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시 줄다리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이인화(李仁和)
갱신일 2016-10-26

정의

지네 형국의 지기地氣에서 오는 액厄을 퇴치하기 위해 지네모양의 줄을 만들어 수만 명의 시장 사람들을 끌어 모아 행해오던 상인민속놀이로, 1백여 m의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여 수상수하水上水下로 편을 나눠 승패를 가르는 놀이.

역사

기지시 줄다리기의 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이우영은 『기지시 줄다리기』에서 “기지시 줄다리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한 기록이나 고증은 없고 지금부터 약 4백여 년 전부터 시행되었다고 전설로만 내려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김기호는 <틀무시 유래>에서 “1909년(단기 4242) 여섯 집 마당(에서) 심심해서 사나기(사내끼) 주서다가(주어다가) 동아 꼬아서(동아바를 틀어서) 장양삼아(장난삼아) 시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842년 저술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예규지倪圭志」에 기지시장명과 거래품목, 장날이 기록되어 있어 줄다리기의 기원도 기지시장과 함께 5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1917년 발간한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상新旧對照 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上』에 행정리로써 기지시機池市가 처음 등장하고 있어 산 능선에 위치한 기지시리에 보부상들이 언제부터 얼마만큼 거주하였는지 알 수가 없어 시원이 그리 오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파악되는 줄다리기 행사를 김기호의 증언으로 살펴보면 1909년 장터(바깥틀못시) 여섯 집 마당(산 능선)에서 시작하였는데, 이곳에서 두 차례, 평상재에서 두 차례, 일제강점기인 1936년, 1938년, 1941년에 각각 진행되었고, 광복 후인 1960년대 1960년, 1963년, 1966년, 1968년 등과 1971년, 1974년 등 총 13번을 기록하고 있다. 1973년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면서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에서 1976년, 1979년, 1982년 줄을 다렸고, 1982년 6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1987년, 1990년, 1993년, 1995년, 1998년, 2001년, 2006년, 2009년 등 매 윤년마다 줄다리기를 행해왔고 2014년부터는 매년 대제 행사로 줄다리기를 행하고 있으며, 201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중 1909년, 1935년, 1936년, 1938년, 1941년까지는 기지시 줄다리기를 ‘줄난장’이라 기록하고 있어 장터에서 장날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당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떤 원인에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는지 줄다리기의 정확한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지만 구자성의 『기지시 줄다리기에 얽힌 전설』과, 최문휘의 『충남전설집』 「기지시 줄다리기」에 기지시는 지네형국으로 천년 묵은 지네 심술 때문에 재난이 들어 지네모양의 밧줄을 만들어 매 윤년마다 줄을 다려 사람들이 지네 혈을 밟아 지네 허리를 늘여 놓으므로 지네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는 기록과, 1936년 일제가 문화정책을 펴면서 우리나라의 풍습을 조사하여 보고한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 당진군편 줄다리기항에 “이 밧줄을 당기면 그 해에는 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고 기록하고 있어 액厄을 방비하기 위해 다른 지역 줄다리기와 다르게 산 능선이나 고갯마루 등에서 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줄다리기 주체는 기지 시장에서 기원하였기에 상인들(보부상)이었고, 줄다리기장은 김기호의 주장처럼 지네형국에서 오는 액을 퇴치하기 위해 산 능선 위의 시장 마당에서 장난삼아 시작되었고, 시장이 점차 번창하면서 상인들의 상술과 맞물려 장소를 옮겨 가며 줄을 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지시 줄다리기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줄다리기의 주체와 줄다리기 목적이 바뀌면서 줄다리기 줄을 용으로 보고, 풍농을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흥척동 앞 보리밭에서 놀이되었다. 그 이후 국민적인 호응을 바탕으로 2013년부터는 기지시리 남쪽에 기지시 줄다리기박물관과 줄다리기장이 건설되어 그곳에서 줄다리기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줄다리기 하는 날은 매 윤년 음력 2월말부터 3월초 손損이 없는 날로 양력으로 1960년도의 경우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하였다.

내용

줄다리기 행사는 줄을 다리는 날 한 달 전부터 줄을 꼬기 시작해 그 줄을 줄다리기장으로 옮겨 가서 줄을 다렸다. 줄다리기 줄은 기술자 15명이 볏짚 3천 못(지금 짚단 6천 못 가량)을 사용하여 꼬는데 둘레 3m, 길이 120~130m정도가 되었다. 먼저 볏짚 30개 정도로 작은 동아바를 꼬고, 그 줄 50가닥을 모아 중간 줄을 만들며, 그 50가닥 줄 셋을 돌려 원줄 150가닥을 만들었다. 이런 두 줄이 수상, 수하 원줄이 되고 그 원줄에 30가닥짜리 젖줄 40~60m 세 가닥을 원줄 세 곳에 반을 접어달아 6개의 줄을 만든다. 그리고 이 30가닥짜리 젖줄 6개에 10여 m의 15가닥 줄을 각 젖줄마다 5개씩 총 30줄을 달아 완성하는데, 줄 머리는 숫줄은 접고, 암줄은 둥글게 원을 만들어 총 300가닥이 되어 두 아름(지름이 1.8m)정도 되었다. 이렇게 만든 암줄과 숫줄을 연결하면 지네 모양이 형성되었다.

줄 만드는 과정은 짚 30개 정도씩 동아바 300가닥을 150여m씩 꼬아 줄드리기─줄 엮기─줄 말기─목줄 만들기─젓줄 매기─꽁지줄 만들기 순으로 진행하는데 여기에 줄틀을 사용하였다. 50가닥의 줄 세 가닥을 줄틀에 넣어 150가닥짜리 원줄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줄을 농악대와 함께 수백 명이 밀고 끌어 줄다리기장으로 옮겼다. 숫줄은 먼저 물위 사람들이 운반하기 시작하고 이를 따라서 물아래 사람들이 암줄을 끌고 그 뒤를 따른다. 이렇게 줄다리기장에 도착하면 머리를 돌려 암수 두 줄을 끼워 비녀장으로 결합시키고 그 줄을 펼친다. 그런 다음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달려들어 줄을 다리기 시작하는데, 수만 명이 약 5분간 당겨 2~3m정도 끌려가면 승패가 판가름된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마을 중 한 마을을 추첨해 1등에게 황우 1두를 주고, 2등부터 5등까지는 상금과 농기를 주었다. 1936년의 경우 농기는 물아래가 50개, 물위가 46개였다. 송악면과 송산면 전체 마을, 당진읍 시곡리, 순성면 갈산리·옥호리, 합덕읍 소소리, 우강면 창리, 신평면 거산리·초대리·남산리·금천리·한정리가 참여하였다. 1960년도에는 농기가 96개, 송악면 일원 송산면 일원, 당진읍 시곡리, 순성면 옥호리, 우강면 창리, 신평면 거산리 등의 두레가 참여하였다.

기지시機池市는 ‘틀못이’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틀못이가 틀모시, 틀무시로 음운변화하여 ‘틀’은 논틀, 밭틀과 같은 둑을 의미하고, ‘못’은 물이 좋은 샘을 의미한다. ‘이’는 장소를 의미하여 정리하면 ‘기지시機池市’는 산 능선 아래 좋은 샘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런 기지시의 ‘기機’를 베틀로 잘못 뜻풀이하여 베틀과 관련된 옥녀직금형玉女織金形으로 지형을 해석하고 ‘흥척동’이나 ‘북당골’ 같은 지명을 새로 만들어 옥녀가 베를 짜서 마전하는 형국으로 줄을 다린다고 하였고, 줄을 용龍으로 보아 보리밭을 만들어 그곳에서 줄다리기를 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지시는 면천군沔川郡의 중심으로 풍수지리상 면천군은 지네 형국 지세였다. 군의 중심지인 기지시가 지네 형국의 중심이었기에 지기를 누르기 위해 산중에 시장을 입지시켜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하여 지네발 형국을 사람의 발로 밟아 누르는 유감주술類感呪術적인 행위였다. 다시 말해 면천군에 닥치는 재액을 막기 위해 기지시에 장을 세워 지네 형국에서 오는 액을 막고자 지네모양의 줄을 만들어 줄을 당겼다. 이는 지네 머리인 면천군의 주산主山인 몽산蒙山에서 산세가 내려와 기지시에서 여섯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허리 부분과 그 꼬리에 해당되는 중흥리에 장이 번창하자 면천군의 도사령들이 나서 중흥리장을 폐하고 기지시장으로 이주시켰다는 증언과 같은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1872년 면천군지도의 모양과 기지시장의 입지가 ‘기지시시장재산협機池市場在山脅’이라는 기록을 통해 기지시 지형이 지네 형국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기지시는 면천군청에서 한진까지 80리길의 그 중간 지점의 산 능선 위에 있다.

기지시 민간신앙행사는 원래 기지시 줄다리기와 한 짝으로 행해졌던 것이 아니었다. 산신제는 보통 음력 정월 5일 안쪽으로 행했고 기지시 줄다리기는 음력으로 2월 말에서 3월 초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철에 행하였다. 국수당 당제는 산신제로 산신을 모셨던 것을 국수당 신앙으로 행해지고 있고 유교와 무교가 습합된 형태에서 유불선이 습합된 형식으로 3교가 따로따로 제의를 갖고 있다. 용왕제는 우왕제 또는 샘제라고 불렀고 제의장은 샘건너 샘과 안틀무시 샘인 대동샘으로 때 평상재 근처 급수장에서 제의를 갖기도 하였으나 대동샘이 복원되면서 물이 나는 곳에서 물이 많이 나게 해달라고 용왕신께 비는 제의를 유불선 3합으로 제의를 갖고 있다. 또한 기지시는 상인마을로 서낭을 중시해서 기지시에 세 곳, 그리고 면천군에서 기지시를 오는 산 능선을 따라 40리 길에 열두 서낭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서낭당은 다 훼손되어 없고 장승이 1984년부터 오방신五方神으로 세워졌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외 마전굿이 있다. 마전굿은 싸전 앞에서 농사가 풍년들어 쌀이 시장으로 많이 유입되길 비는 굿 제의이다.

특징 및 의의

기지시 줄다리기는 농민들이 풍농을 위한 농경민속으로써의 기능보다는 상인들이 시장의 번영을 위해 상술이 합세한 상인민속이다. 기지시는 풍수지리상으로 면천군의 중심지로 남북 80리에 펼쳐 있는 지네 형국의 중심지 산 능선에서 지기地氣를 누르기 위해 산중에 시장을 입지시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재액災厄할 수 있도록 면천군도 관여하였던 줄다리기로 언양의 줄다리기, 청도 화양의 줄당기기, 삼척의 줄당기기와 같이 집단의 결집된 힘을 과시하여 지네의 힘을 빼고 사람의 발로 솟구쳐 있는 지네 형국의 지세를 누르는 재액구축형災厄拘縮型 줄다리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林園經濟志, 국민속문화론(임동권, 집문당, 1989), 기지시줄다리기(이우영, 집문당, 1986), 기지시줄다리기에 얽힌 전설(구자성, 내포문화3, 상록인쇄사, 1991), 기지시줄다리기의 재조명(이인화, 고고와 민속, 한남대학교박물관, 2000), 당진의 민간신앙(이인화, 당진문화원, 1996), 당진의 옛지도(김추윤, 당진문화원, 1997),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중요무형문화재 75호 기지시줄다리기의 유래 재검토(이인화, 실천민속학연구13, 실천민속학회, 2009), 충남전설집(최문휘, 명문사, 1986).

기지시 줄다리기

기지시 줄다리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이인화(李仁和)
갱신일 2016-10-26

정의

지네 형국의 지기地氣에서 오는 액厄을 퇴치하기 위해 지네모양의 줄을 만들어 수만 명의 시장 사람들을 끌어 모아 행해오던 상인민속놀이로, 1백여 m의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여 수상수하水上水下로 편을 나눠 승패를 가르는 놀이.

역사

기지시 줄다리기의 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이우영은 『기지시 줄다리기』에서 “기지시 줄다리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한 기록이나 고증은 없고 지금부터 약 4백여 년 전부터 시행되었다고 전설로만 내려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김기호는 에서 “1909년(단기 4242) 여섯 집 마당(에서) 심심해서 사나기(사내끼) 주서다가(주어다가) 동아 꼬아서(동아바를 틀어서) 장양삼아(장난삼아) 시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842년 저술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예규지倪圭志」에 기지시장명과 거래품목, 장날이 기록되어 있어 줄다리기의 기원도 기지시장과 함께 5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1917년 발간한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상新旧對照 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上』에 행정리로써 기지시機池市가 처음 등장하고 있어 산 능선에 위치한 기지시리에 보부상들이 언제부터 얼마만큼 거주하였는지 알 수가 없어 시원이 그리 오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파악되는 줄다리기 행사를 김기호의 증언으로 살펴보면 1909년 장터(바깥틀못시) 여섯 집 마당(산 능선)에서 시작하였는데, 이곳에서 두 차례, 평상재에서 두 차례, 일제강점기인 1936년, 1938년, 1941년에 각각 진행되었고, 광복 후인 1960년대 1960년, 1963년, 1966년, 1968년 등과 1971년, 1974년 등 총 13번을 기록하고 있다. 1973년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면서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에서 1976년, 1979년, 1982년 줄을 다렸고, 1982년 6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1987년, 1990년, 1993년, 1995년, 1998년, 2001년, 2006년, 2009년 등 매 윤년마다 줄다리기를 행해왔고 2014년부터는 매년 대제 행사로 줄다리기를 행하고 있으며, 201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중 1909년, 1935년, 1936년, 1938년, 1941년까지는 기지시 줄다리기를 ‘줄난장’이라 기록하고 있어 장터에서 장날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당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떤 원인에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는지 줄다리기의 정확한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지만 구자성의 『기지시 줄다리기에 얽힌 전설』과, 최문휘의 『충남전설집』 「기지시 줄다리기」에 기지시는 지네형국으로 천년 묵은 지네 심술 때문에 재난이 들어 지네모양의 밧줄을 만들어 매 윤년마다 줄을 다려 사람들이 지네 혈을 밟아 지네 허리를 늘여 놓으므로 지네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는 기록과, 1936년 일제가 문화정책을 펴면서 우리나라의 풍습을 조사하여 보고한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 당진군편 줄다리기항에 “이 밧줄을 당기면 그 해에는 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고 기록하고 있어 액厄을 방비하기 위해 다른 지역 줄다리기와 다르게 산 능선이나 고갯마루 등에서 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줄다리기 주체는 기지 시장에서 기원하였기에 상인들(보부상)이었고, 줄다리기장은 김기호의 주장처럼 지네형국에서 오는 액을 퇴치하기 위해 산 능선 위의 시장 마당에서 장난삼아 시작되었고, 시장이 점차 번창하면서 상인들의 상술과 맞물려 장소를 옮겨 가며 줄을 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지시 줄다리기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줄다리기의 주체와 줄다리기 목적이 바뀌면서 줄다리기 줄을 용으로 보고, 풍농을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흥척동 앞 보리밭에서 놀이되었다. 그 이후 국민적인 호응을 바탕으로 2013년부터는 기지시리 남쪽에 기지시 줄다리기박물관과 줄다리기장이 건설되어 그곳에서 줄다리기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줄다리기 하는 날은 매 윤년 음력 2월말부터 3월초 손損이 없는 날로 양력으로 1960년도의 경우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하였다.

내용

줄다리기 행사는 줄을 다리는 날 한 달 전부터 줄을 꼬기 시작해 그 줄을 줄다리기장으로 옮겨 가서 줄을 다렸다. 줄다리기 줄은 기술자 15명이 볏짚 3천 못(지금 짚단 6천 못 가량)을 사용하여 꼬는데 둘레 3m, 길이 120~130m정도가 되었다. 먼저 볏짚 30개 정도로 작은 동아바를 꼬고, 그 줄 50가닥을 모아 중간 줄을 만들며, 그 50가닥 줄 셋을 돌려 원줄 150가닥을 만들었다. 이런 두 줄이 수상, 수하 원줄이 되고 그 원줄에 30가닥짜리 젖줄 40~60m 세 가닥을 원줄 세 곳에 반을 접어달아 6개의 줄을 만든다. 그리고 이 30가닥짜리 젖줄 6개에 10여 m의 15가닥 줄을 각 젖줄마다 5개씩 총 30줄을 달아 완성하는데, 줄 머리는 숫줄은 접고, 암줄은 둥글게 원을 만들어 총 300가닥이 되어 두 아름(지름이 1.8m)정도 되었다. 이렇게 만든 암줄과 숫줄을 연결하면 지네 모양이 형성되었다. 줄 만드는 과정은 짚 30개 정도씩 동아바 300가닥을 150여m씩 꼬아 줄드리기─줄 엮기─줄 말기─목줄 만들기─젓줄 매기─꽁지줄 만들기 순으로 진행하는데 여기에 줄틀을 사용하였다. 50가닥의 줄 세 가닥을 줄틀에 넣어 150가닥짜리 원줄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줄을 농악대와 함께 수백 명이 밀고 끌어 줄다리기장으로 옮겼다. 숫줄은 먼저 물위 사람들이 운반하기 시작하고 이를 따라서 물아래 사람들이 암줄을 끌고 그 뒤를 따른다. 이렇게 줄다리기장에 도착하면 머리를 돌려 암수 두 줄을 끼워 비녀장으로 결합시키고 그 줄을 펼친다. 그런 다음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달려들어 줄을 다리기 시작하는데, 수만 명이 약 5분간 당겨 2~3m정도 끌려가면 승패가 판가름된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마을 중 한 마을을 추첨해 1등에게 황우 1두를 주고, 2등부터 5등까지는 상금과 농기를 주었다. 1936년의 경우 농기는 물아래가 50개, 물위가 46개였다. 송악면과 송산면 전체 마을, 당진읍 시곡리, 순성면 갈산리·옥호리, 합덕읍 소소리, 우강면 창리, 신평면 거산리·초대리·남산리·금천리·한정리가 참여하였다. 1960년도에는 농기가 96개, 송악면 일원 송산면 일원, 당진읍 시곡리, 순성면 옥호리, 우강면 창리, 신평면 거산리 등의 두레가 참여하였다. 기지시機池市는 ‘틀못이’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틀못이가 틀모시, 틀무시로 음운변화하여 ‘틀’은 논틀, 밭틀과 같은 둑을 의미하고, ‘못’은 물이 좋은 샘을 의미한다. ‘이’는 장소를 의미하여 정리하면 ‘기지시機池市’는 산 능선 아래 좋은 샘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런 기지시의 ‘기機’를 베틀로 잘못 뜻풀이하여 베틀과 관련된 옥녀직금형玉女織金形으로 지형을 해석하고 ‘흥척동’이나 ‘북당골’ 같은 지명을 새로 만들어 옥녀가 베를 짜서 마전하는 형국으로 줄을 다린다고 하였고, 줄을 용龍으로 보아 보리밭을 만들어 그곳에서 줄다리기를 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지시는 면천군沔川郡의 중심으로 풍수지리상 면천군은 지네 형국 지세였다. 군의 중심지인 기지시가 지네 형국의 중심이었기에 지기를 누르기 위해 산중에 시장을 입지시켜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하여 지네발 형국을 사람의 발로 밟아 누르는 유감주술類感呪術적인 행위였다. 다시 말해 면천군에 닥치는 재액을 막기 위해 기지시에 장을 세워 지네 형국에서 오는 액을 막고자 지네모양의 줄을 만들어 줄을 당겼다. 이는 지네 머리인 면천군의 주산主山인 몽산蒙山에서 산세가 내려와 기지시에서 여섯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허리 부분과 그 꼬리에 해당되는 중흥리에 장이 번창하자 면천군의 도사령들이 나서 중흥리장을 폐하고 기지시장으로 이주시켰다는 증언과 같은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1872년 면천군지도의 모양과 기지시장의 입지가 ‘기지시시장재산협機池市場在山脅’이라는 기록을 통해 기지시 지형이 지네 형국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기지시는 면천군청에서 한진까지 80리길의 그 중간 지점의 산 능선 위에 있다. 기지시 민간신앙행사는 원래 기지시 줄다리기와 한 짝으로 행해졌던 것이 아니었다. 산신제는 보통 음력 정월 5일 안쪽으로 행했고 기지시 줄다리기는 음력으로 2월 말에서 3월 초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철에 행하였다. 국수당 당제는 산신제로 산신을 모셨던 것을 국수당 신앙으로 행해지고 있고 유교와 무교가 습합된 형태에서 유불선이 습합된 형식으로 3교가 따로따로 제의를 갖고 있다. 용왕제는 우왕제 또는 샘제라고 불렀고 제의장은 샘건너 샘과 안틀무시 샘인 대동샘으로 때 평상재 근처 급수장에서 제의를 갖기도 하였으나 대동샘이 복원되면서 물이 나는 곳에서 물이 많이 나게 해달라고 용왕신께 비는 제의를 유불선 3합으로 제의를 갖고 있다. 또한 기지시는 상인마을로 서낭을 중시해서 기지시에 세 곳, 그리고 면천군에서 기지시를 오는 산 능선을 따라 40리 길에 열두 서낭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서낭당은 다 훼손되어 없고 장승이 1984년부터 오방신五方神으로 세워졌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외 마전굿이 있다. 마전굿은 싸전 앞에서 농사가 풍년들어 쌀이 시장으로 많이 유입되길 비는 굿 제의이다.

특징 및 의의

기지시 줄다리기는 농민들이 풍농을 위한 농경민속으로써의 기능보다는 상인들이 시장의 번영을 위해 상술이 합세한 상인민속이다. 기지시는 풍수지리상으로 면천군의 중심지로 남북 80리에 펼쳐 있는 지네 형국의 중심지 산 능선에서 지기地氣를 누르기 위해 산중에 시장을 입지시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재액災厄할 수 있도록 면천군도 관여하였던 줄다리기로 언양의 줄다리기, 청도 화양의 줄당기기, 삼척의 줄당기기와 같이 집단의 결집된 힘을 과시하여 지네의 힘을 빼고 사람의 발로 솟구쳐 있는 지네 형국의 지세를 누르는 재액구축형災厄拘縮型 줄다리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林園經濟志, 국민속문화론(임동권, 집문당, 1989), 기지시줄다리기(이우영, 집문당, 1986), 기지시줄다리기에 얽힌 전설(구자성, 내포문화3, 상록인쇄사, 1991), 기지시줄다리기의 재조명(이인화, 고고와 민속, 한남대학교박물관, 2000), 당진의 민간신앙(이인화, 당진문화원, 1996), 당진의 옛지도(김추윤, 당진문화원, 1997),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중요무형문화재 75호 기지시줄다리기의 유래 재검토(이인화, 실천민속학연구13, 실천민속학회, 2009), 충남전설집(최문휘, 명문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