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

한자명

冠禮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관례|계례

집필자 김시황(金時晃)
갱신일 2018-08-01

정의

남자가 성인이 됨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의례 절차.

역사

우리나라의 관례冠禮는 고려 말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유입으로 사대부 계층에 정착하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성인 의식과 비슷한 신라시대의 원화源花・화랑花郞 같은 제도가 있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에는 광종光宗 때 왕자에게 원복례元服禮를 행하였다는 기록이있으니, 고려시대에 이미 관례를 행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주자가례』 등의 예서禮書에 따라 관례를 행하였는데, 집안의 형편에 따라 간소하게 행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하여 널리 행해졌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단발령의 시행으로 두발頭髮을 깎게 됨으로써 전통적으로 거행하던 관례는 점차 사라졌다.

내용

관례는 전통사회에서 남자가 치르는 성인의식으로, 서양의 성년식成年式과 유사하며 20세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20세 이전에 결혼하면, 결혼 전에 날을 정해 관례를 행하였다. 관례를 치른 뒤에는 어엿한 어른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어른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고, 그에 따른 책임도 무거워진다.

관례는 1.택일擇日 2.준비準備 3.시가례始加禮 4.재가례再加禮 5.삼가례三加禮 6.초례醮禮 7.관자례字冠者禮 8.현우사당見于祠堂의 순서로 진행한다.

  1. 택일: 『주자가례』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하면, 남자는 15~20세에 관례를 행하였다. 15세 이상이 되어야 예禮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택일에 대해서는, 좋은 날을 가려 예를 행하되, 여의치 않으면 정월 중에 날을 정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때를 놓치면 4월이나 7월 초하루에 하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관을 쓰는 것이 인도人道의 출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 준비: 관례를 행하기 3일 전에 주인은 축문祝文을 지어 조상을 모신 사당에 고告한다. 그리고 관례에서 의식을 주관하는 빈賓을 미리 정해 초청해야 한다. 예서禮書에서는 종손宗孫의 친구 가운데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사람을 골라 빈賓으로 삼도록 하였다. 그리고 관례일 하루 전에는 대청의 동북쪽에 휘장을 쳐서 관례를 행할 장소를 마련한다. 관례 당일 아침 일찍 필요한 도구를 진설陳設하며, 관복冠服을 꺼내 준비한다. 그 뒤, 주인 이하 집안사람이 차례로 서서 빈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빈이 찬贊과 함께 도착하면, 주인은 그들을 맞이하여 방으로 인도한다.

  3. 시가례: 처음 관을 쓰는 예를 ‘시가례’ 또는 ‘초가례初加禮’라 한다. 시가례는 빈이 관례를 하는 사람에게 읍揖하면서 시작된다. 관례를 하는 자는 처음 쌍계雙髻(쌍상투)를 하고, 사규삼四䙆衫을 입고, 늑백勒帛이라는 띠를 두르고, 채리彩履(무늬 있는 신)를 신는다. 이런 복장으로 행사장에 입장하여 제자리에 나와 꿇어앉는다. 옆에 빈賓을 돕는 찬贊이 관례를 하는 자의 머리를 빗겨 상투를 틀고 망건을 씌우면, 빈이 관례를 하는 자 앞에서 축사를 읽은 뒤 치포관緇布冠을 씌우고 비녀를 꽂아 준다. 관례를 하는 자는 방으로 들어가 사규삼을 벗고 심의深衣를 입으며, 대대大帶(큰 띠)를 두르고, 흑리黑履(검은신)를 신는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제자리로 가서 남쪽을 향해 꿇어앉는다.

  4. 재가례: 관례를 하는 자가 정해진 장소에 앉아 있으면, 빈이 관례를 하는 자의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 뒤 , 갓을 씌워준다. 이어 관례를 하는 자는 방으로 들어가 심의를 벗고 소포素袍(흰 도포)를 입으며(조삼皂衫을 입는다고도 하였음), 혁대革帶를 두르고 나온다.

  5. 삼가례: 관례를 하는 자가 정해진 자리에 꿇어앉아있으면, 빈이 나아가 축사를 한 뒤, 유건儒巾을 씌워준다. 관례를 하는 자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소포素袍를 벗고 청삼靑衫(푸른 도포)을 입으며, 흑사대黑絲帶를 차고 나온다. 복두幞頭를 쓰고 공복公服을 입고 혁대를 띠고 가죽신을 신고 홀笏을 든다고도 하였고, 작변爵弁을 쓰고 난삼襴衫을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고도 하였다. 또한, 입자笠子(갓)를 쓰고 도포道袍를 입고 흑사대黑絲帶를 띤다고도 하였다.

  6. 초례: 술을 마시는 예이다. 관례를 하는 자가 정해진 자리에 나아가 남쪽을 향해 꿇어앉아 있으면, 빈이 관례를 하는 자의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다. 관례를 하는 자가 두 번 절하고 술잔을 받으며, 빈이 답례한다. 관례를 하는 자가 상 앞으로 나아가 잔을 들고 물러나 마신 다음, 찬贊에게 준다. 그리고 빈에게 두 번 절하면 빈이 답례한다.

  7. 자관자례: 빈이 관례를 하는 자에게 자字를 지어 주는 예이다. 빈과 관례를 하는 자가 마당으로 내려간다. 빈이 관례를 하는 자에게 축사를 하면서 자를 지어준다. 관례를 하는 자가 간단한 답사를 하고 절하면, 빈은 절을 받되 답례하지 않는다.

  8. 현우사당: 주인이 관례를 행한 아들을 데리고 사당에 가서 조상에게 고하는 예이다.

이상으로 관례의 중요한 행사는 끝난다. 그러나 이 뒤에 관례를 치른 자는 찾아온 친척과 손님들에게 절한다. 또 밖으로 나가 동네 어른과 아버지 친구들에게 두루 절을 올리는 예가 있다.

특징 및 의의

관례는 남자가 성인이 됨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어른으로서 대우를 받게 되는 하나의 의례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20년 동안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도리道理를 배우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과 기술을 익혀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공인公人으로서 사회에 기여 및 봉사하며, 자기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일생에서 한 가지 큰 고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사회의 여러 사람에게 널리 알리고, 또 여러 사람으로부터 공인公認을 받는 의례와 절차를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관례를 통해 가족은 물론 친척이나 친지親知들과 함께 성인이 된 기쁨을 나누고 축하와 격려를 함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확인하고 다짐하는 계기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관례와 여자의 관례인 계례筓禮를 혼례, 상례, 제례와 함께 사례四禮의 하나로 보아 대단히 중하게 여겼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자 대단한 고급문화로서 관례는 오랜 세월 지속하고 발전해 왔다. 성인이 된 사람은 성인으로서 예禮를 행할 책임을 져야 한다. 성인으로서 예를 책임진다는 것은 사람의 자식으로서, 동생으로서, 신하로서, 젊은이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례는 매우 중요한 의의가있으며 모든 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禮 記, 朱子家禮.

관례

관례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관례|계례

집필자 김시황(金時晃)
갱신일 2018-08-01

정의

남자가 성인이 됨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의례 절차.

역사

우리나라의 관례冠禮는 고려 말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유입으로 사대부 계층에 정착하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성인 의식과 비슷한 신라시대의 원화源花・화랑花郞 같은 제도가 있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에는 광종光宗 때 왕자에게 원복례元服禮를 행하였다는 기록이있으니, 고려시대에 이미 관례를 행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주자가례』 등의 예서禮書에 따라 관례를 행하였는데, 집안의 형편에 따라 간소하게 행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하여 널리 행해졌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단발령의 시행으로 두발頭髮을 깎게 됨으로써 전통적으로 거행하던 관례는 점차 사라졌다.

내용

관례는 전통사회에서 남자가 치르는 성인의식으로, 서양의 성년식成年式과 유사하며 20세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20세 이전에 결혼하면, 결혼 전에 날을 정해 관례를 행하였다. 관례를 치른 뒤에는 어엿한 어른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어른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고, 그에 따른 책임도 무거워진다. 관례는 1.택일擇日 2.준비準備 3.시가례始加禮 4.재가례再加禮 5.삼가례三加禮 6.초례醮禮 7.자관자례字冠者禮 8.현우사당見于祠堂의 순서로 진행한다. 택일: 『주자가례』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하면, 남자는 15~20세에 관례를 행하였다. 15세 이상이 되어야 예禮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택일에 대해서는, 좋은 날을 가려 예를 행하되, 여의치 않으면 정월 중에 날을 정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때를 놓치면 4월이나 7월 초하루에 하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관을 쓰는 것이 인도人道의 출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준비: 관례를 행하기 3일 전에 주인은 축문祝文을 지어 조상을 모신 사당에 고告한다. 그리고 관례에서 의식을 주관하는 빈賓을 미리 정해 초청해야 한다. 예서禮書에서는 종손宗孫의 친구 가운데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사람을 골라 빈賓으로 삼도록 하였다. 그리고 관례일 하루 전에는 대청의 동북쪽에 휘장을 쳐서 관례를 행할 장소를 마련한다. 관례 당일 아침 일찍 필요한 도구를 진설陳設하며, 관복冠服을 꺼내 준비한다. 그 뒤, 주인 이하 집안사람이 차례로 서서 빈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빈이 찬贊과 함께 도착하면, 주인은 그들을 맞이하여 방으로 인도한다. 시가례: 처음 관을 쓰는 예를 ‘시가례’ 또는 ‘초가례初加禮’라 한다. 시가례는 빈이 관례를 하는 사람에게 읍揖하면서 시작된다. 관례를 하는 자는 처음 쌍계雙髻(쌍상투)를 하고, 사규삼四䙆衫을 입고, 늑백勒帛이라는 띠를 두르고, 채리彩履(무늬 있는 신)를 신는다. 이런 복장으로 행사장에 입장하여 제자리에 나와 꿇어앉는다. 옆에 빈賓을 돕는 찬贊이 관례를 하는 자의 머리를 빗겨 상투를 틀고 망건을 씌우면, 빈이 관례를 하는 자 앞에서 축사를 읽은 뒤 치포관緇布冠을 씌우고 비녀를 꽂아 준다. 관례를 하는 자는 방으로 들어가 사규삼을 벗고 심의深衣를 입으며, 대대大帶(큰 띠)를 두르고, 흑리黑履(검은신)를 신는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제자리로 가서 남쪽을 향해 꿇어앉는다. 재가례: 관례를 하는 자가 정해진 장소에 앉아 있으면, 빈이 관례를 하는 자의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 뒤 , 갓을 씌워준다. 이어 관례를 하는 자는 방으로 들어가 심의를 벗고 소포素袍(흰 도포)를 입으며(조삼皂衫을 입는다고도 하였음), 혁대革帶를 두르고 나온다. 삼가례: 관례를 하는 자가 정해진 자리에 꿇어앉아있으면, 빈이 나아가 축사를 한 뒤, 유건儒巾을 씌워준다. 관례를 하는 자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소포素袍를 벗고 청삼靑衫(푸른 도포)을 입으며, 흑사대黑絲帶를 차고 나온다. 복두幞頭를 쓰고 공복公服을 입고 혁대를 띠고 가죽신을 신고 홀笏을 든다고도 하였고, 작변爵弁을 쓰고 난삼襴衫을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고도 하였다. 또한, 입자笠子(갓)를 쓰고 도포道袍를 입고 흑사대黑絲帶를 띤다고도 하였다. 초례: 술을 마시는 예이다. 관례를 하는 자가 정해진 자리에 나아가 남쪽을 향해 꿇어앉아 있으면, 빈이 관례를 하는 자의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다. 관례를 하는 자가 두 번 절하고 술잔을 받으며, 빈이 답례한다. 관례를 하는 자가 상 앞으로 나아가 잔을 들고 물러나 마신 다음, 찬贊에게 준다. 그리고 빈에게 두 번 절하면 빈이 답례한다. 자관자례: 빈이 관례를 하는 자에게 자字를 지어 주는 예이다. 빈과 관례를 하는 자가 마당으로 내려간다. 빈이 관례를 하는 자에게 축사를 하면서 자를 지어준다. 관례를 하는 자가 간단한 답사를 하고 절하면, 빈은 절을 받되 답례하지 않는다. 현우사당: 주인이 관례를 행한 아들을 데리고 사당에 가서 조상에게 고하는 예이다. 이상으로 관례의 중요한 행사는 끝난다. 그러나 이 뒤에 관례를 치른 자는 찾아온 친척과 손님들에게 절한다. 또 밖으로 나가 동네 어른과 아버지 친구들에게 두루 절을 올리는 예가 있다.

특징 및 의의

관례는 남자가 성인이 됨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어른으로서 대우를 받게 되는 하나의 의례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20년 동안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도리道理를 배우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과 기술을 익혀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공인公人으로서 사회에 기여 및 봉사하며, 자기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일생에서 한 가지 큰 고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사회의 여러 사람에게 널리 알리고, 또 여러 사람으로부터 공인公認을 받는 의례와 절차를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관례를 통해 가족은 물론 친척이나 친지親知들과 함께 성인이 된 기쁨을 나누고 축하와 격려를 함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확인하고 다짐하는 계기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관례와 여자의 관례인 계례筓禮를 혼례, 상례, 제례와 함께 사례四禮의 하나로 보아 대단히 중하게 여겼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자 대단한 고급문화로서 관례는 오랜 세월 지속하고 발전해 왔다. 성인이 된 사람은 성인으로서 예禮를 행할 책임을 져야 한다. 성인으로서 예를 책임진다는 것은 사람의 자식으로서, 동생으로서, 신하로서, 젊은이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례는 매우 중요한 의의가있으며 모든 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禮 記, 朱子家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