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학산 오독떼기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김선풍(金善豊)
갱신일 2016-10-20

정의

강원도 강릉 일대에 전승되고 있는 김매기소리.

개관

강릉 지방에서는 마을마다 두레패를 이루어 한 조에 두 명 이상씩 여러 조를 만들어 번갈아가며 <오독떼기>를 부르면서 즐겁게 김을 맨다. 아이김·두벌김·세벌김을 매면서 <오독떼기>를 부르는데, 부르는 속도나 가사에 따라서 ‘냇골[內谷] 오독떼기’·‘수남(水南) 오독떼기’·‘하평(下坪) 오독떼기’로 달리 부르고 있다. 이 <오독떼기>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서 가장 뚜렷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냇골조 <오독떼기>를 부른다. 냇골조 <오독떼기>는 일명 ‘자진오독떼기’라고도 부른다. <자진오독떼기>라 함은 <하평(일명 강릉평) 오독떼기>를 부르는 마을(초당, 월호평 등 바닷가 남촌)의 소리에 비하면, 곡(曲)의 진행이 잦기 때문에 붙인 말이다. ‘강릉 학산 오독떼기’는 1988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노래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메기면 다음 사람이 얹고 하여 이부 합창(二部合唱)으로 이어 나간다. 나중에 얹을 때 뒷소구(뒤에서 응원을 하는 것)까지 하면 그 소리가 5리를 간다고 한다. 특히 석양녘의 <오독떼기>는 구슬프고 멋들어진데, 대개는 참[站數]으로 부른다는 점이 구성적이다. 일꾼들이 노래할 때 대개는 다른 소리, 즉 잡가(雜歌)를 하다가 참 때가 거의 되면 한 번 부른다. <오독떼기>를 부르면 정신없이 일하던 다른 일터 농부들도 “이젠 술참이 되었구나”라는 것을 예견한다. 그런데 <오독떼기>를 하는 시간은 점심 먹고 한 참 하고 두 번 참을 하고 김맬 때 제일 많이 부른다. 석양참 때 해는 너울너울 넘어가는데 이 <오독떼기>를 한번 부르면 약 5리 정도의 먼 곳까지 계곡을 흘러 나간다고 한다.

  1. 이슬 아침 만난 동무 석―/ 석양 전에―이별일세
  2. 머리야 좋고 실한 처녀 줄―/ 줄뽕 낡게 글앉았네
  3. 강릉이라 남대천 물 빨―/ 빨래 방치 둥실 떴네
  4. 팔도라 돌아들어 간―/ 간 데 쪽쪽 내 집일세
  5. 모학산에 자란 처녀 한―/ 한양 낭군 찾아 가네

다섯 농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 곡은 비록 짧은 가사이긴 하나 한 소절을 노래하는 시간은 거의 정확하게 55~56초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릉 자진아라리>에서 ‘이슬에 아침에 만난 동무’라고 하던 가사가 긴 호흡 관계로 ‘이슬 아침 만난 동무’가 되어 토가 생략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 구(句)의 마지막 단어를 마치고 다음 구의 첫 단어의 운(韻)을 선창자가 띄워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수사적으로 보면 연쇄법을 농요에 대입한 것과 같다 하겠다. 이 노래는 한국의 요들송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농요이다.

특징 및 의의

<오독떼기>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세조가 동해안 일대를 돌아보다가 <오독떼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 소리를 시켜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오독떼기> 소리의 음 조직은 미·솔·라·도·레의 5음 음계로 되어 있고, ‘미’로 시작하여 ‘미’로 끝난다. 장단은 일정하지 않은 자유스러운 장단으로 되어 있다. <오독떼기>의 후렴구는 마치 범패와 같이 장인굴곡(長引屈曲)되는 소리로 부르는데, 특히 <꺾음 오독떼기>가 더욱 그렇다. 강릉 농언(農諺, 농사 관련 속담)에 “오독떼기는 엉덩이와 똥꾸로 뀐다(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음이 고음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그만큼 부르기가 몹시 힘들다는 표현이다. 그렇기에 농부들은 노래를 하다가 힘이 들면 그 사이에 ‘중간소리’를 하는데 이것이 잡가와 <사리랑>이다.

참고문헌

뿌리깊은나무 팔도소리1(한국브리태니커, 1984), 오독떼기(권오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한국시가의 민속학적 연구(김선풍, 형설출판사, 1977).

강릉 학산 오독떼기

강릉 학산 오독떼기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민요 > 노동요

집필자 김선풍(金善豊)
갱신일 2016-10-20

정의

강원도 강릉 일대에 전승되고 있는 김매기소리.

개관

강릉 지방에서는 마을마다 두레패를 이루어 한 조에 두 명 이상씩 여러 조를 만들어 번갈아가며 를 부르면서 즐겁게 김을 맨다. 아이김·두벌김·세벌김을 매면서 를 부르는데, 부르는 속도나 가사에 따라서 ‘냇골[內谷] 오독떼기’·‘수남(水南) 오독떼기’·‘하평(下坪) 오독떼기’로 달리 부르고 있다. 이 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서 가장 뚜렷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냇골조 를 부른다. 냇골조 는 일명 ‘자진오독떼기’라고도 부른다. 라 함은 를 부르는 마을(초당, 월호평 등 바닷가 남촌)의 소리에 비하면, 곡(曲)의 진행이 잦기 때문에 붙인 말이다. ‘강릉 학산 오독떼기’는 1988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노래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메기면 다음 사람이 얹고 하여 이부 합창(二部合唱)으로 이어 나간다. 나중에 얹을 때 뒷소구(뒤에서 응원을 하는 것)까지 하면 그 소리가 5리를 간다고 한다. 특히 석양녘의 는 구슬프고 멋들어진데, 대개는 참[站數]으로 부른다는 점이 구성적이다. 일꾼들이 노래할 때 대개는 다른 소리, 즉 잡가(雜歌)를 하다가 참 때가 거의 되면 한 번 부른다. 를 부르면 정신없이 일하던 다른 일터 농부들도 “이젠 술참이 되었구나”라는 것을 예견한다. 그런데 를 하는 시간은 점심 먹고 한 참 하고 두 번 참을 하고 김맬 때 제일 많이 부른다. 석양참 때 해는 너울너울 넘어가는데 이 를 한번 부르면 약 5리 정도의 먼 곳까지 계곡을 흘러 나간다고 한다. 이슬 아침 만난 동무 석―/ 석양 전에―이별일세 머리야 좋고 실한 처녀 줄―/ 줄뽕 낡게 글앉았네 강릉이라 남대천 물 빨―/ 빨래 방치 둥실 떴네 팔도라 돌아들어 간―/ 간 데 쪽쪽 내 집일세 모학산에 자란 처녀 한―/ 한양 낭군 찾아 가네 다섯 농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 곡은 비록 짧은 가사이긴 하나 한 소절을 노래하는 시간은 거의 정확하게 55~56초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서 ‘이슬에 아침에 만난 동무’라고 하던 가사가 긴 호흡 관계로 ‘이슬 아침 만난 동무’가 되어 토가 생략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 구(句)의 마지막 단어를 마치고 다음 구의 첫 단어의 운(韻)을 선창자가 띄워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수사적으로 보면 연쇄법을 농요에 대입한 것과 같다 하겠다. 이 노래는 한국의 요들송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농요이다.

특징 및 의의

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세조가 동해안 일대를 돌아보다가 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 소리를 시켜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소리의 음 조직은 미·솔·라·도·레의 5음 음계로 되어 있고, ‘미’로 시작하여 ‘미’로 끝난다. 장단은 일정하지 않은 자유스러운 장단으로 되어 있다. 의 후렴구는 마치 범패와 같이 장인굴곡(長引屈曲)되는 소리로 부르는데, 특히 가 더욱 그렇다. 강릉 농언(農諺, 농사 관련 속담)에 “오독떼기는 엉덩이와 똥꾸로 뀐다(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음이 고음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그만큼 부르기가 몹시 힘들다는 표현이다. 그렇기에 농부들은 노래를 하다가 힘이 들면 그 사이에 ‘중간소리’를 하는데 이것이 잡가와 이다.

참고문헌

뿌리깊은나무 팔도소리1(한국브리태니커, 1984), 오독떼기(권오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한국시가의 민속학적 연구(김선풍, 형설출판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