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정일

집필자 나경수(羅景洙)
갱신일 2016-11-03

정의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호남 지역에서 널리 놀았던 여성 집단놀이. 현재는 전국적으로 이 놀이가 확산되어 굳이 호남 지역의 민속놀이라기보다는 전국화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놀이로서 가장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율동미가 넘치는 민속놀이요 민속춤이요 또한 민요이다. 가무악(歌舞樂)이 일체화된 강강술래는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지며,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대보름 밤에 하기도 한다. 1966년 2월 15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유래

강강술래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이 전술의 하나로 만들었다는 구전이 있는가 하면 민간어원적으로 해석해서 오랑캐 또는 왜구의 내침(來侵)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 강강술래는 전승 현장에 따라 강강수월래, 광광술래, 광광수월래로도 부르는데, 그 중 강강수월래라고 부르는 것을 취해서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으로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풀이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한문의 기본적인 문법마저도 어기는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강강월수래(强羌越水來)가 아닌 다음에는 믿을 바가 못 되는 것이다. 또는 고대의 국중대회나 마한의 농공시필기에 집단적으로 추었던 원시가무(原始歌舞, ballad dance)와 연계시키기도 하고, 생성과 번식을 위한 짝짓기의 구혼 행위로서 남녀가 공동으로 연희하는 공동의례의 굿판에서 추는 춤이라는 사람도 있다.

대개 민속은 자연발생적이거나 또는 문화 전파에 의해 수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연대기적 편년을 제시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오랜 전승 과정을 겪는 사이, 기능이나 성격의 복합 또는 굴절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발생론적 기원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내용

강강술래는 전승 지역으로 보면 호남 일원이요, 연행 시기로 보면 8월 한가위가 일반적이며, 연행 주체는 주로 마을의 여자들이다. 호남 일원에서 줄다리기가 주로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는 것에 반해 강강술래는 추석의 대표적인 놀이인 셈이다. 때로는 정월대보름에 강강술래를 하기도 하지만, 한가위만큼은 아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남자들이 참여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

춤은 노래에 맞춰 율동적으로 추는데 늦은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나뉜다. 이는 노래나 춤의 빠르기에 따른 분류이기도 하지만, 한편 진행의 순서로 볼 수도 있다. 동산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마을의 넓은 마당으로 모인 여자들이 느린 가락에 맞춰 늦은강강술래를 추다가 흥이 점점 더해감에 따라 속도가 빨라져서 마침내 잦은강강술래로 이어진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윤무(輪舞) 형태 말고도 많은 부수적인 놀이와 노래가 있다. 따라서 강강술래는 협의와 광의의 강강술래로 나눌 수 있다. 강강술래라는 무요(舞謠)에 맞춰 여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려 돌며 추는 춤은 협의의 강강술래요, 여기에 부수된 여러 가지 놀이가 첨가되어 광의의 강강술래가 된다. 원래의 강강술래는 구성진 가락의 노래와 손과 손을 잡고 뛰고 춤추며 판을 빙빙 도는 원무였다.

강강술래는 1961년, 1964년, 1965년, 1966년에 연이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했으나 큰 상을 받지 못하였다. 1966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고 그 후 1975년에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1976년에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196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당시에는 원무가 기본이고 구성진 노래를 몇 시간을 불러도 흥이 나서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고 하였다. 추수도 거의 끝이 나고 춥지도 덥지도 아니하며 달이 휘영청 밝았으니, 저절로 흥이 솟고 신바람이 나서 밤이 깊어가는 것을 잊고 순수하고 소박하게 놀 수 있었다.

1975년과 1976년에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면서부터 강강술래 놀이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경연대회는 입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수식하고 과장하게 된다. 강강술래도 연출을 맡은 유능한 지도자에 의해서 첨가 과장하여 화려하게 꾸며졌다. 원래는 원무가 주이던 것이 남생이놀이,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지와밟기, 꼬리따기, 덕석말이, 쥐새끼놀이, 가마등, 문지기놀이, 실바늘꿰기, 수건돌리기, 발치기, 외따기, 춘향각시놀이 같은 여성들이 하는 놀이를 모두 참여시켜 놀이의 종합체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강강술래의 많은 사례가 보고되었다. 가락과 놀이도 그렇지만, 강강술래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불렀던 노래인 만큼 민중의 애창시로서 그 가사 속에는 민중의 삶에서 빚어질 수 있는 온갖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 용해되어 있다. 그 노래 가사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님성님 사촌성님, 강강술래, 시집살이 어떱디까, 강강술래, 고초장초 맵다해도, 강강술래, 시집살이 더맵더라, 강강술래.” 이처럼 선후창의 형태로 한 사람이 설소리(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이 매김소리(뒷소리)를 받는 형식으로 춤과 더불어 불리게 된다.

전승되어온 일정한 가사도 있지만, 놀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지어 불리는 가사도 있다. 곡의 빠르고 늦음이 있을 수 있지만, 시적 형식은 이것만이다. 그러나 형식은 그렇지만 가사는 계속 바꿔 부르기 때문에 단조로움에서 벗어난다. 곡과 그 형식은 고정적인 데 반해서 가사는 가변적인 것이다. 따라서 고정소와 가변소가 한 틀을 이루면서 강강술래를 지탱하는 문예적 형식미를 완성하고 있다.

한편 강강술래는 여성의 민속놀이나 단순한 민요의 차원에서만 놀고 불렀던 것은 아니다. 그것이 넓은 지역에 걸쳐서 정기적으로 연행되었던 것은 나름대로 심층적 의미와 기능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강강술래를 지탱해온 그 원형적 심층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강강술래를 구성하고 있는 내외적인 상황적 문맥과 요소들을 분석적으로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강강술래와 관련되는 제반 요소를 추출하면 추석, 보름달, 밤, 부녀자, 윤무, 집단 등이 있다.

첫째, 추석의 세시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풍년감사절이라는 것이다. 정월대보름이 농경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추석은 수확의 시작이라 하겠다. 농사가 시작되는 정월대보름에 농경과 밀접한 놀이로 줄다리기를 한 것과 대칭선상에서 8월 한가윗날 밤에는 강강술래를 한다. 대보름에 하는 줄다리기가 기풍(祈豊)을 목적으로 한다면, 추석에 하는 강강술래는 분명 기풍(祈豊)을 위한 것으로 보겠다. 추석을 즈음하여 수확되는 것은 주곡(主穀)인 쌀이다. 따라서 벼농사가 많은 호남 지역에서 추석은 가장 큰 명절이며 추석 행사로 노는 강강술래는 벼농사와 관련된 세시놀이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달은 생성력을 상징하는 구상물이며, 신화 원형의 하나이다. 더구나 보름달은 가장 왕성한 기운을 가졌다. 특히 태음력을 농사력으로 사용해온 우리 민족은 농사와 관련된 명절로 보름을 중시하였다. 정월대보름은 말할 것도 없고, 6월 보름인 유두와 7월 보름인 백중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8월 보름인 추석이 역시 농사와 직결된다.

셋째, 밤은 낮과 구별되는 시간대이다. 낮이 세속적인 시간대라면 밤은 성스러운 시간대요, 낮이 남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여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낮이 인간의 시간이라면 밤은 신들의 시간이다. 보름달이 훤히 밝은 가을밤,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강강술래 소리가 맑고 곱다. 밤은 추(醜)를 감추고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신들이 나와 활동하고 세속보다는 성스럽고 신비감 넘치는 밤무대에서 추는 강강술래는 여성적 아름다움을 극치로 몰고 가는 한편 금빛 달을 닮아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저 들녘의 나락을 한껏 영글게 할 수 있는 주문과도 같다.

넷째, 부녀자는 생산의 기능을 가졌다. 여자와 생산의 관계는 특히 농경민족에게는 절대적이다. 세속적으로는 재수가 없고, 부정을 탈 수 있어 경계의 대상이 되지만, 농경문화의 종교주술적 믿음 체계 속에서 여성은 생산성을 가진 존재로 우대된다. 아기를 낳는다는 생산성이 농경의 생산성과 유감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음력 8월 한가위가 절일로 이야기된 것은 신라에 와서부터이다. 신라 3대 유리이사금 때 궁성의 여자들이 좌우로 편을 갈라 한 달간 길쌈을 해서 한가위 때 승패를 가리는 행사가 있었다. 여성 위주의 놀이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한다. 추석과 여성의 상관성이 이미 신라시대의 한 세시풍속에서 찾아지는 예다.

다섯째, 윤무(輪舞)는 원형을 그리며 춤추는 것으로, 달을 모방한 주술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유감주술의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은 모방적이거나 유사해야 한다. 알곡은 크고 둥글수록 알찬 것이며 풍요다산으로 이어진다. 추석과 알곡 그리고 풍요다산을 이어주는 기하학적 원리는 원형이다. 알곡과 같은 구체물이든, 추석의 밤하늘에 뜬 둥근 보름달이든, 소망을 담은 풍요다산이든 모두 둥근 원으로 관통된다.

여섯째, 집단은 개별자의 집합이지만, 전체가 하나이기도 하다. 마치 구슬이 하나하나 따로 있지만 꿰어놓으면 하나의 목걸이인 것과 같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 하여 “여러 사람의 한 목소리는 쇠도 녹인다.”라는 말이 있다. 강력한 에너지를 뜻하는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보듯 ‘구지가(龜旨歌)’나 ‘해가사(海歌詞)’를 부르던 상황도 많은 사람, 곧 집단이 한 목소리로 노래했던 상황이었다. 집단은 신을 감동시킬 수도 있고 신을 위압할 수도 있다.

엘리아데(M. Eliade)는 달 상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전체의 형태는 달 - 비 - 풍요 - 여성 - 뱀 - 죽음 - 정기적 - 재생으로 얽어지지만, 이들 중 일부만 묶이는 형태 곧 뱀 - 여성 - 풍요, 뱀 - 비 - 풍요, 여성 - 뱀 - 주술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 말은 추석 - 보름달 - 밤 - 부녀자 - 윤무(輪舞) - 집단의 연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강강술래가 둥글게 원을 그려 춤추는 형태는 이들과 모두 연관된다. 때로는 감겼다 풀렸다 하기도 하지만, 모두 원형을 기본으로 하여 운용되는 것이다. 비록 나선형으로 추는 잡희(雜戱)들조차도 결국은 원형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집단을 이루어 윤무를 하는 강강술래는 원형 지향, 곧 살찐 알곡에 대한 기대나 감사가 알알이 배어 있는 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의

가무로서의 강강술래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고, 신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며, 신을 즐겁게 하는 오신(娛神)행사이다. 신을 즐겁게 하는 것은 폐백(幣帛)이나 희생(犧牲)도 있지만 놀이도 그 일종이다. 강강술래가 농경의례의 하나요, 특히 도작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추석이라는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풍년감사제의 기간에 행해진다는 것은 결국 세속적인 기능 이전에 이미 그것은 종교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인간은 신에게 미래를 기대하기도 하고 과거를 감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믿던 사고양식은 고대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 강하다. 시원으로 소급해 올라가면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세시풍속이 생겼고, 또 그것은 사회적으로 널리 알고 있는 의식적 지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 본래의 의미가 잊혀진 가운데 잔존문화로 전승되던 사이 기능을 상실하고 형태만 남았다. 또 성스러운 의미가 잊혀지고 세속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만다. 결국 강강술래도 지금에 와서 여성의 민속놀이민요요 예능 정도로 생각된다. 비록 지금 어느 한 곳에도 자연적인 연행 현장을 찾아볼 수 없는 잔존문화가 되고 말았지만, 그 본의와 기능은 바로 절실한 삶을 위한 기도로 부르고 노는 데 있었다.

참고문헌

史記, 三國遺事
강강술래놀이 (지춘상, 韓國의 民俗藝術1, 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78)
韓國詩歌文學論考 (정익섭, 전남대학교출판부, 1989)
南道民俗考 (崔德源, 삼성출판사, 1990)
광주·전남의 민속연구 (나경수, 민속원, 1998)

강강술래

강강술래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정일

집필자 나경수(羅景洙)
갱신일 2016-11-03

정의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호남 지역에서 널리 놀았던 여성 집단놀이. 현재는 전국적으로 이 놀이가 확산되어 굳이 호남 지역의 민속놀이라기보다는 전국화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놀이로서 가장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율동미가 넘치는 민속놀이요 민속춤이요 또한 민요이다. 가무악(歌舞樂)이 일체화된 강강술래는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지며,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대보름 밤에 하기도 한다. 1966년 2월 15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유래

강강술래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이 전술의 하나로 만들었다는 구전이 있는가 하면 민간어원적으로 해석해서 오랑캐 또는 왜구의 내침(來侵)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 강강술래는 전승 현장에 따라 강강수월래, 광광술래, 광광수월래로도 부르는데, 그 중 강강수월래라고 부르는 것을 취해서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으로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풀이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한문의 기본적인 문법마저도 어기는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강강월수래(强羌越水來)가 아닌 다음에는 믿을 바가 못 되는 것이다. 또는 고대의 국중대회나 마한의 농공시필기에 집단적으로 추었던 원시가무(原始歌舞, ballad dance)와 연계시키기도 하고, 생성과 번식을 위한 짝짓기의 구혼 행위로서 남녀가 공동으로 연희하는 공동의례의 굿판에서 추는 춤이라는 사람도 있다. 대개 민속은 자연발생적이거나 또는 문화 전파에 의해 수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연대기적 편년을 제시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오랜 전승 과정을 겪는 사이, 기능이나 성격의 복합 또는 굴절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발생론적 기원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내용

강강술래는 전승 지역으로 보면 호남 일원이요, 연행 시기로 보면 8월 한가위가 일반적이며, 연행 주체는 주로 마을의 여자들이다. 호남 일원에서 줄다리기가 주로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는 것에 반해 강강술래는 추석의 대표적인 놀이인 셈이다. 때로는 정월대보름에 강강술래를 하기도 하지만, 한가위만큼은 아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남자들이 참여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 춤은 노래에 맞춰 율동적으로 추는데 늦은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나뉜다. 이는 노래나 춤의 빠르기에 따른 분류이기도 하지만, 한편 진행의 순서로 볼 수도 있다. 동산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마을의 넓은 마당으로 모인 여자들이 느린 가락에 맞춰 늦은강강술래를 추다가 흥이 점점 더해감에 따라 속도가 빨라져서 마침내 잦은강강술래로 이어진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윤무(輪舞) 형태 말고도 많은 부수적인 놀이와 노래가 있다. 따라서 강강술래는 협의와 광의의 강강술래로 나눌 수 있다. 강강술래라는 무요(舞謠)에 맞춰 여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려 돌며 추는 춤은 협의의 강강술래요, 여기에 부수된 여러 가지 놀이가 첨가되어 광의의 강강술래가 된다. 원래의 강강술래는 구성진 가락의 노래와 손과 손을 잡고 뛰고 춤추며 판을 빙빙 도는 원무였다. 강강술래는 1961년, 1964년, 1965년, 1966년에 연이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했으나 큰 상을 받지 못하였다. 1966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고 그 후 1975년에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1976년에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196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당시에는 원무가 기본이고 구성진 노래를 몇 시간을 불러도 흥이 나서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고 하였다. 추수도 거의 끝이 나고 춥지도 덥지도 아니하며 달이 휘영청 밝았으니, 저절로 흥이 솟고 신바람이 나서 밤이 깊어가는 것을 잊고 순수하고 소박하게 놀 수 있었다. 1975년과 1976년에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면서부터 강강술래 놀이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경연대회는 입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수식하고 과장하게 된다. 강강술래도 연출을 맡은 유능한 지도자에 의해서 첨가 과장하여 화려하게 꾸며졌다. 원래는 원무가 주이던 것이 남생이놀이,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지와밟기, 꼬리따기, 덕석말이, 쥐새끼놀이, 가마등, 문지기놀이, 실바늘꿰기, 수건돌리기, 발치기, 외따기, 춘향각시놀이 같은 여성들이 하는 놀이를 모두 참여시켜 놀이의 종합체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강강술래의 많은 사례가 보고되었다. 가락과 놀이도 그렇지만, 강강술래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불렀던 노래인 만큼 민중의 애창시로서 그 가사 속에는 민중의 삶에서 빚어질 수 있는 온갖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 용해되어 있다. 그 노래 가사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님성님 사촌성님, 강강술래, 시집살이 어떱디까, 강강술래, 고초장초 맵다해도, 강강술래, 시집살이 더맵더라, 강강술래.” 이처럼 선후창의 형태로 한 사람이 설소리(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이 매김소리(뒷소리)를 받는 형식으로 춤과 더불어 불리게 된다. 전승되어온 일정한 가사도 있지만, 놀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지어 불리는 가사도 있다. 곡의 빠르고 늦음이 있을 수 있지만, 시적 형식은 이것만이다. 그러나 형식은 그렇지만 가사는 계속 바꿔 부르기 때문에 단조로움에서 벗어난다. 곡과 그 형식은 고정적인 데 반해서 가사는 가변적인 것이다. 따라서 고정소와 가변소가 한 틀을 이루면서 강강술래를 지탱하는 문예적 형식미를 완성하고 있다. 한편 강강술래는 여성의 민속놀이나 단순한 민요의 차원에서만 놀고 불렀던 것은 아니다. 그것이 넓은 지역에 걸쳐서 정기적으로 연행되었던 것은 나름대로 심층적 의미와 기능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강강술래를 지탱해온 그 원형적 심층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강강술래를 구성하고 있는 내외적인 상황적 문맥과 요소들을 분석적으로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강강술래와 관련되는 제반 요소를 추출하면 추석, 보름달, 밤, 부녀자, 윤무, 집단 등이 있다. 첫째, 추석의 세시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풍년감사절이라는 것이다. 정월대보름이 농경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추석은 수확의 시작이라 하겠다. 농사가 시작되는 정월대보름에 농경과 밀접한 놀이로 줄다리기를 한 것과 대칭선상에서 8월 한가윗날 밤에는 강강술래를 한다. 대보름에 하는 줄다리기가 기풍(祈豊)을 목적으로 한다면, 추석에 하는 강강술래는 분명 기풍(祈豊)을 위한 것으로 보겠다. 추석을 즈음하여 수확되는 것은 주곡(主穀)인 쌀이다. 따라서 벼농사가 많은 호남 지역에서 추석은 가장 큰 명절이며 추석 행사로 노는 강강술래는 벼농사와 관련된 세시놀이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달은 생성력을 상징하는 구상물이며, 신화 원형의 하나이다. 더구나 보름달은 가장 왕성한 기운을 가졌다. 특히 태음력을 농사력으로 사용해온 우리 민족은 농사와 관련된 명절로 보름을 중시하였다. 정월대보름은 말할 것도 없고, 6월 보름인 유두와 7월 보름인 백중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8월 보름인 추석이 역시 농사와 직결된다. 셋째, 밤은 낮과 구별되는 시간대이다. 낮이 세속적인 시간대라면 밤은 성스러운 시간대요, 낮이 남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여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낮이 인간의 시간이라면 밤은 신들의 시간이다. 보름달이 훤히 밝은 가을밤,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강강술래 소리가 맑고 곱다. 밤은 추(醜)를 감추고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신들이 나와 활동하고 세속보다는 성스럽고 신비감 넘치는 밤무대에서 추는 강강술래는 여성적 아름다움을 극치로 몰고 가는 한편 금빛 달을 닮아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저 들녘의 나락을 한껏 영글게 할 수 있는 주문과도 같다. 넷째, 부녀자는 생산의 기능을 가졌다. 여자와 생산의 관계는 특히 농경민족에게는 절대적이다. 세속적으로는 재수가 없고, 부정을 탈 수 있어 경계의 대상이 되지만, 농경문화의 종교주술적 믿음 체계 속에서 여성은 생산성을 가진 존재로 우대된다. 아기를 낳는다는 생산성이 농경의 생산성과 유감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음력 8월 한가위가 절일로 이야기된 것은 신라에 와서부터이다. 신라 3대 유리이사금 때 궁성의 여자들이 좌우로 편을 갈라 한 달간 길쌈을 해서 한가위 때 승패를 가리는 행사가 있었다. 여성 위주의 놀이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한다. 추석과 여성의 상관성이 이미 신라시대의 한 세시풍속에서 찾아지는 예다. 다섯째, 윤무(輪舞)는 원형을 그리며 춤추는 것으로, 달을 모방한 주술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유감주술의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은 모방적이거나 유사해야 한다. 알곡은 크고 둥글수록 알찬 것이며 풍요다산으로 이어진다. 추석과 알곡 그리고 풍요다산을 이어주는 기하학적 원리는 원형이다. 알곡과 같은 구체물이든, 추석의 밤하늘에 뜬 둥근 보름달이든, 소망을 담은 풍요다산이든 모두 둥근 원으로 관통된다. 여섯째, 집단은 개별자의 집합이지만, 전체가 하나이기도 하다. 마치 구슬이 하나하나 따로 있지만 꿰어놓으면 하나의 목걸이인 것과 같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 하여 “여러 사람의 한 목소리는 쇠도 녹인다.”라는 말이 있다. 강력한 에너지를 뜻하는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보듯 ‘구지가(龜旨歌)’나 ‘해가사(海歌詞)’를 부르던 상황도 많은 사람, 곧 집단이 한 목소리로 노래했던 상황이었다. 집단은 신을 감동시킬 수도 있고 신을 위압할 수도 있다. 엘리아데(M. Eliade)는 달 상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전체의 형태는 달 - 비 - 풍요 - 여성 - 뱀 - 죽음 - 정기적 - 재생으로 얽어지지만, 이들 중 일부만 묶이는 형태 곧 뱀 - 여성 - 풍요, 뱀 - 비 - 풍요, 여성 - 뱀 - 주술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 말은 추석 - 보름달 - 밤 - 부녀자 - 윤무(輪舞) - 집단의 연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강강술래가 둥글게 원을 그려 춤추는 형태는 이들과 모두 연관된다. 때로는 감겼다 풀렸다 하기도 하지만, 모두 원형을 기본으로 하여 운용되는 것이다. 비록 나선형으로 추는 잡희(雜戱)들조차도 결국은 원형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집단을 이루어 윤무를 하는 강강술래는 원형 지향, 곧 살찐 알곡에 대한 기대나 감사가 알알이 배어 있는 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의

가무로서의 강강술래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고, 신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며, 신을 즐겁게 하는 오신(娛神)행사이다. 신을 즐겁게 하는 것은 폐백(幣帛)이나 희생(犧牲)도 있지만 놀이도 그 일종이다. 강강술래가 농경의례의 하나요, 특히 도작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추석이라는 본격적인 추수를 앞둔 풍년감사제의 기간에 행해진다는 것은 결국 세속적인 기능 이전에 이미 그것은 종교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인간은 신에게 미래를 기대하기도 하고 과거를 감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믿던 사고양식은 고대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 강하다. 시원으로 소급해 올라가면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세시풍속이 생겼고, 또 그것은 사회적으로 널리 알고 있는 의식적 지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 본래의 의미가 잊혀진 가운데 잔존문화로 전승되던 사이 기능을 상실하고 형태만 남았다. 또 성스러운 의미가 잊혀지고 세속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만다. 결국 강강술래도 지금에 와서 여성의 민속놀이요 민요요 예능 정도로 생각된다. 비록 지금 어느 한 곳에도 자연적인 연행 현장을 찾아볼 수 없는 잔존문화가 되고 말았지만, 그 본의와 기능은 바로 절실한 삶을 위한 기도로 부르고 노는 데 있었다.

참고문헌

史記, 三國遺事강강술래놀이 (지춘상, 韓國의 民俗藝術1, 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78)韓國詩歌文學論考 (정익섭, 전남대학교출판부, 1989)南道民俗考 (崔德源, 삼성출판사, 1990)광주·전남의 민속연구 (나경수, 민속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