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강변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유희요

집필자 이소영(李昭咏)
갱신일 2016-10-20

정의

1930년대에 창작되어 경기 민요의 하나로 널리 불린 신민요.

개관

<노들강변>은 1930년대에 널리 유행한 신민요로서 음계는 경기 민요에서 많이 쓰이는 솔·라·도·레·미의 경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취입 당시는 3/4박자의 왈츠풍 리듬으로 반주가 이루어졌으나 경기 민요 가수들에 의해 불리면서 세마치장단으로 연주되었다. 형식은 3절로 된 유절 형식(有節形式)이며 1절은 32마디로 되어 있다. 가사는 세상의 한을 물에 띄워 보내려는 심정을 읊은 것인데, 슬픈 노랫말과 달리 음악은 경쾌한 느낌이어서 달관한 듯한 무상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설

노들강변 봄버들 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매어나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내용

<노들강변>의 ‘노들’은 한자로 쓸 때 ‘노돌(老乭)’이라고 하는데 서울 노량진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 의하면 ‘노들강변’이란 노량진 일대의 한강 변을 의미한다. 1934년에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 박부용 노래로 오케레코드사에서 취입된 이 곡은 오케 문예부 편곡으로 오케선양악단이 반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곡은 박부용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조모란, 김인숙, 이진홍 등 당시 경·서도 소리 가창자들이 김계선, 한성준, 고재덕 등의 반주에 맞춰 취입할 만큼 민요권에서 사랑을 많이 받아온 노래이다. 광복 이후에도 경기 민요 명창들에게 널리 불렸으며, 이 과정에서 템포도 느려지면서 초기의 빠른 왈츠풍 리듬이 세마치장단으로 바뀌었다. <노들강변>의 음 조직은 서양 음계로 해석하면 솔·라·도·레·미의 경토리 음계로 이루어져 있고 각 악구의 종지형은 도―솔의 4도 하행으로 끝나다가 마지막 종지에서만 솔-도의 완전4도 종지형으로 끝을 맺는 등 경기 민요의 음 조직 특성을 잘 보여준다.

특징 및 의의

1930년대 만들어진 대부분의 신민요는 양악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양악기와 국악기가 섞인, 일종의 퓨전 국악 밴드로 연주되는 등 전통적인 통속민요에 비해 양악적 특성이 강한 곡들이 많았다. 그런데 <노들강변>은 경기 민요의 하나로 인식되어 경기 명창들에 의해 널리 불릴 만큼 전통적인 특성이 잘 반영된 곡으로 평가받고 있고 경기 명창들에 의해 불리는 과정에서 더욱 전통적 특성이 더욱 강해진 몇 안 되는 신민요 중 하나이다. 또한 <노들강변>은 1930년대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당시 신민요라는 신생 장르를 형성시키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최초의 히트곡이라는 점에서 신민요 역사상 아주 중요한 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민속문학 민요 노들강변

참고문헌

국악개요(장사훈, 정연사, 1961), 문호월의 신민요에 나타나는 민요양식(이소영, 만당이혜구박사 백수송축논문집, 2008), 한국가창대계(이창배, 홍인문화사, 1976), 한국가요사1(박찬호, 미지북스, 2009), 해방 후 남·북한의 혼종적 음악하기(이소영, 한국민요학29, 한국민요학회, 2008).

노들강변

노들강변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유희요

집필자 이소영(李昭咏)
갱신일 2016-10-20

정의

1930년대에 창작되어 경기 민요의 하나로 널리 불린 신민요.

개관

은 1930년대에 널리 유행한 신민요로서 음계는 경기 민요에서 많이 쓰이는 솔·라·도·레·미의 경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취입 당시는 3/4박자의 왈츠풍 리듬으로 반주가 이루어졌으나 경기 민요 가수들에 의해 불리면서 세마치장단으로 연주되었다. 형식은 3절로 된 유절 형식(有節形式)이며 1절은 32마디로 되어 있다. 가사는 세상의 한을 물에 띄워 보내려는 심정을 읊은 것인데, 슬픈 노랫말과 달리 음악은 경쾌한 느낌이어서 달관한 듯한 무상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설

노들강변 봄버들 휘 늘어진 가지에다가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매어나 볼까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내용

의 ‘노들’은 한자로 쓸 때 ‘노돌(老乭)’이라고 하는데 서울 노량진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 의하면 ‘노들강변’이란 노량진 일대의 한강 변을 의미한다. 1934년에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 박부용 노래로 오케레코드사에서 취입된 이 곡은 오케 문예부 편곡으로 오케선양악단이 반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곡은 박부용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조모란, 김인숙, 이진홍 등 당시 경·서도 소리 가창자들이 김계선, 한성준, 고재덕 등의 반주에 맞춰 취입할 만큼 민요권에서 사랑을 많이 받아온 노래이다. 광복 이후에도 경기 민요 명창들에게 널리 불렸으며, 이 과정에서 템포도 느려지면서 초기의 빠른 왈츠풍 리듬이 세마치장단으로 바뀌었다. 의 음 조직은 서양 음계로 해석하면 솔·라·도·레·미의 경토리 음계로 이루어져 있고 각 악구의 종지형은 도―솔의 4도 하행으로 끝나다가 마지막 종지에서만 솔-도의 완전4도 종지형으로 끝을 맺는 등 경기 민요의 음 조직 특성을 잘 보여준다.

특징 및 의의

1930년대 만들어진 대부분의 신민요는 양악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양악기와 국악기가 섞인, 일종의 퓨전 국악 밴드로 연주되는 등 전통적인 통속민요에 비해 양악적 특성이 강한 곡들이 많았다. 그런데 은 경기 민요의 하나로 인식되어 경기 명창들에 의해 널리 불릴 만큼 전통적인 특성이 잘 반영된 곡으로 평가받고 있고 경기 명창들에 의해 불리는 과정에서 더욱 전통적 특성이 더욱 강해진 몇 안 되는 신민요 중 하나이다. 또한 은 1930년대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당시 신민요라는 신생 장르를 형성시키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최초의 히트곡이라는 점에서 신민요 역사상 아주 중요한 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국악개요(장사훈, 정연사, 1961), 문호월의 신민요에 나타나는 민요양식(이소영, 만당이혜구박사 백수송축논문집, 2008), 한국가창대계(이창배, 홍인문화사, 1976), 한국가요사1(박찬호, 미지북스, 2009), 해방 후 남·북한의 혼종적 음악하기(이소영, 한국민요학29, 한국민요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