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송포호미걸이

한자명

高陽松浦-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황보명(皇甫明)
갱신일 2016-11-03

정의

경기도 고양시 송포면에서 칠석(七夕)부터 백중(百中) 사이에 전승되었던 농경의례. 호미걸이는 호미씻이라고도 한다. 두레의 힘과 풍류를 담고 있는 고양송포호미걸이는 1931년을 끝으로 중단되었다가, 최근 들어 고양송포호미걸이보존회에서 부분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1984년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1998년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호미걸이는 세벌김매기가 끝나는 음력 7월 중순 무렵에 농기(農旗)의 버릿줄에 호미를 주렁주렁 걸어둠으로써 사실상 한 해 농사를 마감한다는 의미와 다음 해의 농사를 위해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호미걸이가 전래되는 경기도 일산 신도시의 대화동 일대는 과거 송포 벌판이라는 넓은 평야가 자리 잡은 곳으로, 오랫동안 농경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송포호미걸이는 농촌에서 활발했던 두레 공동체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호미걸이는 매년 하는 것이 아니고, 두벌 김을 멜 때쯤 그해 농사를 어느 정도 가늠하여 농사가 잘 되었다고 판단될 때만 했다고 한다.

호미걸이가 결정되면 마을 사람들은 놀이에 쓰일 악기와 깃발을 점검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등 잔치 준비를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음식과 기구는 마을 사람들이 제각기 능력에 맞추어 정성껏 마련한다.

호미걸이 하는 날이 되면 기를 앞세우고 행진 농악인 길군악을 치면서 뒷산에 오른다. 도당나무에 도착하면 기잽이가 기를 잡고 있는 가운데 삼실과와 건어물로 제물을 진설하고 산상제(山上祭)를 지내게 된다. 산상제란 마을 주민 대표가 마을 수호신인 도당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마을 중심에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 있는데, 이를 도당산(都堂山)이라 부른다. 이 도당산에는 큰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소나무를 도당나무로 정하고 그 앞에 제상을 차려 놓는다. 마을에서 제일 웃어른이자 두레패영좌가 의관을 정제하고 축문을 읽고 절을 하며 제사를 지내는데, 이로써 호미걸이 행사가 시작된다. 산상제에는 이 마을 두레패만 참석하며 두레패들은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해야 한다.

산상제를 지낸 뒤 두레패들이 마을로 돌아오면 놀이판에서는 대동고사를 위해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로는 시루떡과 돼지고기가 쓰이며, “입심 좋고 나이 많은 반 마나님”같은 할머니가 제주(祭主)가 되어 비손하면 참석자 모두 같이 비손한다. 이 대동고사는 여자들이 마을의 풍년과 집안의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서 지낸다.

여자들의 고사가 끝나면 대동놀이가 시작되는데, 대동놀이는 초청된 이웃 두레패를 맞이하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원래 김동(金東), 김서(金西), 양촌(陽村) 두레패는 이 부근 두레패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구두레’라고 한다. 두레패는 선후(先後)를 매우 존중하는 풍습이 있어서 서로 만나면 선배 두레패의 기(旗)에 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청된 두레패는 재비를 울리면서 구두레의 기를 향해 온절을 하면 구두레의 기는 반절로서 답례한다. 이를 ‘기절받기’ 또는 ‘기세배’라고 한다.

기절받기가 끝나면 그해의 깃대잡이를 선발하는데, 가장 힘이 센 사람이 깃대잡이로 선발된다. 일단 깃대잡이로 선정되면 필목(疋木) 등을 선물로 받는다. 깃대잡이는 선물로 받은 필목을 풀어헤쳐 몸에 감으면서 춤을 추고, 깃대를 손바닥, 어깨 등에 올려놓고 춤추기도 하고 기쓸기 등도 하는데, 이것을 ‘깃대재주부리기’라고 한다. 이 깃대잡이는 양촌마을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종기놀리기, 조사놀리기 등 온갖 재주를 부린다. 그런 다음 무등타기를 하고 멍석을 짜서 만든 소가 등장하면서 호미걸이소리가 불려진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어울려서 춤마당을 이루면서 흥을 돋우어 대동놀이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기쓸기가 끝나면 호미걸이의 소리가 시작되는데, 그 소리는 열 가지 가락으로 다른 지방의 소리와 비교할 때 특색이 있다. 소리는 긴소리, 사두여, 양산도, 방아타령, 자진방아타령, 놀놀이, 자진놀놀이, 닐닐닐 상사도야, 우후야 훨훨이, 몸돌여 가락으로 끝을 맺는다. 호미걸이에 나오는 농요의 가락은 높고 낮음이 분명하여 경쾌하며, 선소리와 후렴이 다른 구절이 많아 복잡하고, 소리의 종류가 많아 지루하지 않은 특징을 갖고 있다.

호미걸이가 끝나면 두레패가 떼를 지어 풍물을 울리면서 집집마다 돌며 가내의 무사태평을 빌면 집주인이 나와서 음식을 대접하고 온 동네 집을 다 돌면 호미걸이 가 끝난다.

한편, 이러한 호미걸이 외에도 두레놀이가 전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두레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두레싸움의 발단은 이웃하고 있는 두레와 길이 좁은 논두둑에서 만났을 때 혹은 논두둑에 농기를 꽂아 두어 지나가지 못했을 때 발생하기도 하며, 이 외에도 먼저 난 두레한테 나중 난 두레가 절을 하지 않으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세배는 나중 난 두레가 먼저 난 영좌두레한테 45도 정도의 각도로 기를 숙여서 세 바퀴 돌면 그 답례로 기를 조금 숙여 한 바퀴 도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참고문헌

한국의 두레1·2 (주강현, 집문당, 1997)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고양시 호미걸이 팸플릿 (고양시문화원, 1997)

고양송포호미걸이

고양송포호미걸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황보명(皇甫明)
갱신일 2016-11-03

정의

경기도 고양시 송포면에서 칠석(七夕)부터 백중(百中) 사이에 전승되었던 농경의례. 호미걸이는 호미씻이라고도 한다. 두레의 힘과 풍류를 담고 있는 고양송포호미걸이는 1931년을 끝으로 중단되었다가, 최근 들어 고양송포호미걸이보존회에서 부분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1984년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1998년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호미걸이는 세벌김매기가 끝나는 음력 7월 중순 무렵에 농기(農旗)의 버릿줄에 호미를 주렁주렁 걸어둠으로써 사실상 한 해 농사를 마감한다는 의미와 다음 해의 농사를 위해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호미걸이가 전래되는 경기도 일산 신도시의 대화동 일대는 과거 송포 벌판이라는 넓은 평야가 자리 잡은 곳으로, 오랫동안 농경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송포호미걸이는 농촌에서 활발했던 두레 공동체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호미걸이는 매년 하는 것이 아니고, 두벌 김을 멜 때쯤 그해 농사를 어느 정도 가늠하여 농사가 잘 되었다고 판단될 때만 했다고 한다. 호미걸이가 결정되면 마을 사람들은 놀이에 쓰일 악기와 깃발을 점검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등 잔치 준비를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음식과 기구는 마을 사람들이 제각기 능력에 맞추어 정성껏 마련한다. 호미걸이 하는 날이 되면 기를 앞세우고 행진 농악인 길군악을 치면서 뒷산에 오른다. 도당나무에 도착하면 기잽이가 기를 잡고 있는 가운데 삼실과와 건어물로 제물을 진설하고 산상제(山上祭)를 지내게 된다. 산상제란 마을 주민 대표가 마을 수호신인 도당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마을 중심에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 있는데, 이를 도당산(都堂山)이라 부른다. 이 도당산에는 큰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소나무를 도당나무로 정하고 그 앞에 제상을 차려 놓는다. 마을에서 제일 웃어른이자 두레패의 영좌가 의관을 정제하고 축문을 읽고 절을 하며 제사를 지내는데, 이로써 호미걸이 행사가 시작된다. 산상제에는 이 마을 두레패만 참석하며 두레패들은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해야 한다. 산상제를 지낸 뒤 두레패들이 마을로 돌아오면 놀이판에서는 대동고사를 위해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로는 시루떡과 돼지고기가 쓰이며, “입심 좋고 나이 많은 반 마나님”같은 할머니가 제주(祭主)가 되어 비손하면 참석자 모두 같이 비손한다. 이 대동고사는 여자들이 마을의 풍년과 집안의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서 지낸다. 여자들의 고사가 끝나면 대동놀이가 시작되는데, 대동놀이는 초청된 이웃 두레패를 맞이하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원래 김동(金東), 김서(金西), 양촌(陽村) 두레패는 이 부근 두레패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구두레’라고 한다. 두레패는 선후(先後)를 매우 존중하는 풍습이 있어서 서로 만나면 선배 두레패의 기(旗)에 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청된 두레패는 재비를 울리면서 구두레의 기를 향해 온절을 하면 구두레의 기는 반절로서 답례한다. 이를 ‘기절받기’ 또는 ‘기세배’라고 한다. 기절받기가 끝나면 그해의 깃대잡이를 선발하는데, 가장 힘이 센 사람이 깃대잡이로 선발된다. 일단 깃대잡이로 선정되면 필목(疋木) 등을 선물로 받는다. 깃대잡이는 선물로 받은 필목을 풀어헤쳐 몸에 감으면서 춤을 추고, 깃대를 손바닥, 어깨 등에 올려놓고 춤추기도 하고 기쓸기 등도 하는데, 이것을 ‘깃대재주부리기’라고 한다. 이 깃대잡이는 양촌마을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종기놀리기, 조사놀리기 등 온갖 재주를 부린다. 그런 다음 무등타기를 하고 멍석을 짜서 만든 소가 등장하면서 호미걸이소리가 불려진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어울려서 춤마당을 이루면서 흥을 돋우어 대동놀이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기쓸기가 끝나면 호미걸이의 소리가 시작되는데, 그 소리는 열 가지 가락으로 다른 지방의 소리와 비교할 때 특색이 있다. 소리는 긴소리, 사두여, 양산도, 방아타령, 자진방아타령, 놀놀이, 자진놀놀이, 닐닐닐 상사도야, 우후야 훨훨이, 몸돌여 가락으로 끝을 맺는다. 호미걸이에 나오는 농요의 가락은 높고 낮음이 분명하여 경쾌하며, 선소리와 후렴이 다른 구절이 많아 복잡하고, 소리의 종류가 많아 지루하지 않은 특징을 갖고 있다. 호미걸이가 끝나면 두레패가 떼를 지어 풍물을 울리면서 집집마다 돌며 가내의 무사태평을 빌면 집주인이 나와서 음식을 대접하고 온 동네 집을 다 돌면 호미걸이 가 끝난다. 한편, 이러한 호미걸이 외에도 두레놀이가 전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두레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두레싸움의 발단은 이웃하고 있는 두레와 길이 좁은 논두둑에서 만났을 때 혹은 논두둑에 농기를 꽂아 두어 지나가지 못했을 때 발생하기도 하며, 이 외에도 먼저 난 두레한테 나중 난 두레가 절을 하지 않으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세배는 나중 난 두레가 먼저 난 영좌두레한테 45도 정도의 각도로 기를 숙여서 세 바퀴 돌면 그 답례로 기를 조금 숙여 한 바퀴 도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참고문헌

한국의 두레1·2 (주강현, 집문당, 1997)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고양시 호미걸이 팸플릿 (고양시문화원,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