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한자명

鼓手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용어

집필자 김동현(金東炫)
갱신일 2016-10-24

정의

판소리를 공연할 때 장단에 맞추어 북을 치는 사람.

개관

예부터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 또는 ‘수(雄)고수 암(雌)명창’이란 말이 있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의 구실이 명창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또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라고 한다. 훌륭한 고수는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경험과 수련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것임을 드러내는 말이다.

내용

고수는 단순한 반주자가 아니다. 고수는 소리의 희로애락을 북장단에 담아 소리꾼과 함께 소리판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이다. 소리의 한배를 조절해 주어야 하고, 사설의 붙임이나 가락에 맞게 적절히 변형 장단을 쳐주기도 한다. 연주 도중에 때때로 “얼씨구”, “좋다” 등과 같은 추임새를 넣어서 창자(唱者)의 흥을 돋아주어 연주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치밀하게 수행하며 소리꾼의 소리에 북장단의 강약지속(强弱遲速)을 조절하면서 소리판을 이끄는 것이 고수의 역할이다.

고수는 창자가 객석을 향하고 섰을 때 창자의 왼편, 즉 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의 오른편에 창자를 향해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오른손에 북채를 쥐고 칠 경우에 북을 왼편 무릎 앞에 놓고, 왼 무릎과 오른발로 북을 고정한다. 오른손에 채를 쥐고 오른쪽 가죽면과 북통을 치며, 왼손은 엄지를 북의 왼편 통 위에 걸치고 나머지 손가락을 가볍게 붙여서 왼편 가죽을 친다.

북을 치는 위치에 따른 명칭으로는 채궁자리(오른편 가죽의 한 복판), 반각자리(북통 꼭대기에서 안쪽으로 조금 내려 오른편으로 당겨진 부분), 매화점자리(북통의 꼭대기에서 오른편으로 당겨진 자리), 온각자리(북통의 꼭대기 중앙), 뒷궁자리(왼편 가죽의 윗 부분, 뒷손자리라고도 함)로 구분할 수 있다.

북을 치는 법을 일컬어 ‘판소리 고법’이라 한다. 장단에 맞게 박을 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더하여 많은 응용고법을 구사하여야 하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각 내기
    소리 머리에서는 창자가 속도를 잡지만 소리가 시작되면 창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리듬 변화가 있는 부침새를 쓰기 때문에 장단의 한배가 흔들릴 염려가 있다. 이때 북장단을 딛고 가늠해서 한배를 잡고 노래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고수는 창자가 한배를 가늠하도록 각의 머리를 분명하게 쳐주어야 한다. 이것을 ‘각을 내준다.’라고 한다. 각을 내주는 것은 진양조장단에서는 각의 첫 박, 그 밖의 장단에서는 장단의 첫 박에 채로 채궁자리나 매화점자리를, 혹은 뒷손으로 뒷궁자리를 분명하게 치는 것을 가리킨다.

  2. 거두기와 늘이기
    북장단은 장단의 모든 박을 정확한 한배로 쳐야 한다. 하지만 진양조장단과 같이 느린 장단에서는 소리가 끝난 각의 끝 부분을 약간 빠르게 치는데 이것을 가리켜 ‘장단을 살짝 거둔다.’라고 한다. 반대로 자진모리장단 같이 빠른 장단에서는 창자가 소리를 너무 몰아 한배가 무너질 염려가 있으므로 장단의 끝 부분을 약간 느리게 치는데 이것을 가리켜 ‘장단을 살짝 늘인다.’라고 한다.

  3. 등배 가려 치기
    김연수는 24박에서 벗어난 것은 소리가 아니라고 하고, 진양조장단을 밀고 달고 맺고 풀도록 24박으로 짰다. 그러나 이전부터 전래되는 판소리는 진양조장단이 24박으로 짜진 것도 아니고 또 미는 소리, 다는 소리, 맺는 소리, 푸는 소리가 각각 한 각씩 차례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 진양조장단을 24박으로 치게 되면 소리와 북장단이 맞지 않게 된다. 따라서 소리를 24박에 맞게 짜거나 북장단을 소리에 맞게 치는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소리가 24박이어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고, 다만 24박을 주로 하고 간혹 소리에 따라 18박 혹은 30박이 되어도 무방하지만 소리의 등배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이론이 가장 지배적이다.

  4. 반각 치기
    소리 머리의 첫 장단이 한 장단이 못되는 것을 반각이라고 한다. 중모리장단의 경우는 한 장단이 못되는 것을 말하며, 진양조장단의 경우는 푸는 소리로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5. 틈 메꾸기
    느린 장단에서 소리가 2박 내지 3박 동안 쉬게 되면 음악 구조가 단순해지므로 이때는 고수가 추임새를 크게 하거나 북가락을 크게 쳐서 메워야 한다.

  6. 따라 치기
    소리가 특이한 리듬으로 나올 때 북도 여기에 따라서 특이한 리듬을 같이 치는 것이다.

  7. 이끌어내기
    창자가 소리를 내게끔 이끌어내는 고법으로 소리가 힘들 때 추임새나 북가락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을 말한다.

  8. 부침새 가려 치기
    창자의 소리에 나타나는 엇부침, 잉애걸이, 교대죽, 완자걸이, 달아 놓는 데, 밟고 가는 데 등 여러 부침새를 가려 여기에 적절한 고법을 쓰는 것이다.

  9. 북가락
    고수가 각 장단의 기본형 고법에서 벗어나 리듬이 변주된 고법을 쓸 때 ‘북가락을 쓴다.’라고 한다. 북가락은 기본 장단형을 응용하여 여러 가지를 써야 하는데 북소리가 튀어나게끔 굵은 가락을 넣어야 한다.

  10. 음색 바꾸기
    북은 채로 채궁자리 치거나 뒷손으로 뒷궁자리를 쳤을 때와 채로 북통을 쳤을 때 음색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채궁자리나 뒷궁자리를 위주로 하는 가락과 채로 북통을 주로 치는 가락은 음색이 매우 다르다.

  11. 극적 표출
    판소리가 여러 가지 극적인 내용이 담긴 것이기는 하지만, 북에서 극적 표출을 하는 특별한 기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경우에는 북장단이 극적 상황에 따른 소리의 표출을 돕는 구실을 한다. 예를 들면 <춘향가(春香歌)>에서 <어사출두>, <적벽가(赤壁歌)>에서 <조자룡 활 쏘는 대목> 혹은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와 같이 긴박한 장면에서는 굵은 북가락을 푸지게 쳐서 극적 표출을 돕는 것이라든가, 춘향가에서 <농부가>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고수가 채로 북통을 좀 자주 쳐서 농부들이 못방구 치며 잡가를 구성지게 부르는 극적 표출을 돕는다.

고수를 따로 내세우는 일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이름이 알려진 명고수가 매우 드물었다. 다만, 고수로 행세하다가 다음에 명창이 되어서 이름이 전해지는 이로 순조 때 가왕(歌王) 송흥록(宋興祿)의 고수였던 송광록(宋光祿)과 주덕기(朱德其), 박만순의 수행고수였던 이날치(李捺致), 고종 때 송만갑(宋萬甲)의 고수였던 장판개(張判介)와 김정문(金正文) 등이 있다.

조선 말기 고종 때와 일제강점기에는 박판석(朴判石), 오성삼(吳聖三), 신고주(申高柱), 주봉현(朱鳳鉉), 신찬문(申贊文), 한성준(韓成俊)과 같은 명고수들이 나와서 판소리 고법을 발전시켰다. 광복 후에는 김재선(金注先), 김명환(金命煥), 이정업(李正業), 김득수(金得洙)와 같은 고수들이 활동하였다.

1978년에 판소리 고법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김명환이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1985년에 김득수, 1989년 김동준이 예능 보유자로 추가 인정되었다. 김명환이 1989년에, 김동준과 김득수가 1990년에 모두 별세하여 보유자가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1991년에 제59호였던 판소리 고법을 종목 해제하고 제5호인 판소리에 통합하면서 김성권(본명 김성래)을 보유자로 인정하였으며, 1996년 정철호를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김성권이 2008년 별세하였고 2013년에 김청만을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특징 및 의의

창자가 없는 소리판을 생각할 수 없듯이 고수가 없는 소리판 역시 있을 수 없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완성되는 판소리 예술에서 창자의 소리 습성을 꿰뚫고 창자와 함께 호흡하며 창자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며, 또한 청중들의 분위기를 꿰뚫고 소리판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최고의 음악적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고수는 단순히 반주자라기보다는 지휘자로 보아야 옳다. 고수의 ‘북’ 한 가락이 더해져 비로소 ‘소리’는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23-판소리고법(이보형, 문화재관리국, 1976), 판소리고법1~3(이보형, 문화재10~12, 문화재관리국, 1976~1978), 판소리소사(박황, 신구문화사, 1976).

고수

고수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판소리 > 용어

집필자 김동현(金東炫)
갱신일 2016-10-24

정의

판소리를 공연할 때 장단에 맞추어 북을 치는 사람.

개관

예부터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 또는 ‘수(雄)고수 암(雌)명창’이란 말이 있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의 구실이 명창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또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라고 한다. 훌륭한 고수는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경험과 수련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것임을 드러내는 말이다.

내용

고수는 단순한 반주자가 아니다. 고수는 소리의 희로애락을 북장단에 담아 소리꾼과 함께 소리판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이다. 소리의 한배를 조절해 주어야 하고, 사설의 붙임이나 가락에 맞게 적절히 변형 장단을 쳐주기도 한다. 연주 도중에 때때로 “얼씨구”, “좋다” 등과 같은 추임새를 넣어서 창자(唱者)의 흥을 돋아주어 연주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치밀하게 수행하며 소리꾼의 소리에 북장단의 강약지속(强弱遲速)을 조절하면서 소리판을 이끄는 것이 고수의 역할이다. 고수는 창자가 객석을 향하고 섰을 때 창자의 왼편, 즉 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의 오른편에 창자를 향해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오른손에 북채를 쥐고 칠 경우에 북을 왼편 무릎 앞에 놓고, 왼 무릎과 오른발로 북을 고정한다. 오른손에 채를 쥐고 오른쪽 가죽면과 북통을 치며, 왼손은 엄지를 북의 왼편 통 위에 걸치고 나머지 손가락을 가볍게 붙여서 왼편 가죽을 친다. 북을 치는 위치에 따른 명칭으로는 채궁자리(오른편 가죽의 한 복판), 반각자리(북통 꼭대기에서 안쪽으로 조금 내려 오른편으로 당겨진 부분), 매화점자리(북통의 꼭대기에서 오른편으로 당겨진 자리), 온각자리(북통의 꼭대기 중앙), 뒷궁자리(왼편 가죽의 윗 부분, 뒷손자리라고도 함)로 구분할 수 있다. 북을 치는 법을 일컬어 ‘판소리 고법’이라 한다. 장단에 맞게 박을 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더하여 많은 응용고법을 구사하여야 하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각 내기소리 머리에서는 창자가 속도를 잡지만 소리가 시작되면 창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리듬 변화가 있는 부침새를 쓰기 때문에 장단의 한배가 흔들릴 염려가 있다. 이때 북장단을 딛고 가늠해서 한배를 잡고 노래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고수는 창자가 한배를 가늠하도록 각의 머리를 분명하게 쳐주어야 한다. 이것을 ‘각을 내준다.’라고 한다. 각을 내주는 것은 진양조장단에서는 각의 첫 박, 그 밖의 장단에서는 장단의 첫 박에 채로 채궁자리나 매화점자리를, 혹은 뒷손으로 뒷궁자리를 분명하게 치는 것을 가리킨다. 거두기와 늘이기북장단은 장단의 모든 박을 정확한 한배로 쳐야 한다. 하지만 진양조장단과 같이 느린 장단에서는 소리가 끝난 각의 끝 부분을 약간 빠르게 치는데 이것을 가리켜 ‘장단을 살짝 거둔다.’라고 한다. 반대로 자진모리장단 같이 빠른 장단에서는 창자가 소리를 너무 몰아 한배가 무너질 염려가 있으므로 장단의 끝 부분을 약간 느리게 치는데 이것을 가리켜 ‘장단을 살짝 늘인다.’라고 한다. 등배 가려 치기김연수는 24박에서 벗어난 것은 소리가 아니라고 하고, 진양조장단을 밀고 달고 맺고 풀도록 24박으로 짰다. 그러나 이전부터 전래되는 판소리는 진양조장단이 24박으로 짜진 것도 아니고 또 미는 소리, 다는 소리, 맺는 소리, 푸는 소리가 각각 한 각씩 차례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 진양조장단을 24박으로 치게 되면 소리와 북장단이 맞지 않게 된다. 따라서 소리를 24박에 맞게 짜거나 북장단을 소리에 맞게 치는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소리가 24박이어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고, 다만 24박을 주로 하고 간혹 소리에 따라 18박 혹은 30박이 되어도 무방하지만 소리의 등배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이론이 가장 지배적이다. 반각 치기소리 머리의 첫 장단이 한 장단이 못되는 것을 반각이라고 한다. 중모리장단의 경우는 한 장단이 못되는 것을 말하며, 진양조장단의 경우는 푸는 소리로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틈 메꾸기느린 장단에서 소리가 2박 내지 3박 동안 쉬게 되면 음악 구조가 단순해지므로 이때는 고수가 추임새를 크게 하거나 북가락을 크게 쳐서 메워야 한다. 따라 치기소리가 특이한 리듬으로 나올 때 북도 여기에 따라서 특이한 리듬을 같이 치는 것이다. 이끌어내기창자가 소리를 내게끔 이끌어내는 고법으로 소리가 힘들 때 추임새나 북가락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을 말한다. 부침새 가려 치기창자의 소리에 나타나는 엇부침, 잉애걸이, 교대죽, 완자걸이, 달아 놓는 데, 밟고 가는 데 등 여러 부침새를 가려 여기에 적절한 고법을 쓰는 것이다. 북가락고수가 각 장단의 기본형 고법에서 벗어나 리듬이 변주된 고법을 쓸 때 ‘북가락을 쓴다.’라고 한다. 북가락은 기본 장단형을 응용하여 여러 가지를 써야 하는데 북소리가 튀어나게끔 굵은 가락을 넣어야 한다. 음색 바꾸기북은 채로 채궁자리 치거나 뒷손으로 뒷궁자리를 쳤을 때와 채로 북통을 쳤을 때 음색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채궁자리나 뒷궁자리를 위주로 하는 가락과 채로 북통을 주로 치는 가락은 음색이 매우 다르다. 극적 표출판소리가 여러 가지 극적인 내용이 담긴 것이기는 하지만, 북에서 극적 표출을 하는 특별한 기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경우에는 북장단이 극적 상황에 따른 소리의 표출을 돕는 구실을 한다. 예를 들면 에서 , 에서 혹은 와 같이 긴박한 장면에서는 굵은 북가락을 푸지게 쳐서 극적 표출을 돕는 것이라든가, 춘향가에서 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고수가 채로 북통을 좀 자주 쳐서 농부들이 못방구 치며 잡가를 구성지게 부르는 극적 표출을 돕는다. 고수를 따로 내세우는 일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이름이 알려진 명고수가 매우 드물었다. 다만, 고수로 행세하다가 다음에 명창이 되어서 이름이 전해지는 이로 순조 때 가왕(歌王) 송흥록(宋興祿)의 고수였던 송광록(宋光祿)과 주덕기(朱德其), 박만순의 수행고수였던 이날치(李捺致), 고종 때 송만갑(宋萬甲)의 고수였던 장판개(張判介)와 김정문(金正文) 등이 있다. 조선 말기 고종 때와 일제강점기에는 박판석(朴判石), 오성삼(吳聖三), 신고주(申高柱), 주봉현(朱鳳鉉), 신찬문(申贊文), 한성준(韓成俊)과 같은 명고수들이 나와서 판소리 고법을 발전시켰다. 광복 후에는 김재선(金注先), 김명환(金命煥), 이정업(李正業), 김득수(金得洙)와 같은 고수들이 활동하였다. 1978년에 판소리 고법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김명환이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1985년에 김득수, 1989년 김동준이 예능 보유자로 추가 인정되었다. 김명환이 1989년에, 김동준과 김득수가 1990년에 모두 별세하여 보유자가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1991년에 제59호였던 판소리 고법을 종목 해제하고 제5호인 판소리에 통합하면서 김성권(본명 김성래)을 보유자로 인정하였으며, 1996년 정철호를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김성권이 2008년 별세하였고 2013년에 김청만을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특징 및 의의

창자가 없는 소리판을 생각할 수 없듯이 고수가 없는 소리판 역시 있을 수 없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완성되는 판소리 예술에서 창자의 소리 습성을 꿰뚫고 창자와 함께 호흡하며 창자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며, 또한 청중들의 분위기를 꿰뚫고 소리판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최고의 음악적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고수는 단순히 반주자라기보다는 지휘자로 보아야 옳다. 고수의 ‘북’ 한 가락이 더해져 비로소 ‘소리’는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23-판소리고법(이보형, 문화재관리국, 1976), 판소리고법1~3(이보형, 문화재10~12, 문화재관리국, 1976~1978), 판소리소사(박황, 신구문화사,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