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반

한자명

骨董飯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2월 > 정일

집필자 주영하(周永河)
갱신일 2016-11-03

정의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여 섣달그믐날 저녁에 남은 음식을 모아 비비는 밥. 민간의 풍속에 음력 12월 30일인 섣달그믐에 남은 음식을 모두 모아서 골동반(骨董飯)을 먹는다고 한다. 여기서 골동반은 비빔밥을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유래

중국 명나라 때의 동기창(董其昌)이 쓴 『골동십삼설(骨董十三說)』이란 책에서는 분류가 되지 않는 옛날 물건들을 통틀어 골동(骨董)이라 부른다고 하면서, 이 뜻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혼합하여 조리한 국을 골동갱(骨董羹)이라 하고, 밥에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서 익힌 것을 골동반이라 한다고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조에서 골동면(骨董麪)을 언급하면서 골동은 뒤섞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또한 “강남(江南)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 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이것은 곧 밥의 골동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이런 음식이 있었다.”라고 하여 골동반이 곧 지금의 비빔밥임을 보여준다.

내용

지금까지 발견된 문헌 중에서 ‘골동반’이란 글자가 적힌 가장 앞선 기록은 『시의전서(是議全書)』이다. 이 책에는 한자로 골동반[骨董飯, 汨董飯]이라 쓰고, 한글로 ‘부븸밥’이라 적었다. 그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나물을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라고 했다. 이미 조선 초기부터 ‘골동’이란 단어가 쓰였고, 여기에 음식 이름이 붙어 19세기 이후 골동반이란 말도 생겨났지만, 20세기 이후에는 비빔밥으로 대체되었다.

『별건곤(別乾坤)』4-7의 특집기사인 ‘팔도명식물예찬(八道名食物禮讚)’이란 기사에는 「경상도명물(慶尙道名物) 진주(晋州) 비빔밥」이란 글이 실렸다. 진주비빔밥은 서울비빔밥이 큰 고깃덩어리와 긴 콩나물 발을 넣은 것과 달리 하얀 쌀밥 위에 파란 채소와 고사리나물, 숙주나물 같은 각색 나물을 놓고, 쇠고기를 잘게 썰어 끓인 장국을 부어 비비기 좋게 하고, 그 위에 황청포, 육회, 고추장을 얹어서 상에 낸다고 했다. 그 값이 10전에 지나지 않아 상하계급을 가리지 않고 쉽게 먹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듯 제사 후에 음복을 할 때 먹거나 섣달그믐에 묵은 음식을 모두 섞어서 먹던 비빔밥이 20세기 이후 도시의 식당에서 팔리는 중요한 끼니 음식이 되었다. 1960년대 전주의 비빔밥 식당이 서울로 진출한 이후 전주비빔밥이 명성을 얻어서 지금은 비빔밥 하면 전주비빔밥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골동반이란 단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참고문헌

骨董十三說, 東國歲時記, 是議全書
別乾坤4-7 (景仁文化社, 1929)

골동반

골동반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2월 > 정일

집필자 주영하(周永河)
갱신일 2016-11-03

정의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여 섣달그믐날 저녁에 남은 음식을 모아 비비는 밥. 민간의 풍속에 음력 12월 30일인 섣달그믐에 남은 음식을 모두 모아서 골동반(骨董飯)을 먹는다고 한다. 여기서 골동반은 비빔밥을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유래

중국 명나라 때의 동기창(董其昌)이 쓴 『골동십삼설(骨董十三說)』이란 책에서는 분류가 되지 않는 옛날 물건들을 통틀어 골동(骨董)이라 부른다고 하면서, 이 뜻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혼합하여 조리한 국을 골동갱(骨董羹)이라 하고, 밥에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서 익힌 것을 골동반이라 한다고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조에서 골동면(骨董麪)을 언급하면서 골동은 뒤섞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또한 “강남(江南)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 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이것은 곧 밥의 골동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이런 음식이 있었다.”라고 하여 골동반이 곧 지금의 비빔밥임을 보여준다.

내용

지금까지 발견된 문헌 중에서 ‘골동반’이란 글자가 적힌 가장 앞선 기록은 『시의전서(是議全書)』이다. 이 책에는 한자로 골동반[骨董飯, 汨董飯]이라 쓰고, 한글로 ‘부븸밥’이라 적었다. 그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나물을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라고 했다. 이미 조선 초기부터 ‘골동’이란 단어가 쓰였고, 여기에 음식 이름이 붙어 19세기 이후 골동반이란 말도 생겨났지만, 20세기 이후에는 비빔밥으로 대체되었다. 『별건곤(別乾坤)』4-7의 특집기사인 ‘팔도명식물예찬(八道名食物禮讚)’이란 기사에는 「경상도명물(慶尙道名物) 진주(晋州) 비빔밥」이란 글이 실렸다. 진주비빔밥은 서울비빔밥이 큰 고깃덩어리와 긴 콩나물 발을 넣은 것과 달리 하얀 쌀밥 위에 파란 채소와 고사리나물, 숙주나물 같은 각색 나물을 놓고, 쇠고기를 잘게 썰어 끓인 장국을 부어 비비기 좋게 하고, 그 위에 황청포, 육회, 고추장을 얹어서 상에 낸다고 했다. 그 값이 10전에 지나지 않아 상하계급을 가리지 않고 쉽게 먹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듯 제사 후에 음복을 할 때 먹거나 섣달그믐에 묵은 음식을 모두 섞어서 먹던 비빔밥이 20세기 이후 도시의 식당에서 팔리는 중요한 끼니 음식이 되었다. 1960년대 전주의 비빔밥 식당이 서울로 진출한 이후 전주비빔밥이 명성을 얻어서 지금은 비빔밥 하면 전주비빔밥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골동반이란 단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참고문헌

骨董十三說, 東國歲時記, 是議全書別乾坤4-7 (景仁文化社,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