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정병모(鄭炳模)
갱신일 2017-02-09

정의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비롯하여 책, 악기, 서화, 서안, 바둑, 수석, 난초, 술병 등을 그린 조선시대 정물화.

역사

문방도란 용어는 정조 때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기록은 1783년(정조 7) 11월 27일 차비대령 화원의 녹취재를 위해 출제한 문제인 “금슬재어琴瑟在御”이다. 금슬재어는 금과 슬이 손닿는 곳에 있다는 뜻으로, 『시경詩經』 「정풍鄭風 여왈계명女曰鷄鳴」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금과 슬은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는 기물로써, 문방도의 시작이 문방사우가 아닌 악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만큼 문방도의 개념이 포괄하는 범주가 넓다는 것을 보여 준다. 1784년 12월 20일 기록에는 책가, 화주, 필연이 녹취재 문제로 출제되었다. 책가는 문방도에 관한 기록에서 문방사우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소재이다. 또한 1822년(순조 22) 녹취재 문제로는 “장 씨가 바친 보물”이 출제되었다. 여기서 보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문방도가 문방사우, 책가, 악기, 그리고 보물 등 진귀한 것을 소재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서화, 수석, 난, 금석, 바둑, 술병 등이 있다.
18세기와 19세기 궁중화 문방도의 양상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서울미술관 소장 <책거리>가 있다. 이 그림은 책을 중심으로 청동기, 문방구, 가구, 화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책없이 문방구와 청동기, 화병만으로 구성된 그림도 8폭 가운데 3폭이 된다. 옷칠한 종이에 섬세하고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린 궁중화풍의 문방도로 추정된다.
문방도는 19세기에도 차비대령 화원의 녹취재의 출제 문제로 계속 출제되고 있다. 가장 늦은 기록으로는 1897년(고종 16) 6월 13일 “천하에 둘도 없이 고운 붓이 산호 붓걸이에 걸려 있다.”라는 문제이다. 또한 진연과 같은 궁중 잔치에서도 문방도 병풍을 설치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화가들에 관한 기록에서도 문방도란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위항 문인인 유재건劉在建, 1793~1880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보면, 이윤민이 문방제구를 잘 그렸다고 했고, 유제건에게 이형록이 그린 여러 폭의 문방도병풍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문방도는 책거리를 가리킨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장승업을 중심으로 기명절지도가 유행하게 된다. 이미 18세기 강세황, 김홍도 등이 기명절지화로 분류할 수 있는 문방도를 그린 바 있지만, 장승업에 와서 비로소 성행한 것이다. 이 시기 유행한 기명절지화는 이전의 채색화풍의 문방도와 달리 수묵화의 기법을 사용하고 궁중장식화가 아닌 문인화로 그린 것이 특색이다. 장승업의 기명절지도는 그의 제자인 안중식과 조석진은 물론 서울 및 지방 화단에 널리 영향을 미쳤다.

내용

문방도에 등장하는 기물들은 문방사우처럼 문인 취향을 반영한 기물이 중심을 이룬다. 문방사우는 문방청완文房淸婉이라 하여 맑고 아름다운 아취가 있는 기물의 대명사이다. 아울러 문방도에는 진귀한 보물들도 적지 않다. 차비대령 화원의 녹취재 출제 제목을 보면, “장씨가 바친 보물”, “오로봉 형상의 붓”, “삼상 형상의 연지”, “금빛 자기”, “곱고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을 조각하여 만든 필가”, “천하에 둘도 없는 붓”, “산호 붓걸이” 등의 제목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문방도는 아취 있고 진기한 기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방도는 19세기 이후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기존의 문방도를 계승하는 경우이다. 이는 궁중이나 사대부 계층에서 채색기법의 궁중화풍으로 그려지는 책거리이다. 둘째, 문방도가 민간에 확산되면서 고상하고 진기한 기물에서 일상 생활용품으로 바뀌고 아취 있는 기물에서 세속적인 기물들로 대체되면서 유행하게 되는 민화 책거리이다. 셋째, 19세기 말 장승업을 중심으로 20세기 전반까지 서울과 지방화단에 유행한 기명절지이다. 이 그림은 중국식의 기물과 화병 등을 수묵기법과 문인화풍으로 그린 문방도인 것이다.
이러한 문방도는 중국 박고도博古圖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박고도는 자기, 동기, 옥기 등 각종 고기물을 중심으로 화훼, 과일 등을 첨가하여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북송대 휘종의 명으로 선화전宣和殿에 소장된 고이기古彛器를 그린 <선화박고도宣和博古圖>가 가장 이른 예이다.
문방도에서 문방사우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가 책거리이다. 책거리에는 책가인 서가가 있는 책가도와 서가가 없는 책거리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책가도는 차비대령화원 녹취재 문제처럼 휘장이 처진 책가도, 책만으로 가득 찬 책가도를 비롯하여 중국의 기물들로 가득찬 책가도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조선 후기 책거리로 유명한 화가로는 정조의 총애를 받은 김홍도, 장한종, 그리고 19세기의 이형록, 강달수 등이 있다. 특히 이형록은 할아버지 이종현, 아버지 이윤민에 이어 삼 대째 책거리로 명성을 떨쳤고, 이형록의 책거리는 사람들이 실제 서가인지 알고 다가서 보다가 웃었다고 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특징 및 의의

문방도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정물화이다. 문방도는 중국식의 박고도나 기명절지도도 있지만 한국식의 책거리도 있다. 이들은 단순히 기물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박고도처럼 길상적인 소망, 기명절지도처럼 문인 취향, 책거리처럼 정치와 행복을 염원하는 욕망이 깃들여져 있는 물질문화이다. 이를 통해서 그것을 수용하고 즐기는 그림의 주인공의 취향, 인격, 가치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20세기 대구 전통화단 기명절지화의 전개와 표현 양상(이인숙, 영남학24,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3), 개화기 서울 화단의 후원과 회화 활동 연구(김취정, 미술사학연구263, 한국미술사학회, 2009), 건륭연간 박고화훼화 연구(황해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손극홍의 청완도-명 말기 취미와 물질의 세계(유순영, 미술사학42, 미술사학연구회, 2014),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예술의전당·현대화랑,2016),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경기도박물관, 2012), 조선후기 궁중화원 연구(강관식, 돌베개, 2001).

문방도

문방도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정병모(鄭炳模)
갱신일 2017-02-09

정의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비롯하여 책, 악기, 서화, 서안, 바둑, 수석, 난초, 술병 등을 그린 조선시대 정물화.

역사

문방도란 용어는 정조 때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기록은 1783년(정조 7) 11월 27일 차비대령 화원의 녹취재를 위해 출제한 문제인 “금슬재어琴瑟在御”이다. 금슬재어는 금과 슬이 손닿는 곳에 있다는 뜻으로, 『시경詩經』 「정풍鄭風 여왈계명女曰鷄鳴」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금과 슬은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는 기물로써, 문방도의 시작이 문방사우가 아닌 악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만큼 문방도의 개념이 포괄하는 범주가 넓다는 것을 보여 준다. 1784년 12월 20일 기록에는 책가, 화주, 필연이 녹취재 문제로 출제되었다. 책가는 문방도에 관한 기록에서 문방사우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소재이다. 또한 1822년(순조 22) 녹취재 문제로는 “장 씨가 바친 보물”이 출제되었다. 여기서 보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문방도가 문방사우, 책가, 악기, 그리고 보물 등 진귀한 것을 소재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서화, 수석, 난, 금석, 바둑, 술병 등이 있다.18세기와 19세기 궁중화 문방도의 양상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서울미술관 소장 가 있다. 이 그림은 책을 중심으로 청동기, 문방구, 가구, 화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책없이 문방구와 청동기, 화병만으로 구성된 그림도 8폭 가운데 3폭이 된다. 옷칠한 종이에 섬세하고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린 궁중화풍의 문방도로 추정된다.문방도는 19세기에도 차비대령 화원의 녹취재의 출제 문제로 계속 출제되고 있다. 가장 늦은 기록으로는 1897년(고종 16) 6월 13일 “천하에 둘도 없이 고운 붓이 산호 붓걸이에 걸려 있다.”라는 문제이다. 또한 진연과 같은 궁중 잔치에서도 문방도 병풍을 설치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화가들에 관한 기록에서도 문방도란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위항 문인인 유재건劉在建, 1793~1880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보면, 이윤민이 문방제구를 잘 그렸다고 했고, 유제건에게 이형록이 그린 여러 폭의 문방도병풍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문방도는 책거리를 가리킨다.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장승업을 중심으로 기명절지도가 유행하게 된다. 이미 18세기 강세황, 김홍도 등이 기명절지화로 분류할 수 있는 문방도를 그린 바 있지만, 장승업에 와서 비로소 성행한 것이다. 이 시기 유행한 기명절지화는 이전의 채색화풍의 문방도와 달리 수묵화의 기법을 사용하고 궁중장식화가 아닌 문인화로 그린 것이 특색이다. 장승업의 기명절지도는 그의 제자인 안중식과 조석진은 물론 서울 및 지방 화단에 널리 영향을 미쳤다.

내용

문방도에 등장하는 기물들은 문방사우처럼 문인 취향을 반영한 기물이 중심을 이룬다. 문방사우는 문방청완文房淸婉이라 하여 맑고 아름다운 아취가 있는 기물의 대명사이다. 아울러 문방도에는 진귀한 보물들도 적지 않다. 차비대령 화원의 녹취재 출제 제목을 보면, “장씨가 바친 보물”, “오로봉 형상의 붓”, “삼상 형상의 연지”, “금빛 자기”, “곱고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을 조각하여 만든 필가”, “천하에 둘도 없는 붓”, “산호 붓걸이” 등의 제목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문방도는 아취 있고 진기한 기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이러한 문방도는 19세기 이후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기존의 문방도를 계승하는 경우이다. 이는 궁중이나 사대부 계층에서 채색기법의 궁중화풍으로 그려지는 책거리이다. 둘째, 문방도가 민간에 확산되면서 고상하고 진기한 기물에서 일상 생활용품으로 바뀌고 아취 있는 기물에서 세속적인 기물들로 대체되면서 유행하게 되는 민화 책거리이다. 셋째, 19세기 말 장승업을 중심으로 20세기 전반까지 서울과 지방화단에 유행한 기명절지이다. 이 그림은 중국식의 기물과 화병 등을 수묵기법과 문인화풍으로 그린 문방도인 것이다.이러한 문방도는 중국 박고도博古圖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박고도는 자기, 동기, 옥기 등 각종 고기물을 중심으로 화훼, 과일 등을 첨가하여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북송대 휘종의 명으로 선화전宣和殿에 소장된 고이기古彛器를 그린 가 가장 이른 예이다.문방도에서 문방사우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가 책거리이다. 책거리에는 책가인 서가가 있는 책가도와 서가가 없는 책거리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책가도는 차비대령화원 녹취재 문제처럼 휘장이 처진 책가도, 책만으로 가득 찬 책가도를 비롯하여 중국의 기물들로 가득찬 책가도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조선 후기 책거리로 유명한 화가로는 정조의 총애를 받은 김홍도, 장한종, 그리고 19세기의 이형록, 강달수 등이 있다. 특히 이형록은 할아버지 이종현, 아버지 이윤민에 이어 삼 대째 책거리로 명성을 떨쳤고, 이형록의 책거리는 사람들이 실제 서가인지 알고 다가서 보다가 웃었다고 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특징 및 의의

문방도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정물화이다. 문방도는 중국식의 박고도나 기명절지도도 있지만 한국식의 책거리도 있다. 이들은 단순히 기물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박고도처럼 길상적인 소망, 기명절지도처럼 문인 취향, 책거리처럼 정치와 행복을 염원하는 욕망이 깃들여져 있는 물질문화이다. 이를 통해서 그것을 수용하고 즐기는 그림의 주인공의 취향, 인격, 가치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20세기 대구 전통화단 기명절지화의 전개와 표현 양상(이인숙, 영남학24,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3), 개화기 서울 화단의 후원과 회화 활동 연구(김취정, 미술사학연구263, 한국미술사학회, 2009), 건륭연간 박고화훼화 연구(황해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손극홍의 청완도-명 말기 취미와 물질의 세계(유순영, 미술사학42, 미술사학연구회, 2014),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예술의전당·현대화랑,2016),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경기도박물관, 2012), 조선후기 궁중화원 연구(강관식, 돌베개,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