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죽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한남수(韓男洙)
갱신일 2016-10-26

정의

양손에 줄로 연결된 채를 들고 공죽을 돌리면서 던져 받는 민속놀이.

역사

공죽이 언제 한국에 유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의 두공죽抖空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명칭은 죽방울 놀리기・쭉방울 돌리기・죽방울 받기・죽방울놀이・죽방울 치기・실패놀이 등으로 불렀다.

초기의 공 던져 받기 놀이는 삼국시대 농주弄珠, 농환弄丸, 농금환弄金丸으로 불린 기록이 있다. 『북사北史』, 『수서隋書』의 백제조에 공 던져 받기의 유사 형태로 농주가 나타난다. 고구려의 팔정리 고분벽화에서는 ‘농환’으로 불린다. 신라의 <향약잡영鄕樂雜詠>의 오기五技 중 금환, 고려의 농환도 이 유형에 속한다. 조선 후기 감로탱과 풍속화에 다양한 형태의 공 던져 받기 놀이가 등장한다. <기산풍속도>에 처음으로 줄 없이 공을 던져 받는 놀이와 줄을 이용해 공죽을 던져 받는 놀이가 ‘죽방울 받기’로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 기메 박물관 소장의 『기산풍속도첩』에는 ‘죽방울 밧는 모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놀이는 모양과 형태, 놀이 방법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기산풍속도>에서 죽방울 받기로 명기하고 있어 혼용해 부른 것으로 보인다.

죽방울 받기는 조선시대까지 전국에 전승된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전문적인 예인들의 연행 기록은 <기산풍속도>의 ‘솟대쟁이놀이’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전남 일부 지역에서 무당들이 굿할 때 활용하였고 소포에서 추석날 농악을 칠 때 ‘쫑방울’을 논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전남 우도농악의 설장고 예능 보유자 김동언(1942년생)은 15세 때 농악대의 이주완이라는 인물을 보았는데, “죽방울이라고 하늘로 쏘아 올려서 받아내는 솜씨가 기가 막혀.”라고 구술하였다. 1950년대 경상북도 예천 장에서 명재명이라는 약장수가 만담에 이어 죽방울놀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2008년 진주탈춤한마당의 학예굿에서 진주 오광대가 솟대쟁이놀이의 연희를 복원하여 죽방울놀이를 시연했다. 이후 2014년 솟대쟁이놀이보존회가 발족되었고, 세 명의 전문예인이 공죽을 전승하고 있다.

중국 공죽의 정확한 발생 연대는 알 수 없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과 『무림구사武林舊事』에 ‘농두弄抖’가 공죽의 유사 형태로 전해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놀이법과 명칭은 명대明代부터 전한다.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과 주밀周密의 『무림구사』에서는 사농잡기耍弄雜技의 하나로 ‘농두’를 소개하였다. 농두는 공중에 공을 던져 받는 놀이로 한韓대의 화상석에도 나타나며, 공 외에 칼, 구술, 병 등을 활용하였다. 농두는 ‘구슬 던져 받기’나 ‘공 던져 받기’인 타탄자打彈子의 유형으로 현재 중국 서커스단에서 연희되고 있다. 명대 유동劉侗,우혁정于奕正의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서 춘절春節 놀이인 ‘공종’을 소개하였다. 공종은 나무를 깎아서 가운데 구멍을 내고 공종 윤반輪盤 옆쪽으로는 실이 감길 수 있도록 홈을 판다. 공종이 평형을 유지해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으며, 힘의 강도에 따라 공종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큰 소리를 내는 음향 놀이임을 밝혔다.

명대 정릉定陵에서 출토된 자수품인 백자의白子依에서도 두 아이가 공종 연희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청대의 번영폐潘荣陛, 부찰돈숭富察敦崇의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에서도 “공종은 바퀴 모양을 닮았고, 중간에 작은 축이 달려 있고, 아이들이 두 개의 막대기를 명주실에 감아서 돌리면서 승패를 정했는데, 멀리 새벽종이 들리는 것과 같다.”고 묘사하였다. 『청대야기清代野記』에서도 베이징 성 밖에서 공죽이 ‘지령’이란 명칭으로 연행되었고 ‘공종’과 혼용해 사용하였다. 부숭구傅崇矩의 『성도통람成都通覽』에 의하면 쓰촨四川에서는 ‘향황響簧’이라 불렀고, 아이들이 긴 타원형의 쌍륜 공죽을 돌리고 있다.

공죽은 묘회廟會가 최고의 판매처였고, 장인들이 제작·판매했으며 아이들에게 놀이도 가르쳤다. 베이징의 ‘진구상회[眞久記]’ 공죽이 내구성이 뛰어나고 견고해 큰 인기를 누렸다. 민국 시대 베이징의 천민 예인촌인 톈차오天桥에서는 왕위티엔王雨田 공죽이 유행하였다. 1950년 중국 서커스단이 성립되면서 왕위티엔의 두 딸인 왕쿠이잉王桂英, 왕구이잉王奎英이 공죽 배우로 영입되었고, 왕가공죽의 가계 구도를 형성했다. 넷째 딸 왕구이친王桂琴은 2004년 여성 전문 공죽 차오화단俏花旦을 만들었다. 경극의 의상과 음악, 분장 등을 접목해 무대 예술로서의 세련미와 예술성을 극대화해 대외적으로 공죽의 우수성을 알렸다.

문화혁명 기간 장인들이 국유화된 완구 공장의 노동자로 유입되어 공죽도 쇠퇴하였다. 1985년 베이징 지단地壇 묘회에 공죽이 연행되면서 서서히 회복되었다. 정저우郑州 뤄양洛阳은 베이징보다 앞서 공죽이 유행했고, 무술을 접목해 기예의 난이도를 높였다. 베이징은 서커스단의 공죽 퇴역 배우들이 공원에 유입되면서 시민들에게 유행되었다.

2006년 공죽이 국가급무형문화유산이 되면서 연희자 리롄위안李连元과 제작자 장궈량張國良이 전승자가 되었다. 박물관은 공죽 제조 과정의 견학과 공죽 체험장을 열고 있다. 또 민간 공죽 예술단이 설립되어 전승과 대외 교류는 물론 베이징의 초・중학교, 사회시설, 정부 기관 등에서 공죽 수련과 홍보를 맡고 있다.

내용

한국은 쌍륜 공죽이 중심이고 다양한 기예와 줄, 채의 변화가 적다. 중국 공죽은 속도와 줄의 길이, 줄을 당기는 힘, 줄을 감는 방법, 공죽을 받아내는 방향, 윤반의 크기와 무게 등에 따라 다양하고 섬세한 기예를 연출한다.

공죽은 형태에 따라 쌍륜雙轮 공죽, 단륜單輪 공죽, 이형異形 공죽으로 분류한다. 단륜 공죽은 한 개의 윤반에 손잡이 형태의 막대기가 윤반 가운데에 붙어 있다. 무게가 윤반 쪽에 실려 있어 균형을 잡기 어렵다. 공죽의 윤반 중량과 구심점에 일정한 간격과 균형을 두어 중심에 축을 연결한다. 축은 회전을 위한 중요한 연결선이며, 줄을 감는 방향과 풀어내는 속도에 따라 공죽의 회전이 달라진다.

쌍륜 공죽은 작은 장구 모양으로 양쪽에 윤반이 있고 가운데 홈이 있어 축으로 연결한다. 쌍륜은 무게 중심이 양쪽 윤반에 균일하게 분산되어 회전할 때 균형을 잡기가 쉽다. 공죽 속도가 약해지거나 줄에 말리면 오른손을 조절해 높이와 방향을 조절한다. 이때 왼손을 오른손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면서 회전 속도를 조절해 공죽이 정방향이 되도록 한다.

공죽은 소리 구멍인 윤반이 중요하다. 기본 윤반 둘레에 여러 개의 입구를 만들어 소리 구멍을 내고 작은 대나무 조각을 일정하게 쪼개어 붙여 구멍의 크기와 간격, 두께를 조절한다. 아교를 칠한 윤반 안의 대나무 조각들을 2~3일 동안 건조해 습기를 제거한다. 윤반의 뚜껑을 덮고 떨어지거나 뒤틀리지 않도록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고 재건조한다. 윤반이 완성이 되면, 중심에 축을 맞추어 끼워 넣고 고정시킨다. 윤반 둘레와 소리구멍이 평형을 유지하도록 대패를 이용해 결을 정리하고 윤반 무게의 평형을 확인한다. 윤반에 그림 장식을 그려 마무리한다. 소리 구멍은 고음부와 저음부로 나뉘며, 작은 입구가 고음, 큰 입구가 저음이다. 소리 구멍은 입구의 크기, 간격, 높이, 양쪽 윤반의 두께, 무게의 균형이 모두 균일해야 좋은 음향을 갖는다. 현재 플라스틱과 고무 공죽이 등장하면서 쌍륜 공죽은 윤반과 소리 구멍이 사라졌다.

이형 공죽은 크기, 무게, 축, 채 등이 변해 전통적인 형태를 벗어난 것이다. 대형 공죽, 도자기 뚜껑, 자전거 바퀴, 구리, 철을 이용한 소형 공죽, 채 없이 여러 개의 공죽을 연결해서 줄로만 공죽을 돌린다.

공죽의 기본 동작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눈다.

  1. 돌리기[繞]: 돌리기는 공죽 축軸을 중심으로 어떤 방향에서 줄을 감아 돌리느냐가 중요하다. 공죽을 회전시키지 않고 두 손잡이를 이용하여 공죽을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돌린다. 손잡이를 수평으로 잡고 두 손을 공죽의 아래 방향에서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공죽을 왼쪽(혹은 오른쪽)에서 오른쪽(왼쪽)으로 돌린다. 돌릴 때 손잡이 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돌리고 난 후 손잡이를 수평으로 해서 줄과 손잡이가 엉키는 것을 방지한다.

  2. 흔들기[擺]: 흔들기는 공죽을 좌우로 움직이고 휘젓는 방식이다. 두 손에 힘을 동시에 주면서 공죽을 흔든다. 줄의 힘으로 공죽이 왼쪽(오른쪽)에서 오른쪽(왼쪽)으로 활 모양의 타원형을 그린다. 두 팔과 손목이 갖는 힘의 동력을 이용해 공죽을 좌우로 빠르게 이동한다.

  3. 공중 회전하기[旋]: 공죽의 줄이 수평이 되도록 하면서 두 손을 벌린다. 왼손을 높게 하면 공죽은 오른쪽 손잡이 가까이에 머문다. 오른쪽 손잡이에 힘을 주어 공죽을 왼쪽으로 미끄러지게 하여 회전시킨다. 왼쪽 손잡이 가까이에 갔을 때 오른손에 갑자기 힘을 주어 공죽이 오른쪽으로 튀어 오르면서 가슴 쪽으로 원형을 그리며 회전한다.

  4. 튕기기[繃]: 튕기기는 어깨를 열어 양손의 위치를 위아래로 조절하는 동작으로 줄을 팽팽하게 잡아 공죽을 튕긴다. 두 팔을 벌리고 왼손은 높게, 오른손은 낮게 하여 공죽을 오른쪽에 머물게 한다. 왼손으로 줄을 빠르게 팽팽히 당겨 공죽을 튀어 오르게 하고, 공죽이 줄에 닿을 때 다시 줄을 당겨 공죽이 줄 위에서 끊임없이 튕겨 오르게 한다.

  5. 던지기[抛]: 던지기는 공죽으로 공중에 높이 던지는 것이다. 던지기를 통해서 신체의 위치를 바꾸거나 줄의 긴장감을 재조정한다. 팔꿈치를 밖으로 향하게 하고 두 손잡이 끝은 아래로 약 45도 각도로 경사지게 한다. 두 손목의 힘을 이용하여 손잡이를 힘껏 위로 방향전환을 시켜 공죽이 높이 뛰어오르게 한다. 공죽이 손잡이 방향을 따라 아래로 내려올 때 아래에 있던 손은 공죽이 있는 방향을 향하면서 받는다. 두 명 이상이 같은 동작을 조율하거나 속도, 호흡을 조절할 때 유용하다.

특징 및 의의

한국에서 공죽, 즉 죽방울 받기는 단절되었으나, 현재 진주 솟대쟁이놀이패에서 복원해 전승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대만은 세계적인 서커스단과 대외 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므로 중국의 경우를 통해 공죽의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공죽은 재료의 변화, 공간의 확보, 자유로운 시간의 활용하면서 춘절 놀이에서 대중적인 일상생활 놀이로 변하였다. 정부의 지원과 정책의 보호 아래 베이징에 공죽 협회가 설립되면서 각 지방 도시로 확대·보급되었다. 일반적으로 놀이가 농촌에서 도시로 발전되는 과정과 달리, 공죽은 대도시에서 발달해 도시 외곽, 전국 지방과 농촌으로 보급되었다. 현재 베이징北京은 100여 개의 공죽 단체가 협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도모하면서 활동한다. 톈진天津·바오딩保定·우한武漢·상하이上海·난징南京·시안西安 등에도 공죽 협회와도 활발하게 교류한다. 공죽은 2006년 무형문화유산 등재와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 중국 서커스단의 퇴직 공죽 배우가 민간단체에 결합하면서 대중화에 성공했다. 베이징 민속원은 주말 상설 공죽 무대를 마련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공죽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전통놀이의 도시화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였다.

참고문헌

놀이의 서커스로서의 변용과 위상(한남수, 민속학연구31, 국립민속박물관, 2012), 한국 농환 유형 연희의 역사와 연행양상(이지영,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한국전통연희사전(전경욱, 민속원, 2014), 都市生活變遷中的空竹遊戲(韓男洙, 北京師範大學 博士學位論文, 2011), 帝京景物略(劉侗・于奕正, 北京古籍出版社,2000).

공죽

공죽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한남수(韓男洙)
갱신일 2016-10-26

정의

양손에 줄로 연결된 채를 들고 공죽을 돌리면서 던져 받는 민속놀이.

역사

공죽이 언제 한국에 유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의 두공죽抖空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명칭은 죽방울 놀리기・쭉방울 돌리기・죽방울 받기・죽방울놀이・죽방울 치기・실패놀이 등으로 불렀다. 초기의 공 던져 받기 놀이는 삼국시대 농주弄珠, 농환弄丸, 농금환弄金丸으로 불린 기록이 있다. 『북사北史』, 『수서隋書』의 백제조에 공 던져 받기의 유사 형태로 농주가 나타난다. 고구려의 팔정리 고분벽화에서는 ‘농환’으로 불린다. 신라의 의 오기五技 중 금환, 고려의 농환도 이 유형에 속한다. 조선 후기 감로탱과 풍속화에 다양한 형태의 공 던져 받기 놀이가 등장한다. 에 처음으로 줄 없이 공을 던져 받는 놀이와 줄을 이용해 공죽을 던져 받는 놀이가 ‘죽방울 받기’로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 기메 박물관 소장의 『기산풍속도첩』에는 ‘죽방울 밧는 모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놀이는 모양과 형태, 놀이 방법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에서 죽방울 받기로 명기하고 있어 혼용해 부른 것으로 보인다. 죽방울 받기는 조선시대까지 전국에 전승된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전문적인 예인들의 연행 기록은 의 ‘솟대쟁이놀이’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전남 일부 지역에서 무당들이 굿할 때 활용하였고 소포에서 추석날 농악을 칠 때 ‘쫑방울’을 논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전남 우도농악의 설장고 예능 보유자 김동언(1942년생)은 15세 때 농악대의 이주완이라는 인물을 보았는데, “죽방울이라고 하늘로 쏘아 올려서 받아내는 솜씨가 기가 막혀.”라고 구술하였다. 1950년대 경상북도 예천 장에서 명재명이라는 약장수가 만담에 이어 죽방울놀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2008년 진주탈춤한마당의 학예굿에서 진주 오광대가 솟대쟁이놀이의 연희를 복원하여 죽방울놀이를 시연했다. 이후 2014년 솟대쟁이놀이보존회가 발족되었고, 세 명의 전문예인이 공죽을 전승하고 있다. 중국 공죽의 정확한 발생 연대는 알 수 없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과 『무림구사武林舊事』에 ‘농두弄抖’가 공죽의 유사 형태로 전해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놀이법과 명칭은 명대明代부터 전한다.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과 주밀周密의 『무림구사』에서는 사농잡기耍弄雜技의 하나로 ‘농두’를 소개하였다. 농두는 공중에 공을 던져 받는 놀이로 한韓대의 화상석에도 나타나며, 공 외에 칼, 구술, 병 등을 활용하였다. 농두는 ‘구슬 던져 받기’나 ‘공 던져 받기’인 타탄자打彈子의 유형으로 현재 중국 서커스단에서 연희되고 있다. 명대 유동劉侗,우혁정于奕正의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서 춘절春節 놀이인 ‘공종’을 소개하였다. 공종은 나무를 깎아서 가운데 구멍을 내고 공종 윤반輪盤 옆쪽으로는 실이 감길 수 있도록 홈을 판다. 공종이 평형을 유지해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으며, 힘의 강도에 따라 공종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큰 소리를 내는 음향 놀이임을 밝혔다. 명대 정릉定陵에서 출토된 자수품인 백자의白子依에서도 두 아이가 공종 연희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청대의 번영폐潘荣陛, 부찰돈숭富察敦崇의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에서도 “공종은 바퀴 모양을 닮았고, 중간에 작은 축이 달려 있고, 아이들이 두 개의 막대기를 명주실에 감아서 돌리면서 승패를 정했는데, 멀리 새벽종이 들리는 것과 같다.”고 묘사하였다. 『청대야기清代野記』에서도 베이징 성 밖에서 공죽이 ‘지령’이란 명칭으로 연행되었고 ‘공종’과 혼용해 사용하였다. 부숭구傅崇矩의 『성도통람成都通覽』에 의하면 쓰촨四川에서는 ‘향황響簧’이라 불렀고, 아이들이 긴 타원형의 쌍륜 공죽을 돌리고 있다. 공죽은 묘회廟會가 최고의 판매처였고, 장인들이 제작·판매했으며 아이들에게 놀이도 가르쳤다. 베이징의 ‘진구상회[眞久記]’ 공죽이 내구성이 뛰어나고 견고해 큰 인기를 누렸다. 민국 시대 베이징의 천민 예인촌인 톈차오天桥에서는 왕위티엔王雨田 공죽이 유행하였다. 1950년 중국 서커스단이 성립되면서 왕위티엔의 두 딸인 왕쿠이잉王桂英, 왕구이잉王奎英이 공죽 배우로 영입되었고, 왕가공죽의 가계 구도를 형성했다. 넷째 딸 왕구이친王桂琴은 2004년 여성 전문 공죽 차오화단俏花旦을 만들었다. 경극의 의상과 음악, 분장 등을 접목해 무대 예술로서의 세련미와 예술성을 극대화해 대외적으로 공죽의 우수성을 알렸다. 문화혁명 기간 장인들이 국유화된 완구 공장의 노동자로 유입되어 공죽도 쇠퇴하였다. 1985년 베이징 지단地壇 묘회에 공죽이 연행되면서 서서히 회복되었다. 정저우郑州 뤄양洛阳은 베이징보다 앞서 공죽이 유행했고, 무술을 접목해 기예의 난이도를 높였다. 베이징은 서커스단의 공죽 퇴역 배우들이 공원에 유입되면서 시민들에게 유행되었다. 2006년 공죽이 국가급무형문화유산이 되면서 연희자 리롄위안李连元과 제작자 장궈량張國良이 전승자가 되었다. 박물관은 공죽 제조 과정의 견학과 공죽 체험장을 열고 있다. 또 민간 공죽 예술단이 설립되어 전승과 대외 교류는 물론 베이징의 초・중학교, 사회시설, 정부 기관 등에서 공죽 수련과 홍보를 맡고 있다.

내용

한국은 쌍륜 공죽이 중심이고 다양한 기예와 줄, 채의 변화가 적다. 중국 공죽은 속도와 줄의 길이, 줄을 당기는 힘, 줄을 감는 방법, 공죽을 받아내는 방향, 윤반의 크기와 무게 등에 따라 다양하고 섬세한 기예를 연출한다. 공죽은 형태에 따라 쌍륜雙轮 공죽, 단륜單輪 공죽, 이형異形 공죽으로 분류한다. 단륜 공죽은 한 개의 윤반에 손잡이 형태의 막대기가 윤반 가운데에 붙어 있다. 무게가 윤반 쪽에 실려 있어 균형을 잡기 어렵다. 공죽의 윤반 중량과 구심점에 일정한 간격과 균형을 두어 중심에 축을 연결한다. 축은 회전을 위한 중요한 연결선이며, 줄을 감는 방향과 풀어내는 속도에 따라 공죽의 회전이 달라진다. 쌍륜 공죽은 작은 장구 모양으로 양쪽에 윤반이 있고 가운데 홈이 있어 축으로 연결한다. 쌍륜은 무게 중심이 양쪽 윤반에 균일하게 분산되어 회전할 때 균형을 잡기가 쉽다. 공죽 속도가 약해지거나 줄에 말리면 오른손을 조절해 높이와 방향을 조절한다. 이때 왼손을 오른손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면서 회전 속도를 조절해 공죽이 정방향이 되도록 한다. 공죽은 소리 구멍인 윤반이 중요하다. 기본 윤반 둘레에 여러 개의 입구를 만들어 소리 구멍을 내고 작은 대나무 조각을 일정하게 쪼개어 붙여 구멍의 크기와 간격, 두께를 조절한다. 아교를 칠한 윤반 안의 대나무 조각들을 2~3일 동안 건조해 습기를 제거한다. 윤반의 뚜껑을 덮고 떨어지거나 뒤틀리지 않도록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고 재건조한다. 윤반이 완성이 되면, 중심에 축을 맞추어 끼워 넣고 고정시킨다. 윤반 둘레와 소리구멍이 평형을 유지하도록 대패를 이용해 결을 정리하고 윤반 무게의 평형을 확인한다. 윤반에 그림 장식을 그려 마무리한다. 소리 구멍은 고음부와 저음부로 나뉘며, 작은 입구가 고음, 큰 입구가 저음이다. 소리 구멍은 입구의 크기, 간격, 높이, 양쪽 윤반의 두께, 무게의 균형이 모두 균일해야 좋은 음향을 갖는다. 현재 플라스틱과 고무 공죽이 등장하면서 쌍륜 공죽은 윤반과 소리 구멍이 사라졌다. 이형 공죽은 크기, 무게, 축, 채 등이 변해 전통적인 형태를 벗어난 것이다. 대형 공죽, 도자기 뚜껑, 자전거 바퀴, 구리, 철을 이용한 소형 공죽, 채 없이 여러 개의 공죽을 연결해서 줄로만 공죽을 돌린다. 공죽의 기본 동작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눈다. 돌리기[繞]: 돌리기는 공죽 축軸을 중심으로 어떤 방향에서 줄을 감아 돌리느냐가 중요하다. 공죽을 회전시키지 않고 두 손잡이를 이용하여 공죽을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돌린다. 손잡이를 수평으로 잡고 두 손을 공죽의 아래 방향에서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공죽을 왼쪽(혹은 오른쪽)에서 오른쪽(왼쪽)으로 돌린다. 돌릴 때 손잡이 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돌리고 난 후 손잡이를 수평으로 해서 줄과 손잡이가 엉키는 것을 방지한다. 흔들기[擺]: 흔들기는 공죽을 좌우로 움직이고 휘젓는 방식이다. 두 손에 힘을 동시에 주면서 공죽을 흔든다. 줄의 힘으로 공죽이 왼쪽(오른쪽)에서 오른쪽(왼쪽)으로 활 모양의 타원형을 그린다. 두 팔과 손목이 갖는 힘의 동력을 이용해 공죽을 좌우로 빠르게 이동한다. 공중 회전하기[旋]: 공죽의 줄이 수평이 되도록 하면서 두 손을 벌린다. 왼손을 높게 하면 공죽은 오른쪽 손잡이 가까이에 머문다. 오른쪽 손잡이에 힘을 주어 공죽을 왼쪽으로 미끄러지게 하여 회전시킨다. 왼쪽 손잡이 가까이에 갔을 때 오른손에 갑자기 힘을 주어 공죽이 오른쪽으로 튀어 오르면서 가슴 쪽으로 원형을 그리며 회전한다. 튕기기[繃]: 튕기기는 어깨를 열어 양손의 위치를 위아래로 조절하는 동작으로 줄을 팽팽하게 잡아 공죽을 튕긴다. 두 팔을 벌리고 왼손은 높게, 오른손은 낮게 하여 공죽을 오른쪽에 머물게 한다. 왼손으로 줄을 빠르게 팽팽히 당겨 공죽을 튀어 오르게 하고, 공죽이 줄에 닿을 때 다시 줄을 당겨 공죽이 줄 위에서 끊임없이 튕겨 오르게 한다. 던지기[抛]: 던지기는 공죽으로 공중에 높이 던지는 것이다. 던지기를 통해서 신체의 위치를 바꾸거나 줄의 긴장감을 재조정한다. 팔꿈치를 밖으로 향하게 하고 두 손잡이 끝은 아래로 약 45도 각도로 경사지게 한다. 두 손목의 힘을 이용하여 손잡이를 힘껏 위로 방향전환을 시켜 공죽이 높이 뛰어오르게 한다. 공죽이 손잡이 방향을 따라 아래로 내려올 때 아래에 있던 손은 공죽이 있는 방향을 향하면서 받는다. 두 명 이상이 같은 동작을 조율하거나 속도, 호흡을 조절할 때 유용하다.

특징 및 의의

한국에서 공죽, 즉 죽방울 받기는 단절되었으나, 현재 진주 솟대쟁이놀이패에서 복원해 전승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대만은 세계적인 서커스단과 대외 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므로 중국의 경우를 통해 공죽의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공죽은 재료의 변화, 공간의 확보, 자유로운 시간의 활용하면서 춘절 놀이에서 대중적인 일상생활 놀이로 변하였다. 정부의 지원과 정책의 보호 아래 베이징에 공죽 협회가 설립되면서 각 지방 도시로 확대·보급되었다. 일반적으로 놀이가 농촌에서 도시로 발전되는 과정과 달리, 공죽은 대도시에서 발달해 도시 외곽, 전국 지방과 농촌으로 보급되었다. 현재 베이징北京은 100여 개의 공죽 단체가 협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도모하면서 활동한다. 톈진天津·바오딩保定·우한武漢·상하이上海·난징南京·시안西安 등에도 공죽 협회와도 활발하게 교류한다. 공죽은 2006년 무형문화유산 등재와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 중국 서커스단의 퇴직 공죽 배우가 민간단체에 결합하면서 대중화에 성공했다. 베이징 민속원은 주말 상설 공죽 무대를 마련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공죽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전통놀이의 도시화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였다.

참고문헌

놀이의 서커스로서의 변용과 위상(한남수, 민속학연구31, 국립민속박물관, 2012), 한국 농환 유형 연희의 역사와 연행양상(이지영,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한국전통연희사전(전경욱, 민속원, 2014), 都市生活變遷中的空竹遊戲(韓男洙, 北京師範大學 博士學位論文, 2011), 帝京景物略(劉侗・于奕正, 北京古籍出版社,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