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복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남경미(南瓊美)
갱신일 2018-10-11

정의

일제강점기에 착용했던 간편한 부인복 또는 아동복이나 간편하게 입는 복식 일반.

내용

간단복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여름에만 입는, 간편한 원피스로 된 부인복”이다. 일본어로는 ‘簡單服’·‘アッパッパ’로 표기되었다. 1930년대 말 일제가 전시체제에 들어서자 이전에 착용되었던 다양한 양장은 사라지고, 간단복이 일반 여성에게 권장 또는 강요되었다. 간단복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없으며 몸에 꼭 끼지 않고 활동성이 좋아 여름에 입기 편한 옷이었다. 간단복 착용을 지시하며 남자에게는 국민복을, 여자에게는 몸뻬를 입혔다는 기록이 있지만, 간단복이나 몸뻬를 ‘밀리터리 룩’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 간단복을 전시에 착용해야만 했던 검소한 복식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간단복’이라는 말은 『동아일보』 1933년 5월 31일에 처음 등장하였다. 동아일보 학예부에서 주최하는 재봉 강습에 관한 내용 중 ‘가정부인의 간단복’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통해 여성복식에 사용된 단어였음을 알 수 있고, ‘가정부인’이라고 한정한 데서 기혼 여성 복식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학생 운동복, 와이셔츠 등과 함께 간략하게 표현된 것을 볼 때 당시 사람들에게는 간단복이라는 개념이 특정 복식을 칭하는 명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0년에는 경기도청에서 ‘여자 간이복’을 제작하여 ‘여자 국민복’으로 정식 승인을 얻었다는 내용이 있다. 허리에 띠가 있는 작업 본위의 것이라고 하는데, 전시에 입어야 했던 국민복과 같은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간단복의 의미는 좁게보면 1930년대 말부터 전시에 일제가 강제하였던 단순한 형태의 여성 원피스이고, 넓게는 1930년대 이후에 착용된 단순한 형태의 서양식 의복으로 여성이나 어린이들이 착용했던 것이다.
간단복을 대개 여름에 착용한 복식으로 이해하는데, 양재봉강습회洋裁縫講習會에서 춘추부인春秋婦人 간단복 제작 과정이 있던 것으로 보아 여름용 복식으로만 한정할 수 없고 봄, 여름, 가을 모두 간단복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간단복 형태는 허리에 벨트가 달리고 양옆에 포켓이 있는 원피스로 현재의 간호복과 비슷한 형태였다. 이것은 서구의 유틸리티utility 룩, 유틸리티 드레스와 형태가 유사하다. 이에 더하여 “동여 싸던 여자 의상도 일제가 들어오면서 한 겹 두 겹 벗어지기 시작했다 …… 흰 적삼에 짧은 검정치마는 신여성의 상징이 되어오다간 간단복이라는 솜털이 엉성한 병아리같이 훌렁훌렁한 옷이 양장의 시초로 나타났다.”라는 기사로 보아 간단복의 형태는 헐렁하고 편안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상 일제강점기 여성 간단복의 형태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면 간단복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한 가지는 양장洋裝으로 상의와 치마가 허리에서 붙어 있는 앞트임 원피스 형식이고, 칼라가 달려 있거나 달려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개 여름용이므로 소매는 반팔이고 허리에 허리띠가 착용되고 치마 길이는 무릎을 가리는 정도이다. 또 한 가지는 역시 양장인데 앞에 서술된 형태보다 훨씬 더 헐렁한 형태로 허리띠가 없는 원피스형이다.
어린이 복식 중에도 간단복이 있다. 1937년 『동아일보』 기사에 20~30분 안에 제작할 수 있는 4~5세 어린이의 간단복 제작법을 소개하였고, 1938년, 1940년 길을 잃은 어린이를 찾아가라는 기사에 ‘다올지 간단복’, ‘푸른빛이 약간 섞인 간단복을 입고 검은 운동화를 신은’ 어린이들을 묘사한 것을 보면, 어린이도 간단복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동용 간단복의 형태는 다양하다. 밑이 막혀 있고 다리가 전부 드러나며 멜빵이 달려 등 뒤에는 모아지고 앞에서 벌어져 고정되어 있다. 상체 앞뒤를 가리는 것으로 주머니를 달기도 하였다. 겨드랑이가 터져 있고 멜빵 끝에 단추를 달아서 멜빵을 고정했다 풀었다 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여름용 원피스형도 있다. 일본 자료에는 어린이용 간단복에 긴소매가 달린 활동이 편리한 원피스형도 있었다.
간단복의 소재는 ‘다올지, 깅감, 포푸링’ 등인데, 일반적으로 구하기 쉽고 값도 비교적 저렴하였다. 간단복 제작은 각자 집에서 하기도 하였고, 기성복도 있었다.
광복 이후 1949년 서울시의 신생활대책회 의류분과위원회에서는 5월 27일 섬유 부족 등 제반 사정 때문에 의류 생활의 간소화를 꾀하고자 여름 남녀 복장 제도를 다음과 같이 결정하고 발표하여 각 산하 기관에 시달한 바 있다. 남자는 갑호상의甲號上衣에 노타이, 반팔, 하의는 긴바지 또는 을호상의乙號上衣에 노타이, 반팔, 하의는 반바지로 하였다. 여자 상의는 적삼으로 깃이 있는 것과 깃이 없는 것이 있고, 깃이 있는 것을 접어서 착용할 수 있으며 하의는 통치마이다. 여자 복식은 이소담 씨가 디자인하였다. 이 복식을 간이복 또는 간단복으로 서술하기도 하였는데, 1949년에 발표된 복식 중 여자 복식은 일제강점기의 간단복과는 다른 형태로 우리옷 적삼이 변형된 것이다.

특징 및 의의

간단복은 1930년대 이후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반영하는 복식이다. 좁은 의미로는 일제강점기에 여성복 또는 어린이 복식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였다. 간이복의 의미로도 쓰이면서 넓은 의미로는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활동적인 복식 전체를 포함한다. 간단복이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후에 널리 쓰이지는 않았으나, 1949년 신생활대책을 위해 개발한 복식을 간이복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검소함과 활동성이 요구되는 복식이었기 때문에 단순하고 활동에 편리하게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1920~1930년대 한국 여성 패션과 소비문화의 변화(김은정,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생활한복의 변천에 관한 연구(최경순·김선령, 한국의류산업학회지1-1, 한국의류산업학회, 1999), 한국여성양장변천사(유수경, 일지사, 1990), 현대패션 110년 1900~2010(금기숙 외, 교문사, 2012), 양재봉강습회(동아일보, 1934. 4. 1), 上田式家庭用児童服自由裁断型(上田泰嗣, 1920).

간단복

간단복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남경미(南瓊美)
갱신일 2018-10-11

정의

일제강점기에 착용했던 간편한 부인복 또는 아동복이나 간편하게 입는 복식 일반.

내용

간단복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여름에만 입는, 간편한 원피스로 된 부인복”이다. 일본어로는 ‘簡單服’·‘アッパッパ’로 표기되었다. 1930년대 말 일제가 전시체제에 들어서자 이전에 착용되었던 다양한 양장은 사라지고, 간단복이 일반 여성에게 권장 또는 강요되었다. 간단복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없으며 몸에 꼭 끼지 않고 활동성이 좋아 여름에 입기 편한 옷이었다. 간단복 착용을 지시하며 남자에게는 국민복을, 여자에게는 몸뻬를 입혔다는 기록이 있지만, 간단복이나 몸뻬를 ‘밀리터리 룩’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 간단복을 전시에 착용해야만 했던 검소한 복식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간단복’이라는 말은 『동아일보』 1933년 5월 31일에 처음 등장하였다. 동아일보 학예부에서 주최하는 재봉 강습에 관한 내용 중 ‘가정부인의 간단복’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통해 여성복식에 사용된 단어였음을 알 수 있고, ‘가정부인’이라고 한정한 데서 기혼 여성 복식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학생 운동복, 와이셔츠 등과 함께 간략하게 표현된 것을 볼 때 당시 사람들에게는 간단복이라는 개념이 특정 복식을 칭하는 명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0년에는 경기도청에서 ‘여자 간이복’을 제작하여 ‘여자 국민복’으로 정식 승인을 얻었다는 내용이 있다. 허리에 띠가 있는 작업 본위의 것이라고 하는데, 전시에 입어야 했던 국민복과 같은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간단복의 의미는 좁게보면 1930년대 말부터 전시에 일제가 강제하였던 단순한 형태의 여성 원피스이고, 넓게는 1930년대 이후에 착용된 단순한 형태의 서양식 의복으로 여성이나 어린이들이 착용했던 것이다. 간단복을 대개 여름에 착용한 복식으로 이해하는데, 양재봉강습회洋裁縫講習會에서 춘추부인春秋婦人 간단복 제작 과정이 있던 것으로 보아 여름용 복식으로만 한정할 수 없고 봄, 여름, 가을 모두 간단복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간단복 형태는 허리에 벨트가 달리고 양옆에 포켓이 있는 원피스로 현재의 간호복과 비슷한 형태였다. 이것은 서구의 유틸리티utility 룩, 유틸리티 드레스와 형태가 유사하다. 이에 더하여 “동여 싸던 여자 의상도 일제가 들어오면서 한 겹 두 겹 벗어지기 시작했다 …… 흰 적삼에 짧은 검정치마는 신여성의 상징이 되어오다간 간단복이라는 솜털이 엉성한 병아리같이 훌렁훌렁한 옷이 양장의 시초로 나타났다.”라는 기사로 보아 간단복의 형태는 헐렁하고 편안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상 일제강점기 여성 간단복의 형태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면 간단복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한 가지는 양장洋裝으로 상의와 치마가 허리에서 붙어 있는 앞트임 원피스 형식이고, 칼라가 달려 있거나 달려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개 여름용이므로 소매는 반팔이고 허리에 허리띠가 착용되고 치마 길이는 무릎을 가리는 정도이다. 또 한 가지는 역시 양장인데 앞에 서술된 형태보다 훨씬 더 헐렁한 형태로 허리띠가 없는 원피스형이다. 어린이 복식 중에도 간단복이 있다. 1937년 『동아일보』 기사에 20~30분 안에 제작할 수 있는 4~5세 어린이의 간단복 제작법을 소개하였고, 1938년, 1940년 길을 잃은 어린이를 찾아가라는 기사에 ‘다올지 간단복’, ‘푸른빛이 약간 섞인 간단복을 입고 검은 운동화를 신은’ 어린이들을 묘사한 것을 보면, 어린이도 간단복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동용 간단복의 형태는 다양하다. 밑이 막혀 있고 다리가 전부 드러나며 멜빵이 달려 등 뒤에는 모아지고 앞에서 벌어져 고정되어 있다. 상체 앞뒤를 가리는 것으로 주머니를 달기도 하였다. 겨드랑이가 터져 있고 멜빵 끝에 단추를 달아서 멜빵을 고정했다 풀었다 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여름용 원피스형도 있다. 일본 자료에는 어린이용 간단복에 긴소매가 달린 활동이 편리한 원피스형도 있었다. 간단복의 소재는 ‘다올지, 깅감, 포푸링’ 등인데, 일반적으로 구하기 쉽고 값도 비교적 저렴하였다. 간단복 제작은 각자 집에서 하기도 하였고, 기성복도 있었다. 광복 이후 1949년 서울시의 신생활대책회 의류분과위원회에서는 5월 27일 섬유 부족 등 제반 사정 때문에 의류 생활의 간소화를 꾀하고자 여름 남녀 복장 제도를 다음과 같이 결정하고 발표하여 각 산하 기관에 시달한 바 있다. 남자는 갑호상의甲號上衣에 노타이, 반팔, 하의는 긴바지 또는 을호상의乙號上衣에 노타이, 반팔, 하의는 반바지로 하였다. 여자 상의는 적삼으로 깃이 있는 것과 깃이 없는 것이 있고, 깃이 있는 것을 접어서 착용할 수 있으며 하의는 통치마이다. 여자 복식은 이소담 씨가 디자인하였다. 이 복식을 간이복 또는 간단복으로 서술하기도 하였는데, 1949년에 발표된 복식 중 여자 복식은 일제강점기의 간단복과는 다른 형태로 우리옷 적삼이 변형된 것이다.

특징 및 의의

간단복은 1930년대 이후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반영하는 복식이다. 좁은 의미로는 일제강점기에 여성복 또는 어린이 복식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였다. 간이복의 의미로도 쓰이면서 넓은 의미로는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활동적인 복식 전체를 포함한다. 간단복이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후에 널리 쓰이지는 않았으나, 1949년 신생활대책을 위해 개발한 복식을 간이복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검소함과 활동성이 요구되는 복식이었기 때문에 단순하고 활동에 편리하게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1920~1930년대 한국 여성 패션과 소비문화의 변화(김은정,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생활한복의 변천에 관한 연구(최경순·김선령, 한국의류산업학회지1-1, 한국의류산업학회, 1999), 한국여성양장변천사(유수경, 일지사, 1990), 현대패션 110년 1900~2010(금기숙 외, 교문사, 2012), 양재봉강습회(동아일보, 1934. 4. 1), 上田式家庭用児童服自由裁断型(上田泰嗣,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