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쌈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정일

집필자 이필영(李弼泳)
갱신일 2016-11-03

정의

부녀자들이 음력 7월부터 8월 추석(秋夕)에 이르는 동안 공동으로 길쌈을 하면서 혹은 길쌈을 끝낸 다음에 옛날이야기와 담소나 가무를 즐기거나 또는 편을 갈라서 경쟁하고 승부를 가리며 놀았던 풍습. 두레삼, 길쌈두레, 공동적마(共同績麻), 들게라고도 부른다.

유래

길쌈을 공동으로 하는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신라본기(新羅本紀)」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월조에는 당시의 길쌈놀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왕은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를 거느리어 편을 짜고 패를 나누어 추칠월(秋七月) 16일부터 날마다 일찍이 큰 부(部)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을야(乙夜: 밤 10시경)에 끝내게 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를 심사하여 지는 편은 주식(酒食)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한다. 이어서 가무(歌舞)와 백희(百戱)가 벌어졌으니 이를 가배(嘉俳)라고 한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답거늘 후인(後人)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했다.”

이미 1세기 초에 신라에서는 가배 곧, 추석(秋夕) 한가위에 길쌈놀이를 했던 것이다. 이때 불려진 회소곡도 길쌈과 관련된 민요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16세기 초반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1 경주부 풍속조(慶州部風俗條)에는 『삼국사기』의 ‘가배’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마지막에 ‘국속지금행지(國俗至今行之)’라 하여, 추석의 길쌈놀이가 국속(國俗)으로서 당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홍석모(洪錫謨)는 이 기사를 19세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추석조(秋夕條)에서 동일하게 재인용하였다. 20세기 초엽에 민속학자 송석하(宋錫夏)는 경북 경주(慶州)와 그 인근 지역에서도 두레길쌈이라는 적마(績麻) 작업 제도가 전승된다고 하였다.

옛문헌 자료가 달리 더 없어서 추석 길쌈놀이의 지속과 변화를 자세히 밝히기는 어렵다. 물론 신라와 그 이후의 두레길쌈에는 차이가 있고 그 성격도 다르다. 그러나 이미 1세기에 신라에서는 두레삼을 두 편으로 나누어 서로 경쟁하였고, 이때 온갖 가무와 백희가 뒤따른 길쌈놀이가 흥겹게 행해졌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길쌈놀이의 전통은 16세기를 거쳐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도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전승되고 있었다. 다만 각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길쌈놀이의 세부 모습과 성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길쌈이란 각종 섬유 재료에서 실을 뽑고 이를 가공하여 삼베, 모시, 명주, 무명 같은 피륙을 짜는 일련의 수공업 작업을 일컫는다.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하여 지방에 따라 또는 옷감의 종류에 따라 직조(織造)의 시기와 규모가 다르다. 그러나 길쌈을 하는 과정에서 집단으로 모여 놀이를 하는 점은 공통적이다. 특히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삼남지방에서는 대개 음력 7월부터 8월 추석에 걸쳐 온 마을의 부녀자들이 두레와 같은 공동체를 조직하고 길쌈을 하였다.

길쌈을 해야 하는 마을 부녀자들은 길쌈두레를 조직하여 매일 저녁 길쌈두레에 가입한 부녀자들의 집을 차례로 돌면서 공동으로 길쌈을 해준다. 이렇게 번갈아서 둘레둘레 돌아가면서 삼을 삼아준다고 하여 ‘두레삼[공동 또는 협동마적(協同麻績)]’ 또는 ‘두루삼’이라고 한다.

만일 길쌈두레로 길쌈을 하지 않고, 개인이 혼자서 하면 힘이 들기도 하겠지만 시일이 오래 걸려서 매우 비효율적인 노동이 된다. 그러나 두레삼으로 길쌈을 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작업량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수십 명으로 구성된 길쌈두레가 공동작업을 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도 하고 담소도 즐기며 노래도 불러가면서 지루하고 고된 반복적인 노동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었다. 전남지방에서는 다른 들게(길쌈두레)들 사이에 부부놀이, 귀신놀이, 전짓다리훔치기도 하며 놀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편을 갈라서 서로 경쟁을 하면서 길쌈을 하기도 하였다.

길쌈을 공동으로 하는 기간에는 항상 흥겹게 놀지만, 이를 전부 끝내고 결산을 한 다음에는 더 크게 놀았다. 특히 8월 15일 밤에는 그동안의 노고를 털어버리기 위하여 많은 음식을 장만하고 담소와 가무로써 한껏 즐겼다. 이때 편을 두 패로 나누고 경쟁을 하여 승패를 가리고, 진 편이 이긴 편에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기도 하였다.

한편 길쌈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하였다. 이는 부녀자들이 자신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가락에 담아 노래한 것이다. 4·4조로 이루어져 있는 긴 가사에는 고부간의 갈등, 고된 노동, 근면성, 남편에 대한 애정이 주로 담겨 있다.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서사민요로서의 독특한 민요들이 많이 불렀다.

지역사례

길쌈놀이는 삼남지방에서 특히 성행하였다. 충남 연기에서는 마을의 부녀자들이 뜰에 모여 편을 갈라 길쌈을 하는데 노래를 불러 가면서 일을 하였다. 추석이 되면 길쌈의 양을 심사하여 진 편에서는 음식을 장만한다. 음식이 마련되면 추석의 달 밝은 밤에 위로연을 베푼다.

전남 곡성에서는 젊은 처녀들이 7월부터 시작한 공동적마를 8월 보름에 끝내고, 각자 가져온 팥과 쌀을 거둔 것으로 반달 모양의 떡을 빚어 부모에게 먼저 드리고, 남은 것을 먹으며 밝은 달 아래 춤추며 놀았다고 한다. 이를 월병연(月餠宴)이라고 한다.

전북 정읍에서는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당번 집의 삼을 공평하게 나누고 길쌈을 삼아준다. 이때 재미있는 이야기와 흥겨운 노래를 해가면서 일을 한다. 8월 추석에 떡을 해서 위로연을 베푼다.

경남에서는 백중 무렵에 친한 부녀자들끼리 품앗이로 한 집씩 돌려가며 삼을 삼는 풍속이 전역에 분포하였다. 이를 두레삼이라고 한다. 이때 주인집에서는 찐 옥수수 같은 음식으로 대접을 한다. 또 편을 나누어 어느 편이 많이 삼는지 내기를 하고, 진 편이 이긴 편에 음식을 해준다. 경남에서는 봄에도 길쌈내기를 한다. 경북 문경에서는 삼뿐만 아니라 무명두레도 하였고, 충남 일부에서는 모시두레도 하였다.

한편 길쌈은 품앗이로도 하였다. 전남 고흥의 물레질품앗이에는 반드시 자기의 물레를 가지고 참가하였다. 황해도와 평안도지방에서는 주로 겨울철에 물레질을 공동으로 하였는데, 10~15명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의의

벼농사를 위한 남성의 공동 노동 조직인 두레와 더불어 직조를 위한 여성의 공동 노동 조직인 길쌈두레는 식생활과 의생활의 근간을 이루었던 매우 중요한 공동노동 풍속이다. 특히, 길쌈두레와 그에 수반되는 여러 놀이, 노래에는 당대의 여성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한편 신라의 가배와 공동적마 그리고 가무와 백희는 그 후의 길쌈두레와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7월부터 8월 15일 추석에 이르는 기간의 공동적마와 그에 수반되는 여러 길쌈놀이의 기본 형태는 오랜 세월 지속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하겠다. 길쌈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길쌈놀이는 과거의 직조와 그것을 담당한 여성의 노동과 문화를 대변하는 중요한 세시 자료이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三國史記, 新增東國輿地勝覽
韓國의 歲時風俗 (崔常壽, 弘人文化社, 1960)
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
韓國農耕歲時의 硏究 (金宅圭, 嶺南大學校出版部, 198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길쌈문화의 전통과 두레공동체 (임재해, 한국민속과 전통의 세계, 지식산업사, 1991)
길쌈두레의 구성과 기능 (이경엽, 韓國民俗學25, 民俗學會, 1993)

길쌈놀이

길쌈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정일

집필자 이필영(李弼泳)
갱신일 2016-11-03

정의

부녀자들이 음력 7월부터 8월 추석(秋夕)에 이르는 동안 공동으로 길쌈을 하면서 혹은 길쌈을 끝낸 다음에 옛날이야기와 담소나 가무를 즐기거나 또는 편을 갈라서 경쟁하고 승부를 가리며 놀았던 풍습. 두레삼, 길쌈두레, 공동적마(共同績麻), 들게라고도 부른다.

유래

길쌈을 공동으로 하는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신라본기(新羅本紀)」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월조에는 당시의 길쌈놀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왕은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를 거느리어 편을 짜고 패를 나누어 추칠월(秋七月) 16일부터 날마다 일찍이 큰 부(部)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을야(乙夜: 밤 10시경)에 끝내게 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를 심사하여 지는 편은 주식(酒食)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한다. 이어서 가무(歌舞)와 백희(百戱)가 벌어졌으니 이를 가배(嘉俳)라고 한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답거늘 후인(後人)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했다.” 이미 1세기 초에 신라에서는 가배 곧, 추석(秋夕) 한가위에 길쌈놀이를 했던 것이다. 이때 불려진 회소곡도 길쌈과 관련된 민요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16세기 초반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1 경주부 풍속조(慶州部風俗條)에는 『삼국사기』의 ‘가배’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마지막에 ‘국속지금행지(國俗至今行之)’라 하여, 추석의 길쌈놀이가 국속(國俗)으로서 당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홍석모(洪錫謨)는 이 기사를 19세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추석조(秋夕條)에서 동일하게 재인용하였다. 20세기 초엽에 민속학자 송석하(宋錫夏)는 경북 경주(慶州)와 그 인근 지역에서도 두레길쌈이라는 적마(績麻) 작업 제도가 전승된다고 하였다. 옛문헌 자료가 달리 더 없어서 추석 길쌈놀이의 지속과 변화를 자세히 밝히기는 어렵다. 물론 신라와 그 이후의 두레길쌈에는 차이가 있고 그 성격도 다르다. 그러나 이미 1세기에 신라에서는 두레삼을 두 편으로 나누어 서로 경쟁하였고, 이때 온갖 가무와 백희가 뒤따른 길쌈놀이가 흥겹게 행해졌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길쌈놀이의 전통은 16세기를 거쳐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도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전승되고 있었다. 다만 각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길쌈놀이의 세부 모습과 성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길쌈이란 각종 섬유 재료에서 실을 뽑고 이를 가공하여 삼베, 모시, 명주, 무명 같은 피륙을 짜는 일련의 수공업 작업을 일컫는다.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하여 지방에 따라 또는 옷감의 종류에 따라 직조(織造)의 시기와 규모가 다르다. 그러나 길쌈을 하는 과정에서 집단으로 모여 놀이를 하는 점은 공통적이다. 특히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삼남지방에서는 대개 음력 7월부터 8월 추석에 걸쳐 온 마을의 부녀자들이 두레와 같은 공동체를 조직하고 길쌈을 하였다. 길쌈을 해야 하는 마을 부녀자들은 길쌈두레를 조직하여 매일 저녁 길쌈두레에 가입한 부녀자들의 집을 차례로 돌면서 공동으로 길쌈을 해준다. 이렇게 번갈아서 둘레둘레 돌아가면서 삼을 삼아준다고 하여 ‘두레삼[공동 또는 협동마적(協同麻績)]’ 또는 ‘두루삼’이라고 한다. 만일 길쌈두레로 길쌈을 하지 않고, 개인이 혼자서 하면 힘이 들기도 하겠지만 시일이 오래 걸려서 매우 비효율적인 노동이 된다. 그러나 두레삼으로 길쌈을 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작업량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수십 명으로 구성된 길쌈두레가 공동작업을 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도 하고 담소도 즐기며 노래도 불러가면서 지루하고 고된 반복적인 노동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었다. 전남지방에서는 다른 들게(길쌈두레)들 사이에 부부놀이, 귀신놀이, 전짓다리훔치기도 하며 놀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편을 갈라서 서로 경쟁을 하면서 길쌈을 하기도 하였다. 길쌈을 공동으로 하는 기간에는 항상 흥겹게 놀지만, 이를 전부 끝내고 결산을 한 다음에는 더 크게 놀았다. 특히 8월 15일 밤에는 그동안의 노고를 털어버리기 위하여 많은 음식을 장만하고 담소와 가무로써 한껏 즐겼다. 이때 편을 두 패로 나누고 경쟁을 하여 승패를 가리고, 진 편이 이긴 편에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기도 하였다. 한편 길쌈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하였다. 이는 부녀자들이 자신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가락에 담아 노래한 것이다. 4·4조로 이루어져 있는 긴 가사에는 고부간의 갈등, 고된 노동, 근면성, 남편에 대한 애정이 주로 담겨 있다.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서사민요로서의 독특한 민요들이 많이 불렀다.

지역사례

길쌈놀이는 삼남지방에서 특히 성행하였다. 충남 연기에서는 마을의 부녀자들이 뜰에 모여 편을 갈라 길쌈을 하는데 노래를 불러 가면서 일을 하였다. 추석이 되면 길쌈의 양을 심사하여 진 편에서는 음식을 장만한다. 음식이 마련되면 추석의 달 밝은 밤에 위로연을 베푼다. 전남 곡성에서는 젊은 처녀들이 7월부터 시작한 공동적마를 8월 보름에 끝내고, 각자 가져온 팥과 쌀을 거둔 것으로 반달 모양의 떡을 빚어 부모에게 먼저 드리고, 남은 것을 먹으며 밝은 달 아래 춤추며 놀았다고 한다. 이를 월병연(月餠宴)이라고 한다. 전북 정읍에서는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당번 집의 삼을 공평하게 나누고 길쌈을 삼아준다. 이때 재미있는 이야기와 흥겨운 노래를 해가면서 일을 한다. 8월 추석에 떡을 해서 위로연을 베푼다. 경남에서는 백중 무렵에 친한 부녀자들끼리 품앗이로 한 집씩 돌려가며 삼을 삼는 풍속이 전역에 분포하였다. 이를 두레삼이라고 한다. 이때 주인집에서는 찐 옥수수 같은 음식으로 대접을 한다. 또 편을 나누어 어느 편이 많이 삼는지 내기를 하고, 진 편이 이긴 편에 음식을 해준다. 경남에서는 봄에도 길쌈내기를 한다. 경북 문경에서는 삼뿐만 아니라 무명두레도 하였고, 충남 일부에서는 모시두레도 하였다. 한편 길쌈은 품앗이로도 하였다. 전남 고흥의 물레질품앗이에는 반드시 자기의 물레를 가지고 참가하였다. 황해도와 평안도지방에서는 주로 겨울철에 물레질을 공동으로 하였는데, 10~15명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의의

벼농사를 위한 남성의 공동 노동 조직인 두레와 더불어 직조를 위한 여성의 공동 노동 조직인 길쌈두레는 식생활과 의생활의 근간을 이루었던 매우 중요한 공동노동 풍속이다. 특히, 길쌈두레와 그에 수반되는 여러 놀이, 노래에는 당대의 여성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한편 신라의 가배와 공동적마 그리고 가무와 백희는 그 후의 길쌈두레와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7월부터 8월 15일 추석에 이르는 기간의 공동적마와 그에 수반되는 여러 길쌈놀이의 기본 형태는 오랜 세월 지속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하겠다. 길쌈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길쌈놀이는 과거의 직조와 그것을 담당한 여성의 노동과 문화를 대변하는 중요한 세시 자료이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三國史記, 新增東國輿地勝覽韓國의 歲時風俗 (崔常壽, 弘人文化社, 1960)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韓國農耕歲時의 硏究 (金宅圭, 嶺南大學校出版部, 1985)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길쌈문화의 전통과 두레공동체 (임재해, 한국민속과 전통의 세계, 지식산업사, 1991)길쌈두레의 구성과 기능 (이경엽, 韓國民俗學25, 民俗學會,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