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표인주(表仁柱)
갱신일 2016-10-26

정의

옷고름이나 노끈으로 멘 고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 기구인 고 두 개를 서로 맞붙여 겨루는 놀이.

역사

고싸움놀이의 유래는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으며, 다만 구술 자료만 전해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칠석마을은 풍수적으로 황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지기가 무척 강하다고 한다. 그러한 증거로 이 마을은 개[犬]가 자라지 않아 개 대신 집집마다 거위를 길렀다. 옛날에 어떤 도사가 마을을 지나가면서 “마을의 지세地勢가 청장년을 성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라는 예언과 함께 은행나무를 심어 터를 누르게 했다. 그리고 소의 입에 해당하는 곳에 구유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 놓았다. 또 황소가 일어서면 마을의 논밭을 밟아 많은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고삐를 할머니당산인 은행나무에 묶어 놓았으며, 꼬리에는 일곱 개의 돌로 눌러 놓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정월대보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마을의 터를 밟아 주기 위해 고싸움놀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싸움놀이는 1940년경에 단절된 것을 1969년 7월 지춘상 교수가 재구성하였고, 1969년 10월 대구에서 개최된 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편싸움 계통의 집단 민속놀이로 197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1. 고의 제작 과정: 놀이 기구인 고를 제작하는 데에는 먼저 볏짚이 200여 다발에서 400여 다발, 직경이 3㎝ 가량의 통대나무가 30개로부터 50개까지가 소요된다. 그리고 지릿대를 만들기 위해 지금이 20㎝, 길이는 5m부터 9m에 이르는 통나무가 사용된다. 가랫장은 일명 멜대라고도 하는데, 대개 지금이 15㎝, 길이가 4m부터 5m에 이르는 통나무 4개 내지 6개가 필요하다. 굉갯대는 일명 받침대라고도 하는데, 지금이 약 15㎝, 길이가 2m에서 3m에 이르는 Y자형 나무를 사용한다. 고를 만드는 과정은 줄드리기, 줄도시기, 고머리만들기, 고몸체만들기, 고꼬리만들기, 고머리세우기, 가랫장달기, 손잡이줄달기, 고다듬기로 진행된다.

  2. 놀이꾼 구성: 놀이꾼은 줄패장, 고멜꾼, 꼬리줄잡이, 농악대, 깃발과 기수, 횃불잡이로 구성된다. 줄패장이란 줄을 갖고 싸우는 패거리의 장이라는 뜻인데, 놀이 전반을 이끄는 지휘자이다. 줄패장은 그 마을에서 덕망이 있고 영향력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놀이꾼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할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춘 자여야 한다. 고멜꾼은 고를 메고 싸우는 놀이꾼으로 투지와 박력과 강한 의지력이 있어야 하고, 신체적으로 건장한 자라야 한다. 그러므로 대개 힘이 센 20~30대의 젊은이들이 이를 담당한다. 고멜꾼의 수는 대개의 경우 50명으로부터 80여 명 정도이다. 꼬리줄잡이의 역할은 고를 뒤로 뺀다든가 옆으로 돌 때 뒤로 잡아당기기도 하고 또 옆으로 빨리 돌게 하는 조종 역할을 담당한다. 그 수는 두 가닥의 꼬리 길이에 따라 달라지나 100여 명에 이르기도 한다. 상칠석마을과 하칠석마을의 농악대는 각각 징 2, 꽹과리 3, 장구 1, 북 1, 소고 10, 양반 1, 할미 1, 조리중 1, 각시 1, 포수 1 등 총 22명으로 구성된다. 농악대는 고싸움놀이 시작으로부터 끝날 때까지 전의를 북돋우고 흥을 일으키는 응원 역할을 담당한다. 깃발은 동·서부 각각 농기 한 개, 사각 영기 네 개씩이다. 동부 농기는 흰 바탕에 남색 띠를 두르고 검은 글씨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썼고, 서부 농기는 흰 바탕에 홍색 띠를 두르고, 검은 글씨로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쓴다. 그리고 영기는 동·서부 다 같이 남색 바탕에 흰 띠를 두르고 흰 글자를 쓴 것이 두 개, 홍색 바탕에 흰 띠를 두르고 검은 글씨를 쓴 것이 두 개씩이다. 횃불잡이는 횃불과 관솔에다 불을 켜 들고 나왔는데 그 수는 20~30명에 이른다.

  3. 놀이 방법: 고싸움놀이의 편은 동부와 서부 두 팀으로 나눈다. 두 팀을 나누는 기준은 칠석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폭 2m 정도의 조그마한 골목길이다. 고싸움을 할 때는 상촌 즉 동부는 남성을 상징하고, 하촌인 서부는 여성을 상징한다.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설을 쇠고 음력 초열흘 경부터 고싸움놀이가 시작된다. 10여 세 가량의 어린아이들이 길이 5~6m 정도의 조그마한 고를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어깨에 메고 상대방의 마을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부딪치면 시비를 하고 싸움이 벌어지는데, 이때 15~16세 정도의 어린아이들이 여기에 합세하여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판을 본 20세의 청년들이 또다시 이에 합세하여 길이 10m 가량의 고를 만들어서 소규모의 고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싸움놀이가 시작된다.

    상칠석과 하칠석에서 영향력이 있는 장년층의 몇 사람들이 모여 고싸움을 하기로 협의를 한다. 이 합의가 이루어지면 상·하촌은 각각 그 방법과 대책을 강구하고 준비 요원과 줄패장을 뽑는다. 여기서 뽑힌 준비 요원들은 당장 행동을 개시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짚을 걷고 또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는 등 준비를 서두른다. 재료 준비가 끝나면 고를 만들고, 열엿새 날 밤 고싸움놀이가 벌어진다.

    이날 오후가 되면 상·하촌은 각각 고를 메고, 상촌은 하촌마을 앞을, 하촌은 상촌마을 앞을 돌아다니면서 시위를 벌이며 기세를 돋는다. 이 행렬의 순서는 횃불을 켜든 횃불잡이들이 맨 앞에서 인도하며 그 뒤에는 농기와 영기를 든 기수들이 뒤따르고 그 뒤에 농악대가 따른다. 농악대 뒤에 고가 따른다. 고 위에 줄패장들이 올라타고 영기를 흔들면서 설소리를 하면 여타의 놀이꾼들은 받는 소리를 한다. 느린 가락의 노래 소리를 하면서 전의를 가다듬고 싸움판이 벌어질 마을 앞 논으로 들어선다. 이때 상대방의 고도 논에 들어서면 의기가 충천하여 노래조차 빠른 가락으로 급변하면서 고와 고가 서서히 전면을 향해서 돌진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뒤로 물러나고, 또 앞으로 전진했다가 뒤로 물러나면서 껑충거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몇 번이고 거듭하다가 줄패장이 ‘밀어라.’ 하는 소리를 지르면 고를 멘 사람들은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가랫장을 두 손으로 뻗쳐 들고 돌진하여 상대방의 고의 전면에 부딪힌다. 그러면 고는 맞부딪치는 힘 때문에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첫 번째 가랫장과 두 번째 가랫장은 놀이꾼들의 손으로부터 떨어져 솟아오른다. 이때 줄패장들은 고 위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고 밑으로 넘어뜨리려고 접전을 벌인다. 농악대는 함성을 지르면서 아무 가락도 없이 마구 두드리며 횃불잡이와 기수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횃불과 깃발을 흔들어 댄다. 이렇게 몇 번이고 부딪쳤다가 떨어지고, 떨어졌다가는 또 부딪쳐서 상대방의 고를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든 짓눌러 땅에 닿게 하면 승리한다.

지역사례

고싸움놀이와 유사한 대보름 민속놀이로 영산강 하류인 전라남도 영암 군서면 모정마을 줄다리기와 전남 장흥 대보름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영암 모정 줄다리기는 정월 10일에서 20일까지 이루어지고, 줄은 암줄과 숫줄인 쌍줄이다. 줄의 제작은 5일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15일 오전에 큰 줄이 제작되면 줄의 고 밑 부분에 ‘연목대’라 하여 긴 통나무 두 개를 붙인다. 연목대 한 개에 여섯 명씩, 그래서 모두 열두 명의 장정들이 어깨에 메기 위한 받침대 두 개를 부착한다. 연목대는 열두 명의 장정들이 ‘줄 탄 사람’을 고 위에 태우기 위한 일종의 받침대이다. 줄탄 사람을 설소리꾼이라고도 부르는데, 줄다리기 놀이꾼들을 진두지휘한다.

장흥 대보름 줄다리기는 장흥읍 탐진강 변에서 해마다 행해지는 대보름 민속놀이이다. 동짓달 보름날 밤에 어린아이들이 조그마한 고삿줄로부터 시작하여 그 이듬해 정월대보름 밤에 어른들이 참여하여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행해진다. 이 줄다리기를 일명 고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본격적인 줄다리기를 하기 전의 놀이를 말한다.

줄이 완성되면 어깨에 메고 행진을 할 수 있도록 고머리 바로 아래부터 멜대(지릿대) 일곱 개를 2m 간격으로 묶는다. 그리고 청사초롱을 매달고, 고를 45도 각도로 세워 그 중심 부분을 큰 밧줄로 묶어 늘어지지 않도록 동체에 매어 단다. 정월대보름 아침이면 농악대가 놀이꾼을 끌어 들이고 5백 명의 놀이꾼이 동원되면 줄을 메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의를 북돋기 위해 시위를 벌인다. 놀이꾼들은 동헌 참배가 끝나면 서서히 탐진강의 모래사장으로 향한다. 농악대가 놀이의 분위기를 조성하면 줄이 서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이때 줄 위의 지휘자가 ‘밀어라.’ 하는 명령을 내리면 줄을 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멜대를 두 어깨 위로 추켜올리고 돌진하여 상대방의 고에 부딪친다. 고가 서로 맞닿으면 줄 위의 사람들이 상대방의 고를 누르고, 또 상대방의 지휘자를 밀어 고 위에서 떨어뜨리려고 한다. 고쌈이 끝나면 줄다리기로 이행된다.

특징 및 의의

고싸움놀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편싸움 계통의 집단 놀이라는 점과 도작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민속학적인 의의가 크다.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 민속 예술인 고싸움놀이는 협동심과 단결심이 강하게 반영된 공동체적인 세시 민속놀이고,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종교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줄다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줄다리기가 도작문화권에서 성행하는 공동체 놀이로서 고싸움놀이 기원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남도민속과 축제(표인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05), 남도민속문화론(표인주, 민속원, 2002), 민속놀이와 민중의식(지춘상 외, 집문당, 1996), 옻돌마을사람들과 고싸움놀이(고싸놀이놀이보존회, 민속원, 2004).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표인주(表仁柱)
갱신일 2016-10-26

정의

옷고름이나 노끈으로 멘 고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 기구인 고 두 개를 서로 맞붙여 겨루는 놀이.

역사

고싸움놀이의 유래는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으며, 다만 구술 자료만 전해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칠석마을은 풍수적으로 황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지기가 무척 강하다고 한다. 그러한 증거로 이 마을은 개[犬]가 자라지 않아 개 대신 집집마다 거위를 길렀다. 옛날에 어떤 도사가 마을을 지나가면서 “마을의 지세地勢가 청장년을 성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라는 예언과 함께 은행나무를 심어 터를 누르게 했다. 그리고 소의 입에 해당하는 곳에 구유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 놓았다. 또 황소가 일어서면 마을의 논밭을 밟아 많은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고삐를 할머니당산인 은행나무에 묶어 놓았으며, 꼬리에는 일곱 개의 돌로 눌러 놓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정월대보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마을의 터를 밟아 주기 위해 고싸움놀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싸움놀이는 1940년경에 단절된 것을 1969년 7월 지춘상 교수가 재구성하였고, 1969년 10월 대구에서 개최된 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편싸움 계통의 집단 민속놀이로 197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고의 제작 과정: 놀이 기구인 고를 제작하는 데에는 먼저 볏짚이 200여 다발에서 400여 다발, 직경이 3㎝ 가량의 통대나무가 30개로부터 50개까지가 소요된다. 그리고 지릿대를 만들기 위해 지금이 20㎝, 길이는 5m부터 9m에 이르는 통나무가 사용된다. 가랫장은 일명 멜대라고도 하는데, 대개 지금이 15㎝, 길이가 4m부터 5m에 이르는 통나무 4개 내지 6개가 필요하다. 굉갯대는 일명 받침대라고도 하는데, 지금이 약 15㎝, 길이가 2m에서 3m에 이르는 Y자형 나무를 사용한다. 고를 만드는 과정은 줄드리기, 줄도시기, 고머리만들기, 고몸체만들기, 고꼬리만들기, 고머리세우기, 가랫장달기, 손잡이줄달기, 고다듬기로 진행된다. 놀이꾼 구성: 놀이꾼은 줄패장, 고멜꾼, 꼬리줄잡이, 농악대, 깃발과 기수, 횃불잡이로 구성된다. 줄패장이란 줄을 갖고 싸우는 패거리의 장이라는 뜻인데, 놀이 전반을 이끄는 지휘자이다. 줄패장은 그 마을에서 덕망이 있고 영향력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놀이꾼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할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춘 자여야 한다. 고멜꾼은 고를 메고 싸우는 놀이꾼으로 투지와 박력과 강한 의지력이 있어야 하고, 신체적으로 건장한 자라야 한다. 그러므로 대개 힘이 센 20~30대의 젊은이들이 이를 담당한다. 고멜꾼의 수는 대개의 경우 50명으로부터 80여 명 정도이다. 꼬리줄잡이의 역할은 고를 뒤로 뺀다든가 옆으로 돌 때 뒤로 잡아당기기도 하고 또 옆으로 빨리 돌게 하는 조종 역할을 담당한다. 그 수는 두 가닥의 꼬리 길이에 따라 달라지나 100여 명에 이르기도 한다. 상칠석마을과 하칠석마을의 농악대는 각각 징 2, 꽹과리 3, 장구 1, 북 1, 소고 10, 양반 1, 할미 1, 조리중 1, 각시 1, 포수 1 등 총 22명으로 구성된다. 농악대는 고싸움놀이 시작으로부터 끝날 때까지 전의를 북돋우고 흥을 일으키는 응원 역할을 담당한다. 깃발은 동·서부 각각 농기 한 개, 사각 영기 네 개씩이다. 동부 농기는 흰 바탕에 남색 띠를 두르고 검은 글씨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썼고, 서부 농기는 흰 바탕에 홍색 띠를 두르고, 검은 글씨로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쓴다. 그리고 영기는 동·서부 다 같이 남색 바탕에 흰 띠를 두르고 흰 글자를 쓴 것이 두 개, 홍색 바탕에 흰 띠를 두르고 검은 글씨를 쓴 것이 두 개씩이다. 횃불잡이는 횃불과 관솔에다 불을 켜 들고 나왔는데 그 수는 20~30명에 이른다. 놀이 방법: 고싸움놀이의 편은 동부와 서부 두 팀으로 나눈다. 두 팀을 나누는 기준은 칠석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폭 2m 정도의 조그마한 골목길이다. 고싸움을 할 때는 상촌 즉 동부는 남성을 상징하고, 하촌인 서부는 여성을 상징한다.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설을 쇠고 음력 초열흘 경부터 고싸움놀이가 시작된다. 10여 세 가량의 어린아이들이 길이 5~6m 정도의 조그마한 고를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어깨에 메고 상대방의 마을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부딪치면 시비를 하고 싸움이 벌어지는데, 이때 15~16세 정도의 어린아이들이 여기에 합세하여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판을 본 20세의 청년들이 또다시 이에 합세하여 길이 10m 가량의 고를 만들어서 소규모의 고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싸움놀이가 시작된다. 상칠석과 하칠석에서 영향력이 있는 장년층의 몇 사람들이 모여 고싸움을 하기로 협의를 한다. 이 합의가 이루어지면 상·하촌은 각각 그 방법과 대책을 강구하고 준비 요원과 줄패장을 뽑는다. 여기서 뽑힌 준비 요원들은 당장 행동을 개시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짚을 걷고 또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는 등 준비를 서두른다. 재료 준비가 끝나면 고를 만들고, 열엿새 날 밤 고싸움놀이가 벌어진다. 이날 오후가 되면 상·하촌은 각각 고를 메고, 상촌은 하촌마을 앞을, 하촌은 상촌마을 앞을 돌아다니면서 시위를 벌이며 기세를 돋는다. 이 행렬의 순서는 횃불을 켜든 횃불잡이들이 맨 앞에서 인도하며 그 뒤에는 농기와 영기를 든 기수들이 뒤따르고 그 뒤에 농악대가 따른다. 농악대 뒤에 고가 따른다. 고 위에 줄패장들이 올라타고 영기를 흔들면서 설소리를 하면 여타의 놀이꾼들은 받는 소리를 한다. 느린 가락의 노래 소리를 하면서 전의를 가다듬고 싸움판이 벌어질 마을 앞 논으로 들어선다. 이때 상대방의 고도 논에 들어서면 의기가 충천하여 노래조차 빠른 가락으로 급변하면서 고와 고가 서서히 전면을 향해서 돌진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뒤로 물러나고, 또 앞으로 전진했다가 뒤로 물러나면서 껑충거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몇 번이고 거듭하다가 줄패장이 ‘밀어라.’ 하는 소리를 지르면 고를 멘 사람들은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가랫장을 두 손으로 뻗쳐 들고 돌진하여 상대방의 고의 전면에 부딪힌다. 그러면 고는 맞부딪치는 힘 때문에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첫 번째 가랫장과 두 번째 가랫장은 놀이꾼들의 손으로부터 떨어져 솟아오른다. 이때 줄패장들은 고 위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고 밑으로 넘어뜨리려고 접전을 벌인다. 농악대는 함성을 지르면서 아무 가락도 없이 마구 두드리며 횃불잡이와 기수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횃불과 깃발을 흔들어 댄다. 이렇게 몇 번이고 부딪쳤다가 떨어지고, 떨어졌다가는 또 부딪쳐서 상대방의 고를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든 짓눌러 땅에 닿게 하면 승리한다.

지역사례

고싸움놀이와 유사한 대보름 민속놀이로 영산강 하류인 전라남도 영암 군서면 모정마을 줄다리기와 전남 장흥 대보름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영암 모정 줄다리기는 정월 10일에서 20일까지 이루어지고, 줄은 암줄과 숫줄인 쌍줄이다. 줄의 제작은 5일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15일 오전에 큰 줄이 제작되면 줄의 고 밑 부분에 ‘연목대’라 하여 긴 통나무 두 개를 붙인다. 연목대 한 개에 여섯 명씩, 그래서 모두 열두 명의 장정들이 어깨에 메기 위한 받침대 두 개를 부착한다. 연목대는 열두 명의 장정들이 ‘줄 탄 사람’을 고 위에 태우기 위한 일종의 받침대이다. 줄탄 사람을 설소리꾼이라고도 부르는데, 줄다리기 놀이꾼들을 진두지휘한다. 장흥 대보름 줄다리기는 장흥읍 탐진강 변에서 해마다 행해지는 대보름 민속놀이이다. 동짓달 보름날 밤에 어린아이들이 조그마한 고삿줄로부터 시작하여 그 이듬해 정월대보름 밤에 어른들이 참여하여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행해진다. 이 줄다리기를 일명 고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본격적인 줄다리기를 하기 전의 놀이를 말한다. 줄이 완성되면 어깨에 메고 행진을 할 수 있도록 고머리 바로 아래부터 멜대(지릿대) 일곱 개를 2m 간격으로 묶는다. 그리고 청사초롱을 매달고, 고를 45도 각도로 세워 그 중심 부분을 큰 밧줄로 묶어 늘어지지 않도록 동체에 매어 단다. 정월대보름 아침이면 농악대가 놀이꾼을 끌어 들이고 5백 명의 놀이꾼이 동원되면 줄을 메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의를 북돋기 위해 시위를 벌인다. 놀이꾼들은 동헌 참배가 끝나면 서서히 탐진강의 모래사장으로 향한다. 농악대가 놀이의 분위기를 조성하면 줄이 서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이때 줄 위의 지휘자가 ‘밀어라.’ 하는 명령을 내리면 줄을 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멜대를 두 어깨 위로 추켜올리고 돌진하여 상대방의 고에 부딪친다. 고가 서로 맞닿으면 줄 위의 사람들이 상대방의 고를 누르고, 또 상대방의 지휘자를 밀어 고 위에서 떨어뜨리려고 한다. 고쌈이 끝나면 줄다리기로 이행된다.

특징 및 의의

고싸움놀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편싸움 계통의 집단 놀이라는 점과 도작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민속학적인 의의가 크다.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 민속 예술인 고싸움놀이는 협동심과 단결심이 강하게 반영된 공동체적인 세시 민속놀이고,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종교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줄다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줄다리기가 도작문화권에서 성행하는 공동체 놀이로서 고싸움놀이 기원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남도민속과 축제(표인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05), 남도민속문화론(표인주, 민속원, 2002), 민속놀이와 민중의식(지춘상 외, 집문당, 1996), 옻돌마을사람들과 고싸움놀이(고싸놀이놀이보존회, 민속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