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제

한자명

吉祭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송재용(宋宰鏞)
갱신일 2016-10-13

정의

죽은 이의 신주를 사당에 안치하기 위해 담제禫祭를 지낸 다음 달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

역사

길제吉祭가 언제부터 행해졌으며, 또 언제부터 상례의 중요한 절차로 자리 잡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예기禮記』에 “길제를 지내면 평소의 거소로 되돌아온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상례 절차에 고대부터 길제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태종실록太宗實錄』 8년(1408) 9월 15일 기사에서 “상喪이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길제를 행하는 것은 의義에 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태조太祖의 신주神主를 부묘祔廟하는 제사祭祀는 고금古今을 참작하여 고부告祔하지 말고, ‘삼년상을 마친 뒤에 행한다.’는 정강성鄭康成(정현鄭玄)의 설에 의거하여 대상大祥을 기다린 뒤에 영부永祔의 예禮를 행하는 것이 거의 의에 합할까 합니다.”라고 예조禮曹에서 아뢴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조선 초기에 길제를 행한 것은 확실하다. 길제는 고려 말기부터 행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례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관혼상제冠婚喪祭의 근간이 된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는 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길제가 예서禮書에 수록된 것은 명나라 구준邱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이 처음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장생金長生의 『상례비요喪禮備要』에 길제가 처음 등장하였고, 이후에 발간된 여러 예서는 물론 『사례편람四禮便覽』에도 길제가 상례의 마지막 절차로 규정되어 있다.

내용

길제는 상례의 절차 중에서 마지막으로 행하는 절차이다. 담제를 지낸 뒤에 상주가 날짜를 정하는데, 한 달 뒤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담제를 중월仲月(2월5월8월11월)에 지냈으면, 그달 정일이나 해일에 길제를 지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달들은 정제正祭의 달이고, 상제喪祭를 마친 뒤에는 길제를 빨리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달이라도 피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길제는 대체로 사당祠堂에 신주神主를 모실 때 지내는 의례로, 새로운 신주가 추가되면 사대봉사의 원리에 의해 5대조의 신주를 사당에서 물리는 제사이다. 이것은 신주를 사당에 정식으로 모시는 절차임을 의미한다. 사당에서 예전에 모시던 신주는 한 세대 이전의 종자宗子가 주관하던 것이므로, 이제는 호칭과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이에 따라 신위神位의 자리를 바꾸어 옮기는 의식이 필요한데, 이것을 ‘조천祧遷’이라고 한다.

길제를 지내는 순서는 『사례편람』 등을 참고하여 제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담제를 지낸 이튿날 점을 쳐 담제를 지낸 달의 다음달 정일이나 해일을 택일한다. 제사 3일 전에 목욕재계한다. 하루 전날 사당으로 옮길 것을 아뢴다. 신위神位의 자리를 설치한다. 기구를 진설하고 짐승을 잡고 제기를 씻는다(시제 때의 의식대로 함). 차서次序를 결정하고 길복吉服으로 갈아입는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 채소와 과일을 진설한다(시제 때의 의식처럼 함). 날이 밝으면 신주를 모셔 자리로 간다. 참신參神・강신降神・진찬進饌・초헌初獻(독축 포함)・아헌亞獻・종헌終獻・유식侑食・합문闔門・계문啓聞・수조受胙・사신辭神・신주 봉납・철상撤床을 하고 남은 음식을 나눈다. 물린 신주(5대조)를 묘소옆에 묻는다. 침소로 되돌아온다. 참고로 길제를 지낸 이튿날부터 평상복을 입을 수 있다.

지역사례

경상북도 안동에서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삼년상을 지키는 집이 다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기喪期를 마친 다음, 이에 따른 의례로 반드시 길제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집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길제는 신주를 모신 사당이나 벽감壁龕이 있는 집은 물론, 선대의 모든 신주를 이미 조매祧埋하고 지방紙榜으로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도 거의 지내는 편인데, 이들은 불천위를 모신 종가와 큰집이다. 요즈음은 불천위 종가와 10대 종의 주손 또는 이에 버금가는 큰집에서 더러 사당이나 벽감에 신주를 모시는 경우가 있다. 사대봉사를 하지 않는 소종에서도 제주를 맡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신주가 있으면 상기를 마친 후에는 반드시 길제를 행했다고 한다. 1960~1970년대에는 대개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더욱 격식과 법도를 갖춘 길제를 행했던 것을 보면, 길제의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어 온 듯하다. 이에 반해 여러 사정이 있거나 자손의 수가 적은 집에서는 대체로 정월 설날의 차례나 가을 추석 같은 천신薦新의 절기에 길제를 지내기도 한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종가와 청계靑溪 김진金璡 종가는 지금도 계속 길제를 지낸다. 이들 종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아헌관이다. 두 집 모두 아헌례를 올릴 때의 아헌관은 종부宗婦이다. 그런데 아헌관은 색목色目・가문・지역등에 따라 종부 또는 주부가 올리는 집도 있고, 종손이나 주인의 동생이 올리는 집도 있다. 농암 종가에서는 종부가 원삼족두리로 단장한 화복華服을 입고 올렸다. 청계 종가 역시 아헌관은 종부이지만, 특별한 사정이있어 종손의 동생이 맡아 헌작獻爵하였다. 그리고 종헌관은 농암과 청계 두 종가 모두 종손의 외가 사람이 맡아 올렸다.

특징 및 의의

길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즉 고인故人의 사후세계까지 의례의 근간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길제는 상례가 끝난 다음, 산 사람이 망자에게 베푸는 상례가 종결되었으며, 망자에 대한 제례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산 사람은 자연스럽게 일상인이 된다. 따라서 길제는 망자와 연결된 상례의 최종 절차이고, 사당에 모신 신주의 대수를 소목昭穆에 따라 이어 나가는 절차이다. 또한, 친진親盡한 조상신을 성대히 모셔 보내는 의례이며, 상중喪中의 기간에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통과의례이다. 이렇게 볼 때, 길제는 상례의 마지막 절차를 의미할 뿐 아니라 한 집안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의례로 자리매김 된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家禮增解, 四禮便覽, 喪禮備要, 禮 記, 길제의 정치적 성격(김시덕, 비교민속학26, 비교민속학회, 2004), 향촌의 유교의례와 문화(권삼문・김영순, 민속원, 2003).

길제

길제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송재용(宋宰鏞)
갱신일 2016-10-13

정의

죽은 이의 신주를 사당에 안치하기 위해 담제禫祭를 지낸 다음 달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

역사

길제吉祭가 언제부터 행해졌으며, 또 언제부터 상례의 중요한 절차로 자리 잡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예기禮記』에 “길제를 지내면 평소의 거소로 되돌아온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상례 절차에 고대부터 길제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태종실록太宗實錄』 8년(1408) 9월 15일 기사에서 “상喪이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길제를 행하는 것은 의義에 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태조太祖의 신주神主를 부묘祔廟하는 제사祭祀는 고금古今을 참작하여 고부告祔하지 말고, ‘삼년상을 마친 뒤에 행한다.’는 정강성鄭康成(정현鄭玄)의 설에 의거하여 대상大祥을 기다린 뒤에 영부永祔의 예禮를 행하는 것이 거의 의에 합할까 합니다.”라고 예조禮曹에서 아뢴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조선 초기에 길제를 행한 것은 확실하다. 길제는 고려 말기부터 행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례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관혼상제冠婚喪祭의 근간이 된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는 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길제가 예서禮書에 수록된 것은 명나라 구준邱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이 처음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장생金長生의 『상례비요喪禮備要』에 길제가 처음 등장하였고, 이후에 발간된 여러 예서는 물론 『사례편람四禮便覽』에도 길제가 상례의 마지막 절차로 규정되어 있다.

내용

길제는 상례의 절차 중에서 마지막으로 행하는 절차이다. 담제를 지낸 뒤에 상주가 날짜를 정하는데, 한 달 뒤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담제를 중월仲月(2월・5월・8월・11월)에 지냈으면, 그달 정일이나 해일에 길제를 지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달들은 정제正祭의 달이고, 상제喪祭를 마친 뒤에는 길제를 빨리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달이라도 피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길제는 대체로 사당祠堂에 신주神主를 모실 때 지내는 의례로, 새로운 신주가 추가되면 사대봉사의 원리에 의해 5대조의 신주를 사당에서 물리는 제사이다. 이것은 신주를 사당에 정식으로 모시는 절차임을 의미한다. 사당에서 예전에 모시던 신주는 한 세대 이전의 종자宗子가 주관하던 것이므로, 이제는 호칭과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이에 따라 신위神位의 자리를 바꾸어 옮기는 의식이 필요한데, 이것을 ‘조천祧遷’이라고 한다. 길제를 지내는 순서는 『사례편람』 등을 참고하여 제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담제를 지낸 이튿날 점을 쳐 담제를 지낸 달의 다음달 정일이나 해일을 택일한다. 제사 3일 전에 목욕재계한다. 하루 전날 사당으로 옮길 것을 아뢴다. 신위神位의 자리를 설치한다. 기구를 진설하고 짐승을 잡고 제기를 씻는다(시제 때의 의식대로 함). 차서次序를 결정하고 길복吉服으로 갈아입는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 채소와 과일을 진설한다(시제 때의 의식처럼 함). 날이 밝으면 신주를 모셔 자리로 간다. 참신參神・강신降神・진찬進饌・초헌初獻(독축 포함)・아헌亞獻・종헌終獻・유식侑食・합문闔門・계문啓聞・수조受胙・사신辭神・신주 봉납・철상撤床을 하고 남은 음식을 나눈다. 물린 신주(5대조)를 묘소옆에 묻는다. 침소로 되돌아온다. 참고로 길제를 지낸 이튿날부터 평상복을 입을 수 있다.

지역사례

경상북도 안동에서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삼년상을 지키는 집이 다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기喪期를 마친 다음, 이에 따른 의례로 반드시 길제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집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길제는 신주를 모신 사당이나 벽감壁龕이 있는 집은 물론, 선대의 모든 신주를 이미 조매祧埋하고 지방紙榜으로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도 거의 지내는 편인데, 이들은 불천위를 모신 종가와 큰집이다. 요즈음은 불천위 종가와 10대 종의 주손 또는 이에 버금가는 큰집에서 더러 사당이나 벽감에 신주를 모시는 경우가 있다. 사대봉사를 하지 않는 소종에서도 제주를 맡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신주가 있으면 상기를 마친 후에는 반드시 길제를 행했다고 한다. 1960~1970년대에는 대개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더욱 격식과 법도를 갖춘 길제를 행했던 것을 보면, 길제의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어 온 듯하다. 이에 반해 여러 사정이 있거나 자손의 수가 적은 집에서는 대체로 정월 설날의 차례나 가을 추석 같은 천신薦新의 절기에 길제를 지내기도 한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종가와 청계靑溪 김진金璡 종가는 지금도 계속 길제를 지낸다. 이들 종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아헌관이다. 두 집 모두 아헌례를 올릴 때의 아헌관은 종부宗婦이다. 그런데 아헌관은 색목色目・가문・지역등에 따라 종부 또는 주부가 올리는 집도 있고, 종손이나 주인의 동생이 올리는 집도 있다. 농암 종가에서는 종부가 원삼족두리로 단장한 화복華服을 입고 올렸다. 청계 종가 역시 아헌관은 종부이지만, 특별한 사정이있어 종손의 동생이 맡아 헌작獻爵하였다. 그리고 종헌관은 농암과 청계 두 종가 모두 종손의 외가 사람이 맡아 올렸다.

특징 및 의의

길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즉 고인故人의 사후세계까지 의례의 근간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길제는 상례가 끝난 다음, 산 사람이 망자에게 베푸는 상례가 종결되었으며, 망자에 대한 제례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산 사람은 자연스럽게 일상인이 된다. 따라서 길제는 망자와 연결된 상례의 최종 절차이고, 사당에 모신 신주의 대수를 소목昭穆에 따라 이어 나가는 절차이다. 또한, 친진親盡한 조상신을 성대히 모셔 보내는 의례이며, 상중喪中의 기간에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통과의례이다. 이렇게 볼 때, 길제는 상례의 마지막 절차를 의미할 뿐 아니라 한 집안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의례로 자리매김 된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家禮增解, 四禮便覽, 喪禮備要, 禮 記, 길제의 정치적 성격(김시덕, 비교민속학26, 비교민속학회, 2004), 향촌의 유교의례와 문화(권삼문・김영순, 민속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