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내력

한자명

巫黨來歷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문헌자료

집필자 서대석(徐大錫)
갱신일 2016-10-28

정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무당의 굿거리를 그린 책. 작은 책과 큰 책 두 권으로 작은 책은 가로 17㎝, 세로 21㎝, 14면으로 되어 있고, 큰 책은 가로 19.5㎝, 세로 28㎝, 14면으로 되어 있다. 두 책 모두 표지에 ‘무당내력(巫黨來歷)’이란 서명(書名)을 종서로 쓰고 있다. 큰 책 표지에는 서명 밑에 난곡수장(蘭谷手粧)이라고 종서하고 낙관을 찍어 놓았다.

내용

「무당내력」은 조선조 말기에 난곡(蘭谷)이란 호를 사용하는 사람이 서울 굿의 각 거리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한 책자이다. 두 책자의 크기는 다르나 같은 내용의 서문 및 굿거리의 그림과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일한 사람의 저작으로 판단된다. 작은 책 서문 말미에 ‘시을유중춘(時乙酉仲春) 난곡파적이(蘭谷破寂耳)’라고 쓴 뒤 ‘명의학도(明義學道)’라는 전서(篆書)낙관을 찍어 놓았다. 이를 근거로 이 책은 1825년 4월이나 1885년 4월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책의 서문을 보면 단군이 태백산 단목하(檀木下)에서 신교(神敎)를 개설하고 이를 부루(扶婁)에게 가르쳤는데 여기에서 무당이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토기에 벼를 담아 위성하는 부루단지를 무속신앙의 기원으로 기술하면서 신라 중엽 법우화상(法祐和尙)의 여덟 딸들이 팔도무당의 시원이라고 하는 설에 대하여 근거가 없는 와언(訛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작자는 단군에 대한 숭앙이 강했던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림으로 그려진 굿거리는 다음과 같다.

작은 책: 1. (부정거리) 2. 감응청배(感應請陪•속칭 산바리기) 3. 제석거리(帝釋巨里) 4. 별성거리(別星巨里) 5. 대거리(大巨里•속칭 최장군거리) 6. 호구거리(戶口巨里) 7. 조상거리(祖上巨里) 8. 만신말명 9. (축귀) 10. 창부거리(唱婦巨里) 11. 성조거리(成造巨里) 12. 구릉 13. 뒷젼

큰 책: 1. 부정거리(不精巨里) 2. 제석거리(帝釋巨里) 3. 대거리(大巨里•속칭 최장군거리) 4. 호구거리(戶口巨里) 5. 별성거리(別星巨里) 6. 감응청배(感應請陪) 7. 조상거리(祖上巨里) 8. 만신말명 9. 구릉거리(巨里) 10. (성조거리) 11. 창부거리(唱婦巨里) 12. 축귀(逐鬼) 13. 뒷젼

두 책의 굿거리 순서와 해설 부분이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이는 굿거리 그림을 각각 그리고 이들을 모아 묶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굿거리 명칭을 쓰지 않은 것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책의 명칭을 참고하여 괄호 안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굿거리에 대한 해설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번역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부정거리: 4명의 악사를 그린 그림인데 작은 책에는 그림만 있고 큰 책에는 ‘부정거리(不精巨里)’라고 되어있다. 굿을 시작할 때 부정한 생각이나 잡귀가 있으면 이를 안정(安定)시키기 위한 굿거리이다.

  2. 감응청배: 제상과 쾌자를 입고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무녀를 그린 그림. 치성을 드릴 때 무녀가 태백산을 바라보고 성령감응을 세 번 부르는데 단군을 모시는 것이다.

  3. 제석거리: 제상과 고깔을 쓰고 흰 장삼을 입고 방울과 부채를 양손에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삼신제석(三神帝釋)인 단군성조(檀君聖祖)를 일컬으며 10세 전 어린이를 보호하는 신이다.

  4. 별성거리: 제상과 흑립에 칼과 삼지창을 양손에 등 장군 모습을 그린 그림. 농경을 처음 백성에게 가르친 단군의 신하 고시례(高矢禮)를 모시는 거리이다. 근일에는 최영장군이나 사도세자라고 하는데 이는 근거가 없다.

  5. 대거리: 제상과 홍갓에 남철릭을 입고 칼과 삼지창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옛날에는 단군의 복색을 썼지만 근래에는 최영장군 복색을 쓴다고 한다.

  6. 호구거리: 제상과 노란색 저고리에 홍색 치마를 입고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천연두신을 모시는 굿거리이다. 최장군의 딸 혹은 첩이라고 하는데 이는 망발이라고 한다.

  7. 조상거리: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조상신이 길흉화복을 미리 알려준다고 하는데 이는 무녀의 토색질에 불과하다고 한다.

  8. 만신말명: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무녀를 만신이라고 하며, 이는 무녀의 연원을 말해준다고 한다.

  9. 축귀거리: 흑전립에 검은색 쾌자를 입고 오색신기를 양손에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오방신장이 잡귀잡신과 제반 살격(殺格)을 구축하는데 근일에 병 치성에서 많이 행한다고 한다.

  10. 창부거리: 흑립을 쓰고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무녀 가운데 젊고 아름다운 자를 뽑아 유희를 하는 거리인데 돈을 거두어들이기 위한 것으로 60년 이래 성행하였다고 한다.

  11. 성조거리: 갓을 쓰고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단군 시절에 무녀로 하여금 가옥의 축조를 축하하도록 한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2. 구릉거리: 붉은 갓과 두루마기에 부채와 방울을 든 남자를 그린 그림. 명나라 때 사신이 수로로 무사히 왕래하도록 비는 굿거리라고 한다.

  13. 뒷젼: 치마저고리를 입고 양손에 북어를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잡귀를 풀어먹이는 굿거리이다.

「무당내력」은 각 굿거리에서 굿하는 무녀의 모습과 제물을 차려 놓은 굿상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무녀는 양팔을 벌리고 쾌자나 장삼 혹은 치마, 저고리 등을 입고 있으며 양 손에는 방울이나 부채 또는 칼과 삼지창을 들고 있다. 이러한 그림은 굿거리에 등장하는 주무(主巫)의 무복(巫服)과 무구(巫具)를 표현한 것으로 설명적 회화의 성격이 강하고 미술적 측면에서 조잡함을 면치 못한다. 굿거리 해설은 한문으로 간단히 쓰고 있는데 감응, 제석, 별성, 대거리, 성조 등 굿거리가 모두 단군에서 유래된 것이고 근일 최영 장군이나 사도세자를 모시는 일에 대해 망발이라고 부정적 비판을 하고 있다. 이 그림 책자는 19세기에 단군신앙이 강한 인물이 무속의 연원을 단군에서 찾으면서 서울 굿의 각 거리를 그림과 해설로 기록한 것으로 최초의 무속 회화자료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무당내력 해제 (서대석, 무당내력 영인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6)

무당내력

무당내력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문헌자료

집필자 서대석(徐大錫)
갱신일 2016-10-28

정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무당의 굿거리를 그린 책. 작은 책과 큰 책 두 권으로 작은 책은 가로 17㎝, 세로 21㎝, 14면으로 되어 있고, 큰 책은 가로 19.5㎝, 세로 28㎝, 14면으로 되어 있다. 두 책 모두 표지에 ‘무당내력(巫黨來歷)’이란 서명(書名)을 종서로 쓰고 있다. 큰 책 표지에는 서명 밑에 난곡수장(蘭谷手粧)이라고 종서하고 낙관을 찍어 놓았다.

내용

「무당내력」은 조선조 말기에 난곡(蘭谷)이란 호를 사용하는 사람이 서울 굿의 각 거리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한 책자이다. 두 책자의 크기는 다르나 같은 내용의 서문 및 굿거리의 그림과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일한 사람의 저작으로 판단된다. 작은 책 서문 말미에 ‘시을유중춘(時乙酉仲春) 난곡파적이(蘭谷破寂耳)’라고 쓴 뒤 ‘명의학도(明義學道)’라는 전서(篆書)낙관을 찍어 놓았다. 이를 근거로 이 책은 1825년 4월이나 1885년 4월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책의 서문을 보면 단군이 태백산 단목하(檀木下)에서 신교(神敎)를 개설하고 이를 부루(扶婁)에게 가르쳤는데 여기에서 무당이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토기에 벼를 담아 위성하는 부루단지를 무속신앙의 기원으로 기술하면서 신라 중엽 법우화상(法祐和尙)의 여덟 딸들이 팔도무당의 시원이라고 하는 설에 대하여 근거가 없는 와언(訛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작자는 단군에 대한 숭앙이 강했던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림으로 그려진 굿거리는 다음과 같다. 작은 책: 1. (부정거리) 2. 감응청배(感應請陪•속칭 산바리기) 3. 제석거리(帝釋巨里) 4. 별성거리(別星巨里) 5. 대거리(大巨里•속칭 최장군거리) 6. 호구거리(戶口巨里) 7. 조상거리(祖上巨里) 8. 만신말명 9. (축귀) 10. 창부거리(唱婦巨里) 11. 성조거리(成造巨里) 12. 구릉 13. 뒷젼 큰 책: 1. 부정거리(不精巨里) 2. 제석거리(帝釋巨里) 3. 대거리(大巨里•속칭 최장군거리) 4. 호구거리(戶口巨里) 5. 별성거리(別星巨里) 6. 감응청배(感應請陪) 7. 조상거리(祖上巨里) 8. 만신말명 9. 구릉거리(巨里) 10. (성조거리) 11. 창부거리(唱婦巨里) 12. 축귀(逐鬼) 13. 뒷젼 두 책의 굿거리 순서와 해설 부분이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이는 굿거리 그림을 각각 그리고 이들을 모아 묶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굿거리 명칭을 쓰지 않은 것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책의 명칭을 참고하여 괄호 안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굿거리에 대한 해설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번역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정거리: 4명의 악사를 그린 그림인데 작은 책에는 그림만 있고 큰 책에는 ‘부정거리(不精巨里)’라고 되어있다. 굿을 시작할 때 부정한 생각이나 잡귀가 있으면 이를 안정(安定)시키기 위한 굿거리이다. 감응청배: 제상과 쾌자를 입고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무녀를 그린 그림. 치성을 드릴 때 무녀가 태백산을 바라보고 성령감응을 세 번 부르는데 단군을 모시는 것이다. 제석거리: 제상과 고깔을 쓰고 흰 장삼을 입고 방울과 부채를 양손에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삼신제석(三神帝釋)인 단군성조(檀君聖祖)를 일컬으며 10세 전 어린이를 보호하는 신이다. 별성거리: 제상과 흑립에 칼과 삼지창을 양손에 등 장군 모습을 그린 그림. 농경을 처음 백성에게 가르친 단군의 신하 고시례(高矢禮)를 모시는 거리이다. 근일에는 최영장군이나 사도세자라고 하는데 이는 근거가 없다. 대거리: 제상과 홍갓에 남철릭을 입고 칼과 삼지창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옛날에는 단군의 복색을 썼지만 근래에는 최영장군 복색을 쓴다고 한다. 호구거리: 제상과 노란색 저고리에 홍색 치마를 입고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천연두신을 모시는 굿거리이다. 최장군의 딸 혹은 첩이라고 하는데 이는 망발이라고 한다. 조상거리: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조상신이 길흉화복을 미리 알려준다고 하는데 이는 무녀의 토색질에 불과하다고 한다. 만신말명: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무녀를 만신이라고 하며, 이는 무녀의 연원을 말해준다고 한다. 축귀거리: 흑전립에 검은색 쾌자를 입고 오색신기를 양손에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오방신장이 잡귀잡신과 제반 살격(殺格)을 구축하는데 근일에 병 치성에서 많이 행한다고 한다. 창부거리: 흑립을 쓰고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무녀 가운데 젊고 아름다운 자를 뽑아 유희를 하는 거리인데 돈을 거두어들이기 위한 것으로 60년 이래 성행하였다고 한다. 성조거리: 갓을 쓰고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를 그린 그림. 단군 시절에 무녀로 하여금 가옥의 축조를 축하하도록 한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구릉거리: 붉은 갓과 두루마기에 부채와 방울을 든 남자를 그린 그림. 명나라 때 사신이 수로로 무사히 왕래하도록 비는 굿거리라고 한다. 뒷젼: 치마저고리를 입고 양손에 북어를 든 무녀를 그린 그림. 잡귀를 풀어먹이는 굿거리이다. 「무당내력」은 각 굿거리에서 굿하는 무녀의 모습과 제물을 차려 놓은 굿상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무녀는 양팔을 벌리고 쾌자나 장삼 혹은 치마, 저고리 등을 입고 있으며 양 손에는 방울이나 부채 또는 칼과 삼지창을 들고 있다. 이러한 그림은 굿거리에 등장하는 주무(主巫)의 무복(巫服)과 무구(巫具)를 표현한 것으로 설명적 회화의 성격이 강하고 미술적 측면에서 조잡함을 면치 못한다. 굿거리 해설은 한문으로 간단히 쓰고 있는데 감응, 제석, 별성, 대거리, 성조 등 굿거리가 모두 단군에서 유래된 것이고 근일 최영 장군이나 사도세자를 모시는 일에 대해 망발이라고 부정적 비판을 하고 있다. 이 그림 책자는 19세기에 단군신앙이 강한 인물이 무속의 연원을 단군에서 찾으면서 서울 굿의 각 거리를 그림과 해설로 기록한 것으로 최초의 무속 회화자료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무당내력 해제 (서대석, 무당내력 영인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