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옷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고부자(高富子)
갱신일 2018-10-29

정의

제주濟州 사람들이 흰옷에 ‘감물’(시즙柿汁)을 들이고 햇볕에 바래서 입던 노동복.

개관

제주에서 언제부터 갈옷을 입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노인들의 푸념 중에 “개(견犬)날 (해亥)날 갱이(호미) 놓는 날 어시 드단 보난 저승질이 앞이여.”라는 말이 있다. ‘열심히 일만 하며 살다 보니 죽음이 앞에 닥쳤음’을 탄식한 말이다.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1954)에 “남녀 간 작업복은 전부가 시즙柿汁으로 염색한 주황색 목면복木棉服이니 풀 먹일 필요도 없고, 노동하다가 먼지가 묻으면 입은 채로 목욕하면 물도 금세 빠지고 붙은 먼지도 빠져 실로 경제적이요. 또 위생적인 의복으로서 노동자에게 무상無上의 고안考案”이라 했다. ‘제주갈옷’이 노동복으로 탄생한 것은 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이 지역의 실정을 대변하는 자생自生의 이치이다. 야생野生 감나무가 농가農家나 ‘텃밭’ 울타리 안에 한두 그루씩 있는 것도 그 증거물이다.
갈옷은 1950년대까지 제주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며, 여성들에게는 일상복화가 될 만큼 많이 이용되었다. 이는 어느 옷보다 위생·경제·실용적이고 환경친화력을 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1930년대부터는 몸뻬감물을 들인 ‘갈몸뻬’를 많이 입기 시작했다. 따라서 1960년대가 되면 여성용 하의下衣였던 정통正統 ‘갈굴중이’는 거의 사라진다. 더구나 1980년대에 이르면 갈옷을 입은 사람조차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농사일이 줄어 필요성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교련복이나 향토예비군복, 와이셔츠나 학생들 입던 낡은 옷들을 활용하거나, 또 이전에 입었던 옷에 감물만 들이면 되므로 굳이 옛날처럼 갈옷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도 큰 이유였다.
갈옷은 산업의 발달과 서양문물의 범람에 따른 사회변혁으로 그 수요가 잠깐 사라졌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현대의 요구와 감각에 맞춰 새로운 ‘갈염법’으로 감물을 들여 만든 옷·신·모자·가방·침구류 등 일상생활품으로 갖가지 다른 새 장場을 열어 가고 있다.

내용

제주도에서 ‘갈옷 색’을 내는 과정을 “갈옷 바랜다.”라고 한다. 사전辭典에는 ‘바랜(래)다’는 ‘햇볕이나 습기를 받아 빛이 변하다, 볕에 쬐어 빛이 변하게 하다.’(동아국어대사전, 1977)로 원래의 고운 빛(색色)이 퇴색退色하여 나빠지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갈염’에서의 “바랜다” 함은 색을 더 곱게, 짙게하는 일은 의미한다. 또한 갈염에서 ‘바래는 과정’은 다른 염색물과 달리 매염媒染이나 촉염제促染劑를 쓰지 않으므로 염색 중 유일하게 인체人體나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무공해無公害 자원을 개발해 낸 셈이 된다.
옷의 꼴(형태·모양)은 한복 중에서 여름용 기본 홑옷이다. 웃옷은 남녀공통의 ‘적삼赤衫’, 아래옷은 남성용으로 ‘바지(고의袴衣)’와 여성용 ‘단(속)속곳’으로 하였다. 이 옷들에 감물을 들여 남자 것은 ‘갈적삼·갈중이’, 여자 것은 ‘갈적삼·갈굴중이’라고 했다. 용어 중에 ‘갈중이’와 ‘굴중이’는 바지를 뜻하는 제주 말(언어言語)이다.
갈옷은 의례儀禮나 정식 방문이 아닐 때는 일상복으로 어디든지 입고 다녔다. 특히 여자들은 밭일 가는 도중에 볼 일이 있을 땐 갈옷을 입은 위에 치마를 덧입고 갔다가 일을 본 후 벗으면 다시 일복(노동복勞動服) 차림이 된다.
갈옷 만들기에 필요한 재료는 크게 염액染液 재료인 ‘감’과 옷을 만들 ‘옷감’, 두 가지이다. 이 재료들로 옷이 완성되기까지는 옷만들기―감물들이기―바래기 세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 중에 첫 번째는 옷 만들기이다. 옷감은 무명으로 하는데, 1950년대 이후 베틀 사용이 줄어들면서 시중市中에 나온 ‘광목廣木’으로 대치되었다. 옷을 만든 다음에는 감물을 들이기 전에 반드시 안과 밖이 바뀌게 뒤집어 둔다.
두 번째인 감물들이기는 감따기―바수기―치대기―털기―손보기―바래기 과정까지 계속된다. 이 때 ‘어깻죽지가 빠지게’라는 말이 덧붙는데, 그만큼 힘이 든다는 뜻이다. 또 그 시기를 일컬어 ‘대갱이가 와삭 와삭벌러 질 때’라고 하는데, 이 때는 7~8월 머리가 깨질 만큼 태양열이 강한 한더위 무렵인 것이다. 이쯤에는‘감 씨’는 여물었으나 딱딱해지기 전이며, 타닌tannin 성분이 가장 많다.
감물 들이기부터 바래기까지는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1. 감 따기: 초 새벽에 날씨를 보며 딴다. 떨어지거나 오래된 감은 타닌 성분이 떨어지므로, 쓰지 않는다. 감은 지름 3~4 정도에 씨는 5~8개쯤 들어 있고, 떫어 먹을 수가 없다.
2. 바수기: 딴 ‘(풋)감’은 꼭지를 대충 뜯어낸 다음 ‘남도구리’(나무로 만든 함지박보다 큰 그릇)에 놓고, ‘덩드렁막개’(나무로 만든 둥근 방망이)로 80%쯤 바수어 감물을 만들어낸다.
3. 치대기: 바순 감덩어리들을 옷 위에 펴 놓은 다음 감물이 골고루 스며들도록 올과 옷 갈피를 뒤적거리면서 주무르고 치댄다. 감물이 부족하면 물을 조금 부어 조절한다.
4. 털기: 감물이 골고루 배었으면 옷에 묻은 ‘감쭈시’(찌꺼기)를 깨끗이 털어 낸다.
5. 손보기: 감쭈시를 털어 낸 다음 옷을 겉으로 뒤집는다. 뒤집은 옷은 주름을 펴고 모양을 정리한 다음 발로 밟거나, 손바닥에 올려놓고 반반하게 손으로 친다. 이 과정은 다림이나 방망이질과 같이 매우 중요하다.
6. 바래기: 약 5~10일 걸리는데, 품질의 성공 여부가 달린 과정이다. 손보기를 마치고 다시 반반하게 펴서 대부분 집 마당과 같이 편편한 곳에 ‘멍석’을 깔고 넌다. 들이나 밭일을 나갈 때는 ‘허벅’에 물을 길고 가서 물을 축이면서 바랜다. 바랠 때는 물을 옷에 듬뿍 먹인 다음 앞판과 뒤판을 고르게 볕이 쏘이도록 뒤집는다. 뒤집기는 물을 축일 때마다 계속 반복하는데, 색의 농도가 뒤집기 횟수나 빛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뒤판의 색이 고르지 못하면 약한 쪽을 더 집중적으로 바랜다. 강한 햇볕에서는 처음 한 시간 정도만 바래도 색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바래기를 반복할수록 색이 짙어지고, 강도도 풀을 먹인 것처럼 점차 빳빳해진다. 특품特品은 색이 ‘붉은 빛이 도는 벽돌이나 홍시’처럼 발갛게 나는 것으로 밤에 밖에 널어서 ‘이슬’을 맞힌 것이다. 바래는 동안 바람이 불어 접히거나 휘말린 곳은 색이 덜 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금속성 쇠붙이는 색이 검게 변하기 때문에 금물이다.

특징 및 의의

‘옷’ 앞에 ‘갈’ 자를 덧붙인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노동복이라는 기능성과, 색色이 벽돌이나 낙엽처럼 갈색褐色으로 변한 것, 거친 베(갈포葛布)가 가진 상징성을 담고 있는 점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옷’ 앞에 ‘갈’ 자를 덧붙인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노동복이라는 기능성과, 색色이 벽돌이나 낙엽처럼 갈색褐色으로 변한 것, 거친 베(갈포葛布)가 가진 상징성을 담고 있는 점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참고문헌

남국의 세시풍속(진성기, 제주민속문화연구소, 1969), 원대정군지(고병오·박용후, 박문출판사, 1968), 제주도 복식의 민속학적 연구(고부자,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1), 제주도 의생활의 민속학적 연구(고부자,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17-의생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6).

갈옷

갈옷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고부자(高富子)
갱신일 2018-10-29

정의

제주濟州 사람들이 흰옷에 ‘감물’(시즙柿汁)을 들이고 햇볕에 바래서 입던 노동복.

개관

제주에서 언제부터 갈옷을 입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노인들의 푸념 중에 “개(견犬)날 (해亥)날 갱이(호미) 놓는 날 어시 드단 보난 저승질이 앞이여.”라는 말이 있다. ‘열심히 일만 하며 살다 보니 죽음이 앞에 닥쳤음’을 탄식한 말이다.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1954)에 “남녀 간 작업복은 전부가 시즙柿汁으로 염색한 주황색 목면복木棉服이니 풀 먹일 필요도 없고, 노동하다가 먼지가 묻으면 입은 채로 목욕하면 물도 금세 빠지고 붙은 먼지도 빠져 실로 경제적이요. 또 위생적인 의복으로서 노동자에게 무상無上의 고안考案”이라 했다. ‘제주갈옷’이 노동복으로 탄생한 것은 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이 지역의 실정을 대변하는 자생自生의 이치이다. 야생野生 감나무가 농가農家나 ‘텃밭’ 울타리 안에 한두 그루씩 있는 것도 그 증거물이다.갈옷은 1950년대까지 제주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며, 여성들에게는 일상복화가 될 만큼 많이 이용되었다. 이는 어느 옷보다 위생·경제·실용적이고 환경친화력을 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1930년대부터는 몸뻬에 감물을 들인 ‘갈몸뻬’를 많이 입기 시작했다. 따라서 1960년대가 되면 여성용 하의下衣였던 정통正統 ‘갈굴중이’는 거의 사라진다. 더구나 1980년대에 이르면 갈옷을 입은 사람조차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농사일이 줄어 필요성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교련복이나 향토예비군복, 와이셔츠나 학생들 입던 낡은 옷들을 활용하거나, 또 이전에 입었던 옷에 감물만 들이면 되므로 굳이 옛날처럼 갈옷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도 큰 이유였다.갈옷은 산업의 발달과 서양문물의 범람에 따른 사회변혁으로 그 수요가 잠깐 사라졌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현대의 요구와 감각에 맞춰 새로운 ‘갈염법’으로 감물을 들여 만든 옷·신·모자·가방·침구류 등 일상생활품으로 갖가지 다른 새 장場을 열어 가고 있다.

내용

제주도에서 ‘갈옷 색’을 내는 과정을 “갈옷 바랜다.”라고 한다. 사전辭典에는 ‘바랜(래)다’는 ‘햇볕이나 습기를 받아 빛이 변하다, 볕에 쬐어 빛이 변하게 하다.’(동아국어대사전, 1977)로 원래의 고운 빛(색色)이 퇴색退色하여 나빠지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갈염’에서의 “바랜다” 함은 색을 더 곱게, 짙게하는 일은 의미한다. 또한 갈염에서 ‘바래는 과정’은 다른 염색물과 달리 매염媒染이나 촉염제促染劑를 쓰지 않으므로 염색 중 유일하게 인체人體나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무공해無公害 자원을 개발해 낸 셈이 된다.옷의 꼴(형태·모양)은 한복 중에서 여름용 기본 홑옷이다. 웃옷은 남녀공통의 ‘적삼赤衫’, 아래옷은 남성용으로 ‘바지(고의袴衣)’와 여성용 ‘단(속)속곳’으로 하였다. 이 옷들에 감물을 들여 남자 것은 ‘갈적삼·갈중이’, 여자 것은 ‘갈적삼·갈굴중이’라고 했다. 용어 중에 ‘갈중이’와 ‘굴중이’는 바지를 뜻하는 제주 말(언어言語)이다.갈옷은 의례儀禮나 정식 방문이 아닐 때는 일상복으로 어디든지 입고 다녔다. 특히 여자들은 밭일 가는 도중에 볼 일이 있을 땐 갈옷을 입은 위에 치마를 덧입고 갔다가 일을 본 후 벗으면 다시 일복(노동복勞動服) 차림이 된다.갈옷 만들기에 필요한 재료는 크게 염액染液 재료인 ‘감’과 옷을 만들 ‘옷감’, 두 가지이다. 이 재료들로 옷이 완성되기까지는 옷만들기―감물들이기―바래기 세 단계를 거친다.이 과정 중에 첫 번째는 옷 만들기이다. 옷감은 무명으로 하는데, 1950년대 이후 베틀 사용이 줄어들면서 시중市中에 나온 ‘광목廣木’으로 대치되었다. 옷을 만든 다음에는 감물을 들이기 전에 반드시 안과 밖이 바뀌게 뒤집어 둔다.두 번째인 감물들이기는 감따기―바수기―치대기―털기―손보기―바래기 과정까지 계속된다. 이 때 ‘어깻죽지가 빠지게’라는 말이 덧붙는데, 그만큼 힘이 든다는 뜻이다. 또 그 시기를 일컬어 ‘대갱이가 와삭 와삭벌러 질 때’라고 하는데, 이 때는 7~8월 머리가 깨질 만큼 태양열이 강한 한더위 무렵인 것이다. 이쯤에는‘감 씨’는 여물었으나 딱딱해지기 전이며, 타닌tannin 성분이 가장 많다.감물 들이기부터 바래기까지는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1. 감 따기: 초 새벽에 날씨를 보며 딴다. 떨어지거나 오래된 감은 타닌 성분이 떨어지므로, 쓰지 않는다. 감은 지름 3~4 정도에 씨는 5~8개쯤 들어 있고, 떫어 먹을 수가 없다.2. 바수기: 딴 ‘(풋)감’은 꼭지를 대충 뜯어낸 다음 ‘남도구리’(나무로 만든 함지박보다 큰 그릇)에 놓고, ‘덩드렁막개’(나무로 만든 둥근 방망이)로 80%쯤 바수어 감물을 만들어낸다.3. 치대기: 바순 감덩어리들을 옷 위에 펴 놓은 다음 감물이 골고루 스며들도록 올과 옷 갈피를 뒤적거리면서 주무르고 치댄다. 감물이 부족하면 물을 조금 부어 조절한다.4. 털기: 감물이 골고루 배었으면 옷에 묻은 ‘감쭈시’(찌꺼기)를 깨끗이 털어 낸다.5. 손보기: 감쭈시를 털어 낸 다음 옷을 겉으로 뒤집는다. 뒤집은 옷은 주름을 펴고 모양을 정리한 다음 발로 밟거나, 손바닥에 올려놓고 반반하게 손으로 친다. 이 과정은 다림이나 방망이질과 같이 매우 중요하다.6. 바래기: 약 5~10일 걸리는데, 품질의 성공 여부가 달린 과정이다. 손보기를 마치고 다시 반반하게 펴서 대부분 집 마당과 같이 편편한 곳에 ‘멍석’을 깔고 넌다. 들이나 밭일을 나갈 때는 ‘허벅’에 물을 길고 가서 물을 축이면서 바랜다. 바랠 때는 물을 옷에 듬뿍 먹인 다음 앞판과 뒤판을 고르게 볕이 쏘이도록 뒤집는다. 뒤집기는 물을 축일 때마다 계속 반복하는데, 색의 농도가 뒤집기 횟수나 빛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뒤판의 색이 고르지 못하면 약한 쪽을 더 집중적으로 바랜다. 강한 햇볕에서는 처음 한 시간 정도만 바래도 색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바래기를 반복할수록 색이 짙어지고, 강도도 풀을 먹인 것처럼 점차 빳빳해진다. 특품特品은 색이 ‘붉은 빛이 도는 벽돌이나 홍시’처럼 발갛게 나는 것으로 밤에 밖에 널어서 ‘이슬’을 맞힌 것이다. 바래는 동안 바람이 불어 접히거나 휘말린 곳은 색이 덜 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금속성 쇠붙이는 색이 검게 변하기 때문에 금물이다.

특징 및 의의

‘옷’ 앞에 ‘갈’ 자를 덧붙인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노동복이라는 기능성과, 색色이 벽돌이나 낙엽처럼 갈색褐色으로 변한 것, 거친 베(갈포葛布)가 가진 상징성을 담고 있는 점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옷’ 앞에 ‘갈’ 자를 덧붙인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노동복이라는 기능성과, 색色이 벽돌이나 낙엽처럼 갈색褐色으로 변한 것, 거친 베(갈포葛布)가 가진 상징성을 담고 있는 점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참고문헌

남국의 세시풍속(진성기, 제주민속문화연구소, 1969), 원대정군지(고병오·박용후, 박문출판사, 1968), 제주도 복식의 민속학적 연구(고부자,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1), 제주도 의생활의 민속학적 연구(고부자,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17-의생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