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한자명

羗釘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김상보(金尙寶)
갱신일 2016-11-03

정의

찹쌀가루, 밀가루, 꿀, 엿, 참기름 등을 주재료로 하여 만든 조과류의 총칭. 유밀과(油蜜果)와 당속류(糖屬類)를 말한다.

기원

한대(漢代)에는 조미료로 엿[飴, 餳]을 사용하였고, 찹쌀가루에 꿀을 넣고 반죽하여 튀긴 거녀[粔籹, 膏環]가 있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飴)란 보리의 싹과 곡물가루를 합하여 끓여 만드는데 옛날 사람들은 한식(불 사용을 금하는 시기)때에 엿을 많이 먹었다. 찹쌀로 만든 당(餹)을 약으로 한다. 호박과 비슷한 색깔의 습기가 많은 당을 교이(膠飴)라 하며, 습기가 없고 건조하여 딱딱한 것을 당이라고 한다. 교이는 대온(大溫)하고 허(虛)한 것을 보하고 기력에 익(益)하며 인후통을 다스리고 토혈을 치료한다. 비(脾)가 약하여 식욕이 없는 사람은 조금 먹으면 위기(胃氣)를 화(和)하게 만든다.”고 전한다.

또 『본초강목』에는 또 환병[環餠, 寒具]에 대하여 “찹쌀가루에 밀가루를 혼합하여 참기름에 튀겨낸 다음 꿀이나 교이에 찍어 먹는다. 혹은 찹쌀가루에 밀가루를 혼합하여 반죽한 다음 환(環) 형태로 빚어서 기름에 튀겨내어 먹는데 식산(食散)이라고도 하고, 겨울과 봄 수개월 동안 보존이 가능하며, 한식과 같이 화인[火煙]을 금하는 시기에 사용되기 때문에 한구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거녀에 대하여는 『문선(文選)』의 주(注)에 “거녀는 쌀에 꿀을 넣어 튀겨 만든다.”라고 하였고, 『초사(楚辭)』 「초혼」에는 “거녀·교이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찹쌀가루에 꿀 또는 교이를 넣어 반죽하여 튀긴 것이 거녀인 셈이다. 한편 거녀와 한구에 대하여 『제민요술(齊民要術)』에서는 이(餌)를 ‘고환(膏環)’이라 하고 병(餠)을 ‘유병(油餠)’이라고 분류하고 있다(油餠 → 環餠). 즉, 거녀는 찹쌀가루에 꿀 또는 교이를 넣고 반죽하여 튀겨낸 것이고, 한구는 찹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다음 환 형태로 빚어서 참기름에 튀겨내어 꿀 또는 교이를 찍어 먹게끔 만든 것인데, 후에 찹쌀가루는 배제된 채 밀가루만으로 만들어져, 『제민요술』에는 이를 병(餠) 속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의 강정의 기원은 『제민요술』이 쓰여 졌던 당시 이미 널리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강정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인데 가야에서는 제수로 과(餜)를 썼다고 한다. 이후 『고려사(高麗史)』나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상류층들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인 유밀과가 나온다.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는 “유밀과는 중국의 거녀와 한구에서 출발하여 고려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조선조 이후에 보이는 찹쌀가루를 주재료로 한 강정류와 밀가루를 주재료로 한 약과류의 구분은 이미 고려 때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세찬으로서의 강정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교아당(膠牙餳)이 세찬으로서 기록되고 있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세찬의 시초가 『형초세시기』의 ‘교아당’이라고 하였다. 교아당은 곧 ‘교이(膠飴)’이다. 한반도에서 교아당(호박엿)이 세찬으로 등장한 것은 ‘도소주’와 같은 맥락으로 위에 기록한 허한 것을 보하고 기력에 익한 약선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정초에 이것을 먹어서 일년 동안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것이다.

한편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설날 아침에 백성들은 강정을 제사에 올린다. 독한 술을 찹쌀가루에 섞어서 반죽한 뒤 떡을 만들어 잘게 썰어서 따뜻한 곳에서 말린 다음 기름에 튀기면 떡이 부풀어 올라 누에고치 모양으로 되는데, 이것을 꺼내 교아당을 바르고 깨를 묻혀서 쓴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東國歲時記, 文選, 本草綱目, 三國遺事, 星湖僿設, 雅言覺非, 洌陽歲時記, 齊民要術, 楚辭, 荊楚歲時記
和漢三材圖會 (寺島良安 篇, 吉川弘文館, 1906)
陰陽五行思想으로 본 朝鮮王朝의 祭祀飮食文化 (金尙寶, 修學社, 1996)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 (金尙寶 著, 광문각, 1997)

강정

강정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김상보(金尙寶)
갱신일 2016-11-03

정의

찹쌀가루, 밀가루, 꿀, 엿, 참기름 등을 주재료로 하여 만든 조과류의 총칭. 유밀과(油蜜果)와 당속류(糖屬類)를 말한다.

기원

한대(漢代)에는 조미료로 엿[飴, 餳]을 사용하였고, 찹쌀가루에 꿀을 넣고 반죽하여 튀긴 거녀[粔籹, 膏環]가 있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飴)란 보리의 싹과 곡물가루를 합하여 끓여 만드는데 옛날 사람들은 한식(불 사용을 금하는 시기)때에 엿을 많이 먹었다. 찹쌀로 만든 당(餹)을 약으로 한다. 호박과 비슷한 색깔의 습기가 많은 당을 교이(膠飴)라 하며, 습기가 없고 건조하여 딱딱한 것을 당이라고 한다. 교이는 대온(大溫)하고 허(虛)한 것을 보하고 기력에 익(益)하며 인후통을 다스리고 토혈을 치료한다. 비(脾)가 약하여 식욕이 없는 사람은 조금 먹으면 위기(胃氣)를 화(和)하게 만든다.”고 전한다. 또 『본초강목』에는 또 환병[環餠, 寒具]에 대하여 “찹쌀가루에 밀가루를 혼합하여 참기름에 튀겨낸 다음 꿀이나 교이에 찍어 먹는다. 혹은 찹쌀가루에 밀가루를 혼합하여 반죽한 다음 환(環) 형태로 빚어서 기름에 튀겨내어 먹는데 식산(食散)이라고도 하고, 겨울과 봄 수개월 동안 보존이 가능하며, 한식과 같이 화인[火煙]을 금하는 시기에 사용되기 때문에 한구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거녀에 대하여는 『문선(文選)』의 주(注)에 “거녀는 쌀에 꿀을 넣어 튀겨 만든다.”라고 하였고, 『초사(楚辭)』 「초혼」에는 “거녀·교이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찹쌀가루에 꿀 또는 교이를 넣어 반죽하여 튀긴 것이 거녀인 셈이다. 한편 거녀와 한구에 대하여 『제민요술(齊民要術)』에서는 이(餌)를 ‘고환(膏環)’이라 하고 병(餠)을 ‘유병(油餠)’이라고 분류하고 있다(油餠 → 環餠). 즉, 거녀는 찹쌀가루에 꿀 또는 교이를 넣고 반죽하여 튀겨낸 것이고, 한구는 찹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다음 환 형태로 빚어서 참기름에 튀겨내어 꿀 또는 교이를 찍어 먹게끔 만든 것인데, 후에 찹쌀가루는 배제된 채 밀가루만으로 만들어져, 『제민요술』에는 이를 병(餠) 속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의 강정의 기원은 『제민요술』이 쓰여 졌던 당시 이미 널리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강정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인데 가야에서는 제수로 과(餜)를 썼다고 한다. 이후 『고려사(高麗史)』나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상류층들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인 유밀과가 나온다.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는 “유밀과는 중국의 거녀와 한구에서 출발하여 고려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조선조 이후에 보이는 찹쌀가루를 주재료로 한 강정류와 밀가루를 주재료로 한 약과류의 구분은 이미 고려 때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세찬으로서의 강정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교아당(膠牙餳)이 세찬으로서 기록되고 있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세찬의 시초가 『형초세시기』의 ‘교아당’이라고 하였다. 교아당은 곧 ‘교이(膠飴)’이다. 한반도에서 교아당(호박엿)이 세찬으로 등장한 것은 ‘도소주’와 같은 맥락으로 위에 기록한 허한 것을 보하고 기력에 익한 약선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정초에 이것을 먹어서 일년 동안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것이다. 한편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설날 아침에 백성들은 강정을 제사에 올린다. 독한 술을 찹쌀가루에 섞어서 반죽한 뒤 떡을 만들어 잘게 썰어서 따뜻한 곳에서 말린 다음 기름에 튀기면 떡이 부풀어 올라 누에고치 모양으로 되는데, 이것을 꺼내 교아당을 바르고 깨를 묻혀서 쓴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東國歲時記, 文選, 本草綱目, 三國遺事, 星湖僿設, 雅言覺非, 洌陽歲時記, 齊民要術, 楚辭, 荊楚歲時記和漢三材圖會 (寺島良安 篇, 吉川弘文館, 1906)陰陽五行思想으로 본 朝鮮王朝의 祭祀飮食文化 (金尙寶, 修學社, 1996)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 (金尙寶 著, 광문각,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