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배

한자명

旗歲拜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송화섭(宋華燮)
갱신일 2016-11-03

정의

정월 대보름 무렵에 농신기(農神旗)를 갖고 기세배를 하던 풍농기원 민속놀이. 농기세배·농기뺏기·기싸움·기절·기접놀이 등이라고도 하는데, 기(旗)로써 예절을 갖추기도 하지만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내용

기세배는 이웃 마을의 두레꾼들이 한곳에 모이거나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일년 농사를 앞두고 풍농을 기원하고 단합과 결속을 다지는 풍속이다. 주로 서열이 낮은 마을이 서열이 높은 마을로 찾아 가서 기로써 세배를 올리고 화합의 굿판을 벌였다. 특히 전북 익산시, 김제시, 남원시, 정읍시, 군산시 옥구읍 등 평야가 넓은 지역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기세배는 서열에 따라 예를 갖추는데 형두레, 아우두레, 선생두레, 제자두레 식으로 인사를 올린다. 서열은 마을 형성 과정과 입향 주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기세배가 기싸움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는데, 기싸움은 형두레와 아우두레 사이에 예절이 지켜지지 않아 시빗거리가 발생하여 싸움으로까지 번진다. 기싸움은 곧 두레싸움으로 확대되어 두레꾼들의 육박전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마을의 기가 충천하고 몸집이 크고 원기가 넘치는 장정들의 심술을 부려 기싸움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익산 함라 지역에서는 기세배를 하면서 기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많았다. 기세배가 상대 마을의 두레 권위를 인정하여 예의를 갖추는 행위라면 기싸움은 상대 마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서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두레싸움이다. 그러나 기싸움으로 인하여 이웃마을 간에 교류가 단절되는 일은 없다. 기세배와 기싸움은 농촌에서 마을 간에 공동체 생활의 연대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마을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기세배는 아랫마을 기가 15도 각도로 숙이면 이때 형두레는 기를 좌우로 흔들며 답례를 한다. 농악대는 자진마치로 울려준다. 기세배는 마을끼리 새해를 맞이하여 예절을 갖추어 절을 하는 방식으로 각 마을 두레의 권위를 인정하는 인사법이었다. 기세배는 대체로 마을 간에 명확한 서열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립적인 관계를 가진 마을은 기싸움을 벌이기 일쑤이다. 기세배를 마치고 나면 마을끼리 화합과 유대를 강화하는 ‘합굿’이 연출된다. 합굿은 여러 동네가 기세배의 뒤풀이로서 다양한 기놀이를 즐기면서 치는 풍장굿을 말한다.

농신기는 농업신을 기폭에 그려 넣은 신성한 깃발이다. 농신기의 기폭에는 청룡과 거북이, 물고기 등이 그려져 있다. 청룡과 거북과 잉어는 물에서 사는 수신(水神)으로 믿어 왔다. 마을에 따라서는 신농씨가 용에 올라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농신기는 용이 그림의 주축을 이루면서 용당기(龍幢旗)·용기(龍旗)·용신기(龍神旗)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신기는 마을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가능한 한 크게 만들고 화려하게 장식한다. 농신기는 비싼 광목을 사용하였으며, 장목은 7미터 이상 되는 대나무를 이용하여 5미터로 만든다. 농신기의 장대 끝에는 ‘꿩장목’을 달았다. 꿩장목은 장목·꿩목으로 불린다. 꿩장목 아래는 ‘총을치’로 장식하였다. 총을치란 칡을 물에 불려서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을 가는 실처럼 갈가리 찢은 다음 붉은 물을 들여서 장목 바로 밑에 매단 것을 말한다. 총을치 아래에는 장목수건·깃수건이라고 하는 흰수건을 매달았다. 기폭 둘레에는 ‘지네발’을 장식하여 바람에 너풀거리도록 하였다.

농신기는 농업신의 신체이며 마을의 권위와 비례하였다. 농악대가 행진할 때 가장 앞세우며, 농사일을 할 때에는 마을 입구에 세워 놓아 마을기의 기능을 하도록 했다. 농신기가 이동할 때에는 기의 양쪽에서 2명의 보조원이 깃대에 연결된 끈을 잡아 깃대잡이를 도왔다. 깃대잡이가 깃대의 중심을 잡도록 보조원이 끈으로 조정하였다.

농신기는 정월 대보름 당산굿7월 백중절에 풍농기원의 농경의례를 거행할 때에 반드시 등장하지만, 여름철 농사일을 할 때에도 이동용으로 들고 다니기도 한다. 이동할 때에도 상대마을의 농신기를 만나면 마을의 서열에 따라 반드시 예를 갖추어 절을 해야 했다. 아우두레가 예를 갖추지 않고 지나치면 곧장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기가 절을 하면 농민들도 함께 예의를 표했으며, 농민들이 농기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예를 갖추는 자세를 취하였다. 농민들은 농신기를 소중하게 관리하였으며, 깃대에서 기를 떼어 별도로 보관하고 장대는 큰 집 사랑의 처마 밑에 걸어 두었다.

지역사례

익산의 금마 기세배는 처음부터 열두 개 마을에서 시작하였다. 정월 14일 밤에는 각 마을당산에서 농기를 세워 놓고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열두 개 마을은 형제의 서열에 따라 금마 상대 마을이 맏형이 된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각 마을의 소동들은 영기를 들고 열하나의 아우 마을을 차례대로 돌아다니며 상대마을로 인도한다. 상대마을 광장에 모인 열두 개 마을의 농신기와 두레집단은 맏형 마을의 농신기에 절을 하여 세배를 교환하고 풍장을 치고 기놀이를 즐겼다. 열두 개 마을은 익산군 금마면 상대마을, 옥동, 건지리, 루동, 교동, 행정, 원촌, 황동, 도천마을 등이다. 마을의 권세에 따라 형의 우위가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형두레는 상대마을이 항상 도맡았다. 농기세배의 구성조직은 좌상, 공원, 총각좌수, 총각머슴, 기받이, 보조기받이, 신령, 꽃나비, 꽃받이 등 16명과 농악대 8명 그리고 각 마을에서 들고 나오는 농신기가 있었다.

기제사를 올릴 때 농악을 울리는데 제주가 좌상이 된다. 보름날 아침에 상대마을의 소동기와 농악대, 좌상, 총각머슴이 막내동생 마을부터 찾아간다. 막내 동네에서는 이들을 맞이하여 굿을 치고서 다음 차례의 동생 마을로 찾아간다. 열하나의 아우 마을들을 이끌고 상대마을로 모여들면 웅장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열한 개 마을의 농신기를 든 두레집단과 농악대가 상대마을에 도착하면 당산 앞에 서서 일제히 당산굿을 친다. 당산굿이 끝나면 열한 개 마을의 농악대와 두레집단은 상대마을 앞 광장으로 나아가 풍장굿을 치고서 마을 단위로 개인의 기놀이를 즐기고 흥을 돋운다.

기세배는 상대마을 농신기 앞에 그 다음 형인 옥동마을 농기가 세배를 받을 위치에 나가 선다. 이때에 두 기의 간격은 서로 기를 구부렸을 때 기장목이 스칠 정도이다. 상대마을의 총각머슴이“기세배 시작이요.”를 외치면 다른 마을의 모든 농악대가 굿물로 흥을 돋운다. 옥동마을의 농신기가 상대마을 농신기에게 “옥동마을 봉심이요.” 하고 외치면서 옥동마을 농기가 서서히 굽혀 절을 올린다. 이때 주변사람들이 깃대를 더 굽히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옥동기는 어느 정도 굽히지 않으려고 하지만 더 굽히라고 외치는 소리에 모른 체하고 더 굽혀준다. 이때 상대마을의 농신기는 기를 좌우로 흔들어 답례를 한다. 또 “재배요.” 하고 외치면 상대마을 농신기와 옥동마을의 농신기가 맞절을 한다. 농신기가 서로 맞절을 하면서 기를 조금 더 수그리라는 요청을 받아 익살스러운 행동이 나오기도 하고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상대마을과 아우마을의 세배가 끝나고 나면 옥동마을의 기는 상대마을의 기 옆에 선다. 그 다음에는 셋째인 구정마을의 농신기가 상대마을과 옥동마을의 농신기 앞에 나아가 세배를 올린다. 이러한 순서로 마을마다 차례로 형두레 마을 앞에 나아가 농신기로 세 번의 세배를 올린다. 기세배가 모두 끝나면 각 마을의 농신기들이 앞에 나와서 기받이와 기쓸기 등 농신기의 기교를 부린다. 이 기놀이에는 ① 상대기 쓸기, ② 손놀이·어깨놀이·이마받기, ③ 딸기치기, ④ 파장돌리기 등이 있다. 이 기놀이는 힘 센 장정이 맡아서 한다. 기놀이 과정이 끝나면 각 마을 사람들은 상대마을의 농악대를 따라 마지막으로 둥글게 모여서 군무를 이루어 풍장굿을 치는 것으로 정월 대보름의 기세배를 마친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報告書-全羅北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1)

기세배

기세배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송화섭(宋華燮)
갱신일 2016-11-03

정의

정월 대보름 무렵에 농신기(農神旗)를 갖고 기세배를 하던 풍농기원 민속놀이. 농기세배·농기뺏기·기싸움·기절·기접놀이 등이라고도 하는데, 기(旗)로써 예절을 갖추기도 하지만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내용

기세배는 이웃 마을의 두레꾼들이 한곳에 모이거나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일년 농사를 앞두고 풍농을 기원하고 단합과 결속을 다지는 풍속이다. 주로 서열이 낮은 마을이 서열이 높은 마을로 찾아 가서 기로써 세배를 올리고 화합의 굿판을 벌였다. 특히 전북 익산시, 김제시, 남원시, 정읍시, 군산시 옥구읍 등 평야가 넓은 지역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기세배는 서열에 따라 예를 갖추는데 형두레, 아우두레, 선생두레, 제자두레 식으로 인사를 올린다. 서열은 마을 형성 과정과 입향 주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기세배가 기싸움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는데, 기싸움은 형두레와 아우두레 사이에 예절이 지켜지지 않아 시빗거리가 발생하여 싸움으로까지 번진다. 기싸움은 곧 두레싸움으로 확대되어 두레꾼들의 육박전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마을의 기가 충천하고 몸집이 크고 원기가 넘치는 장정들의 심술을 부려 기싸움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익산 함라 지역에서는 기세배를 하면서 기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많았다. 기세배가 상대 마을의 두레 권위를 인정하여 예의를 갖추는 행위라면 기싸움은 상대 마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서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두레싸움이다. 그러나 기싸움으로 인하여 이웃마을 간에 교류가 단절되는 일은 없다. 기세배와 기싸움은 농촌에서 마을 간에 공동체 생활의 연대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마을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기세배는 아랫마을 기가 15도 각도로 숙이면 이때 형두레는 기를 좌우로 흔들며 답례를 한다. 농악대는 자진마치로 울려준다. 기세배는 마을끼리 새해를 맞이하여 예절을 갖추어 절을 하는 방식으로 각 마을 두레의 권위를 인정하는 인사법이었다. 기세배는 대체로 마을 간에 명확한 서열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립적인 관계를 가진 마을은 기싸움을 벌이기 일쑤이다. 기세배를 마치고 나면 마을끼리 화합과 유대를 강화하는 ‘합굿’이 연출된다. 합굿은 여러 동네가 기세배의 뒤풀이로서 다양한 기놀이를 즐기면서 치는 풍장굿을 말한다. 농신기는 농업신을 기폭에 그려 넣은 신성한 깃발이다. 농신기의 기폭에는 청룡과 거북이, 물고기 등이 그려져 있다. 청룡과 거북과 잉어는 물에서 사는 수신(水神)으로 믿어 왔다. 마을에 따라서는 신농씨가 용에 올라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농신기는 용이 그림의 주축을 이루면서 용당기(龍幢旗)·용기(龍旗)·용신기(龍神旗)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신기는 마을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가능한 한 크게 만들고 화려하게 장식한다. 농신기는 비싼 광목을 사용하였으며, 장목은 7미터 이상 되는 대나무를 이용하여 5미터로 만든다. 농신기의 장대 끝에는 ‘꿩장목’을 달았다. 꿩장목은 장목·꿩목으로 불린다. 꿩장목 아래는 ‘총을치’로 장식하였다. 총을치란 칡을 물에 불려서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을 가는 실처럼 갈가리 찢은 다음 붉은 물을 들여서 장목 바로 밑에 매단 것을 말한다. 총을치 아래에는 장목수건·깃수건이라고 하는 흰수건을 매달았다. 기폭 둘레에는 ‘지네발’을 장식하여 바람에 너풀거리도록 하였다. 농신기는 농업신의 신체이며 마을의 권위와 비례하였다. 농악대가 행진할 때 가장 앞세우며, 농사일을 할 때에는 마을 입구에 세워 놓아 마을기의 기능을 하도록 했다. 농신기가 이동할 때에는 기의 양쪽에서 2명의 보조원이 깃대에 연결된 끈을 잡아 깃대잡이를 도왔다. 깃대잡이가 깃대의 중심을 잡도록 보조원이 끈으로 조정하였다. 농신기는 정월 대보름 당산굿과 7월 백중절에 풍농기원의 농경의례를 거행할 때에 반드시 등장하지만, 여름철 농사일을 할 때에도 이동용으로 들고 다니기도 한다. 이동할 때에도 상대마을의 농신기를 만나면 마을의 서열에 따라 반드시 예를 갖추어 절을 해야 했다. 아우두레가 예를 갖추지 않고 지나치면 곧장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기가 절을 하면 농민들도 함께 예의를 표했으며, 농민들이 농기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예를 갖추는 자세를 취하였다. 농민들은 농신기를 소중하게 관리하였으며, 깃대에서 기를 떼어 별도로 보관하고 장대는 큰 집 사랑의 처마 밑에 걸어 두었다.

지역사례

익산의 금마 기세배는 처음부터 열두 개 마을에서 시작하였다. 정월 14일 밤에는 각 마을당산에서 농기를 세워 놓고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열두 개 마을은 형제의 서열에 따라 금마 상대 마을이 맏형이 된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각 마을의 소동들은 영기를 들고 열하나의 아우 마을을 차례대로 돌아다니며 상대마을로 인도한다. 상대마을 광장에 모인 열두 개 마을의 농신기와 두레집단은 맏형 마을의 농신기에 절을 하여 세배를 교환하고 풍장을 치고 기놀이를 즐겼다. 열두 개 마을은 익산군 금마면 상대마을, 옥동, 건지리, 루동, 교동, 행정, 원촌, 황동, 도천마을 등이다. 마을의 권세에 따라 형의 우위가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형두레는 상대마을이 항상 도맡았다. 농기세배의 구성조직은 좌상, 공원, 총각좌수, 총각머슴, 기받이, 보조기받이, 신령, 꽃나비, 꽃받이 등 16명과 농악대 8명 그리고 각 마을에서 들고 나오는 농신기가 있었다. 기제사를 올릴 때 농악을 울리는데 제주가 좌상이 된다. 보름날 아침에 상대마을의 소동기와 농악대, 좌상, 총각머슴이 막내동생 마을부터 찾아간다. 막내 동네에서는 이들을 맞이하여 굿을 치고서 다음 차례의 동생 마을로 찾아간다. 열하나의 아우 마을들을 이끌고 상대마을로 모여들면 웅장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열한 개 마을의 농신기를 든 두레집단과 농악대가 상대마을에 도착하면 당산 앞에 서서 일제히 당산굿을 친다. 당산굿이 끝나면 열한 개 마을의 농악대와 두레집단은 상대마을 앞 광장으로 나아가 풍장굿을 치고서 마을 단위로 개인의 기놀이를 즐기고 흥을 돋운다. 기세배는 상대마을 농신기 앞에 그 다음 형인 옥동마을 농기가 세배를 받을 위치에 나가 선다. 이때에 두 기의 간격은 서로 기를 구부렸을 때 기장목이 스칠 정도이다. 상대마을의 총각머슴이“기세배 시작이요.”를 외치면 다른 마을의 모든 농악대가 굿물로 흥을 돋운다. 옥동마을의 농신기가 상대마을 농신기에게 “옥동마을 봉심이요.” 하고 외치면서 옥동마을 농기가 서서히 굽혀 절을 올린다. 이때 주변사람들이 깃대를 더 굽히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옥동기는 어느 정도 굽히지 않으려고 하지만 더 굽히라고 외치는 소리에 모른 체하고 더 굽혀준다. 이때 상대마을의 농신기는 기를 좌우로 흔들어 답례를 한다. 또 “재배요.” 하고 외치면 상대마을 농신기와 옥동마을의 농신기가 맞절을 한다. 농신기가 서로 맞절을 하면서 기를 조금 더 수그리라는 요청을 받아 익살스러운 행동이 나오기도 하고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상대마을과 아우마을의 세배가 끝나고 나면 옥동마을의 기는 상대마을의 기 옆에 선다. 그 다음에는 셋째인 구정마을의 농신기가 상대마을과 옥동마을의 농신기 앞에 나아가 세배를 올린다. 이러한 순서로 마을마다 차례로 형두레 마을 앞에 나아가 농신기로 세 번의 세배를 올린다. 기세배가 모두 끝나면 각 마을의 농신기들이 앞에 나와서 기받이와 기쓸기 등 농신기의 기교를 부린다. 이 기놀이에는 ① 상대기 쓸기, ② 손놀이·어깨놀이·이마받기, ③ 딸기치기, ④ 파장돌리기 등이 있다. 이 기놀이는 힘 센 장정이 맡아서 한다. 기놀이 과정이 끝나면 각 마을 사람들은 상대마을의 농악대를 따라 마지막으로 둥글게 모여서 군무를 이루어 풍장굿을 치는 것으로 정월 대보름의 기세배를 마친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報告書-全羅北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