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장현주(張賢珠)
갱신일 2018-10-17

정의

동물의 피부를 벗겨 내어 가공한 복식 소재의 한 종류.

내용

의복 재료로서의 가죽은 크게 ‘날가죽’과 날가죽에서 털을 제거하고 무두질한 가죽을 총칭한 ‘피혁皮革’, 털이 붙어 있는 채로 무두질한 ‘모피毛皮’로 나눈다. 우리 민족은 북방 기마민족 시절 북방 호복 계통의 의복을 착용하였으며 기마·유목·수렵 생활을 통해 얻은 가죽을 사용해 만든 간단한 형태의 가죽 의복을 착용해 왔다. 가죽옷은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 직물이 발달하면서 점점 쇠퇴하였고, 의복 외 다양한 복식 소품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모전毛典, 피전皮典 등 동물의 털가죽을 다루는 전문 기관이 있었으며, 『이계집耳溪集』에 적구피赤狗皮를 여름이나 겨울에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함경도와 제주도에서는 개가죽으로 만든 옷 유물이 발견된 바 있어 두 지역에서 개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착용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 기록을 보면 모의장毛衣匠, 모관장毛冠匠 등을 두어 털옷과 모피로 만든 관을 전문적으로 생산하여 신하들에게 하사했으며, 당상관堂上官에게는 겉감은 단緞, 안은 초피貂皮(담비 가죽)로 만든 이엄耳掩을, 당하관堂下官에게는 겉감은 초綃, 안은 서피犀皮(무소 가죽)로 만든 이엄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사서인士庶人은 이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으므로 초피가 가장 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조선 명종 대에 당하관 및 사족은 이엄을 서피·왜산달피倭山獺皮(검은담비 가죽)로 만들게 하고, 제학관원諸學官員·군사軍士·서얼庶孽·이서吏胥는 적호피赤狐皮·향산달피鄕山獺皮로, 공상工商·천례賤隷는 산양피山羊皮·구피狗皮·묘피猫皮·지달피地獺皮·이피狸皮·토피兎皮로, 특히 천여인賤女人의 모관毛冠·차수遮首도 재료를 공상천예의 경우와 같게 하여 신분에 따라 사용 가능한 가죽을 상세하게 규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명종실록 권15 명종 8년 9월).

지역사례

모피 및 피혁류 복식은 특히 제주 지역에서 발달했다. 목자牧者의 겉옷인 긴 포 형태의 가죽옷은 모피로 제작되었으며, 가죽감태·가죽버선·가죽신·가죽발레·가죽주머니 등은 주로 털이 제거된 피혁 상태로 제작되었다. 제주 지역의 모피·피혁류 복식은 중산간 지역의 목자들이 1900년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착용했으며, 현재 제주 소재 박물관에는 노루·오소리·개·소· 말 등으로 제작한 다양한 모피·피혁류 복식이 보존되고 있다. 가죽옷은 중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소나 말을 키우는 목자·사냥꾼·화전민 등이 주로 착용했으며, 주로 소재는 개나 소가죽을 사용하여 장례를 치르러 갈 때 방한용이나 눈비가 올 때 방수용으로도 착용했다. 특히 개가죽 옷은 가슴과 등 부분에 모질이 좋은 개가죽을 사용했다. 이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가죽감태는 겨울 중산간 지역의 추위로부터 뒷목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앞보다 뒤를 길게 제작했으며, 가죽이 얇고 가벼우며 보온성 및 방수성이 좋은 오소리, 노루 등을 주로 사용했다. 가죽신은 짚신과 같은 형태인데 가죽의 털을 모두 제거한 가죽으로 제작했고, 가죽버선에 비해 귀해서 아무나 신지 못해 부유층에서만 사용했다. 이에 비해 비교적 흔한 가죽버선은 버선과 같은 형태로 만들며 주로 겨울에 농사일을 할 때, 한라산에 소나 말을 돌보러 갈 때 신었다. 이를 제작할 때 의복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소가죽 등의 털을 모두 제거하고, 바닥 부분에 코걸이 기법으로 가죽을 바느질해 연결하면 살이닿는 부분이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죽발레는 바짓가랑이만 있는 바지로, 몽골 지역에서 말을 탈 때 추위로부터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투고套袴와 형태가 유사하다. 이는 중산간 지역에 다니는 소나 말을 돌보는 목자 또는 사냥하는 사람들이 가시덩굴 속을 다닐 때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루가죽·개가죽·소가죽 등으로 만들어 착용한 것이다. 실제로 가죽발레는 1702년(숙종 28) 때 제작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서 <공마봉진貢馬封進>, <산장구마山塲驅馬>, <별방조점別房操點>, <명월조점明月操點> 등에서 목자들이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제주대학교박물관에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특징 및 의의

귀한 신분의 경우 모직물과 마찬가지로 가죽 의복은 방한용의 갖저고리·배자·두식·족식 외에는 흔히 사용되지 않았으며, 군인의 갑옷인 피갑皮甲, 목자의 가죽옷·가죽감태·가죽버선·가죽신 등의 소재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耳溪集, 朝鮮王朝實錄, 제주 전통 모피·피혁류 복식연구(고순희, 제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中國織繡服飾全集5(中國織繡服飾全集編輯委員會, 天津人民美術出版社, 2005).

가죽

가죽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장현주(張賢珠)
갱신일 2018-10-17

정의

동물의 피부를 벗겨 내어 가공한 복식 소재의 한 종류.

내용

의복 재료로서의 가죽은 크게 ‘날가죽’과 날가죽에서 털을 제거하고 무두질한 가죽을 총칭한 ‘피혁皮革’, 털이 붙어 있는 채로 무두질한 ‘모피毛皮’로 나눈다. 우리 민족은 북방 기마민족 시절 북방 호복 계통의 의복을 착용하였으며 기마·유목·수렵 생활을 통해 얻은 가죽을 사용해 만든 간단한 형태의 가죽 의복을 착용해 왔다. 가죽옷은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 직물이 발달하면서 점점 쇠퇴하였고, 의복 외 다양한 복식 소품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모전毛典, 피전皮典 등 동물의 털가죽을 다루는 전문 기관이 있었으며, 『이계집耳溪集』에 적구피赤狗皮를 여름이나 겨울에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함경도와 제주도에서는 개가죽으로 만든 옷 유물이 발견된 바 있어 두 지역에서 개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착용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 기록을 보면 모의장毛衣匠, 모관장毛冠匠 등을 두어 털옷과 모피로 만든 관을 전문적으로 생산하여 신하들에게 하사했으며, 당상관堂上官에게는 겉감은 단緞, 안은 초피貂皮(담비 가죽)로 만든 이엄耳掩을, 당하관堂下官에게는 겉감은 초綃, 안은 서피犀皮(무소 가죽)로 만든 이엄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사서인士庶人은 이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으므로 초피가 가장 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조선 명종 대에 당하관 및 사족은 이엄을 서피·왜산달피倭山獺皮(검은담비 가죽)로 만들게 하고, 제학관원諸學官員·군사軍士·서얼庶孽·이서吏胥는 적호피赤狐皮·향산달피鄕山獺皮로, 공상工商·천례賤隷는 산양피山羊皮·구피狗皮·묘피猫皮·지달피地獺皮·이피狸皮·토피兎皮로, 특히 천여인賤女人의 모관毛冠·차수遮首도 재료를 공상천예의 경우와 같게 하여 신분에 따라 사용 가능한 가죽을 상세하게 규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명종실록 권15 명종 8년 9월).

지역사례

모피 및 피혁류 복식은 특히 제주 지역에서 발달했다. 목자牧者의 겉옷인 긴 포 형태의 가죽옷은 모피로 제작되었으며, 가죽감태·가죽버선·가죽신·가죽발레·가죽주머니 등은 주로 털이 제거된 피혁 상태로 제작되었다. 제주 지역의 모피·피혁류 복식은 중산간 지역의 목자들이 1900년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착용했으며, 현재 제주 소재 박물관에는 노루·오소리·개·소· 말 등으로 제작한 다양한 모피·피혁류 복식이 보존되고 있다. 가죽옷은 중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소나 말을 키우는 목자·사냥꾼·화전민 등이 주로 착용했으며, 주로 소재는 개나 소가죽을 사용하여 장례를 치르러 갈 때 방한용이나 눈비가 올 때 방수용으로도 착용했다. 특히 개가죽 옷은 가슴과 등 부분에 모질이 좋은 개가죽을 사용했다. 이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가죽감태는 겨울 중산간 지역의 추위로부터 뒷목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앞보다 뒤를 길게 제작했으며, 가죽이 얇고 가벼우며 보온성 및 방수성이 좋은 오소리, 노루 등을 주로 사용했다. 가죽신은 짚신과 같은 형태인데 가죽의 털을 모두 제거한 가죽으로 제작했고, 가죽버선에 비해 귀해서 아무나 신지 못해 부유층에서만 사용했다. 이에 비해 비교적 흔한 가죽버선은 버선과 같은 형태로 만들며 주로 겨울에 농사일을 할 때, 한라산에 소나 말을 돌보러 갈 때 신었다. 이를 제작할 때 의복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소가죽 등의 털을 모두 제거하고, 바닥 부분에 코걸이 기법으로 가죽을 바느질해 연결하면 살이닿는 부분이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죽발레는 바짓가랑이만 있는 바지로, 몽골 지역에서 말을 탈 때 추위로부터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투고套袴와 형태가 유사하다. 이는 중산간 지역에 다니는 소나 말을 돌보는 목자 또는 사냥하는 사람들이 가시덩굴 속을 다닐 때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루가죽·개가죽·소가죽 등으로 만들어 착용한 것이다. 실제로 가죽발레는 1702년(숙종 28) 때 제작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서 , , , 등에서 목자들이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제주대학교박물관에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특징 및 의의

귀한 신분의 경우 모직물과 마찬가지로 가죽 의복은 방한용의 갖저고리·배자·두식·족식 외에는 흔히 사용되지 않았으며, 군인의 갑옷인 피갑皮甲, 목자의 가죽옷·가죽감태·가죽버선·가죽신 등의 소재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耳溪集, 朝鮮王朝實錄, 제주 전통 모피·피혁류 복식연구(고순희, 제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中國織繡服飾全集5(中國織繡服飾全集編輯委員會, 天津人民美術出版社, 2005).