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청징연기우제당

한자명

錦山淸澄淵祈雨祭堂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 이해준(李海濬)
갱신일 2016-10-27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삼가리에 위치한 청징연에서 날이 가물 때 기우제(무제)를 지내던 제당.

형태

청징연은 속칭 ‘청등소’ 또는 ‘청강수’라고 불리며, 앞마을을 청징이 또는 청등이라고 한다. 청징연은 진산면 삼가리에서 청징이 뒤편으로 300m쯤 떨어진 계곡에 자리한다. 이곳은 인대산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물이 암벽에 부딪쳐서 폭포수를 이루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 밑에 커다란 못이 형성되었다. 못의 바닥에는 커다란 굴이 뚫려 있다.이 굴은 이무기굴이라고 전한다. 청징연은 기암괴석과 계곡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주변 경관이 수려해 여름철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쉬어가는 명소이기도 하다.

역사

청징연은 조선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기우제가 거행된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33 진산군 산천조에 “청징연, 군의 남쪽 10리에 있다. 물의 깊이를 알 수 없고, 세상에 전하기를 용이 있다고 한다. 날이 가물어 비를 기원하면 즉시 응한다. 지금은 모래가 덮여 물 깊이는 불과 3자이다”라고 하여 조선 초기부터 기우제당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충남편)에는 “삼거리 남쪽에 소(沼)가 있다. 물이 맑고 깊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데 용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가뭄이 심할 때 무제(기우제)를 지내면 매우 영험하다고 한다. 현재는 메워져서 한 길밖에 깊지 않다”라고 하여 예부터 날이 가물 때 청징연에서 기우제를 지내 온 사실이 짧게 소개되었다.

내용

청징연 바닥에는 굴이 뚫려 있다. 이 굴은 명주꾸리 한 타래가 다 들어갈 만큼 깊으며 안에 용 또는 이무기가 산다 하여 이무기굴이라고 한다. 옛날에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굴 안을 들어갔다가 이무기가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또 10여 리 남짓 떨어진 진산면 오항리로 통하는 이무기굴은 물 위에 홍두깨를 띄워 놓으면 오항리에 있는 못으로 떠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청징연을 암소[沼], 오항리를 숫소라고도 한다.

예전에 날이 가물면 삼가리에 속한 청징이, 삼가동, 방각골이 회합을 갖고 기우제를 지낼 날짜를 잡았다. 택일이 되면 십시일반으로 보리쌀이나 돈을 갹출하여 제수를 마련했다.제물은 돼지머리·떡·통북어·불백기·과자·술 등으로 세 마을이 각각 별도로 준비하였다. 기우제 하루 전에는 집집마다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편다. 또 병에 물을 가득 담아 솔가지로 주둥이를 막고 대문 앞에 걸어 두면 솔잎을 타고 물이 조금씩 흘러내려 마치 비가 오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당일 아침이 되면 세 마을의 남자들은 낫을 들고청징연으로 가서 각자 풀과 나뭇가지를 한 짐씩 베어 못 안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큰 못이 꽉 찰 정도로 풀이 넘쳐나며, 하늘에서 이를 본 용이 속히 비를 뿌려서 깨끗하게 씻어 내린다고 한다. 이는 용소에 돼지피를 뿌리거나 오줌을 누어 비를 기원하는 것처럼 용의 거처인 청징연에 풀을 잔뜩 넣음으로써 운우(雲雨)를 기원하는 일종의 오염기우(汚染祈雨)인 셈이다.

기우제는 세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두 참석하였다. 제의 준비가 다 되면 여성들은 키를 뒤집어쓰거나 그릇을 들고 풍장을 울리며 청징연으로 모여 못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유교식 기우제를 지냈다. 이때 입담 좋은 아낙네가 비가 내리기를 간곡히 축원하는 소지를 올렸고, 기우제를 마치면 여자들은 키로 물을 까부르며 비 오는 시늉을 하였다. 또 그릇에 물을 떠서 허공에 뿌리거나 연못에 들어가서 서로 상대방에게 뿌리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였다. 이렇게 기우제를 지내고 나면 효험이 있어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고 온 적도 있었다 한다.

청징연기우제는 못의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혹독한 가뭄이 아니면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평생을 마을에서 산 노인들이 기우제를 경험한 것은 몇 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청징연을 매우 신성시하였다. 특히 유황(용왕)을 위하는 가정에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이곳을 찾아와 무병제액을 축원하는 고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新增東國輿地勝覽 (설화속의 금산, 금산문화원, 1996)

금산청징연기우제당

금산청징연기우제당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 이해준(李海濬)
갱신일 2016-10-27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삼가리에 위치한 청징연에서 날이 가물 때 기우제(무제)를 지내던 제당.

형태

청징연은 속칭 ‘청등소’ 또는 ‘청강수’라고 불리며, 앞마을을 청징이 또는 청등이라고 한다. 청징연은 진산면 삼가리에서 청징이 뒤편으로 300m쯤 떨어진 계곡에 자리한다. 이곳은 인대산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물이 암벽에 부딪쳐서 폭포수를 이루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 밑에 커다란 못이 형성되었다. 못의 바닥에는 커다란 굴이 뚫려 있다.이 굴은 이무기굴이라고 전한다. 청징연은 기암괴석과 계곡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주변 경관이 수려해 여름철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쉬어가는 명소이기도 하다.

역사

청징연은 조선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기우제가 거행된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33 진산군 산천조에 “청징연, 군의 남쪽 10리에 있다. 물의 깊이를 알 수 없고, 세상에 전하기를 용이 있다고 한다. 날이 가물어 비를 기원하면 즉시 응한다. 지금은 모래가 덮여 물 깊이는 불과 3자이다”라고 하여 조선 초기부터 기우제당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충남편)에는 “삼거리 남쪽에 소(沼)가 있다. 물이 맑고 깊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데 용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가뭄이 심할 때 무제(기우제)를 지내면 매우 영험하다고 한다. 현재는 메워져서 한 길밖에 깊지 않다”라고 하여 예부터 날이 가물 때 청징연에서 기우제를 지내 온 사실이 짧게 소개되었다.

내용

청징연 바닥에는 굴이 뚫려 있다. 이 굴은 명주꾸리 한 타래가 다 들어갈 만큼 깊으며 안에 용 또는 이무기가 산다 하여 이무기굴이라고 한다. 옛날에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굴 안을 들어갔다가 이무기가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또 10여 리 남짓 떨어진 진산면 오항리로 통하는 이무기굴은 물 위에 홍두깨를 띄워 놓으면 오항리에 있는 못으로 떠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청징연을 암소[沼], 오항리를 숫소라고도 한다. 예전에 날이 가물면 삼가리에 속한 청징이, 삼가동, 방각골이 회합을 갖고 기우제를 지낼 날짜를 잡았다. 택일이 되면 십시일반으로 보리쌀이나 돈을 갹출하여 제수를 마련했다.제물은 돼지머리·떡·통북어·불백기·과자·술 등으로 세 마을이 각각 별도로 준비하였다. 기우제 하루 전에는 집집마다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편다. 또 병에 물을 가득 담아 솔가지로 주둥이를 막고 대문 앞에 걸어 두면 솔잎을 타고 물이 조금씩 흘러내려 마치 비가 오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당일 아침이 되면 세 마을의 남자들은 낫을 들고청징연으로 가서 각자 풀과 나뭇가지를 한 짐씩 베어 못 안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큰 못이 꽉 찰 정도로 풀이 넘쳐나며, 하늘에서 이를 본 용이 속히 비를 뿌려서 깨끗하게 씻어 내린다고 한다. 이는 용소에 돼지피를 뿌리거나 오줌을 누어 비를 기원하는 것처럼 용의 거처인 청징연에 풀을 잔뜩 넣음으로써 운우(雲雨)를 기원하는 일종의 오염기우(汚染祈雨)인 셈이다. 기우제는 세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두 참석하였다. 제의 준비가 다 되면 여성들은 키를 뒤집어쓰거나 그릇을 들고 풍장을 울리며 청징연으로 모여 못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유교식 기우제를 지냈다. 이때 입담 좋은 아낙네가 비가 내리기를 간곡히 축원하는 소지를 올렸고, 기우제를 마치면 여자들은 키로 물을 까부르며 비 오는 시늉을 하였다. 또 그릇에 물을 떠서 허공에 뿌리거나 연못에 들어가서 서로 상대방에게 뿌리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였다. 이렇게 기우제를 지내고 나면 효험이 있어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고 온 적도 있었다 한다. 청징연기우제는 못의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혹독한 가뭄이 아니면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평생을 마을에서 산 노인들이 기우제를 경험한 것은 몇 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청징연을 매우 신성시하였다. 특히 유황(용왕)을 위하는 가정에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이곳을 찾아와 무병제액을 축원하는 고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新增東國輿地勝覽 (설화속의 금산, 금산문화원,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