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사굴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문무병(文武秉)
갱신일 2016-11-29

정의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의 사굴(蛇窟)과 관련된 전설로서, 조선 중종(中宗) 때 서련(徐憐) 판관이 사굴에 사는 큰 구렁이를 퇴치했다는 전설.

줄거리

제주 구좌읍 김녕리 마을 동쪽에 큰 굴이 있는데, 여기에서 큰 뱀이 살았다고 하여 ‘뱀굴[蛇窟]’이라고 한다. 이 뱀에게 매년 처녀 한 사람을 제물로 올려 큰굿을 했다. 만일 굿을 하지 않으면 뱀이 곡식밭을 다 휘저어 버려 대흉년이 들었다. 그런데 양반집에서는 딸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평민의 딸이 희생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평민의 딸은 시집을 갈 수가 없었다. 그즈음, 조선 중종 때 서련이라는 판관이 제주에 부임해 왔다. 서 판관은 뱀굴의 소문을 듣고 괴이한 일이라며 분개하였다. 곧 술․떡․처녀를 올려 굿을 하라 하고, 몸소 군졸을 거느리고 뱀굴에 이르렀다. 굿이 시작되어 한참이 지나자 과연 어마어마한 크기의 뱀이 나와 술과 떡을 먹고 처녀를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이때 서 판관은 군졸과 함께 달려들어 창검으로 뱀을 찔러 죽였다. 이것을 본 심방이 “빨리 말을 달려 성(현재의 제주 읍성) 안으로 가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아선 안 됩니다.”라고 일러 주었다. 서 판관은 말에 채찍을 놓아 무사히 성의 동문 밖까지 이르렀다. 이때 군졸 한 사람이 “뒤쪽으로 피비[血雨]가 옵니다.”라고 외쳤다. “무슨 비가, 피비가 오는 법이 있느냐?”라고 하며 서 판관이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마자 서 판관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죽은 뱀의 피가 하늘에 올라가 비가 되어 서 판관의 뒤를 쫓아온 것이다.

변이

김녕사굴과 관련된 이야기의 변이로 판관 서련 대신에 이삼만(李三萬)이 등장하는 것도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삼만이 뱀을 죽이고 관아 마당에 이르러 안심하고 돌아보자 그만 즉사한다는 내용으로 나타난다. 그 뒤로 정월 사일(巳日)에 종이에 ‘李三萬’이라 써서 뱀이 잘 다니는 곳에 붙이면 뱀이 무서워서 다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분석

이 전설은 용기와 지혜가 있는 관장이 백성에게 고통을 주는 악을 제거하고 백성을 살린 구조다. 한편 제주도의 큰굿에서 연행되는 뱀굿으로 ‘용놀이’가 있다. 이 굿은 서련 판관이 김녕사굴의 뱀을 퇴치하는 과정이 굿으로 전승되는 사례다. ‘용놀이’는 신들을 모시는 제장에 청룡․황룡의 두 구렁이가 들어서 있는 모습을 설정한다. 시각적 효과를 위해 양쪽 당클(높이 매어 놓은 선반)에 긴 광목천을 바닥까지 늘어지게 드리워 놓은 것이다. 당클이 하늘이고 바닥이 땅이라고 할 때, 구렁이의 머리는 하늘에 꼬리는 땅에 드리워진 것이며, 이는 신성한 제장이 부정을 탄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심방이 이 두 구렁이에게 술을 먹여 잠들게 하고, 잠이 든 뱀 ‘천구아구 대맹이’를 신칼로 죽이고, 뱀의 골을 후벼 파서 약으로 파는 뱀장사 놀이를 한 뒤, 제장에서 뱀을 퇴치하여 치워 버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의의

서련 판관이 김녕사굴의 큰 뱀을 죽였다는 <김녕사굴전설>은 제주도 큰굿의 소제차인 ‘제오상계’에 큰 구렁이를 잡는 놀이굿 ‘용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9-1, 39; 191; 9-2, 637; 719.

참고문헌

제주도전설(현용준, 서문당, 1976), 제주도전설지(제주도, 1985).

김녕사굴

김녕사굴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문무병(文武秉)
갱신일 2016-11-29

정의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의 사굴(蛇窟)과 관련된 전설로서, 조선 중종(中宗) 때 서련(徐憐) 판관이 사굴에 사는 큰 구렁이를 퇴치했다는 전설.

줄거리

제주 구좌읍 김녕리 마을 동쪽에 큰 굴이 있는데, 여기에서 큰 뱀이 살았다고 하여 ‘뱀굴[蛇窟]&rsquo;이라고 한다. 이 뱀에게 매년 처녀 한 사람을 제물로 올려 큰굿을 했다. 만일 굿을 하지 않으면 뱀이 곡식밭을 다 휘저어 버려 대흉년이 들었다. 그런데 양반집에서는 딸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평민의 딸이 희생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평민의 딸은 시집을 갈 수가 없었다. 그즈음, 조선 중종 때 서련이라는 판관이 제주에 부임해 왔다. 서 판관은 뱀굴의 소문을 듣고 괴이한 일이라며 분개하였다. 곧 술․떡․처녀를 올려 굿을 하라 하고, 몸소 군졸을 거느리고 뱀굴에 이르렀다. 굿이 시작되어 한참이 지나자 과연 어마어마한 크기의 뱀이 나와 술과 떡을 먹고 처녀를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이때 서 판관은 군졸과 함께 달려들어 창검으로 뱀을 찔러 죽였다. 이것을 본 심방이 “빨리 말을 달려 성(현재의 제주 읍성) 안으로 가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아선 안 됩니다.”라고 일러 주었다. 서 판관은 말에 채찍을 놓아 무사히 성의 동문 밖까지 이르렀다. 이때 군졸 한 사람이 “뒤쪽으로 피비[血雨]가 옵니다.”라고 외쳤다. “무슨 비가, 피비가 오는 법이 있느냐?”라고 하며 서 판관이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마자 서 판관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죽은 뱀의 피가 하늘에 올라가 비가 되어 서 판관의 뒤를 쫓아온 것이다.

변이

김녕사굴과 관련된 이야기의 변이로 판관 서련 대신에 이삼만(李三萬)이 등장하는 것도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삼만이 뱀을 죽이고 관아 마당에 이르러 안심하고 돌아보자 그만 즉사한다는 내용으로 나타난다. 그 뒤로 정월 사일(巳日)에 종이에 ‘李三萬’이라 써서 뱀이 잘 다니는 곳에 붙이면 뱀이 무서워서 다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분석

이 전설은 용기와 지혜가 있는 관장이 백성에게 고통을 주는 악을 제거하고 백성을 살린 구조다. 한편 제주도의 큰굿에서 연행되는 뱀굿으로 ‘용놀이’가 있다. 이 굿은 서련 판관이 김녕사굴의 뱀을 퇴치하는 과정이 굿으로 전승되는 사례다. ‘용놀이’는 신들을 모시는 제장에 청룡․황룡의 두 구렁이가 들어서 있는 모습을 설정한다. 시각적 효과를 위해 양쪽 당클(높이 매어 놓은 선반)에 긴 광목천을 바닥까지 늘어지게 드리워 놓은 것이다. 당클이 하늘이고 바닥이 땅이라고 할 때, 구렁이의 머리는 하늘에 꼬리는 땅에 드리워진 것이며, 이는 신성한 제장이 부정을 탄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심방이 이 두 구렁이에게 술을 먹여 잠들게 하고, 잠이 든 뱀 ‘천구아구 대맹이’를 신칼로 죽이고, 뱀의 골을 후벼 파서 약으로 파는 뱀장사 놀이를 한 뒤, 제장에서 뱀을 퇴치하여 치워 버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의의

서련 판관이 김녕사굴의 큰 뱀을 죽였다는 은 제주도 큰굿의 소제차인 ‘제오상계’에 큰 구렁이를 잡는 놀이굿 ‘용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9-1, 39; 191; 9-2, 637; 719.

참고문헌

제주도전설(현용준, 서문당, 1976), 제주도전설지(제주도,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