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김상보(金尙寶)
갱신일 2016-10-13

정의

곡식 가루를 시루에 안쳐 찌거나 물에 삶아 만들고, 혹은 기름에 지져서 만든 음식의 총칭.

역사

역사적으로 의 출현은 찜기인 시루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 시루는 청동기시대에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하여 철기시대 초기에는 전국적으로 크게 보급되었다. 이는 청동기시대 이후 발전된 떡이 철기시대 초기에 이미 널리 보급되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곡물을 가루로 만들거나 혹은 곡물 자체를 시루에 담아 찌는 첫 번째 단계를 거친다. 중국에서는 가루로 만든 밀을 재료로하여 만든 음식을 병餅(밀가루 떡 ‘병’)이라 하였고, 밀가루 이외의 곡물(쌀, 조, 기장, 콩 등)로 만든 떡을 이餌(떡 ‘이’)라 하였다.

이것은 더 세분되어 곡물 자체를 쪄서 절구에 담아친 것을 자餈(인절미 ‘자’)라 하고,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담아 찐 것을 고糕(시루떡 ‘고’, 가루떡 ‘고’)라 하였는데, 고를 또 세분하여 시루에서 작고 둥글게 쪄낸 것을 원䬧(떡 ‘원’)이라 하고, 원 속에 소를 넣고 만든 것을 단團이라 하였다. 한대漢代의 『방언方言』에 이미 ‘이’에는 ‘고’와 ‘자’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쌀・조・기장 등으로 시루떡과 인절미를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크게 ‘고’와 ‘자’ 두 종류로 나눈 까닭은 차지지 않은 곡물로 만든 떡과 차진 곡물로 만든 떡을 분류하기 위해서였다. 멥쌀이나 메조와 같이 차지지 않은 곡물은 가루로 만들어서 쪄서 익히면 더욱 쉽게 떡을 만들 수 있다.

멥쌀이나 메조 등을 가루로 만드는 기술은 밀로 밀가루를 만드는 제분 기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밀은 배젖 부분이 부서지기 쉽다. 약간의 도정을 거쳐도 배젖 부분이 부서져 가루가 된다. 이때 체를 사용하여 밀기울(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과 밀가루를 분리한다. 제분 과정에 사용하는 도구로는 맷돌, 연자매, 명주로 만든 깁체가 있다. 우선 맷돌이나 연자매로 밀을 간 다음 깁체로 쳐 내리면 고운 밀가루를 얻게 된다. 맷돌, 연자매와 불가분의 관계인 깁체는 중국의 진대秦代와 한대에 발전하였다. 곡류 제분의 첫 번째 단계는 밀을 원료로 밀가루를 만드는 것이 었으며, 이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중국에서는 병餅이라 부른 것이다.

한반도에서 밀의 생산량은 매우 적거나 거의 없었다.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밀가루는 너무 귀해서 ‘진말眞末’이라 불렸다. 중국 송宋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이 123년(고려 인종 원년)에 지은『고려도경高麗圖經』에 의하면, 밀은 중국 화북華北에서 수입하여야만 하는 귀한 곡식이었다. 중국 화북은 밀이 흔하여, 밀가루로 만든 떡을 병餅이라 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병餅자만을 채택하여 쌀로 제분해서 만든 떡을 ‘병’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대에는 찰기가 있는 곡물을 찰기가 없는 곡물보다 귀하게 여겼다. 『예기禮記』나 『의례儀禮』는 차진 곡물로 만든 음식이 상등임을 분명히 지적하였다. 찰벼, 찰기장, 차조 등은 시루에 담아 찔 경우 점착력과 응고력이 강한 점성의 전분이 된다. 이것을 절구 속에 담아 치면 부드러운 질감의 떡을 만들 수 있으며, 이것이 이른바 ‘자餈’, 즉 인절미[引粘米]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멥쌀을 써서 ‘자’를 만들면 더욱 차진 상등품의 떡이 된다 . 인절미가 찹쌀 자체를 시루에 담아 쪄내어 친 떡이라면, 흰떡[白餠] 즉 절편은 가루로 만든 멥쌀을 시루에 담아 쪄내어 쳐서 만든 ‘자’이다.

병餠→ 고糕: 시루떡
자餈: 인절미
흰떡(가래떡, 절편)

중국에서는 삼국三國(220~280)시대부터 축력畜力을 이용하는 맷돌인 연자매가 등장하였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610년(고구려 영양왕 21)에 고구려에서 승려담징曇徵이 와서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법륭사法隆寺의 벽화도 그리는 한편, 연애碾磑(연자매와 맷돌)도 만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일찍이 연자매로 제분했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24년(신라 유리왕 원년) 남해왕이 사망한 뒤, 태자 유리가 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하였으나, 떡[餠]을 깨물어 나타나는 잇자국으로 치아의 숫자를 헤아려 유리가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이있다. 이 떡은 인절미가 아니라 흰떡일 가능성이 있다. 쌀 낟알을 물에 담가 연해지면 맷돌 또는 연자매로 갈거나 절구에 담아 찧어서 습식 제분을 하고 이 가루를 시루에 켜켜로 담아 쪄내면 시루떡이 된다. 이를 절구에 담아 치면 흰떡이 된다.

내용

고려시대에 불교가 융성하자 은 소선素膳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발전하였다. 조선왕실은 고려왕실의 제례 문화를 속례俗禮로서 받아들였다. 1474년(성종 5)에 완성한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제능침기신대제진설도諸陵寢忌辰大祭陳設圖」에 나오는 유병油餅, 절병切餠, 보시병甫是餠, 당고병唐糕餠, 두단자豆團子, 경단敬團, 유사병油砂餠, 상화霜花, 자박병自朴餠을 통하여 고려왕실 떡 문화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다.

유병은 찹쌀가루 반죽을 절병 크기로 빚어 참기름에 지진 떡이다. 절병은 멥쌀가루를 쪄서 원형으로 빚어 만든 절편이다. 보시병은 멥쌀가루로 절편과 같이 만들되 반달 형태로 빚어 만든 떡이다. 당고병은 밀가루 반죽으로 절병과 같은 형태로 만든 떡이다. 두단자는 찹쌀가루를 쪄서 익혀 백두말白豆末과 잣가루로 고물을 입혀만든 단자이다. 경단은 찹쌀가루를 단자 크기로 빚어 삶아 콩가루와 잣가루로 고물을 입힌 것이다. 유사병은 찹쌀가루로 경단 같이 만들되 참기름에 볶아 익힌 밀가루를 고물로 입힌 떡이다. 상화는 밀가루 반죽에 술을 넣고 발효시킨 다음, 소로 꿀에 버무린 콩가루를 넣고 빚어서 시루에서 쪄내고 잣가루를 고물로 입힌 것이다. 자박병은 찹쌀가루 반죽을 단자 크기로 빚되 꿀과 섞은 콩가루 소를 넣고 참기름에 지진 떡이다.

조선시대에 떡은 더욱 체계화되었다. 『진찬의궤進饌儀軌』와 『진연의궤進宴儀軌』를 보면, 찹쌀로 만든 떡과 멥쌀로 만든 떡을 분류하였는데, 전자를 ‘점증병’(찹쌀을 시루에 담아 쪄서 만든 떡), 후자를 ‘경증병’(멥쌀가루를 시루에 담아 쪄서 만든 떡)이라 했다.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 점증병粘甑餠: 초두炒豆점증병, 석이石耳점증병, 녹두菉豆점증병, 밀蜜점증병, 임자荏子점증병, 신감초辛甘草점증병, 백두白豆점증병, 합병盒餠, 후병厚餠, 석이밀설기石耳蜜雪只, 약반藥飯, 석이단자石耳團子, 청애靑艾단자, 신감초단자, 잡과병雜果餠, 인절미[引粘米].
• 경증병粳甑餠: 백두경증병, 녹두경증병, 신감초경증병, 석이경증병, 증병蒸餠, 석이밀설기, 신감초말설기辛甘草末雪只, 잡과밀설기, 밀설기蜜雪只, 백설기白雪只, 산병散餠, 절병切餠.

이상의 떡은 ‘고’(시루떡)와 ‘자’(인절미, 절편)이다. 이밖에 전병煎餠류가 더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찹쌀가루 반죽을 단자 크기로 빚어 참기름에 지져낸 떡인 유병이나 자박병을 전병류煎餠類로 분류하여, 화전花煎・산삼병山蔘餠・조악병助岳餠이라 했다.

조선시대의 떡류는 양반사회와 서민에게 영향을 미쳤다. 반가班家에서 나온 고조리서古調理書에는 왕실의 영향을 받아 향토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다양한 떡류가 등장한다. 그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과 같다.

• 『도문대작屠門大嚼』(1611년): 애고艾糕(쑥버무리), 유엽병楡葉餠(느티잎떡), 두견화전杜鵑花煎(진달래 화전), 이화전梨花煎(배꽃전), 장미전, 두텁떡, 국화전, 시율나병柹栗糯餠(곶감과 밤이 든 찰떡), 증병蒸餠(증편), 월병月餠, 삼병蔘餠, 설병舌餠, 자병煮餠.
•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1670년): 증편蒸片, 밤설기, 잡과편雜果片, 석이편, 인절미, 두견화전, 장미화전, 출단화전.
• 『산림경제山林經濟』(1700년 경): 시고杮糕(곶감단자), 율고栗糕(밤시루떡), 방검병防儉餠(잡과병), 석이병, 경고瓊糕(두텁떡).
•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 백설고, 권전병捲煎餠, 유자단자, 원소병元宵餠, 승검단자, 석탄병惜呑餠, 도행병桃杏餠, 햇실과떡, 혼돈병渾沌餠, 잡과편, 증편, 석이병, 두텁떡, 송기떡, 무떡, 백설기, 대추조악, 꽃전, 송편, 인절미.
• 『시의전서是議全書』(1800년대 말): 팥편, 녹두팔편, 팥찰편, 꿀찰편, 깨찰편, 꿀편, 승검초편, 백편, 잡과편, 두텁떡, 무떡, 적복령편, 상실편, 막우설기, 호박떡, 증편, 석이단자, 승검초단자, 건시단자, 밤단자 , 송편, 쑥송편, 대추인절미, 깨인절미, 쑥인절미, 쑥절편, 송기절편, 개피떡, 어름소편, 꼽장떡, 골무편, 약식, 흰주악, 대추주악, 밤주악, 생산승, 화전.

특징 및 의의

떡류는 돌잔치, 혼례, 환갑연, 제례 같은 행사가 있을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찬품饌品이었으므로, 왕실이나 반가, 서민들의 잔칫상에 반드시 올랐다. 상에 올릴 때에는 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하여 꿀을 곁들여 냈다. 이 곁들이는 꿀을 민가에서는 편‘ 청片淸’, 왕실에서는 ‘추청追淸’이라 했다. 편片은 편떡[片餠]의 편을, 청淸은 맑은 꿀을 나타내는 청밀淸蜜의 청을 지칭하는 것으로 ‘편떡에 곁들이는 청밀’을 줄여서 ‘편청’이라 한 것이다. 추追는 쫓을 ‘추’, 청은 청밀의 청이니 추청이란 떡에 따라다니는(곁들이는) 꿀이란 뜻이다.

“고사떡을 먹으면 재수가 있다”, “꿈에 떡 맛보듯”, “굿도 볼 겸 떡도 먹을 겸 간다”, “귀신 떡 먹듯 한다 ”, “귀신은 떡으로 사귀고 사람은 정으로 사귄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돌떡을 해주지 않으면 자주 넘어진다”, “들어오는 떡을 찍어 먹어도 조청은 고아 두어야 한다” 등의 속담이 생길 정도로 지금까지도 떡은 귀한 찬품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高麗圖經, 國朝五禮儀序例, 閨閤叢書, 屠門大嚼, 方言, 山林經濟, 三國史記, 是議全書, 飮食知味方, 日本書紀, 進宴儀軌, 進饌儀軌, 조선시대의 음식문화(김상보, 가람기획, 2005),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김상보, 수학사, 1995),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김상보, 광문각, 1997).

떡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김상보(金尙寶)
갱신일 2016-10-13

정의

곡식 가루를 시루에 안쳐 찌거나 물에 삶아 만들고, 혹은 기름에 지져서 만든 음식의 총칭.

역사

역사적으로 떡의 출현은 찜기인 시루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 시루는 청동기시대에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하여 철기시대 초기에는 전국적으로 크게 보급되었다. 이는 청동기시대 이후 발전된 떡이 철기시대 초기에 이미 널리 보급되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곡물을 가루로 만들거나 혹은 곡물 자체를 시루에 담아 찌는 첫 번째 단계를 거친다. 중국에서는 가루로 만든 밀을 재료로하여 만든 음식을 병餅(밀가루 떡 ‘병’)이라 하였고, 밀가루 이외의 곡물(쌀, 조, 기장, 콩 등)로 만든 떡을 이餌(떡 ‘이’)라 하였다. 이것은 더 세분되어 곡물 자체를 쪄서 절구에 담아친 것을 자餈(인절미 ‘자’)라 하고,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담아 찐 것을 고糕(시루떡 ‘고’, 가루떡 ‘고’)라 하였는데, 고를 또 세분하여 시루에서 작고 둥글게 쪄낸 것을 원䬧(떡 ‘원’)이라 하고, 원 속에 소를 넣고 만든 것을 단團이라 하였다. 한대漢代의 『방언方言』에 이미 ‘이’에는 ‘고’와 ‘자’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쌀・조・기장 등으로 시루떡과 인절미를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크게 ‘고’와 ‘자’ 두 종류로 나눈 까닭은 차지지 않은 곡물로 만든 떡과 차진 곡물로 만든 떡을 분류하기 위해서였다. 멥쌀이나 메조와 같이 차지지 않은 곡물은 가루로 만들어서 쪄서 익히면 더욱 쉽게 떡을 만들 수 있다. 멥쌀이나 메조 등을 가루로 만드는 기술은 밀로 밀가루를 만드는 제분 기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밀은 배젖 부분이 부서지기 쉽다. 약간의 도정을 거쳐도 배젖 부분이 부서져 가루가 된다. 이때 체를 사용하여 밀기울(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과 밀가루를 분리한다. 제분 과정에 사용하는 도구로는 맷돌, 연자매, 명주로 만든 깁체가 있다. 우선 맷돌이나 연자매로 밀을 간 다음 깁체로 쳐 내리면 고운 밀가루를 얻게 된다. 맷돌, 연자매와 불가분의 관계인 깁체는 중국의 진대秦代와 한대에 발전하였다. 곡류 제분의 첫 번째 단계는 밀을 원료로 밀가루를 만드는 것이 었으며, 이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중국에서는 병餅이라 부른 것이다. 한반도에서 밀의 생산량은 매우 적거나 거의 없었다.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밀가루는 너무 귀해서 ‘진말眞末’이라 불렸다. 중국 송宋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이 123년(고려 인종 원년)에 지은『고려도경高麗圖經』에 의하면, 밀은 중국 화북華北에서 수입하여야만 하는 귀한 곡식이었다. 중국 화북은 밀이 흔하여, 밀가루로 만든 떡을 병餅이라 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병餅자만을 채택하여 쌀로 제분해서 만든 떡을 ‘병’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대에는 찰기가 있는 곡물을 찰기가 없는 곡물보다 귀하게 여겼다. 『예기禮記』나 『의례儀禮』는 차진 곡물로 만든 음식이 상등임을 분명히 지적하였다. 찰벼, 찰기장, 차조 등은 시루에 담아 찔 경우 점착력과 응고력이 강한 점성의 전분이 된다. 이것을 절구 속에 담아 치면 부드러운 질감의 떡을 만들 수 있으며, 이것이 이른바 ‘자餈’, 즉 인절미[引粘米]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멥쌀을 써서 ‘자’를 만들면 더욱 차진 상등품의 떡이 된다 . 인절미가 찹쌀 자체를 시루에 담아 쪄내어 친 떡이라면, 흰떡[白餠] 즉 절편은 가루로 만든 멥쌀을 시루에 담아 쪄내어 쳐서 만든 ‘자’이다. 병餠→ 고糕: 시루떡자餈: 인절미흰떡(가래떡, 절편) 중국에서는 삼국三國(220~280)시대부터 축력畜力을 이용하는 맷돌인 연자매가 등장하였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610년(고구려 영양왕 21)에 고구려에서 승려담징曇徵이 와서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법륭사法隆寺의 벽화도 그리는 한편, 연애碾磑(연자매와 맷돌)도 만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일찍이 연자매로 제분했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24년(신라 유리왕 원년) 남해왕이 사망한 뒤, 태자 유리가 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하였으나, 떡[餠]을 깨물어 나타나는 잇자국으로 치아의 숫자를 헤아려 유리가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이있다. 이 떡은 인절미가 아니라 흰떡일 가능성이 있다. 쌀 낟알을 물에 담가 연해지면 맷돌 또는 연자매로 갈거나 절구에 담아 찧어서 습식 제분을 하고 이 가루를 시루에 켜켜로 담아 쪄내면 시루떡이 된다. 이를 절구에 담아 치면 흰떡이 된다.

내용

고려시대에 불교가 융성하자 떡은 소선素膳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발전하였다. 조선왕실은 고려왕실의 제례 문화를 속례俗禮로서 받아들였다. 1474년(성종 5)에 완성한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제능침기신대제진설도諸陵寢忌辰大祭陳設圖」에 나오는 유병油餅, 절병切餠, 보시병甫是餠, 당고병唐糕餠, 두단자豆團子, 경단敬團, 유사병油砂餠, 상화霜花, 자박병自朴餠을 통하여 고려왕실 떡 문화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다. 유병은 찹쌀가루 반죽을 절병 크기로 빚어 참기름에 지진 떡이다. 절병은 멥쌀가루를 쪄서 원형으로 빚어 만든 절편이다. 보시병은 멥쌀가루로 절편과 같이 만들되 반달 형태로 빚어 만든 떡이다. 당고병은 밀가루 반죽으로 절병과 같은 형태로 만든 떡이다. 두단자는 찹쌀가루를 쪄서 익혀 백두말白豆末과 잣가루로 고물을 입혀만든 단자이다. 경단은 찹쌀가루를 단자 크기로 빚어 삶아 콩가루와 잣가루로 고물을 입힌 것이다. 유사병은 찹쌀가루로 경단 같이 만들되 참기름에 볶아 익힌 밀가루를 고물로 입힌 떡이다. 상화는 밀가루 반죽에 술을 넣고 발효시킨 다음, 소로 꿀에 버무린 콩가루를 넣고 빚어서 시루에서 쪄내고 잣가루를 고물로 입힌 것이다. 자박병은 찹쌀가루 반죽을 단자 크기로 빚되 꿀과 섞은 콩가루 소를 넣고 참기름에 지진 떡이다. 조선시대에 떡은 더욱 체계화되었다. 『진찬의궤進饌儀軌』와 『진연의궤進宴儀軌』를 보면, 찹쌀로 만든 떡과 멥쌀로 만든 떡을 분류하였는데, 전자를 ‘점증병’(찹쌀을 시루에 담아 쪄서 만든 떡), 후자를 ‘경증병’(멥쌀가루를 시루에 담아 쪄서 만든 떡)이라 했다.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 점증병粘甑餠: 초두炒豆점증병, 석이石耳점증병, 녹두菉豆점증병, 밀蜜점증병, 임자荏子점증병, 신감초辛甘草점증병, 백두白豆점증병, 합병盒餠, 후병厚餠, 석이밀설기石耳蜜雪只, 약반藥飯, 석이단자石耳團子, 청애靑艾단자, 신감초단자, 잡과병雜果餠, 인절미[引粘米].• 경증병粳甑餠: 백두경증병, 녹두경증병, 신감초경증병, 석이경증병, 증병蒸餠, 석이밀설기, 신감초말설기辛甘草末雪只, 잡과밀설기, 밀설기蜜雪只, 백설기白雪只, 산병散餠, 절병切餠. 이상의 떡은 ‘고’(시루떡)와 ‘자’(인절미, 절편)이다. 이밖에 전병煎餠류가 더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찹쌀가루 반죽을 단자 크기로 빚어 참기름에 지져낸 떡인 유병이나 자박병을 전병류煎餠類로 분류하여, 화전花煎・산삼병山蔘餠・조악병助岳餠이라 했다. 조선시대의 떡류는 양반사회와 서민에게 영향을 미쳤다. 반가班家에서 나온 고조리서古調理書에는 왕실의 영향을 받아 향토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다양한 떡류가 등장한다. 그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과 같다. • 『도문대작屠門大嚼』(1611년): 애고艾糕(쑥버무리), 유엽병楡葉餠(느티잎떡), 두견화전杜鵑花煎(진달래 화전), 이화전梨花煎(배꽃전), 장미전, 두텁떡, 국화전, 시율나병柹栗糯餠(곶감과 밤이 든 찰떡), 증병蒸餠(증편), 월병月餠, 삼병蔘餠, 설병舌餠, 자병煮餠.•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1670년): 증편蒸片, 밤설기, 잡과편雜果片, 석이편, 인절미, 두견화전, 장미화전, 출단화전.• 『산림경제山林經濟』(1700년 경): 시고杮糕(곶감단자), 율고栗糕(밤시루떡), 방검병防儉餠(잡과병), 석이병, 경고瓊糕(두텁떡).•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 백설고, 권전병捲煎餠, 유자단자, 원소병元宵餠, 승검단자, 석탄병惜呑餠, 도행병桃杏餠, 햇실과떡, 혼돈병渾沌餠, 잡과편, 증편, 석이병, 두텁떡, 송기떡, 무떡, 백설기, 대추조악, 꽃전, 송편, 인절미.• 『시의전서是議全書』(1800년대 말): 팥편, 녹두팔편, 팥찰편, 꿀찰편, 깨찰편, 꿀편, 승검초편, 백편, 잡과편, 두텁떡, 무떡, 적복령편, 상실편, 막우설기, 호박떡, 증편, 석이단자, 승검초단자, 건시단자, 밤단자 , 송편, 쑥송편, 대추인절미, 깨인절미, 쑥인절미, 쑥절편, 송기절편, 개피떡, 어름소편, 꼽장떡, 골무편, 약식, 흰주악, 대추주악, 밤주악, 생산승, 화전.

특징 및 의의

떡류는 돌잔치, 혼례, 환갑연, 제례 같은 행사가 있을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찬품饌品이었으므로, 왕실이나 반가, 서민들의 잔칫상에 반드시 올랐다. 상에 올릴 때에는 떡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하여 꿀을 곁들여 냈다. 이 곁들이는 꿀을 민가에서는 편‘ 청片淸’, 왕실에서는 ‘추청追淸’이라 했다. 편片은 편떡[片餠]의 편을, 청淸은 맑은 꿀을 나타내는 청밀淸蜜의 청을 지칭하는 것으로 ‘편떡에 곁들이는 청밀’을 줄여서 ‘편청’이라 한 것이다. 추追는 쫓을 ‘추’, 청은 청밀의 청이니 추청이란 떡에 따라다니는(곁들이는) 꿀이란 뜻이다. “고사떡을 먹으면 재수가 있다”, “꿈에 떡 맛보듯”, “굿도 볼 겸 떡도 먹을 겸 간다”, “귀신 떡 먹듯 한다 ”, “귀신은 떡으로 사귀고 사람은 정으로 사귄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돌떡을 해주지 않으면 자주 넘어진다”, “들어오는 떡을 찍어 먹어도 조청은 고아 두어야 한다” 등의 속담이 생길 정도로 지금까지도 떡은 귀한 찬품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高麗圖經, 國朝五禮儀序例, 閨閤叢書, 屠門大嚼, 方言, 山林經濟, 三國史記, 是議全書, 飮食知味方, 日本書紀, 進宴儀軌, 進饌儀軌, 조선시대의 음식문화(김상보, 가람기획, 2005),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김상보, 수학사, 1995),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김상보, 광문각,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