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신발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문자(金文子)
갱신일 2018-10-11

정의

금동金銅으로 만들어진 신발.

내용

삼국시대 금동신발의 종류는 바닥의 형태에 따라 신바닥에 각정角釘이 붙어 있는 스파이크식 금동신발, 신바닥에 영락瓔珞이 달려 있는 영락부 금동신발, 신바닥에 각정이나 영락이 달려 있지 않은 금동신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스파이크식 금동신발: 고구려 스파이크식 금동신발의 예로 들 수 있는 중국 집안시 통구 삼실총 제2실 서벽 찰갑무인의 신은 신창이 스파이크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신발은 하나의 금동판에 사각추 형태의 금동 못 40여 개가 촘촘히 박혀 있다. 집안시 마선저장麻線猪場 부근의 고구려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길이 32이고 원래 35개의 못이 있었다. 신바닥 주위에 테가 있고 그 위에 한 줄의 실을 꿰는 작은 구멍이 있다. 통구 고분군 우산하 3109호묘(JYM3109)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길이 31이고 신바닥의 주위에 테가 있다. 둘레에 가죽 끈 또는 가는 끈으로 묶는 구멍이 있다. 고구려 금동신발은 신바닥만 금동으로 되어 있고 신발의 윗부분들은 가죽이나 천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금동신발은 길이 35 정도이고, 옆판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고 신바닥에는 아홉 개의 스파이크 장식이 박혀 있다. 내부에는 목피를 바닥에 깐 듯하다. 왕비의 금동신발은 밑판과 옆판이 모두 동판이고 외측 면과 바닥에는 인동당초문을 투조한 금동판을 씌웠고 전면에 원형 소영락이 첨삭되어 있다. 왕의 것과 같이 바닥에 뾰족한 못이 아홉 개 솟아 있고 신의 내부에는 포편布片의 흔적이 있다. 전라남도 나주 신촌리 9호분 금동신발은 바닥에 커다란 못구멍 아홉 개가 있고 앞부분에는 커다란 스파이크형 못이 남아 있다. 충청남도 공주 부근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신의 바닥과 양쪽 측면을 모두 동판으로 만들었고 표면은 봉황을 새긴 금동판을 씌웠다. 신발의 전면에는 조그마한 영락을 달았으며 바닥에는 못이 아홉 개씩 박혀 있다. 전라남도 나주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금동신발은 바닥에 일곱 개씩의 사각뿔 못이 달려 있고 신발 안쪽에는 헝겊 흔적이 있다. 신발의 전면에는 두 줄로 교차하는 타출 사선으로 만들어진 마름모꼴 구획이 있으며, 그 중심에 영락 장식을 달았던 흔적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이 있다. 전라북도 익산 입점리 출토 금동신발은 표면과 바닥에 사각형, 격자문 사이에 화문花文을 새겼으며 밑바닥에 각정이 부착되어 있다. 충남 공주 수촌리 출토품은 금동판에 용·풀꽃 등을 새겨 넣어 화려하게 장식하고 바닥에는 금동못이 박혀 있는 신발이다.
경상북도 경주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 출토 신라시대 금동신발은 신발코를 제외한 전면이 T자형으로 밀집투조密集透彫한 금동판으로 되어 있는데 바닥에는 길쭉길쭉한 청동靑銅징이 박혀 있다. 경북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왕의 것으로 보이는 금동신발은 바닥과 측판을 우선 은판으로 만들고 그 위에 인동당초를 투작透作한 금동판을 씌우고 영락과 아홉 개의 각정을 바닥에 박은 것이다. 내부에는 삼중포심三重布心이 붙어 있고 따로 엷은 목피木皮가 나왔는데 이 목피는 바닥에 깔렸던 것 같다.
전북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백제시대 금동신발은 전체 길이는 31로, 바닥 앞이 들린 형태로 사선으로 올라가며 목을 형성하고 있다. 바닥에는 18개의 각정을 부착했는데 부착 지점에는 6엽의 화판이 장식되어 있다. 특히 바닥 중앙에는 한 마리의 용을 배치하였고, 발뒤꿈치 부분에는 역사상力士像이 투조되어 있다. 나주 출토 금동신발은 길이 32로 발등 부분에는 용 모양 장식이 있고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으로 된 덮개가 붙어 있다. 바닥에는 연꽃과 도깨비 문양을 투조와 선각線刻으로 꾸며 화려하게 장식했다. 특히 신발 바닥 중앙에는 여덟 개 꽃잎의 무늬를 삼중으로 배치하고 중앙에는 꽃술을 새겼다. 바닥에는 수많은 각정이 달려 있다.
2. 영락부 금동신발: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신발은 표면은 삽입부를 경계로 하여 앞뒤에 두 매의 금동판을 붙여 만들고 전면에 T자형을 투조한 후 영락을 매달았다. 밑면은 한 매의 금동판으로 되어 있고 전면에 영락을 촘촘히 달았으며 식리의 내면에는 마심麻心에 주색견포朱色絹布를 싼 섬유가 대어져 있다. 경주 금령총 출토 금동신발은 얇은 동판 한 매를 저부底部로 하여 전반부가 둥그스름하게 되고 후반부는 별판別板을 구부려서 밑판에 서로 가는 선으로 꿰매 조립하였다. 영락이 밑판 전면全面과 앞코 부위에 밀착되었다. 경주 금관총 출토 금동신발은 밑판까지 영락을 달았다. 저부底部의 공흔孔痕에 의하면 약 87개의 영락을 달은 듯하다. 그리고 신바닥[履低] 외면에는 능견綾絹과 포의 일부가 부착되어 있다. 경주 은령총 출토 금동신발은 한 켤레가 오른쪽 발끝에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피장자에게서 벗겨서 안치한 듯하다. 얇은 금동의 영락이 붙어 있고 외형 앞코가 조금 올라 있어 보통 여자 고무신 같은 형이다. 천마총 출토 금동신발은 앞코를 제외한 전면에 연속된 T자 문양을 투조하였으며 표면에 영락이 촘촘히 달려 있다. 바닥은 안쪽에 투조되지 않은 금동판을 대고 겉에는 섬유질 등 유기물을 붙여 여기에 네모난 못을 군데군데 박고 그 사이사이에는 영락을 달아 안쪽 금동판에 고착시켰다. 경북 의성 탑리 고분 출토 가야시대 금동신발은 선단이 둥글고 뒤축이 일직선을 이룬 형식에 속한다. 아자亞字를 변형한 것과 같은 문양을 투각透刻하였고 후반부엔 아무 장식도 없다. 세 개의 금동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시 바닥에 원형영락圓形瓔珞을 달아서 장식하였다. 경상남도 창녕 출토 금동신발은 얇은 동판에 도금한 것으로 신발 코가 있는 앞부분은 한 매의 판으로, 뒤축이 있는 뒷부분은 두 매의 측판으로, 바닥은 한 매의 판으로 된 것을 못으로 접합하여 만들었다. 앞창이 약간 들리고 코가 도드라졌다. 전체적으로 아자를 변형한 것과 같은 문양을 투각하였고 바닥에 원형영락을 달아서 장식하였다. 대구 내당동 제55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바닥의 앞부분이 위를 향하여 약간 들려 있다. 두 매의 금동박판을 전후에서 조립하여 못으로 고정시키고 하연下緣을 안으로 접어 밑판과 연결시켰는데 앞면과 양측, 그리고 밑판에까지도 원형 소영락이 금동선金銅線으로 꼬아 매달려 있다. 경남 양산 부부총 출토 금동신발은 앞은 뽀족하고 위로 구부러졌는데 두 매의 금동박판金銅薄板을 전후에서 조립하여 못으로 고정시키고 그 하부를 접어서 1매의 밑판을 씌우고 금동선으로 꿰매었다. 밑판의 주위에는 사복문蛇腹文이 새겨져 있고 원형소영락圓形小瓔珞 19개가 금동사金銅絲로 꼬아서 매달려 있다.
3. 신바닥에 각정이나, 영락 등이 없는 금동신발: 고신라 경주 식리총 출토 금동신발은 파손된 상태로 한 쌍이 발견되었다. 그 구조는 두꺼운 도금을 한 얇은 동판 세 매로 밑바닥에 한 장, 좌우에 각각 한 장씩 서로 맞대어 앞뒤에서 연결하고 하단을 구부려 밑판에 연결하였다. 내측에는 목질木質이나 혁포革布가 있었던 듯하다. 표면 곳곳의 구멍은 못을 박았던 흔적인 듯한데, 밑판에는 오히려 못의 구멍이 하나밖에 없어 스파이크 부착 금동신발과는 다른 양식으로 보인다. 금관총 출토 화형좌식부花形座飾付 금동신발은 좌우가 같고 발뒤꿈치는 각이 진 모양이며 앞부리는 호삼각형상弧三角形狀이며 첨단尖端이 뾰족하며 약간 올라가 있다. 저부외면低部外面에는 화형花形장식이 있는데, 사이에는 능포綾布가 부착되어 있다. 내측에는 목질木質 흔적이 있으며 능견綾絹과 마포麻布를 2~3중으로 두껍게 하여 넓은 부분에 밀착시켰다. 경주 황오리 4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백화수피白樺樹皮(자작나무 껍질)로 된 신 모양을 만들고 그 외 면에 여러 문양을 투조한 얇은 금동판을 입혀서 장식한 듯하다.

특징 및 의의

삼국시대 금동신발들은 바닥에 각정이나 영락이 달려 있고, 30 정도에 달하는 크기 등으로 인하여 주로 부장품副葬品 전용으로 만들어진 신으로 추정되어 왔다. 이 금동신발들은 코가 솟고 신 앞바닥이 들려 있고 신의 심도深度와 운두의 높이가 무리가 없으며 신 뒤꿈치가 각진 것과 둥글게 처리된 것의 두 종류 모두 당시 가죽신이나 초리草履(짚신) 등의 모습과 같아서 삼국시대의 전형적인 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생전에 신었던 신의 모습 그대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의 각정 달린 쇠못신은 실지로 사용된 흔적이 있고, 또한 신의 내부에 나무나 섬유질이 부착되어 착용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당시 발바닥을 하늘로 향해 앉는 좌식 방법으로 인해 특수한 경우 예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파이크식 금동신발 중 운두 없이 각정이 달린 바닥만 출토되는 경우는 고구려 유품들이며, 바닥과 신 운두가 붙어 있는 경우는 백제와 신라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신목이 있는 경우는 백제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영락부 금동신발들은 신라, 가야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신바닥에 각정이나 영락 등이 없는 금동신발은 고신라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스파이크식 신발은 현재에도 축구화, 골프화, 겨울 암벽 등산용 신발 등에 바닥에 스파이크를 부착하여 사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분출토 부장품 연구(윤세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무령왕릉 발굴조사보고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3), 한국복식사개론(김문자, 교문사, 2015), 황남대총 남분 발굴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4),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5).

금동신발

금동신발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문자(金文子)
갱신일 2018-10-11

정의

금동金銅으로 만들어진 신발.

내용

삼국시대 금동신발의 종류는 바닥의 형태에 따라 신바닥에 각정角釘이 붙어 있는 스파이크식 금동신발, 신바닥에 영락瓔珞이 달려 있는 영락부 금동신발, 신바닥에 각정이나 영락이 달려 있지 않은 금동신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1. 스파이크식 금동신발: 고구려 스파이크식 금동신발의 예로 들 수 있는 중국 집안시 통구 삼실총 제2실 서벽 찰갑무인의 신은 신창이 스파이크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신발은 하나의 금동판에 사각추 형태의 금동 못 40여 개가 촘촘히 박혀 있다. 집안시 마선저장麻線猪場 부근의 고구려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길이 32이고 원래 35개의 못이 있었다. 신바닥 주위에 테가 있고 그 위에 한 줄의 실을 꿰는 작은 구멍이 있다. 통구 고분군 우산하 3109호묘(JYM3109)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길이 31이고 신바닥의 주위에 테가 있다. 둘레에 가죽 끈 또는 가는 끈으로 묶는 구멍이 있다. 고구려 금동신발은 신바닥만 금동으로 되어 있고 신발의 윗부분들은 가죽이나 천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금동신발은 길이 35 정도이고, 옆판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고 신바닥에는 아홉 개의 스파이크 장식이 박혀 있다. 내부에는 목피를 바닥에 깐 듯하다. 왕비의 금동신발은 밑판과 옆판이 모두 동판이고 외측 면과 바닥에는 인동당초문을 투조한 금동판을 씌웠고 전면에 원형 소영락이 첨삭되어 있다. 왕의 것과 같이 바닥에 뾰족한 못이 아홉 개 솟아 있고 신의 내부에는 포편布片의 흔적이 있다. 전라남도 나주 신촌리 9호분 금동신발은 바닥에 커다란 못구멍 아홉 개가 있고 앞부분에는 커다란 스파이크형 못이 남아 있다. 충청남도 공주 부근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신의 바닥과 양쪽 측면을 모두 동판으로 만들었고 표면은 봉황을 새긴 금동판을 씌웠다. 신발의 전면에는 조그마한 영락을 달았으며 바닥에는 못이 아홉 개씩 박혀 있다. 전라남도 나주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금동신발은 바닥에 일곱 개씩의 사각뿔 못이 달려 있고 신발 안쪽에는 헝겊 흔적이 있다. 신발의 전면에는 두 줄로 교차하는 타출 사선으로 만들어진 마름모꼴 구획이 있으며, 그 중심에 영락 장식을 달았던 흔적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이 있다. 전라북도 익산 입점리 출토 금동신발은 표면과 바닥에 사각형, 격자문 사이에 화문花文을 새겼으며 밑바닥에 각정이 부착되어 있다. 충남 공주 수촌리 출토품은 금동판에 용·풀꽃 등을 새겨 넣어 화려하게 장식하고 바닥에는 금동못이 박혀 있는 신발이다.경상북도 경주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 출토 신라시대 금동신발은 신발코를 제외한 전면이 T자형으로 밀집투조密集透彫한 금동판으로 되어 있는데 바닥에는 길쭉길쭉한 청동靑銅징이 박혀 있다. 경북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왕의 것으로 보이는 금동신발은 바닥과 측판을 우선 은판으로 만들고 그 위에 인동당초를 투작透作한 금동판을 씌우고 영락과 아홉 개의 각정을 바닥에 박은 것이다. 내부에는 삼중포심三重布心이 붙어 있고 따로 엷은 목피木皮가 나왔는데 이 목피는 바닥에 깔렸던 것 같다.전북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백제시대 금동신발은 전체 길이는 31로, 바닥 앞이 들린 형태로 사선으로 올라가며 목을 형성하고 있다. 바닥에는 18개의 각정을 부착했는데 부착 지점에는 6엽의 화판이 장식되어 있다. 특히 바닥 중앙에는 한 마리의 용을 배치하였고, 발뒤꿈치 부분에는 역사상力士像이 투조되어 있다. 나주 출토 금동신발은 길이 32로 발등 부분에는 용 모양 장식이 있고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으로 된 덮개가 붙어 있다. 바닥에는 연꽃과 도깨비 문양을 투조와 선각線刻으로 꾸며 화려하게 장식했다. 특히 신발 바닥 중앙에는 여덟 개 꽃잎의 무늬를 삼중으로 배치하고 중앙에는 꽃술을 새겼다. 바닥에는 수많은 각정이 달려 있다.2. 영락부 금동신발: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신발은 표면은 삽입부를 경계로 하여 앞뒤에 두 매의 금동판을 붙여 만들고 전면에 T자형을 투조한 후 영락을 매달았다. 밑면은 한 매의 금동판으로 되어 있고 전면에 영락을 촘촘히 달았으며 식리의 내면에는 마심麻心에 주색견포朱色絹布를 싼 섬유가 대어져 있다. 경주 금령총 출토 금동신발은 얇은 동판 한 매를 저부底部로 하여 전반부가 둥그스름하게 되고 후반부는 별판別板을 구부려서 밑판에 서로 가는 선으로 꿰매 조립하였다. 영락이 밑판 전면全面과 앞코 부위에 밀착되었다. 경주 금관총 출토 금동신발은 밑판까지 영락을 달았다. 저부底部의 공흔孔痕에 의하면 약 87개의 영락을 달은 듯하다. 그리고 신바닥[履低] 외면에는 능견綾絹과 포의 일부가 부착되어 있다. 경주 은령총 출토 금동신발은 한 켤레가 오른쪽 발끝에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피장자에게서 벗겨서 안치한 듯하다. 얇은 금동의 영락이 붙어 있고 외형 앞코가 조금 올라 있어 보통 여자 고무신 같은 형이다. 천마총 출토 금동신발은 앞코를 제외한 전면에 연속된 T자 문양을 투조하였으며 표면에 영락이 촘촘히 달려 있다. 바닥은 안쪽에 투조되지 않은 금동판을 대고 겉에는 섬유질 등 유기물을 붙여 여기에 네모난 못을 군데군데 박고 그 사이사이에는 영락을 달아 안쪽 금동판에 고착시켰다. 경북 의성 탑리 고분 출토 가야시대 금동신발은 선단이 둥글고 뒤축이 일직선을 이룬 형식에 속한다. 아자亞字를 변형한 것과 같은 문양을 투각透刻하였고 후반부엔 아무 장식도 없다. 세 개의 금동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시 바닥에 원형영락圓形瓔珞을 달아서 장식하였다. 경상남도 창녕 출토 금동신발은 얇은 동판에 도금한 것으로 신발 코가 있는 앞부분은 한 매의 판으로, 뒤축이 있는 뒷부분은 두 매의 측판으로, 바닥은 한 매의 판으로 된 것을 못으로 접합하여 만들었다. 앞창이 약간 들리고 코가 도드라졌다. 전체적으로 아자를 변형한 것과 같은 문양을 투각하였고 바닥에 원형영락을 달아서 장식하였다. 대구 내당동 제55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바닥의 앞부분이 위를 향하여 약간 들려 있다. 두 매의 금동박판을 전후에서 조립하여 못으로 고정시키고 하연下緣을 안으로 접어 밑판과 연결시켰는데 앞면과 양측, 그리고 밑판에까지도 원형 소영락이 금동선金銅線으로 꼬아 매달려 있다. 경남 양산 부부총 출토 금동신발은 앞은 뽀족하고 위로 구부러졌는데 두 매의 금동박판金銅薄板을 전후에서 조립하여 못으로 고정시키고 그 하부를 접어서 1매의 밑판을 씌우고 금동선으로 꿰매었다. 밑판의 주위에는 사복문蛇腹文이 새겨져 있고 원형소영락圓形小瓔珞 19개가 금동사金銅絲로 꼬아서 매달려 있다.3. 신바닥에 각정이나, 영락 등이 없는 금동신발: 고신라 경주 식리총 출토 금동신발은 파손된 상태로 한 쌍이 발견되었다. 그 구조는 두꺼운 도금을 한 얇은 동판 세 매로 밑바닥에 한 장, 좌우에 각각 한 장씩 서로 맞대어 앞뒤에서 연결하고 하단을 구부려 밑판에 연결하였다. 내측에는 목질木質이나 혁포革布가 있었던 듯하다. 표면 곳곳의 구멍은 못을 박았던 흔적인 듯한데, 밑판에는 오히려 못의 구멍이 하나밖에 없어 스파이크 부착 금동신발과는 다른 양식으로 보인다. 금관총 출토 화형좌식부花形座飾付 금동신발은 좌우가 같고 발뒤꿈치는 각이 진 모양이며 앞부리는 호삼각형상弧三角形狀이며 첨단尖端이 뾰족하며 약간 올라가 있다. 저부외면低部外面에는 화형花形장식이 있는데, 사이에는 능포綾布가 부착되어 있다. 내측에는 목질木質 흔적이 있으며 능견綾絹과 마포麻布를 2~3중으로 두껍게 하여 넓은 부분에 밀착시켰다. 경주 황오리 4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백화수피白樺樹皮(자작나무 껍질)로 된 신 모양을 만들고 그 외 면에 여러 문양을 투조한 얇은 금동판을 입혀서 장식한 듯하다.

특징 및 의의

삼국시대 금동신발들은 바닥에 각정이나 영락이 달려 있고, 30 정도에 달하는 크기 등으로 인하여 주로 부장품副葬品 전용으로 만들어진 신으로 추정되어 왔다. 이 금동신발들은 코가 솟고 신 앞바닥이 들려 있고 신의 심도深度와 운두의 높이가 무리가 없으며 신 뒤꿈치가 각진 것과 둥글게 처리된 것의 두 종류 모두 당시 가죽신이나 초리草履(짚신) 등의 모습과 같아서 삼국시대의 전형적인 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생전에 신었던 신의 모습 그대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의 각정 달린 쇠못신은 실지로 사용된 흔적이 있고, 또한 신의 내부에 나무나 섬유질이 부착되어 착용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당시 발바닥을 하늘로 향해 앉는 좌식 방법으로 인해 특수한 경우 예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파이크식 금동신발 중 운두 없이 각정이 달린 바닥만 출토되는 경우는 고구려 유품들이며, 바닥과 신 운두가 붙어 있는 경우는 백제와 신라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신목이 있는 경우는 백제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영락부 금동신발들은 신라, 가야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신바닥에 각정이나 영락 등이 없는 금동신발은 고신라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스파이크식 신발은 현재에도 축구화, 골프화, 겨울 암벽 등산용 신발 등에 바닥에 스파이크를 부착하여 사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분출토 부장품 연구(윤세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무령왕릉 발굴조사보고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3), 한국복식사개론(김문자, 교문사, 2015), 황남대총 남분 발굴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4),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