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박성석(朴性錫)
갱신일 2016-11-29

정의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적에게 함락당한 후 진주 관기 논개가 남강 가에 있는 바위 위에서 왜장을 안고 물로 뛰어들어 죽었다는 전설.

역사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된 후 관군을 비롯한 의병과 민간인들이 왜군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자,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기록이 조선조 야담집을 비롯하여 영남과 호남의 여러 지역에서 구전되었다. 1620년경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채록되면서 문자화되었다.

줄거리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김천일이 왜적에게 항거하였으나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성이 짓밟히자 군사는 패하고 백성은 죽어나갔다. 진주의 관기였던 논개가 촉석루 아래 바위 위에서 왜장의 허리를 열 손가락에 낀 반지로 빠지지 않게 꽉 껴안은 후에 남강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택하였다.

변이

<논개전설>은 관기인 논개뿐 아니라 기생 신분이 아닌 논개에 대한 이야기도 전승되고 있다. 기생 아닌 논개가 최경희를 따라 진주로 와서 최경희가 죽자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모티프는 전라북도 장수 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는 장수가 논개의 고향이라는 데 근거하여 논개의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구연자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분석

전란을 겪으면서 도처에서 있었던 관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승되는데, 관기들의 애국적 희생을 통해 무능한 사대부들에게는 일침을 가하고, 사대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리학의 충(忠) 이념을 천한 기생에게서도 볼 수 있다는 경험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아가 천민일지라도 무능한 사대부보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특징

임진왜란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하여 생성되었고, 왜장을 죽였다는 통쾌한 갈등 해결로 민중들이 즐겨 대상으로 삼을 만한 모티프를 품고 있다. 논개를 기리는 사당을 짓고 관기였던 천민 기녀를 기리는 의례를 거행하고자 했다는 것은 이야기를 즐기고 나누는 설화 향유층이 지배자들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의의

경상남도 진주 지역의 백성들이 비천한 ‘관기’로 죽은 논개를 ‘의기’로 살려냈다. 하층민에게는 전란의 체험을 전하면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내는 최상의 매체가 설화였다. 설화가 기록되면서 윤색되기도 하고 소설을 만들어 낼 정도까지 변모해 전란을 다루는 서사문학의 풍부한 유산이 되었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6-9, 48; 8-3, 77; 130.

참고문헌

논개(김수업, 진주문화를 찾아서1, 지식산업사, 2001), 논개 설화의 서사 전개 양상과 의미(박기용, 우리말글32, 우리말글학회, 2004).

논개

논개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박성석(朴性錫)
갱신일 2016-11-29

정의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적에게 함락당한 후 진주 관기 논개가 남강 가에 있는 바위 위에서 왜장을 안고 물로 뛰어들어 죽었다는 전설.

역사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된 후 관군을 비롯한 의병과 민간인들이 왜군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자,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기록이 조선조 야담집을 비롯하여 영남과 호남의 여러 지역에서 구전되었다. 1620년경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채록되면서 문자화되었다.

줄거리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김천일이 왜적에게 항거하였으나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성이 짓밟히자 군사는 패하고 백성은 죽어나갔다. 진주의 관기였던 논개가 촉석루 아래 바위 위에서 왜장의 허리를 열 손가락에 낀 반지로 빠지지 않게 꽉 껴안은 후에 남강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택하였다.

변이

은 관기인 논개뿐 아니라 기생 신분이 아닌 논개에 대한 이야기도 전승되고 있다. 기생 아닌 논개가 최경희를 따라 진주로 와서 최경희가 죽자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모티프는 전라북도 장수 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는 장수가 논개의 고향이라는 데 근거하여 논개의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구연자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분석

전란을 겪으면서 도처에서 있었던 관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승되는데, 관기들의 애국적 희생을 통해 무능한 사대부들에게는 일침을 가하고, 사대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리학의 충(忠) 이념을 천한 기생에게서도 볼 수 있다는 경험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아가 천민일지라도 무능한 사대부보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특징

임진왜란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하여 생성되었고, 왜장을 죽였다는 통쾌한 갈등 해결로 민중들이 즐겨 대상으로 삼을 만한 모티프를 품고 있다. 논개를 기리는 사당을 짓고 관기였던 천민 기녀를 기리는 의례를 거행하고자 했다는 것은 이야기를 즐기고 나누는 설화 향유층이 지배자들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의의

경상남도 진주 지역의 백성들이 비천한 ‘관기’로 죽은 논개를 ‘의기’로 살려냈다. 하층민에게는 전란의 체험을 전하면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내는 최상의 매체가 설화였다. 설화가 기록되면서 윤색되기도 하고 소설을 만들어 낼 정도까지 변모해 전란을 다루는 서사문학의 풍부한 유산이 되었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6-9, 48; 8-3, 77; 130.

참고문헌

논개(김수업, 진주문화를 찾아서1, 지식산업사, 2001), 논개 설화의 서사 전개 양상과 의미(박기용, 우리말글32, 우리말글학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