에 범천의 고기가 놀았다.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분석

범어사 창건설화 외에도 범어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범어사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거처하는 대성암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전설이다. 청룡동에서 구포로 가는 스님과 구포에서 청룡동으로 가는 도인이 대성암 앞에서 우연히 만나 선문답을 나누다 나뭇가지를 꽂아 놓았다. 그것이 자라 지금의 느티나무가 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이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들려고 하다가 천둥과 번개 그리고 벼락이 쳐 주변의 왜병 20여 명이 즉사하였다는 이야기가 현재까지 전해진다.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 직후 범어사의 주지였던 묘전 스님이 꿈에 나타난 목조미륵불을 찾아 미륵전에 모셨는데, 보통은 불상을 동해바다 쪽으로 하여 안치하지만, 이 목조여래좌상은 왜국을 싫어해 서쪽으로 안치하였다고 한다.

의의

범어사와 관련한 설화는 범어사가 호국사찰이라는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범어사 창건설화는 범어사가 왜적 퇴치라는 호국 불교의 성격으로 세워진 사찰임을 명시하고 있다. 또 대성암 느티나무는 임진왜란 후 둥치가 썩어가다가 광복과 함께 새로운 움이 돋아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이 느티나무가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같은 맥락에서 목조여래좌상과 관련한 설화도 범어사가 호국 사찰이라는 특성을 드러낸다.

출처

東國輿地勝覽, 梵魚寺創建史蹟, 三國遺事, 금정이야기(주영택, 부산시 금정구 기획감사실, 2005).

참고문헌

금정과 범어사 관련 설화 연구(정무룡, 동양한문학회, 2008), 범어사지(한국학문헌연구소 편, 아세아문화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