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모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최은수(崔銀水)
갱신일 2018-10-29

정의

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해 갓 위에 덮어쓰는 고깔 모양의 쓰개.

역사

갈모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갓의 사용은 조선 초기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선조 때 이제신李濟臣(1536~1583)의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에는 명종 때를 전후한 입제笠制의 설명 중에 우모雨帽에 대한 것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중기에 이미 갈모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1504년(연산군 10) 6월에 갈모는 “갓 위에 덮어쓰는 우구雨具로서, 유지油紙로 만들며 원추형圓錐形이고 정점頂點으로부터 아래로 방사형放射形으로 많은 주름이 있어 접으면 쥐는 부채와 비슷한 모양이 된다.”라는 기록이 있어서, 현재 남아 있는 유물과 비교해도 그 형태가 변하지 않고 유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기록에는 1478년(성종 9) 1월부터 1675년(숙종 1) 6월까지 갈모에 관한 기사가 10여 건이 나오고, 우모雨帽 용어도 우구雨具, 우의雨衣와 함께 1779년(정조 3)의 기사에 나온다. 갈모는 실록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에 팔아서 여비로 쓰는 용도(1478년 1월)로 썼다는 내용, 갈모의 형태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내용(1604년 6월), 군사들에게 내리는 하사품[1510년(중종 5) 4월, 1537년(중종 32) 3월, 1541년(중종 36) 11월] 혹은 중국 사신 선물용[1609년(광해군 1) 5월]으로 사용하거나 무역품[1675년(숙종 1) 6월] 등으로 사용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 이후의 자료로는 1900년 초 사진이나 1930년대 그림에서 착용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

갈모의 원래 이름은 갓 위에 쓰는 갓모자[笠帽]이며, 비 올 때 써서 ‘우모雨帽’, 기름종이로 만들어서 ‘유모油帽’라고도 했다. 갈모의 모양은 펼치면 위가 뾰족하여 고깔 모양이 되고, 접으면 쥘부채처럼 된다. 기름을 먹인 갈모지(환지) 또는 한지에 가는 대나무를 붙이고, 꼭대기에 닭 벼슬처럼 생긴 꼭지를 달아서 만들었다. 비가 올 때 우산처럼 펴서 갓 위에 덮어쓰고 실끈으로 턱에 매었는데,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유물에는 값비싼 갓끈 같은 것을 단 것도 있다. 갓 없이 쓸 때는 갈모테를 쓴 다음에 썼다. 갈모테는 유물에서 살펴보면 90도쯤 구부린 대오리에 다섯 개의 대오리살을 만들어 꼭대기에 모으고, 안에 헝겊으로 틀어 만든 미사리를 달아 접었다 폈다 하는 것으로 갈모를 편 모양과 비슷하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봤을 때 갈모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부채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접어서 만든 것과, 다른 하나는 맞주름치마처럼 두 개의 접은 주름이 서로 마주보게 접어서 만든 것이 있다. 재료는 종이에 기름을 먹여서 만들거나 완성한 이후에 기름을 먹이는 방법도 있다. 가늘게 쪼갠 대나무살은 접은 종이 사이사이에 하나씩 붙여 가며 만든다. 이후 종이를 한 장 더 발라서 대나무살은 보이지 않게 한다. 기름은 생들기름을 발라야 색도 잘 나오고 끈적거리지 않으며 종이에 기름이 잘 먹는다. 이는 1537년에 갈모를 만들 때는 들깨기름을 먹이라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한지공예가 윤서형과 염색공예가 이병찬이 구술한 갈모 만드는 방법(2017년 3월 조사)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한지를 원형으로 재단한다.
2. 일정한 간격으로 종이를 접는다.
3. 얇게 손질한 대나무살을 한 칸에 한 개씩 한지의 선을 따라 붙인다.
4. 대나무살은 위아래의 간격을 맞추어 붙인다.
5. 대나무살 위에 한 장의 한지를 덧대어 붙인 후 도침을 한다.
6. 한지를 우산 형태로 접은 후 지승끈을 안쪽 면에 5cm 간격을 남기고 붙인다.
7. 갈모의 꼭지를 한지로 감싸고 지승끈으로 묶어 고정한다.
8. 한지가 비에 젖지 않도록 생들기름을 발라서 마감한다.

특징 및 의의

갈모는 원래 비 오는 날 갓을 보호하기 위하여 썼다고 하지만,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계절과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해가 내리쬐는 더운 여름에는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눈 내리는 겨울에는 눈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갈모

갈모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최은수(崔銀水)
갱신일 2018-10-29

정의

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해 갓 위에 덮어쓰는 고깔 모양의 쓰개.

역사

갈모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갓의 사용은 조선 초기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선조 때 이제신李濟臣(1536~1583)의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에는 명종 때를 전후한 입제笠制의 설명 중에 우모雨帽에 대한 것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중기에 이미 갈모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1504년(연산군 10) 6월에 갈모는 “갓 위에 덮어쓰는 우구雨具로서, 유지油紙로 만들며 원추형圓錐形이고 정점頂點으로부터 아래로 방사형放射形으로 많은 주름이 있어 접으면 쥐는 부채와 비슷한 모양이 된다.”라는 기록이 있어서, 현재 남아 있는 유물과 비교해도 그 형태가 변하지 않고 유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기록에는 1478년(성종 9) 1월부터 1675년(숙종 1) 6월까지 갈모에 관한 기사가 10여 건이 나오고, 우모雨帽 용어도 우구雨具, 우의雨衣와 함께 1779년(정조 3)의 기사에 나온다. 갈모는 실록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에 팔아서 여비로 쓰는 용도(1478년 1월)로 썼다는 내용, 갈모의 형태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내용(1604년 6월), 군사들에게 내리는 하사품[1510년(중종 5) 4월, 1537년(중종 32) 3월, 1541년(중종 36) 11월] 혹은 중국 사신 선물용[1609년(광해군 1) 5월]으로 사용하거나 무역품[1675년(숙종 1) 6월] 등으로 사용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 이후의 자료로는 1900년 초 사진이나 1930년대 그림에서 착용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

갈모의 원래 이름은 갓 위에 쓰는 갓모자[笠帽]이며, 비 올 때 써서 ‘우모雨帽’, 기름종이로 만들어서 ‘유모油帽’라고도 했다. 갈모의 모양은 펼치면 위가 뾰족하여 고깔 모양이 되고, 접으면 쥘부채처럼 된다. 기름을 먹인 갈모지(환지) 또는 한지에 가는 대나무를 붙이고, 꼭대기에 닭 벼슬처럼 생긴 꼭지를 달아서 만들었다. 비가 올 때 우산처럼 펴서 갓 위에 덮어쓰고 실끈으로 턱에 매었는데,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유물에는 값비싼 갓끈 같은 것을 단 것도 있다. 갓 없이 쓸 때는 갈모테를 쓴 다음에 썼다. 갈모테는 유물에서 살펴보면 90도쯤 구부린 대오리에 다섯 개의 대오리살을 만들어 꼭대기에 모으고, 안에 헝겊으로 틀어 만든 미사리를 달아 접었다 폈다 하는 것으로 갈모를 편 모양과 비슷하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봤을 때 갈모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부채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접어서 만든 것과, 다른 하나는 맞주름치마처럼 두 개의 접은 주름이 서로 마주보게 접어서 만든 것이 있다. 재료는 종이에 기름을 먹여서 만들거나 완성한 이후에 기름을 먹이는 방법도 있다. 가늘게 쪼갠 대나무살은 접은 종이 사이사이에 하나씩 붙여 가며 만든다. 이후 종이를 한 장 더 발라서 대나무살은 보이지 않게 한다. 기름은 생들기름을 발라야 색도 잘 나오고 끈적거리지 않으며 종이에 기름이 잘 먹는다. 이는 1537년에 갈모를 만들 때는 들깨기름을 먹이라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한지공예가 윤서형과 염색공예가 이병찬이 구술한 갈모 만드는 방법(2017년 3월 조사)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한지를 원형으로 재단한다. 2. 일정한 간격으로 종이를 접는다. 3. 얇게 손질한 대나무살을 한 칸에 한 개씩 한지의 선을 따라 붙인다. 4. 대나무살은 위아래의 간격을 맞추어 붙인다. 5. 대나무살 위에 한 장의 한지를 덧대어 붙인 후 도침을 한다. 6. 한지를 우산 형태로 접은 후 지승끈을 안쪽 면에 5cm 간격을 남기고 붙인다. 7. 갈모의 꼭지를 한지로 감싸고 지승끈으로 묶어 고정한다. 8. 한지가 비에 젖지 않도록 생들기름을 발라서 마감한다.

특징 및 의의

갈모는 원래 비 오는 날 갓을 보호하기 위하여 썼다고 하지만,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계절과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해가 내리쬐는 더운 여름에는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눈 내리는 겨울에는 눈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