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장정룡(張正龍)
갱신일 2016-11-29

정의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948~1031) 장군과 관련한 설화.

역사

강감찬은 우리나라 3대 명장 중의 한 명으로, 그가 주도한 귀주대첩은 우리나라 6대 전첩으로 손꼽힌다. 그의 공적은 문헌기록이나 인물전설로 전승되고 있다.

줄거리

<강감찬설화>는 문곡성과 관련된 탄생담, 호환이나 미물 퇴치 등으로 나뉜다. 한 사신이 밤에 시흥군으로 들어서는데 큰 별이 어떤 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그 집을 살펴보니 마침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사실은 이 아이를 데려다 길렀으니 곧 강감찬이었다. 강감찬이 한성판관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전과 백성들이 범에게 피해를 입자 범이 중으로 변한 것을 알고 강감찬이 이를 강력하게 징벌하여 한성부의 호환을 없앴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로, 그가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지명이 유래하였다. <강감찬전설>은 고려시대 최자(崔滋, 1186~1260)의 『보한집(補閑集)』에서 문곡성(文曲星) 출현의 출생담이 전하고, 조선시대 초기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호환을 없앤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만종의 『해동이적(海東異蹟)』에도 호환 퇴치와 문곡성 이야기가 전하고, 손진태는 <강감찬 금와훤(禁蛙喧)전설>을 소개하였다.

변이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강감찬 관련 설화는 65편이다. 이들 설화 각편으로 본 변이 양상은 별자리와 관련된 시흥군 문곡성의 탄생, 염정성 별자리의 탄생, 한양에서 중으로 변한 호랑이 퇴치, 경주 개구리울음 퇴치 등 신비한 행적을 보인다. 그는 강릉부사, 공주목사, 논산현감, 경주부사 등의 벼슬을 하였다고 하며, 강릉 지역에 구전되는 설화에서는 강릉원님, 장군, 대감, 여우를 퇴치한 지혜로운 사람, 개미를 없게 한 기가 센 인물, 개구리를 못 울게 한 신통력 있는 장군, 풍수를 아는 인물 등으로 나온다. 경기 지역은 강감찬의 부친이 고을 원님․훈장․선비․정승으로, 충청 지역은 오입쟁이․소금장수․무관으로, 경상 지역은 정승 등으로 신분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강감찬의 어머니는 여우가 변신한 아흔아홉 번째 처녀라고도 한다. 이는 짐승과 결혼한 이물교혼(異物交婚) 또는 이류교구(異類交媾)의 경우로서, 그런 연유로 강감찬은 짐승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여우가 변신한 신랑을 퇴치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강감찬이 천리안을 지녔으며 축지법과 부적을 사용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도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는 오래 살기 위해서 스스로 별상인 손님마마신을 불러 얼굴에 곰보자국을 일부러 세 차례 또는 다섯 차례나 만들었다고 한다. 귀가 작은 박색, 작은 키, 여우상, 거지꼴 등 외모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짐승이나 미물 등을 퇴치한 경우 대상은 호랑이가 가장 많고, 개구리, 모기, 개미, 구렁이, 도깨비, 독수리, 용이나 자연현상인 벼락, 식물인 칡뿌리를 제거하는 등의 변이가 나타난다. 강원 지역에서는 여우혈을 없애 집안을 구하고 혼령을 잃은 친구를 구하며, 벼락살 또는 벼락방망이를 꺾는 등 심각한 문제 상황에서 이적(異蹟)을 보이지만, 물 인심이 야박한 동네에서는 부적으로 그 동네의 물을 마르게 하는 등 훈계적 행위도 보인다. 강릉단오제에서 연행되는 <관노가면극>의 험상궂은 인물인 ‘시시딱딱이’는 강감찬 장군이 마마에 걸린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그와 같은 질병이 돌지 않게 하는 예방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의 향토오락』에도 강릉국사당제 오광대놀이는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목제인형으로 놀이한다고 하였다.

분석

조선 효종 때 홍만종이 쓴 『해동이적』에는 호환 퇴치와 문곡성 외 두 가지 화소가 들어 있다. 그 줄거리를 기술하면, 강감찬은 평장사로서 고려 현종 때 사람이라 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하며 기략이 풍부했다. 일찍이 한양부 판관이 되었는데 그 당시 한양에 호랑이가 출몰하여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강감찬은 문서를 써서 북문 밖의 두 중에게 전달했다. 강감찬은 이들에게 속히 무리를 이끌고 멀리 가라고 명하였다. 한양유수는 중더러 호랑이라 한다고 믿지 않았으나, 강감찬이 본신을 드러내라고 하자 두 중은 가사를 벗고 커다란 호랑이로 변하여 울부짖었다. 강감찬이 빨리 가라고 명하니 간 곳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뒤부터 호랑이로 인한 근심이 사라졌다. 처음에 강감찬이 태어날 때 송나라 사신이 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갔다가 큰 별이 인가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전을 보내 살펴보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집 부인이 마침 사내아기를 낳았다. 송나라 사신이 와서 그를 보고는 문곡성이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는데 여기에 있다며 절을 하였다. 강감찬은 나이 84세에 죽었는데 세상에서는 그가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들 했다. 현공렴이 쓴 <강감찬전>에는 강감찬이 삼각산에서 중으로 변신한 호랑이를 쫓은 일과, 경주의 개구리 울음을 그치게 한 공로를 기록하였다. 이 내용은 지역에 따라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지역을 바꾸어 전승하기도 한다.

특징

<강감찬전설>은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실존인물의 위대성이 민간에서 숭앙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문곡성의 화신이라는 탄생담, 여우 모친의 신비한 출생, 작은 키, 곰보, 박색의 특이한 외모, 벼슬한 관리, 짐승이나 미물 퇴치의 능력 소유, 마을신격으로 강원도 횡성 현천성황신이 되기도 하였다. 강감찬의 모계가 여우라는 동물교혼 설화 유형을 밟는 등 실존인물 강감찬에서 민담적 인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의의

역사상 위대한 인물인 강감찬에 대한 전기적 구성으로 출생부터 성장, 관원의 길을 통해서 민중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대상들을 척결하는 친근한 인물로 형상화하였다. 외적에 맞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역사성을 기초로 민중과 연관된 구체적 사건을 통해서 존재를 부각시키고, 벽사진경을 추구하는 신앙인물로 형상화하였다. 강감찬이 민중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도술사의 모습으로 구체화되거나 생활상 장애를 제거하는 현실적 해결사로 구전된다는 점에서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姜邯贊傳, 高麗史, 補閑集, 海東異蹟,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2-1, 574; 2-3, 194.

참고문헌

강감찬전(현공렴, 경성 광동서국, 1908), 강감찬전설연구(장장식, 석천 정우상박사 화갑기념논문집, 1990), 강릉지역 강감찬설화의 내용과 상징(장정룡, 임영문화29, 강릉문화원, 2005), 강원지역 강감찬 설화고찰(장정룡, 강원민속학17, 강원도민속학회, 2003), 조선민족설화의 연구(손진태, 을유문화사, 1947).

강감찬

강감찬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장정룡(張正龍)
갱신일 2016-11-29

정의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948~1031) 장군과 관련한 설화.

역사

강감찬은 우리나라 3대 명장 중의 한 명으로, 그가 주도한 귀주대첩은 우리나라 6대 전첩으로 손꼽힌다. 그의 공적은 문헌기록이나 인물전설로 전승되고 있다.

줄거리

는 문곡성과 관련된 탄생담, 호환이나 미물 퇴치 등으로 나뉜다. 한 사신이 밤에 시흥군으로 들어서는데 큰 별이 어떤 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그 집을 살펴보니 마침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사실은 이 아이를 데려다 길렀으니 곧 강감찬이었다. 강감찬이 한성판관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전과 백성들이 범에게 피해를 입자 범이 중으로 변한 것을 알고 강감찬이 이를 강력하게 징벌하여 한성부의 호환을 없앴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로, 그가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지명이 유래하였다. 은 고려시대 최자(崔滋, 1186~1260)의 『보한집(補閑集)』에서 문곡성(文曲星) 출현의 출생담이 전하고, 조선시대 초기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호환을 없앤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만종의 『해동이적(海東異蹟)』에도 호환 퇴치와 문곡성 이야기가 전하고, 손진태는 을 소개하였다.

변이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강감찬 관련 설화는 65편이다. 이들 설화 각편으로 본 변이 양상은 별자리와 관련된 시흥군 문곡성의 탄생, 염정성 별자리의 탄생, 한양에서 중으로 변한 호랑이 퇴치, 경주 개구리울음 퇴치 등 신비한 행적을 보인다. 그는 강릉부사, 공주목사, 논산현감, 경주부사 등의 벼슬을 하였다고 하며, 강릉 지역에 구전되는 설화에서는 강릉원님, 장군, 대감, 여우를 퇴치한 지혜로운 사람, 개미를 없게 한 기가 센 인물, 개구리를 못 울게 한 신통력 있는 장군, 풍수를 아는 인물 등으로 나온다. 경기 지역은 강감찬의 부친이 고을 원님․훈장․선비․정승으로, 충청 지역은 오입쟁이․소금장수․무관으로, 경상 지역은 정승 등으로 신분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강감찬의 어머니는 여우가 변신한 아흔아홉 번째 처녀라고도 한다. 이는 짐승과 결혼한 이물교혼(異物交婚) 또는 이류교구(異類交媾)의 경우로서, 그런 연유로 강감찬은 짐승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여우가 변신한 신랑을 퇴치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강감찬이 천리안을 지녔으며 축지법과 부적을 사용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도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는 오래 살기 위해서 스스로 별상인 손님마마신을 불러 얼굴에 곰보자국을 일부러 세 차례 또는 다섯 차례나 만들었다고 한다. 귀가 작은 박색, 작은 키, 여우상, 거지꼴 등 외모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짐승이나 미물 등을 퇴치한 경우 대상은 호랑이가 가장 많고, 개구리, 모기, 개미, 구렁이, 도깨비, 독수리, 용이나 자연현상인 벼락, 식물인 칡뿌리를 제거하는 등의 변이가 나타난다. 강원 지역에서는 여우혈을 없애 집안을 구하고 혼령을 잃은 친구를 구하며, 벼락살 또는 벼락방망이를 꺾는 등 심각한 문제 상황에서 이적(異蹟)을 보이지만, 물 인심이 야박한 동네에서는 부적으로 그 동네의 물을 마르게 하는 등 훈계적 행위도 보인다. 강릉단오제에서 연행되는 의 험상궂은 인물인 ‘시시딱딱이’는 강감찬 장군이 마마에 걸린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그와 같은 질병이 돌지 않게 하는 예방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의 향토오락』에도 강릉국사당제 오광대놀이는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목제인형으로 놀이한다고 하였다.

분석

조선 효종 때 홍만종이 쓴 『해동이적』에는 호환 퇴치와 문곡성 외 두 가지 화소가 들어 있다. 그 줄거리를 기술하면, 강감찬은 평장사로서 고려 현종 때 사람이라 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하며 기략이 풍부했다. 일찍이 한양부 판관이 되었는데 그 당시 한양에 호랑이가 출몰하여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강감찬은 문서를 써서 북문 밖의 두 중에게 전달했다. 강감찬은 이들에게 속히 무리를 이끌고 멀리 가라고 명하였다. 한양유수는 중더러 호랑이라 한다고 믿지 않았으나, 강감찬이 본신을 드러내라고 하자 두 중은 가사를 벗고 커다란 호랑이로 변하여 울부짖었다. 강감찬이 빨리 가라고 명하니 간 곳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뒤부터 호랑이로 인한 근심이 사라졌다. 처음에 강감찬이 태어날 때 송나라 사신이 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갔다가 큰 별이 인가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전을 보내 살펴보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집 부인이 마침 사내아기를 낳았다. 송나라 사신이 와서 그를 보고는 문곡성이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는데 여기에 있다며 절을 하였다. 강감찬은 나이 84세에 죽었는데 세상에서는 그가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들 했다. 현공렴이 쓴 에는 강감찬이 삼각산에서 중으로 변신한 호랑이를 쫓은 일과, 경주의 개구리 울음을 그치게 한 공로를 기록하였다. 이 내용은 지역에 따라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지역을 바꾸어 전승하기도 한다.

특징

은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실존인물의 위대성이 민간에서 숭앙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문곡성의 화신이라는 탄생담, 여우 모친의 신비한 출생, 작은 키, 곰보, 박색의 특이한 외모, 벼슬한 관리, 짐승이나 미물 퇴치의 능력 소유, 마을신격으로 강원도 횡성 현천성황신이 되기도 하였다. 강감찬의 모계가 여우라는 동물교혼 설화 유형을 밟는 등 실존인물 강감찬에서 민담적 인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의의

역사상 위대한 인물인 강감찬에 대한 전기적 구성으로 출생부터 성장, 관원의 길을 통해서 민중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대상들을 척결하는 친근한 인물로 형상화하였다. 외적에 맞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역사성을 기초로 민중과 연관된 구체적 사건을 통해서 존재를 부각시키고, 벽사진경을 추구하는 신앙인물로 형상화하였다. 강감찬이 민중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도술사의 모습으로 구체화되거나 생활상 장애를 제거하는 현실적 해결사로 구전된다는 점에서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姜邯贊傳, 高麗史, 補閑集, 海東異蹟,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2-1, 574; 2-3, 194.

참고문헌

강감찬전(현공렴, 경성 광동서국, 1908), 강감찬전설연구(장장식, 석천 정우상박사 화갑기념논문집, 1990), 강릉지역 강감찬설화의 내용과 상징(장정룡, 임영문화29, 강릉문화원, 2005), 강원지역 강감찬 설화고찰(장정룡, 강원민속학17, 강원도민속학회, 2003), 조선민족설화의 연구(손진태, 을유문화사,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