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교동도자신당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 염원희(廉元姬)
갱신일 2016-10-27

정의

중국 사신(使臣)의 무사 귀환과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제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에 위치하며, 사신당(使臣堂)이라고도 부른다.

내용

자신당은 교동면의 관문인 남산포를 내려다보는 언덕인 남산(南山) 위에 있다. 당의 이름인 ‘자신당’은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으로, 본래는 사신당을 의미한다. 6·25전쟁 때 소실된 당집을 1969년에 재건하였다.

강화도는 사신(使臣)과 관련이 깊다. 강화도 앞바다는 서울의 한강과 개성의 예성강, 임진강이 모이는 곳으로 예부터 경제적·군사적 요충지였다. 또 강화도에는 사신이 바람을 기다리며 머무른 사신관(使臣館), 몽고의 사신을 맞이하는 제포궁(梯浦宮), 사신의 숙소인 풍포관(楓浦館)이 있었을 정도로 중국과의 외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또 중국 사신들이 한반도로 들어오거나 우리나라 사신들이 중국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강화도의 서쪽, 교동면의 입구가 되는 남산포는 고려시대부터 중국 사신들이 왕래하던 곳이다. 남산포에 있는 산은 읍내리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보이는 산이라 하여 남산이라 부르며, 높이가 해발 53m이다. 남산 기슭의 읍내리 571번지에는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선(使臣船)들이 배를 움직일 바람을 기다리는 동안 머물렀다는 사신관 터가 있다. 또 바닷가의 바위들을 정으로 쪼아서 만든 층층대가 있다. 이것은 고려 때 송나라 사신들이 사신관에 머물렀다가 떠날 때 배에 오르기 쉽도록 만들어 놓은 사신등선로(使臣登船路)이다. 바로 이 근처에 있던 것이 자신당이다. 송나라 사신들이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뱃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자신당은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의 바닷길을 지켜 주는 바다의 수호신 역할을 하다가 고려가 망하면서 사신관이 그 기능을 잃게 되자 의미가 변화하였다. 마을의 안녕과 교동 주민들의 뱃길을 지켜주고 풍어를 기원하는 당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며, 다만 읍내리에 거주하는 개인이 고사를 지내고 있다. 이는 자신당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신앙이 마을신앙에서 개인신앙으로 격하(格下)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읍내리에 거주하는 김순자의 시어머니가 자신당을 관리하였고, 시어머니 사망 후 현재는 김순자가 물려받아 돌보고 있다. 김순자는 무속인이 아닌 평범한 마을 주민이다. 자신당에 행해지는 정기적 제의는 김순자가 2~3년에 한 번 정월에 무당을 불러 집안 고사를 지낼 때, 이에 앞서 자신당에 떡과 술 등 음식을 바치며 당 앞에서 고사를 지내는 것이 전부이다. 고사 외에도 비정기적으로 가끔 찾아가 당에 술을 바치기도 한다. 자신당 문은 절대 함부로 열지 않으며, 문을 열어야 할 때에는 그 전에 반드시 목욕을 하여 몸을 정갈히 한다. 김순자 외에도 마을 사람이나 인근 지역의 무당들이 자신당에 들러 창문으로 돈을 밀어 넣고 가는 경우가 있다. 자신당 문이 항상 잠겨 있고 열쇠를 김순자만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당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당 내부에는 무신도 1점이 걸려 있다. 이를 ‘자신당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바닥에는 전에 당집을 관리하던 무당이 사용한 무구(巫具)와 사람들이 당 안으로 넣은 돈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자신당 입구 오른쪽에는 남터주와 여터주 한 쌍이 있다. 자신당에 들르는 사람들이 당집 안에는 돈을 넣고 이들 터주에게는 음료나 사탕 등을 바친다.

이전에는 풍어를 비는 어부들이 자신당에 들러 돈이나 음식을 바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동면에서 어업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풍어를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꾸준히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당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신앙은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강화의 가정신앙 1 (강화문화원 가정신앙 조사단, 민속원, 2010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 2)
신정일 (황금나침반, 2006, 신편 강화사)

강화교동도자신당

강화교동도자신당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 염원희(廉元姬)
갱신일 2016-10-27

정의

중국 사신(使臣)의 무사 귀환과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제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에 위치하며, 사신당(使臣堂)이라고도 부른다.

내용

자신당은 교동면의 관문인 남산포를 내려다보는 언덕인 남산(南山) 위에 있다. 당의 이름인 ‘자신당’은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으로, 본래는 사신당을 의미한다. 6·25전쟁 때 소실된 당집을 1969년에 재건하였다. 강화도는 사신(使臣)과 관련이 깊다. 강화도 앞바다는 서울의 한강과 개성의 예성강, 임진강이 모이는 곳으로 예부터 경제적·군사적 요충지였다. 또 강화도에는 사신이 바람을 기다리며 머무른 사신관(使臣館), 몽고의 사신을 맞이하는 제포궁(梯浦宮), 사신의 숙소인 풍포관(楓浦館)이 있었을 정도로 중국과의 외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또 중국 사신들이 한반도로 들어오거나 우리나라 사신들이 중국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강화도의 서쪽, 교동면의 입구가 되는 남산포는 고려시대부터 중국 사신들이 왕래하던 곳이다. 남산포에 있는 산은 읍내리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보이는 산이라 하여 남산이라 부르며, 높이가 해발 53m이다. 남산 기슭의 읍내리 571번지에는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선(使臣船)들이 배를 움직일 바람을 기다리는 동안 머물렀다는 사신관 터가 있다. 또 바닷가의 바위들을 정으로 쪼아서 만든 층층대가 있다. 이것은 고려 때 송나라 사신들이 사신관에 머물렀다가 떠날 때 배에 오르기 쉽도록 만들어 놓은 사신등선로(使臣登船路)이다. 바로 이 근처에 있던 것이 자신당이다. 송나라 사신들이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뱃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자신당은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의 바닷길을 지켜 주는 바다의 수호신 역할을 하다가 고려가 망하면서 사신관이 그 기능을 잃게 되자 의미가 변화하였다. 마을의 안녕과 교동 주민들의 뱃길을 지켜주고 풍어를 기원하는 당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며, 다만 읍내리에 거주하는 개인이 고사를 지내고 있다. 이는 자신당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신앙이 마을신앙에서 개인신앙으로 격하(格下)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읍내리에 거주하는 김순자의 시어머니가 자신당을 관리하였고, 시어머니 사망 후 현재는 김순자가 물려받아 돌보고 있다. 김순자는 무속인이 아닌 평범한 마을 주민이다. 자신당에 행해지는 정기적 제의는 김순자가 2~3년에 한 번 정월에 무당을 불러 집안 고사를 지낼 때, 이에 앞서 자신당에 떡과 술 등 음식을 바치며 당 앞에서 고사를 지내는 것이 전부이다. 고사 외에도 비정기적으로 가끔 찾아가 당에 술을 바치기도 한다. 자신당 문은 절대 함부로 열지 않으며, 문을 열어야 할 때에는 그 전에 반드시 목욕을 하여 몸을 정갈히 한다. 김순자 외에도 마을 사람이나 인근 지역의 무당들이 자신당에 들러 창문으로 돈을 밀어 넣고 가는 경우가 있다. 자신당 문이 항상 잠겨 있고 열쇠를 김순자만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당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당 내부에는 무신도 1점이 걸려 있다. 이를 ‘자신당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바닥에는 전에 당집을 관리하던 무당이 사용한 무구(巫具)와 사람들이 당 안으로 넣은 돈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자신당 입구 오른쪽에는 남터주와 여터주 한 쌍이 있다. 자신당에 들르는 사람들이 당집 안에는 돈을 넣고 이들 터주에게는 음료나 사탕 등을 바친다. 이전에는 풍어를 비는 어부들이 자신당에 들러 돈이나 음식을 바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동면에서 어업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풍어를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꾸준히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당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신앙은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강화의 가정신앙 1 (강화문화원 가정신앙 조사단, 민속원, 2010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 2)신정일 (황금나침반, 2006, 신편 강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